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들도 나름대로 자신의 성장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분이나 양분은 얼마나 섭취해야 하고, 자신에게 맞는 일조량과 풍량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나름대로 정해둔 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약 포도나무들이 그러한 틀을 갖추고 있지 않거나 정해진 틀을 벗어나서 마음대로 성장하려 한다면 제대로 된 열매를 맺을 수 없을뿐더러, 아무렇게나 자라고, 때로는 자랄 수도 없게 된다면 농부인 아버지의 가차 없는 처분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틀을 마련해 주시는 분이 바로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아버지는 모든 포도나무들에게 언제 어느 때 적당한 수분과 양분을 공급해 줄 것인지 미리 정해 놓으시고, 늘 관심과 사랑으로 모든 나무들을 올바른 틀 안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돌봐 주시니 말입니다.
예수님도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아버지의 ‘계명’이라고 하는 좋은 틀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 모두 좋은 열매를 맺으면서 하느님 아버지께는 찬미와 영광을 드리고, 우리 자신들은 구원에 이를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이 세상에 전해 주시고자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며 충만한 기쁨 중에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릴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는 방법 내지 지름길, 그것은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틀 속에서 사는 것, 즉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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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인은 언제나 우리 자신입니다. 희망을 잃었거나 비참한 상황에 빠진 사람의 주인도 역시 그 자신입니다. 다만 여건이 나쁘고 개선할 게 많은 주인, 아니면 자신을 잘못 다스리는 어리석은 주인일 따름입니다. 전반적인 상황을 잘 살펴보고 자신의 존재를 확고히 세울 수 있는 토대를 열심히 찾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지혜로운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성격을 형성하고, 삶의 틀을 짜고,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주체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정원과 같습니다. 얼마든지 아름답게 가꿀 수도 있고 황폐하게 내버려둘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의 정원에는 우리가 돌보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반드시 싹이 돋아납니다. 애써 씨앗을 뿌리지 않아도 어디에선가 쓸모없는 풀씨가 날아와서 무성한 잡초로 자라나기 십상입니다. 정원사는 자기가 맡은 정원에서 잡초를 뽑아버리고 아름다운 꽃과 나무로 심습니다. 그렇듯이 우리는 마음의 정원에서 비뚤어지고 쓸모없고 부정적인 생각들을 없애야 합니다.
그 대신 유익하고 좋은 생각이 만발하는 정원, 순수한 생각이 꽃피고 열매 맺는 아름다운 정원이 되도록 가꾸어야 합니다. 자신이 외부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 사람은 결국 환경에 휘둘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환경의 노예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원하는 환경을 만드는 창조자입니다.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의 정원에 우리가 바라는 존재의 씨앗을 얼마든지 뿌릴 수 있고, 그 씨앗에서 우리가 희망하는 환경이 자란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을 바르게 이끄는 진정한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존 러보크 외 | 뜨란 | <행복한 인생 경영>에서
2.축구 이야기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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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celona players Carles Puyol, left, and Ronaldinho celebrate with the trophy after they won the UEFA Champions League against Arsenal in the Stade de France in Saint-Denis, outside Paris, Wednesday, May 17, 2006. (AP Photo/ Michael Probs |
바르셀로나의 카를레스 푸욜(좌)과 호나우디뉴가 17일 파리 근교 생드니의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아르세날을 물리친뒤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스포츠의 열기 속으로 30선]<1>축구, 그 빛과 그림자
2006 독일 월드컵의 공인구 팀가이스트의 무게는 불과 441g이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축구는 그보다 훨씬 무게가 가볍다. 호들갑스럽고 천편일률적인 수다의 소재로 넘쳐나고 있다. 월드컵이 다가오면서 이 엄청난 스펙터클에 대해 홍수처럼 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태극전사’에 ‘하나 되는 한국인’뿐이니…. 그 말의 효용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 말조차 하나의 수식일 뿐 현실적 무게를 갖지 못하는 형편이 되었다.
축구가 일부러 무거워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월드컵이 다가올수록 축구와 월드컵의 인류사적 의미와 문화적 깊이에 대한 조망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밑줄 그어 가며 차분히 성찰할 만한 관련 서적이 너무 드물다는 점 때문에 나는 몇 번이고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축구, 그 빛과 그림자’를 다시 읽는다.
오늘 당장 노벨문학상을 받아도 누구 한 사람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라틴 문학의 거장 갈레아노의 이 책은 축구가 얼마나 경이롭고 풍요로운 세계인가를 보여 준다. 지극한 인간미와 통렬한 블랙 유머로 가득 차 있어 그야말로 한 편의 경기를 생생하게 지켜보는 듯한 섬세한 즐거움을 준다.
갈레아노는 축구가 ‘인류가 빚어낸 신성한 유희이며 온갖 경이와 상상으로 가득 찬 비밀의 성이요 현대적 관습과 규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와 창의의 아름다운 몸놀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를 그라운드에서 실제로 실천한 선수들에 대하여 찬양한다.
동시에 갈레아노는 미디어와 기업, 그리고 국제축구연맹(FIFA)에 의해 축구와 월드컵이 비만해지는 와중에서 선수와 관중은 축구의 낭만성과 휴머니티를 점점 더 잃게 되었다고 쓴다. 그리고 그 말은 대체로 맞다. 그의 표현대로 오늘날 세계적인 스타들은 고액 연봉을 받는 ‘노동자’가 되어 가혹할 만큼 수많은 경기를 뛰어야 하며 관중은 그들을 보기 위하여 직간접적으로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그럼에도 역시 축구는 아름다운 것. 갈레아노는 오랜 관습과 지배적인 규칙들, 또는 구단의 강요와 감독의 진부한 전술을 말끔히 잊어버리고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이 창조적인 열정과 놀라운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예기치 못한 드리블, 실로 인간의 몸으로 이룬 것이라고 믿기 어려운 슛에 감탄한다. 바로 그러한 선수들의 낭만성이 축구의 속살을 아름답게 채워 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어찌 읽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국 대표팀의 연전연승을 기원하는 마음을 조금만 비워서 갈레아노의 매혹적인 블랙 유머를 찬찬히 읽게 된다면 6월의 월드컵이 새롭게 보일 것이다.
정윤수 스포츠 칼럼니스트
‘스포츠의 열기 속으로’ 30선 |
축구, 그 빛과 그림자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
프랭클린 포어 |
잭 니클라우스의 골프와 나의 인생 |
잭 니클라우스 |
스포츠, 그 열광의 사회학 |
엘리스 캐시모어 |
벌거벗은 산 |
라인홀트 매스너 |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
다카하시 겐이치로 |
아이거북벽 |
정광식 |
축구의 사회학 |
리처드 줄리아노티 |
나는 달린다 |
요슈카 피셔 |
피버 피치-나는 왜 축구와 사랑에 빠졌는가 |
닉 혼비 |
하늘 오르는 길 |
손재식 |
박지성 휘젓고 박주영 쏜다 |
김화성 |
천천히 달려라 |
존 빙햄 |
끈-우리는 끝내 서로를 놓지 않았다 |
박정헌 |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박민규 |
달리기와 존재하기 |
조지 쉬언 |
세계의 지붕에 첫발을 딛다 |
정해왕 |
펠레-나의 인생과 아름다운 게임 |
로버트 피시 |
엄홍길의 약속 |
심산 |
열광하는 스포츠 은폐된 이데올로기 |
정준영 |
히말라야의 아들 |
자크 라츠만 |
축구저널리스트 서형욱의 유럽축구기행 |
서형욱 |
부드러운 것보다 강한 것은 없다 |
존 우든 |
꿈의 높이 8848미터 |
마크 페처 외 |
800-two lap runners |
가와시마 마코토 |
마지막 라운드 |
제임스 도드슨 |
히말라야 있거나 혹은 없거나 |
임현담 |
오프사이드는 왜 반칙인가? |
나카무라 도시오 |
울트라마라톤 맨 |
딘 카르나제스 |
골프가 주는 9가지 삶의 교훈 |
마이크 린더 | |
(동아일보5/18 펌글)
축구 속에서 축구만 본다면
책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더이상의 무엇을 볼려고 한다면...
축구 알아야 보고 할 수 있습니다! |
첫댓글 일생의 계획은 어린시절에 달려있고, 일년의 계획은 봄에 있고,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달려있다.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것이 없고, 봄에 밭을 갈지 않으면 가을에 바랄 것이 없으며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날 할 일이 없게 된다. - 공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