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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29일째; 죽령~연화봉~비로봉~국망봉~연화동갈림길(19.2km)
2009년 11월 12일 목요일 흐림,
어제처럼 늦잠을 자지 않으려 알람시계를 머리맡에 두고 잤다. 5시, 알람소리에 일어나 라면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어제 싸둔 도시락을 챙겨 길을 나선다. 기온氣溫이 더 떨어졌는 지 쌀쌀한 공기가 얼굴을 스친다. 휴게소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 뽑아 들고 어제 보아둔 소백산 들머리로 찾아 간다.
[죽령정자]
깜깜한 죽령정자에는 밤을 지샌 가로등만이 외롭게 새벽을 기다리고 있다.
어제 저녁에 보아 두었던 정자 옆으로 난 계단을 올라섰는데, 이런 수가...,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는다. 아침부터 알바..., 그러니까 어제 저녁에 보았던 계단은 소백산 들머리가 아니라 단순히 정자와 쉼터에 오르는 계단일 뿐, 이런 낭패가..., 이른 새벽이라 물어볼 사람도 없고, 어제 저녁에 확인해 두지 않은게 실수..., 정자에 오르는 계단을 너무도 당연히 소백산 들머리라 생각했으니.., 어쩔 수 없이 주막집을 두드려 깨워야 하나...?
정신을 가다듬고 가만히 생각을 정리해 보니 머리 속에 가물가물..., '죽령에서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까지는 포장도로를 따라간다' 라는 글을 본 기억이 떠 올랐다. 아차 싶어 뒤로 돌아서 다시 휴게소앞으로 가니 어둠 속에 콘크리트로 포장된 소백산 들머리가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나는 왜 어제저녁부터 죽령정자로 오르는 계단을 소백산 들머리라고 생각했을까? 아마 대간 길에서 도로에 내려서자마자 정자옆으로 난 계단이 눈에 들어왔고 당연히 소백산 들머리라고 받아 들이고 말았던 것이다. 잠재의식, 선입견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소백산 들머리 옆에 서 있는 공원 안내판을 잠시보고 포장도로를 따라 순례巡禮를 시작한다.
[소백산 들머리]
[제2 연화봉으로...]
7시가 되자 어느새 어둠이 물러가고 제2 연화봉이 옅은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자태姿態를 드러낸다.
소백산은 봉우리마다 연꽃으로 덮혀있다. 제2 연화봉, 연화봉, 제1 연화봉, 거기다 오늘 민박할 마을 이름도 연화동이다. 연蓮은 더러운 물 속에 뿌리를 두었으나 깨끗한 꽃을 피운다고 하여 예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속세의 혼탁함 속에서도 더럽혀지지 않고 깨끗한 꽃을 피운다는 청정함의 상징으로 극락세계를 이 꽃에 비유한다. 즉 극락세계를 '연방蓮房'이라고 하며,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하는 사람의 모습을 '연蓮'이라 한다. 또한 연蓮에 종자가 많은 것을 보고 민간에서는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 여성의 옷에 연꽃무늬를 새겨 자손을 많이 낳기를 기원하기도 하였다.
도로를 따라가다 궁금증이 하나 풀렸다. 그동안 자주 만났던, 노랗게 단풍드는 침엽수 나무 이름이 무엇인가 했는데 길 옆에 '우리나라에 가장많이 식재植栽된 소나무과의 일본 잎갈나무' 라고 신한은행에서 명찰을 달아 놓았다.
뒤를 돌아보니 죽령넘어에는 어제 내려온 도솔봉 마루금이 선명하다. 도솔봉과 삼형제봉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일본 잎갈나무]
[쉼터]
[어제 지나온 도솔봉마루금...]
[동해 바다...?]
우측 희방사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바다의 출현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여기에 바다가 있을 턱이 없는데...' 하고 자세히 보았더니 일출과 하늘, 안개로 만들어 내는 자연이 하나의 작품을 연출하고 있다. 찬란하게 타오르는 일출에 경탄하다가 다시 제2 연화봉으로....,
제2연화봉 입구에 도착한다. 정상은 통신시설이 점령하고 있다. 백두대간은 여기서 좌측으로 연화봉을 향해간다. 제2 연화봉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무엇인가 했더니'강우降雨 레이더 신설공사' 안내판이다. 2011년 3월 준공 예정으로 지하1층 지상 8층 규모로 탐방객 시설로는 2층에 대피소, 7층에 전망대와 전시실이 갖춰진다.
[전망대]
좌측으로 단양쪽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나타났는데..., 조망을 즐기기에는 날씨가 너무 차다. 순토시계는 17도를 가리키는데 아마 손목에 차고 있어 정확하지 않은 듯..., 바람이 약간 있다고는 하지만 체감온도는 훨씬 아래인듯..., 쟈켓에 달린 모자까지 쓰고 장갑을 끼었지만 손가락이 아려온다. 이렇게 손이 시린적은 어릴 적, 얼음이 언 논에서 썰매탈 때 이 후로는 없었던 것 같다. 손가락이 얼어 감각이 둔해지고 카메라 셧터 누르기가 불편하다. 스틱을 세워두고 손을 겨드랑이에 넣어 녹여본다.
[천문대]
구상나무와 철쭉이 첨성대를 감싸고 있는데 나뭇가지에는 상고대가 아름답게 피어 있다.
연화봉으로 오르는 길 양쪽에도 상고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구름이 날아가다 나무에 얼어 붙은 것은 상고대, 땅속에서 김이 오르며 부풀어 언 것을 하고대라 한다는 것, 여기와서 알았다.
소백산천문대로 출근하는 차량들이 몇대 지나간다. 이렇게 절경인 곳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화봉과 비로봉 갈림길...]
연화봉에 들렸다 가려고 철쭉나무가 양쪽에 빽빽한 오솔길을 따라간다. 소백산은 나무는 드물고 철쭉과 초원지대가 많다고 들었는데..., 철쭉이 정말로 많다. 봄에 저 철쭉나무들이 모두 꽃을 피운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 그림을 그려 보았다. 그러나 가지마다 상고대를 메달고 있는 오늘 풍경도 또 다른 멋을 자아낸다.
[국립공원에서의 백두대간의 의미]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두대간이란 말은 산꾼들 입에만 오르내리고 제도권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소백산 국립공원을 비롯한 공공기관에서도 여전히 태백산맥이니 소백산맥이니 했지 백두대간이란 표현은 없었다는데..., 이제는 이렇게 국립공원에도 백두대간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대간 길 왼쪽 단양읍 방향...,]
[연화봉, 1,383m]
[금선정 계곡과 금계호...]
남男홀로 산객山客이 제1 연화봉을 오르다 휴대폰으로 상고대가 덮힌 소백산을 담는다. 죽령에 차를 세워두고 비로봉까지만 갔다가 원점회귀할 예정이란다.
[남男 홀산객]
[비로봉으로 달려가는 대간 마루금...,]
앞쪽으로는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대간마루금이..., 왼쪽으로는 단양 방향 조망이 한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산에 드리운 구름의 그림자들이 화가가 그린 묵화 그 자체인듯...
[400~500년된 주목 군락지]
단양읍 천동리로 내려가는 갈림 길을 지나자 나무라고는 보이지 않던 소백산에 대간 마루금 좌측으로 주목군락지가 나타난다. 나는 이 부근에 있다는 '주목관리소'를 찾는데 어찌된 일인지 오늘은 보이지 안는다. 비로봉에 오르기 직전前에 왼쪽편에 '주목관리소'가 있어 산꾼들이 쉬어간다고 했는데..., 왠 일로 보이지 않을까? 우리도 좀 쉬어 가려고 했는데... 아쉽기만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건물이 철거되어 철거 자재를 잔뜩 쌓아 놓고 천막으로 덮어 놓았다. 무슨 안네판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다른 건물을 계획하고 있는 것 같다.
[전망대]
[철거된 주목관리소]
[비로봉으로]
[주목군락지]
[비로봉을 오르는 대원隊員...]
[비로봉, 1,439.5m]
소백산의 최고봉, 비로봉毘盧峰 정상에 섰다. 다음에 갈 태백산이 민족신앙이 깃든 산이라면 소백산은 불교 신앙과 관련이 깊은 듯하다.
비로는 비로자나의 준말로 인도의 옛글인 산스크리트어 Vairocana(태양)를 한자어로 음역한 것으로, 불교에서는 부처의 몸자체를 의미한다. 비로자나불佛은 태양의 빛이 세상을 밝히듯이 부처의 지혜의 빛이 법계에 두루 비치어 가득하다는 뜻으로 불교에서 비로자나佛을 최고의 부처로 모신다. 따라서 산에서도 소백산小白山의 비로봉毘盧峰처럼 그 산에서 가장높은 봉우리를 비로봉이라고 부른다. 금강산金剛山의 최고봉도 비로봉毘盧峰(1,638m)이다.
오늘 비로봉의 날씨는 쌀쌀한 데다가 바람까지 불고있어 체감온도는 영하로 느껴진다. 원래 나무가 없는 소백산은 바람이 세찰뿐만 아니라 운해로 조망을 제대로 하기가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는데 오늘은 그래도 시계視界만은 좋은 편이다. 지나온 대간 마루는 물론, 앞으로 갈 국망봉으로 뻗어나간 대간 길, 그리고 아기자기한 산으로 둘러 쌓인 단양의 조망이 끝간 데 없이 펼처져 있다.
소백산은 명산답게 이른 아침 추운 날씨에도 산객들이 더러 보인다. 비로봉 정상 밴취에도 남男홀로 산객이 불어오는 찬바람을 그대로 받으며 카스 캔맥주를 옆에놓고 비경秘境에 빠져있다. 무아無我의 경지에 심취해 있는 그가 부럽기까지 한다.
정상석 뒷면에는 조선전기朝鮮前期의 문신이자 학자인 서거정이 썼다는 '소백산'이란 제목의 시가 음각되어 있다.
小白山連太白山 태백산에서 이어진 소백산
透他百里押雲間 백리에 구불구불 구름사이 솟았네.
分明畵盡東南界 뚜렷이 동남의 경계를 그어
地設天成鬼破堅 하늘과 땅이 만든 형세 귀신도 놀라네.
서거정은
정상석頂上石이 영주쪽과 단양쪽에 따로따로 세워져 있다. 대장隊長은 영주에서 대원隊員은 단양에서 사진을 담고 국망봉으로 향한다. 국망봉 가는 길에 오늘 처음 암릉을 만났다. 그러나, 소백산은 전형적인 육산陸山이다. 그런데도 사시사철 바람이새차게 불어 큰 나무들이 자라지 못하고 풀과 철쭉으로 덮여 있다. 소백산은 오르내림의 변화가 별로 없이 밋밋하다고 악산岳山을 좋아하는 도전적挑戰的인 산꾼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나 유산遊山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명산으로 다가가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국망봉을 300m 남겨두고 초암사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돼지바위~봉두암~초암사~죽계구곡을 거처 영주시 순흥면 배정리에 닿는다.
[암릉]
[초암사 갈림길]
[국망봉으로...]
[국망봉, 1420.8m]
국망봉..,정상에는 돌로 변한 마의태자가 아직도 경주를 바라보며 망국亡國의 비탄悲嘆에 빠져 있다. 국망봉은 1,421m로 소백산에서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 원래는 국망봉國亡峰이라 했다는데 정상석에는 국망봉國望峰이라 되어 있다.
배낭을 내려 놓고 암봉위에 뛰어 올라 마의태자처럼 경주를 바라본다. 지나온 대간마루가 부드럽게 뻗어있고멀리 도솔봉너머로 망국의 슬픔에 잠긴 서라벌이 보이는 것 같다.
'어찌하여 비운悲運의 마의태자는 부왕을 잘 받들어 천년사직을 지키지 못하고 백성들에게 망국의 고통을 안긴체 여기 국망봉에 올라 통곡을 하여야만 했을까? 그리하여 그 뜨거운 눈물로 애꿎은 나무를 다 말라 죽게 만들었으며, 자신은 이렇게 바위가 되어 산꾼을 맞고 있는 걸까?' 그때 이후 많은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도 국망봉 주위에는 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풀만 저렇게 자라고 있다.
국망봉은 소백산의 제2 봉답게 전망이 좋다. 지나온 비로봉과 앞으로 갈 상월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가온 상월봉]
상월봉이 거대한 남근석을 앞세우고 다가온다. 왜 산에 서 있는 바위는 모두 거시기 바위라고 하는지.., 상월봉을 오르기 직전, 좌측으로 상월봉을 우회하는 갈림 길이 있는데..., 대원隊員이 상월봉에 올랐다 가자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보니 상월봉 정상에 기도하는 형상의 작은 물체가 보인다. 5분여를 가는 동안 미동도 없어 정상에 설치해둔 망원경인가 했는데 좀 더 다가가니 사람이 기도를 하고 있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이렇게 쌀쌀한 날 상월봉에 올라 저렇게 간절히 기도를 하고 있을까?
[상월봉에서 바라본 앞으로 갈 대간 마루...]
상월봉에 올랐더니 30대 중반의 젊은이가 마치 자신의 명상에 방해를 받지않겠다는 듯, 우리와는 시선을 맞추지 않고 국망봉만 처다 보길래 우리도 말을 붙이지 않았다.
힘들여 오른 상월봉 정상에서는 앞으로 갈 대간 마루금이 한눈에 조망된다. '산은 우리를 공짜로 오르게 하지않는다'라는 말이 떠 오른다. 좌측에서부터 늦은맥이재~1265봉~ 1060봉~ 연화동갈림길~마당치로 대간大幹 길이 달려 나간다.
지도를 살펴보니 늦은맥이재에서는 율전어이곡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고, 1,265봉에서는 신선봉을 거처 구인사로 가는 갈림길이 있는데..., 출입금지 구간이다. 상월봉 하산길은 로프 하나 없이 까다로운 암릉을 내려야만 하는데..., 조심조심 내려오다가 마지막에는 배낭을 멘 채 떨어지다시피 뛰어 내린다.
[상월봉 내림길]
[물푸래나무숲]
물푸래나무숲과 참나무 숲길을 지나 1265봉으로 간다.
참나무숲 길을 지나면서 잎이 다 떨어져 줄기만 앙상한 가지에 까치집처럼 엉켜 있는 것이 여기저기 눈에 띄는데 대원隊員이 기생식물로 약용으로 쓰인다고 알려 준다. 대원은 꽃을 포함, 식물에 대해서는 대장보다 한 수 위다.
사진에는 까치집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연두색을 띄고 있다. 정작 참나무는 옷을 벗고 몸을 가볍게 하고 있는데 줄기에 녹색식물이 기생하고 있는 것이다. '황금가지'라는 겨우살이 식물로 약초라는 것을 나중에 민박집에서 알 수 있었다.
[연화동 갈림길]
우측에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 마을이 바로 오늘 내려가서 묵게될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 1060봉을 넘어 오늘의 대간 마루상의 목적지, 연화동 갈림길에 도착한다.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에 연화동 방향의 표지가 있고, 그 방향으로는 산 옆구리로 돌아가는 등산로가 뚜렷하게 나 있다.
갈림길에 앉아 잠시 쉬면서 지도를 펴본다. 오늘로서 24장의 지도중 12장을 마감하게 된다. 연화동까지는 3km..., 짧지 않는 거리다. 싸리재에서 애를 먹어 약간 걱정이 되기도 하나, 밝을 때 내려가게 되니 큰 어려움은 없겠지만 내일 아침 여기까지 복귀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내려가기 전에, 내일 새벽에 만날 대간 마루을 확인해두고 연화동으로 향한다. 내려가는 길은 다행히 계곡 길이 아닌 능선길이다. 소백산을 지나오는 동안 나무다운 나무는 없다가 상월봉부터는 그나마 잡목사이로 걸어왔는데 이 능선에는 소나무가 많다. 오랫만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간간이 나타난다. 소나무가 있는 길은 참나무가 자라지 않아 참나무 잎으로 인한 미끄럼은 면해준다.
[연화동으로...]
그러나 대세를 점하고 있는 수종樹種은 역시 참나무다. 참나무 잎이 무릅까지 잠기는 가파른 능선 길을 내려 가다 몇 차례 미끄럼을 탔다. 이럴 떄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혹시 날카로운 돌이 낙엽속에 묻혀있지 않을까하는 점이다. 연화동까지도 소백산 국립공원 구간이라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연화동]
마을에 내려오자 맨 먼저 팬션을 만났는데 아직 완공이 되지 않았는지 사람이 없다. 조금 더 마을로 들어서니 과수원에서 노부부老夫婦가 사과를 따고 있다. 이 분들에게 민박집을 물었더니 바로 위에 있는 집을 가르켜준다. 사과가 먹음직스러워 몇 개만 사려고 했더니..., 무거운데 짐은 내려놓고 마음껏 드시고 가란다. 나는 고맙지만 길을 많이 걸어 민박집에 가서 씻고 쉬고 싶다고 했더니 어린 아이 머리 크기만한 사과 두개를 주면서 가저가서 드시란다. 사과를 하나씩 들고 과수원 바로 위에 있는 민박집에 찾아든다.
-- 오늘 산행시간; 10시간40분, 산행거리; 22.2km (백두대간; 19.2km)--
인기척이 없어 사람을 찾았더니 할머니가 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다. 하루 묵고 가겠다니까 어찌된 영문인지 별로 반기는 기색이 아니다. 비가 올 것 같아 방에 뭘 잔뜩 널어 놓았는데 치워야하고 어쩌고 하면서..., 조금 더 내려가면 다른집도 있는데 한다.
산골 인심이 원래 내키지 않는척 하는 것을 아는지라 나는 할머니의 표정을 무시하고 여기서 묵고 가기로 마음 먹었다. 민박집 안내 표시판을 달아 놓았을 뿐 아니라 지도에 등록까지 해 놓고 거절하려 하다니 무책임한 할머니 같으니...ㅉㅉ,
나는 "이 집 아래 사과 따는 노인이 소개하면서 저집에 가면 잘해 줄거라" 고 소개해서 왔는데 방 치울 때까지 기다릴테니 대충 치우고 밥이나 해 먹읍시다 하고는 신발을 벗는다. 마루에는 산사나무 열매를 말리고 있고 잘 익은 모과를 쌓아 놓아 모과향이 방에 가득하다. 할머니가 안내하는 방에 짐을 내려놓고 쌰워를 하고 조금있으니 저녁 상을 내왔다.
[저녁식사..., 상 옆에 조금 보이는 것이 산사열매]
무우생채, 고들빼기 김치, 북어찜.., 모두가 맛갈스런 찬으로 그득한 시골밥상이다. 특별메뉴로는 노루고기로 끓인 국이 차려져 있었는데, 처음 먹어보는 것이라 약간 내키지 않았으나 먹어보니 담백한 것이 맛 있어 한 그릇 더 달라고 해서 먹는다. 농작물피해가 심하여 아들이 올가미로 잡았단다.
식사를 하면서 할머니와 예기를 나누며 산골 인심에 빠져본다. 할머니는 올해 74세로 연세에 비해 정정해 보이고 슬하에 4남4녀, 8남매를 두었단다. 할아버지는 약초 농사도 짓고 심마니도 하다가 지금 이 집을 지어 10년 살다 7년전에 작고 했단다. 할머니는 이런 얘기 끝에 쓸쓸함이 묻어나온다. 얘기 중에 손주들 보다는 민박손님이 더 반갑다며 프로 근성도 보여 준다. 원래 손주는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고 하듯이...
그런데, 여름에 이곳에는 모기가 없다는 말이 신기하기만 하다. 모기 없고 청정한 솔 향기 그윽한 산골 여름밤..., 생각만해도 몸과 마음이 깨끗해 지지않는가?
여기 행정구역이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 연화동인데 좌석리에 얽힌 에피소드도 들려 준다. 영주시내에서 한 나그네가 '좌석리'에 가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냐고 물었더니 어떤 이가 쩌~기 정류장에서 좌석버스를 타라고 해서 하루 종일 '좌석버스' 를 기다렸데나 어쨌데나....
식사를 하고 있는데, 큰 아들이 일을 마치고 들어왔다. 큰 아들은 하남시에 살면서 건축 인테리어업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자주 내려와서 농사일도 하고 나무도 해 놓고 올라 간단다. 그래서 이 집은 장작 보일러를 사용한다고 했는데 밤에 자는 동안 방이 따뜻했다.
큰 아들이 약초에 대한 지식이 상당했는데 알고 봤더니 '약용 식물관리사'인가 하는 자격증이 있다고 하며 최진규著 '약이 되는 우리 풀, 나무' 라는 책을 보여 주는데 거기에 낮에 보았던 참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를 '황금가지' 라고 하고 그 효능도 설명되어 있다.
9시 뉴스 말미 일기예보에 장기예보 했던대로 내일은 많은 양은 아니지만, 비가 오다가 오후부터 개인다고 한다. 내일도 오늘만큼 먼 거리인 늦은목이까지 가서 봉화군 생달리에서 묵어야하는데..., 비가 신경 쓰인다.
할머니가 내일 아침은 어떻게 할거냐 하길래 내일 일찍 나가야 하기 때문에 라면이나 하나 끓여먹고 가겠다니까 할머니가 본인이 일찍 일어나니 아침을 챙겨 주겠단다. 그러면 국만해서 간단하게 먹도록 해주고 도시락까지 부탁했다. 숙박비, 식대 모두해서 5만원을 드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내가 생각해도 많이 먹었다. 밥 한그릇 가득, 국 두그릇, 거기다 맥주 한병, 사과한개..., 어디에 그렇게 많이 들어갈 자리가 있는지..., 소화가 다 되기도 전에 자리에 누워 구름이 스쳐가던 소백산 마루금을 더듬다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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