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심경 46 /혜가 대사 2 /마음을 가져 오너라
직지심경(直指心經)해설 46 중국의 조사(中國 祖師)
제29조 혜가(慧可) 대사 2 /마음을 가져 오너라
師曰諸佛無上妙道는 廣劫勤修하사 難行能行하고 難忍能忍하시니라 豈以小德小智와 輕心慢心으로 欲冀眞乘가 徒勞勤苦니라 光이 聞師誨勵하고 潛取利刀하야 自斷左臂하야 置於師前커늘 師가 知是法器하시고 乃曰諸佛最初求道에 爲法忘形하시거늘 汝今斷臂吾前하니 求亦可在라하시고 師가 遂因與易名曰慧可라하시다 光曰諸佛法印을 可得聞乎닛고 師曰諸佛法印은 匪從人得이니라 光曰我心이 未寧하니 乞師與安하노이다 師曰將心來하라 與汝安하리라 曰覓心了不可得이니다 師曰與汝安心竟이니라
달마대사가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의 가장 높은 미묘한 도는 오랜 세월동안 부지런히 수행하여 행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하고 참기 어려운 일을 능히 참았느니라. 어찌 작은 덕과 작은 지혜와 가벼운 마음과 거만한 마음으로 참다운 가르침을 바라는가? 부질없는 고생만 할 뿐이로다.”
신광이 달마대사의 가르침을 듣고 몰래 날카로운 칼을 가져다가 스스로 왼쪽 팔을 잘라서 대사의 앞에 두었다. 대사가 법의 그릇임을 아시고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들이 최초에 도를 구하는데 법을 위해서 몸을 잊었는데 그대가 지금 내 앞에서 팔을 자르니 가히 도를 구할만하다.”하시고 대사가 드디어 그로 인하여 이름을 바꾸어 혜가(慧可)라고 하였다.
신광이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의 법인(法印)을 들을 수 있습니까?”
“모든 부처님의 법인은 사람에게서 얻는 것이 아니니라.”
“저의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니 스님께서는 편안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 편안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오너라. 그대에게 편안하게 해 주겠노라.”
“마음을 찾아도 마침내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대에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느니라.”
해설 ; 신광은 달마대사를 뵙고 옛날 사람들이 도를 구하기 위해서 소중한 몸을 다 버려 뼈를 깎고 피를 내며, 몸을 던져 주린 야차에게 공양하고, 진흙에 머리카락을 깔아 부처님이 밟고 지나가게 한 행적들을 생각하여 자신도 소림굴 앞에서 눈이 내리는 한 밤을 꼬박 지새우고 법을 청하는 신심을 보였다. 그리고는 슬피 울면서 말하였다. “오직 원하옵나니 화상께서는 자비로서 감로법문을 열어서 널리 중생을 제도하소서.”라고 간절히 청하였다.
이러한 청을 듣고 달마대사는 “작은 덕과 작은 지혜와 가벼운 마음과 거만한 마음으로 참다운 가르침을 바라는가? 부질없는 고생만 할 뿐이로다.”라고 하였으니 신광은 참으로 한편은 울분이 솟고 한편은 더욱 용맹한 마음이 일어나서 날카로운 칼로써 자신의 팔을 하나 잘라서 달마대사에게 바쳐 도에 대한 철석같은 믿음을 보였다. 이 사건이 불교사에 길이길이 아름다운 본보기로 전하여 내려오고 있다. 소위 “혜가(慧可)의 입설단비(立雪斷臂)”다. 천하의 명승(名僧)인 달마대사와 혜가대사의 첫 만남은 이와 같이 살벌하면서도 불꽃이 튀는 진검승부로서 이뤄졌다. 그 광경을 본 달마대사는 비로소 그가 법의 그릇임을 알고 이름을 바꾸어 신광을 혜가(慧可)라고 하였으며, 그 뒤부터는 혜가대사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달마대사와 혜가대사와의 대화에서 그 유명한 안심법문(安心法門)이 오고 가게 되었다. 혜가대사가 말하기를,
“저의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니 스님께서는 편안하게 하여 주십시오.”
달마대사가 왈, “그 편안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오너라. 그대에게 편안하게 해 주겠노라.”
“마음을 찾아도 마침내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대에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느니라.”라고 한 내용이다. 이 대화의 내용은 사람의 마음이 한편으로는 고통과 즐거움으로 윤회하면서 엄연히 실재한다는 측면과 다른 한편으로는 엄연히 실재하는 그 마음의 자체를 추구해 들어가면 무아(無我)요 공성(空性)이라는 측면을 함께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몸도 마음도 있는 것이며 또한 없는 것이다. 없는 것이며 또한 있는 것이다. 있음도 진리고 없음도 또한 진리다. 모든 존재는 이와 같이 이중적 진리가 공존한다. 이 이중적 진리가 존재의 실상이다. 그래서 이 이중적 진리를 치우치지 말고 바르게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 상반되는 양면을 치우치지 않고 이해하여 수용하는 안목과 소견을 중도정견(中道正見)이라 하며, 중도의 생활화라고 할 수 있다. 중도의 생활화가 되었을 때 혜가대사처럼 모든 불안과 고통은 사라지고 편안한 삶이 시작된다.
혜가대사는 그토록 편치 않던 마음이 그의 삶 전체를 짓누르고 있었으나 그 편치 않던 마음의 실체는 없는 것이며 공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연히 깨달아 편안한 삶을 누리게 된 것이다. 부처님과 같은 장황한 설명이 아니라 달마대사의 촌철살인과 같은 명쾌한 한마디, “마음을 가져 오너라”라는 이 말에 모든 존재의 있고 없음의 실상을 다 설명한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활과 같이 말하고 조사들은 활줄과 같이 설한다.”라고 하였다. 선문답의 묘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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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_()()()_
將心來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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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가져 오너라...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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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_()_ _()_ _()_
감사합니다 _()()()_
☞直指心經 - 46. 慧可大師 - 2. 마음을 가져 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