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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으로 퍼갈 수 없습니다.* 쇠의 땅에 철새는 날아가고 있건만.... 글/사진: 이종원
늘씬한 다리로 논바닥을 하늘하늘 거닐고 있는 학의 자태를 본 적 있는가? 도저히 인간이 따라 갈 수 없는 도도함과 품위가 학으로부터 풍겨 나온다. 부부 중 하나가 죽게 되면 절대로 짝을 바꾸지 않고 평생을 홀로 살아간다는 부부애도 가슴을 여미게 만든다. 가족 사랑 역시 대단하다. 절대 혼자 다니는 일이 없고 아내와 자식과 늘 붙어 다니며 함께 먹이를 먹고 창공을 날기도 한다. 그렇기에 옛사람들은 학을 가장 소중한 새로 여겼다. 학의 수명이 80년이라고 하니 부모에게는 장수를, 부부에게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관직에 올라 있는 사람에게는 청렴함을 보여주어 이불이나 관복에 학을 그려 넣었다.
그런 학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철원 민통선 지대다. 50년이 넘게 서늘한 긴장이 흐르고 있지만 학은 남과 북을 준엄하게 꾸짖기를 작정한 것인지 매년 철원땅을 찾는다. 백의민족이 하나라는 것을 학은 온 몸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의정부를 거쳐 포천을 지나면 3.8휴게소가 나온다. 휴게소 옆엔 '38선 오각정' 이 말 없이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 해방 후 비극의 3.8선이 그어지면서 개울 건너 이웃사람은 하루 아침에 원수가 되어 버렸다. 철원사람처럼 전쟁의 상흔을 가진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해방 직후에는 북한 땅이었고 전쟁이 끝나고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남한 땅이 되었다. 좌익은 좌익대로 우익은 우익대로 줄 한번 잘못 서면 처절하게 죽어야만 했던 비운의 땅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달려갔지만 온전한 건물은 단 한채도 없었다. 미군의 폭격으로 산산조각이 났기 때문이다.
'북진 통일로'라는 표석이 의아스럽게 만든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북진통일의 탑이 이렇게 버젓이 자리잡을 수 있을까? '평화통일로'라고 하면 더욱 좋았을 텐데...
철새 탐조를 하려면 '철의 삼각전적관'에 가서 신청을 해야 한다.
셔틀버스로 갈아 타고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이 강원도 최대 인공저수지인 토교저수지다. 저수지 물을 퍼다가 냄비에 담고 고추장을 풀어 끓이면 바로 매운탕이 될 정도로 물고기가 많다고 한다. 통일되면 낚시꾼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한 때 메스컴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독수리가 몰려드는 마을로도 유명하다. 둑방 위에는 독수리떼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고 하늘에는 척후병인 독수리가 비상하고 있다. 매는 산짐승을 잡아먹지만 독수리는 죽어 있는 동물만 잡아먹기 때문에 독수리가 굶어 죽을 판이다. 할 수 없이 군청에서 생닭을 논바닥에 뿌려 놓은 것이다. 그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 철원 쌀 팔아서 독수리 먹이 줍니다."
예쁜 두루미 가족이다.
기러기 떼가 대열을 이루며 날고 있다. 해질무렵에 보면 장관이다.
철원 주변의 산들 철원을 빼앗기고 하도 억울해서 이 고지에 올라 김일성이 통곡했다는 '김일성 고지'도 보이고 군인들이 하도 많이 죽어 피가 냇물처럼 줄줄 흘러간다고 하한 능선, 그리고 폭격을 많이 받아 봉우리가 모양이 바뀌었다는 아이스크림 고지까지 ......자유로운 새와 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비극이 함께 클로즈업 되는 곳이 바로 민통선 지역이다. 두루미의 비상
날개를 펼치며 상공을 나는 모습이 장관이다.
휴전선 근처에 토성같은 것이 길게 이어졌다.나는 처음에 저수지인줄 알았다. 알고 보니 적의 탱크 진입을 막기 위해 남에서 쌓아올린 장벽이란다. 토성은 옛날 역사책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오늘날까지 버젓이 존재한다. 남에서는 '필승장벽', 북에서는 '철의 장벽'이라고 부른다. 이걸 허물지 않으면 일체의 대화에도 응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탐조차량마다 스코프가 구비되어 새의 모습을 가까이 볼 수 있다. 철의삼각전망대 철의 삼각 전망대 전망대에 올라서면 드넓은 DMZ이 펼쳐진다. 망원경으로 보면 움직이는 북한군도 볼 수 있다. 워낙 조용하고 평온해서 이 곳이 수 많은 목숨을 앗아간 격전지였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나무로 뒤덮힌 궁예궁터를 아름아름 더듬어 보았다. 통일이 되면 가장 먼저 달려가고 싶은 곳이 바로 저기다.
월정리역 '月井- 달의 우물'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이름만 가지고는 이 곳이 처절한 싸움터였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서울서 원산까지 가는 기차가 잠시 쉬어 가는 곳이 월정리 역이었다는데 너무 오래 쉬고 있는 것은 아닌지. 50년 세월동안 월정리 역에서 서성거렸으면 이젠 기차가 출발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당장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북쪽으로 달려 가고 싶었지만 폭격 맞은 기차는 앙상한 뼈대만 드러낼 뿐 묵묵부답이다.
직탕폭포 몇 년전 아내에게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에 가자고 했더니 무척 기대를 많이 했던 모양입니다. 막상 폭포를 보고 나서는 "이게 뭐야..너무 작잖아. "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긴 캐나다에서 직접 나이아가라폭포를 보았으니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나는 직탕폭포가 훨씬 더 좋다. 왜냐하면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지 못한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주변 현무암 협곡이 폭포와 잘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폭 80미터로 명색이 한국에서 가장 긴 폭포다. 비록 높이가 3미터 밖에 되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가 눈을 부라리고 보면 의외로 볼거리가 많다.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현무암 덩어리가 곳곳에 박혀있어 철원땅의 지형에 관심을 갖게 한다. 한 때 화산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돌들이다. 몇 십년 전 지리시간에 배웠던 내용을 생각해 내느라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본다.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궁예는 구멍이 숭숭 구멍 뚫린 돌을 보고 "내 운명이 다했구나.." 라고 한탄했기에 강이름도 '한탄강'이 된 것이다.
얼음이 마치 거북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도피안사 '피안의 세계에 이르는 절집'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철원의 대평원 가운데 아트마한 야산에 솟아 있는데 그 안쪽에 도피안사가 자리 잡고 있다. 신라 경문왕 때 도선국사가 향도 천명을 거느리고 천하의 산수 좋은 곳을 찾던 중 이곳이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과 같은 곳에 이르렀다고 하여 '도피안사'를 창건하였다.
사천왕문을 지나 기다란 계단을 오르면 현무암으로 만든 약수터가 나온다. 돌함이 멋드러져서 그런지 물맛 또한 좋다. 약수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올라가면 550년 세월을 살았다는 느티나무가 기다란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그 기나긴 세월동안 철원의 희노애락을 지켜 보았을 것이다.
절집 가운데는 보물 223호인 '도피안사 3층석탑' 자리잡고 있다. 연꽃의 대좌 위에 탑을 올라간 것이 매우 파격적이다. 앙련이 피어 있는 상층기단과 그 밑 괴임대 틈새에 금개구리가 살아 있다고 하여 방송에도 떠들썩 했던 곳이다. 금와보살은 부처님 예불시간에 한 시간이상 대적광전을 향해 부처님을 바라보다가 불탑으로 들어가셨다고 하며 사진까지 걸어 놓았다. 괴임대에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적혀 있다. "금와보살 발견시에는 절대로 떠들지 말고 개구리라는 말과 손가락질은 물론 사진촬영도 삼가해 주십시요."
'大寂光殿'이라고 쓰여진 하얀 현판이 철원평야의 학을 보는 듯 깔끔하다. '伽倻山人'이란 분이 쓰셨는데.....누군지 궁금증을 더해준다. 대적광전 안에는 철원의 자랑이자 국보 63호인 철조비로자나불 불상이 앉아 계신다. 팔등신의 날렵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육계는 거의 윤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고, 초승달처럼 보이는 눈썹에, 지긋이 눈을 감고 있으며 입에서 풍겨나오는 잔잔한 미소가 법당 전체에 퍼진다. 양어깨를 감싼 법의는 부드럽게 윤곽을 드러내고 있으며 손가락을 살포시 감싸안은 지권인이야말로 이 불상의 하일라이트다. 삶과 죽음, 해탈과 번뇌를 하나에서 찾으라는 메시지가 드러나 있다. 큼직한 연꽃이 둘러쳐 있는 좌대도 볼 만 하다. 철불 뒷면에 1,500명이 뜻을 모아 불상을 새겼다는 명문이 새겨 있어 전남 장흥의 보림사 철불과 더불어 신라 하대 불교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라고 한다. 보림사 철불이 육중한 남성미를 강조했다면 이 철불은 부드러운 여성미가 느껴진다.
노동당사 노동당사는 전쟁의 상흔보다도 서태지가 뮤직비디오를 찍은 곳으로 더욱 명성이 나 있다. 얼마전에는 열린음악회도 이곳에서 열렸다고 한다. 음악을 통해 이곳이 통일의 상징으로 보여졌다니 다행이다. 이 곳은 6.25전쟁 전까지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 사용된 곳이다. 북한은 이 건물을 지을 때 쌀 200가마와 수 많은 인력을 들여 건설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가장 세련되고 가장 웅장한 건물인 셈이다. 어쨌든 민간인이 이 곳에 끌려들어오면 심한 고문을 받아 죽거나 반 송장이 되어 나왔다고 한다.
철원제일 감리교터 겨울엔 주로 폐사지를 찾아 다니며 스산한 감동을 받는데.. 뼈대만 남은 교회터를 거닐어보니 똑같은 느낌이 들었다. 불과 50년전에 우리가 당한 상처다. 1937년 지어졌고 지하 1층 지상 3층의 멋드러진 건물이었다. 이 곳은 반공운동의 본거지였다가 3.8선이 그어지면서 수많은 신도들이 학살을 당했던 곳이다. 6.25 때는 인민군 병동이 되었으며, 폭격으로 인해 박살나 버렸다. 당시 지하에서 양민학살이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보기만 해도 섬뜩하다.
임꺽정의 은신처 고석정 신라 진평왕이 이 곳에서 애뜻한 사랑을 나누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20m 높이의 거대한 기암이 강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어 예쁜 절경을 보여주고 있다. '외로운 돌'이라는 이름을 가져서 그런지 아니면 바위틈새에 간신히 뿌리 내리고있는 소나무의 고고함 때문인지 힘찬 분위기가 느껴진다.
의적 임꺽정의 전설이 깃든 곳으로 유명하다. 강 건너 석성을 쌓고 함경도에서 조정에 상납되는 공물을 이 곳에서 탈취하여 서민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거대한 기암봉에는 임꺽정이 은신하였다는 작은 동굴이 보인다. 입구는 작지만 구멍으로 들어가면 10명의 장정들이 둘러 앉을 정도로 너른 공간이 나온다고 한다. 관군에게 쫓긴 임꺽정은 '꺽지'라는 물고기로 변신하여 강물 속으로 은신했다고 한다. 억압과 수탈의 역사속에서 임꺽정은 희망이었고 그가 죽고나자 희망을 잃은 민초들은 이 강을 보면서 한탄하며 울었을 것이다. 그 탄식의 소리는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남북이 총부리를 겨누며 대치하고 있는 휴전선이 바로 코 앞에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되는 날 '한탄강'의 이름은 무엇으로 바뀔까?
우리 나라에서 유일한 현무암 분출지이며, 강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내고 있다. 하류로 내려가면 순담계곡으로 이어져 여름이면 레프팅이 성황이며 물이 꽝꽝 얼었다면 얼음위로 걷는 트레킹도 좋다고 한다.
승일교 구철원 가는 길에 아치형의 승일교가 나온다. 예전엔 승일교를 통해 한탄강을 건넜다. 아래를 내려다 보며 가슴을 졸였는데 지금은 육중한 '한탄대교'가 옆에 놓이면서 예전의 이야기는 추억 속에 묻혀졌다. 멋드러진 아치교는 그 역할을 아우에게 넘겨주고 지금은 차량 통행을 막고 반 백년의 힘겨움을 털어내고 있다. 남과 북이 반 반씩 만들었음을 말해 주듯 양쪽 교각의 모양이 서로 다르다. 통일다리야 말로 바로 승일교다. 이 다리 이름에 대한 논란이 많다. 해방 후 이곳이 북한 땅이었을 때 공사가 시작되어 휴전 후 남한사람들이 완성하였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고 김일성(金日成)과 이승만(李承晩)의 이름을 따서 승일교(承日橋)가 되었다는 이야기와 김일성을 이기자는 뜻에서 승일교(勝日橋)라고 명명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다리 건너 초입에 자리잡고 있는 동판을 보면 한국전쟁에서 죽은 박승일(朴昇日)이라는 연대장의 이름에서 따왔기에 승일교(昇日橋)라는 명명했다고 적혀 있다. 어떤 이름이든간에 시대의 아픔과 풍상을 거치면서 오늘날까지 살아왔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삼부연폭포 신철원에서 시골길로 꺾어지면 기암괴석으로 만들어진 협곡이 이어진다.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어서 그럴까. 협곡에는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20여m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3번에 걸쳐 꺽이면서 웅덩이를 만들어 냈기에 '삼부연(三釜淵)폭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멋진 폭포에 전설이 따르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궁예가 철원에 왔을 때 이 곳에서 용이 승천하면서 바위가 가마모양으로 움푹 패여졌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 하긴 패여진 바위가 마치 용의 비늘처럼 보여 일말의 수긍이 가기도 한다. 그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기후제를 지내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폭포 바로 위에는 '오룡굴' 자리잡고 있다. 큼직한 버스도 지나칠 정도로 큰 규모이며 비록 인공터널이지만 자연굴처럼 구불구불 굴곡을 주었다. 용이 다시 이 곳을 찾는다면 터널로 들어올 지 모를 일이다.
이곳은 용에 관한 지명이 많다. 삼부연폭포 윗쪽으로 올라가면 '용화저수지'라는 곳이 나온다. 이곳의 전원풍경도 참 좋다.
"고드름 멋지지요.....모놀가족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모놀과 정수 .....누르세요. *주의 모든 원고와 사진의 저작권은 저작자에 있습니다. 사전동의 없이 무단게재 할 경우 저작권법에 저촉됩니다. |
첫댓글 두번씩이나 다녀 왔던 곳인데도 또 다시 보니 새롭네요
갈데가 넘 많네요,,,여름과 겨울의 묘미는 완연하게 틀리는데...언제 날 잡아야 겠네요,,,
대장님 그 토성같은 대전차장벽 79년에 쌓았거든요 제가 철책선 근무하는 일년동안 밤에는 야간보초서고 낮에 돌깨서 쌓고 그뒤에 불도져로 흙 밀어서 잔디입히고 군인들 고생 많이 했어요 돌 나르다가 부상도 많이 당했고 저도 돌에 손가락이 끼어서 손톱이 빠졌었죠 다시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1월말이나 2월초에 이곳으로 답사를 추진할까 합니다.^^ 좋겠지요? 장미지기님 고생이 많으셨군요. 조만간 우리 아이들이 이 장벽을 걷어냈으면 좋겠습니다.
추운 날 다녀 오신곳을 저는 따뜻한 방안에서 이렇게 염치 없게 보고 있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아싸! 꼭 신청해서 따라 가야징~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