여덟살 어린 아들과, 사랑하는 아내를 동반하고 우리는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가족 모두를 동반하고 떠나는 여행은 아이에겐 처음이었고, 아내에겐 두 번 째 여행이었다.
'숙아 ! 내년부터는 가계하면 여행하기 힘들 테니까 이번 기회에 제주 한 번 다녀오자 응?'
"호호 나야 좋지. 돈 많이 들텐데......"
커다란 배낭에 가득 짐을 담아 김포공항 행 리무진에 몸을 실었다.
하늘빛은 구름반, 태양조금, 그 나머지만 파랗게 빛을 냈다.
용인을 지나 수지를 거쳐 외곽순환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던 리무진은 어느새
공항주위를 맴돌았다.
공항 오는 길이 내내 슬펐는지, 하늘에선 비가 퍼부어 내렸다. 신이 난 빗줄기는 뜨거운 입김을 땅바닥에 토해내며 그렇게 부서졌다.
짐을 먼저 보내고, 공항청사 2층에 앉아서 영화를 보았다.
사람이 떠난 자리엔 공허가 주인이었다.
공허가 밀려와 공허가 자리를 잡고, 공허가 주인이 되어 영화를 볼 것이다.
썰렁한 객석, 아마 우리가 비행기에 몸을 싣고 떠나면, 여기 이 자리가 그랬을 것이다.
그러다가, 아주 이따금씩 공허를 내 보내고, 또 다른 사람이 거기에 앉겠지......
'우진아! 벨트 단단히 매라. 슈우웅....하며 비행기가 올라갈 거야. 꽉 잡아야 해! 하하'
"호호 우진아 걱정말오 엄마가 꼬옥 잡아줄게 "
생전 처음 타보는 아이에게 비행기는 신선한 감동이었을 것이다.
요란한 굉음을 내던 비행기는 날렵한 몸짓 우아하게 펄럭이며 활주로를 달려나갔다.
처음엔 리어카 달리는 속도로. 다음엔 자동차 달리는 속도로, 다음은 천지를 삼킬 듯한 포효소리를 내며 힘차게 내 달렸다. 그리고는 이내 슈웅....................그 다음은 고요의 연속이었다.
언제 무슨 소리가 났느냐 싶게 비행기는 하늘 한 복판에 멈춰 서 버린 듯 미동도 없다.
비행기 아래로 하얀 솜털 구름이 뭉게뭉게 퍼져나갔다.
두우둥실 구름을 탄 기분에 온몸에 황홀이 몰려왔다. 신선놀음을 한다면, 바로 여기가 아닌가 싶게, 그 경치는 실로 감동이었다. 세상이 온통 하얀 솜털 바다였으니 더 이상 뭐가 필요했을까?
제주공항에 내렸다.
비릿한 바다내음이 설레이게 했다.
동떨어진 남녘의 이국적 풍광에 나 조차 매료되어 어쩔 줄 몰랐다.
인터넷 친구의 도움으로 랜트카를 예약하고, 우리는 서둘러 그 랜트카를 찾아서 시동을 걸었다. 사이트 여기저기를 탐색한 끝에, 목장에서 숙박을 하기로 하고, 우리는 북제주로 달려갔다.
6년여만에 다시 찾은 제주도, 그곳에 살던 그 사람들, 그 풍경들 그 느낌들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는데, 가슴속을 스쳐 지나가는 훈훈한 잔정들은 예전 같지 않았다.
사람이 없다. 대낮인데도 도로가 한산하다. 장마 끝이라 바람에 비가 묻어있었다.
비릿한 갯바람은 온몸을 휘어 감고 찐득찐득 짠 기운을 채색시키고 있었다.
한참을 달려 찾아간 곳. 목장이라서 거대한 상상을 하고, 딴 애는 이국적 낭만에 흠씬취해보리라 다짐했는데..... 외딴 집 한 채에 방이라고 달랑있는곳에 거미줄이 칭칭 감겨있다.
샤워하기도 불편해 보이고, 밥해먹기도 불편해 보이는 그런곳을 아내가 좋아할 리가 없었다.
결국 그 집을 포기하고, 우리는 읍내에서 민박을 하기로 하였다.
김녕해수욕장 근처 여러곳을 돌아다녀도 선뜻 눈에 들어오는 집이 없었다.
한시간여를 다닌 끝에 우리는 그래도 운치가 있어 보이는 이층집을 찾았다.
2층 단독 집이라 남의 시선 신경 쓸 필요도 없었고, 바람 또한 제법 불어왔다.
오래 비워둔곳이라 여기저기 곤충들 기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여장을 풀고 우리는 서둘러 밥을 지었다.
가져온 고기를 구워 늦은 점심을 먹었다.
우리는 서둘러 다랑쉬오름을 오르자고 밖을 나갔다.
간간이 비가 내렸다.
흐린 날씨를 배경 삼아서 결국 다랑쉬오름을 찾았다.
근데 들어가는 입구를 못 찾아서 헤맸다.
날은 이미 기울어 가고 있었다.
'안되겠네. 오늘은 어두워지려해서 안되겠어, 내일 다시 올라가자 '
"응 그렇게 해 자기야 ..그리고, 나 회먹고 싶어 "
"아빠! 저 도요 깔깔 "
우리는 신나게 산굼부리앞을 돌아서 귤나무 과수원 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차한대 보이지 않는 고요의 땅.
산들바람이 시원하게 강산에 불어오는 유혹의 땅.
하늘높이 올라가는 높은 가로수길사이로 임자 없이 누워있는 작은 묘지들.
그리고, 가꾸지 않아서 잡초들만 무성하게 자라있는 미완의 밭들까지도 나의 가슴속에 말 할 수 없는 서정으로 자꾸만 밀려들고 있었다.
도로 가에 파란 풀들이 바람에 실려 춤을 추었다.
멀리 산에는 뭉개 구름이 한 움큼 걸터앉아 우리를 바라보았다.
한라산을 빼고 나면 제주는 거의가 평지였다.
제주 어느 곳에 시선을 내려놓아도 그 시선에 막힘이 없었다.
'우아.............아름답다 참 좋으네. 우리 빨리 이런 곳에 와서 살자 응?'
"아빠. 전 싫어요. 이런 조용한 곳이 뭐가 좋아요? 친구도 없고, 오락기도 없고, 컴퓨터도 없는데요. 전 안 따라올 거예요 아빠혼자 와서 살아요 "
'우진아! 넌 따라오기 싫으면 안 와도 된다, 너 대학 들어가면 넌 따로 독립해서 살아라. 난 네 엄마랑 둘 이만 올 테니깐......'
"아빠! 그것도 싫어요 같이 살아요 네? "
그러던, 아들이 삼박 사일의 제주여행을 다 마친 후에 하는 말이 "아빠! 저도 따라 내려올게요. 아빠 내려오셔서 과수원 하면 저도 같이 귤따러 다닐게요. 까르르 "
참 착한 아들이다. 지나가던 관광객이 좀 태워달라고 하신다. 가볍게 태웠다.
육지서 오신 이분들도 멋진 분들이었다. 동질감 이라고나 할까?
제주탑동에 차를 세우고, 우리는 횟집에 들어갔다.
다금 바리란 회가 있는데 가격이 15000원이었다.
제주라서 싼 가보다 했었다 처음엔.......사실 다금 바리 회가 하도 맛있어서 일부러 서울서 비행기 타고 내려와 그것만 먹고, 다시 서울로 올라간다는 말을 들었었다.
한참 웃고 떠들던 찰나에 아내가 한마디했다.
"자기야! 다금바리회가 정말 15000원이야? 저기 가격표 한번 봐바,"
나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까는 보이지 않던 0자가 하나 더 들어있지 않은가?
십오만원이었던 것이다.
어쩐지 싸도 너무 싸더라니...큰일이었다. 계획대로라면 분명히 오늘은 회를 50000원이상 먹으면 안 되는 거였다.
가져온 돈에 맞추기 위해선 취소를 시켜야 했다.
'저기 아저씨 아까 시킨 거 취소되나요? '
"이미 배 갈랐는데요? 곧 나와요 "
아이공 쪽 팔려 하하 "네 ......하도 안나와서 빨리 나오는 거 있음 그거 시키려고 했더니 다행이네요 하하하"
싼게 비지떡이란 말이 있다. 난생 처음 십오만원짜리 회를 먹는 우리들 입가엔 웃음이 피었다.
멋쩍고, 우습고, 그리고, 독특한 이 회맛까지 음미하면서, 속으로 외쳤다.
'다시는 다금 바리는 안먹을거다. ' 사실 150000만원 투자해서 먹을 만큼 맛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아내도 그랬고,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탑동의 부서지는 파도와 야경을 감상하다가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이층민박집 건너편으로 자그만 집에 사람 한사람이 앉아있다.
공부를 하는 것 같았다.
몇 시간이 지나도록 미동도 없이 책을 읽는 그 여인의 모습에서 느끼는 것이 많았다.
이런 시골구석에서도, 저렇게 공부를 하는 사람이 있구나. 저 사람은 분명히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이었을 것이다.
제주의 하루가 저물고있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귓가에 맴돌았다
문열고 뛰쳐나가면 조금은 가까운 곳에 김녕앞바다가 날 유혹하겠지........
아들은 이내 잠이 들었다.
아내는 음악에 취해버렸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거린다. 내일은 날씨가 좋으려나보다.
첫댓글하하하! 저도 깜짝 놀랬습니다 다금바리가 만오천원 이라니...ㅎㅎㅎㅎ 전에 우리집에도 중년의 아베크 한쌍이 손님으로 오셨는데 모듬회 특이 그당시 가장 비싼 6만원 이었거든요 그런데 그걸 글쎄 6천원으로 보고 주문을 하셨다지 뭐에요..그분이 카드로 쫘악 긁으며 하시는 말씀 " 분식집에가서 동그라미 하나 덜 보면
첫댓글 하하하! 저도 깜짝 놀랬습니다 다금바리가 만오천원 이라니...ㅎㅎㅎㅎ 전에 우리집에도 중년의 아베크 한쌍이 손님으로 오셨는데 모듬회 특이 그당시 가장 비싼 6만원 이었거든요 그런데 그걸 글쎄 6천원으로 보고 주문을 하셨다지 뭐에요..그분이 카드로 쫘악 긁으며 하시는 말씀 " 분식집에가서 동그라미 하나 덜 보면
그런데로 괜찮은데 횟집에 와서 하나 잘못보면 큰일나는거야~" 이러시더군요..ㅎㅎㅎㅎ 그래도 덕분에 눈한번 질끈 감고 비싼 회 드시지 않았습니까! 무지무지 행복하셨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