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수년전 읽었던 시오노 할머니의 말이 떠오르네요
한니발 전쟁이후 장군뿐만 아니라 장교들에게까지도 자연스럽게 '군대를 유기적으로 운용'하는 법을 꺠우쳐 마케도니아를 무찔렀다 머 이런 내용이 잇지 않습니까?
한니발에게 그렇게 얻어터진 로마니 당연히 뭔가 배우긴 배웠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떤점에서 달라졌을까요?
고대전투라하면 기병이 측면에서 보병을 엄호하고 보병으로 승부를 가르는것이 이쪽세계 군사전술의 정석이며 이것은 한니발 전쟁 이전에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첫댓글 음... 로마인 이야기를 쭉 읽어보시면 대강 아실텐데... 좀 한쪽으로 치우친 감이 있겠다만, 그래도 로마인이야기를 쭉 읽어보면 대강 왜 그런지 느끼실듯... ... ... 아닌가.......? ^^;;;;;
헉..... 전 "뭐 전투시작후 잉여 병력을 적절하게 배치했을까??" 이러면서 그저 궁금궁금 ㅎㅎ
그거 말고도 원래 로마가 피로스와의 이발사 이벤트에서 보여주듯이 '정정당당'한 전쟁을 선호했지만 한니발전쟁 이후에는 일반적인 전술적 승리말고도 각종 음험한 술수(음모라던지 비정규전이라던지)던 뭐든 상관없이 구사했다고 하더군요.
음음 참고하겠습니다. 그런데 피로스와의 이발사 이벤트는 뭔가요??
게시물 성격 상, 서양사 게시판으로 이동시키겠사오니 양해바랍니다.
로마인 이야기에도 나오듯이 한니발 이후의 로마군대는 가히 회전에서 무패의 전쟁기계라 불릴 정도로 변모합니다. 즉 가능한 한 모든 방면에서 적군을 포위하여 격파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칸나에에서의 참패가 큰 교훈이 되었죠. 이것은 모든 교전의 기본이 되고 최근까지도 세계의 육군사관학교에서 가르쳤다고 합니다. 요즘도 가르치고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칸나에 전투에 대해 알아보니 후방을 급습한 카르타고의 기병에 놀란 후위의 로마군이 앞으로 몰려들어서 밀집형태가 되었더군요 그때문에 압사당한 수도 꾀 있습니다
역시 '포위전술'을 그 무엇보다 매우 중요하게 여기게 된 점이...왜냐하면 그 이전까지 로마군은 백전백승의 군대였는데,
한니발에게 쥐어터지듯이 털렸으니...윗분들께서 말씀하신 칸나에 전투에서 그 점이 잘 엿보이지요.
이전까지 로마군이 백전백승이라는 점은 납득하기 힘드네요. 한니발 이번에도 수도 없이 깨지고 말아먹은게 로마군이거든요. 시민병에서 비롯되는 물량과 우수한 병참 등을 제외한 로마 군의 '순수한 전투력'은 2차 포에니 전쟁 이전엔 잘 바줘야 평균 정도밖에 안될 겁니다. 2~3차 포에니 전쟁 이후엔 자영농이 몰락함에 따라 오히려 질적으로 더 떨어지겠네요. 좀 횡설수설하긴 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글라디우스로 찌르고 귀갑진으로 '화살이 뭐임? 먹는거임?' 하는 이미지의 정예 로마군은 마리우스 이후의 로마군이라고 봐야죠.
백전전승이 아니죠.. 버섯님 댓글대로 한니발이 알프스산맥을 넘어오기 전에는 켈트족들한테 로마 군대와 도시 둘다 ANG!!!!!!!!!!!!!!, 이탈리아반도를 완전 장악하기 전의 커다란 장애였던 삼니움족으로부터 군대가 중반에 넘어들기 전까지 철저하게 ANG..... 심지어 이탈리아반도를 거의 장악하자마자 티렌툼의 구원투수 피로스한테 초반에 ANG!!!!!...... 또한 1차 포에니전쟁 도중에 카르타고 본토에 들어왔는데 것두 카르타고의 구원투수 그리스 장군에게 철처하게 ANG!!!!!!!!!!!!!!!..... 그랬습니다ㅋ
아, 그랬나요; 제가 약간 착오가 있던 모양;;
각 포에니 전쟁과 북부 이탈리아에서 갈리아인들과 교전으로 병력의 질이 신장된 부분도 큽니다. 시오노는 카르타고는 용병대고, 로마는 시민병이어서 로마가 더 강력하다는 투로 이야기를 하는데, 로마군이 더 잘 조직화 된건 사실이지만 시민병이라고 해도 어중이 떠중이인건 보나마나입니다. 한니발이 전승을 거둘 수 있는것도, 파비우스가 수세적 전략을 펼친것도 이 병사들의 질문제가 큽니다. 한니발의 군대야, 갈리아나 알프스를 횡단하면서 여러 전투를 치르며 경험이 쌓인 것도 사실이지만, 한니발이 워낙 본좌여서 트레비아, 트라시메노 등지에서 보내는 족족 깨져버려 한니발의 먹잇감이 되어버렸으니까요.
로마가 마케도니아와 시리아 왕조를 깨부셔 버릴 수 있었던거는 지휘관의 자질 문제도 지적되어야 합니다. 키노스케팔라이에서는 마케도니아군이 전투에 돌입하는 시간에 갭이 생겨서 각개 격파 당했고, 마그네시아에서는 안티오코스가 중장기병들을 꼴아박고 군대 다 두고 혼자 냅다 도망쳐버렸지요.
그리고 또 한가지 지적 할 수 있는 부분은 디아도코이 왕조들의 약체화와 군대의 변질입니다. 마케도니아 왕조의 경우, 식민화를 위해 동부로 너무 많은 인구가 유출되었고, 시리아 왕조의 경우도 파르니족을 중심으로 한 북방 민족들의 발호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지요. 또한 디아도코이 끼리 협력은 안하고 허구연날 싸워되는 통에 숙련된 정규병이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전마의 부족으로 헤타이로이 같은 정예 중기병들의 확충이 어려워졌기도 합니다. 또한 애초에 군대라는게 그렇듯이 여러가지 병종이 협동을 해야 되는데, 히파스피스타이 같은 유능한 병사들이 내분통에 사라져버리고 형식적으로만 남습니다. 그나마 남은 병종들도
역시 지휘관의 무능으로 잘못 사용되고, 팔랑크스 자체도 지나치게 중무장화 되어서 ( 방패, 갑옷 ,투구등) 이전 알렉산드로스의 원정때와 같은 유능한 팔랑크스가 아니라 둔중하고 느려터진 이상한 군대가 되어버렸지요.
유기적 운영이라는게 말처럼 쉬운게 아닙니다. 단적으로 우리는 막상 기병을 측면으로 보내어 공격하고 보병이 포위하면 된다고 하지만, 기병의 보병의 뒤를 치는 타이밍, 보병전열이 기병의 지원이 올때까지 무너지지 않도록 버틸수 있도록 하는 능력, 전투상황의 변동에 따른 임기응변적 대처방법 등 이런걸 적시적소에 명령을 내리고 수행하는건 매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당시는 마치 토탈워 게임처럼 공중에서 내려보고 하는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전선 후방이나, 숙영지에서 내려다보고 명령 내리는 정도이고 또 이명령이 내려져서 전령이 움직이는 순간 전황이 바뀔수도 있고요.
더군다나 앞서말한 안티오코스의 예처럼 기병이 너무 빨리 상대기병을 몰아버리고 적당히 우회할 타이밍에 대해서 습득하지 못하면 '석양을 달리며 전투이탈' 하게 되죠. 한니발도 자마에서 이를 노렸고 일정부분 성공했지만 결국 전투이탈했던 로마기병들이 돌아오면서 패했죠.. 이런부분은 직접적으로 경험해야 느낄수 있는 부분이고 이러한 보병-기병 유기적 합동전술은 그동안 로마인들이 별로 상대해보지 못한 전술이었죠. 갈리아나 삼니움 같은 종족들은 보병중심 국가이고, 로마 또한 기병질이 별로여서 기병은 보병양익을 보호하는데만 썼으니까요.
쌈사기의 미덕을 배워고 백인대급에서도 철저한 포위팀플을 익힌듯
1. 우선 동원체제가 완료됩니다. -_-;; 이게 제일 커요.. 과거에는 법적으로 5만명정도만 동원 가능했는데.. 한니발 때문에 더 많은 병력이 필요했고, 이 시기에 전직 집정관이라던가.. 법무관에게 군단장 자격을 준다던가 하는 괴랄한 법들이 모조리 통과됩니다. 이렇게해서 군단 수를 늘릴 수 있었죠.. 시오노도 이야기 했듯이 원래 로마가 동원 능력 자체는 컸기 때문에 이게 압도적인 병력 우세로 나타나게 되죠..
2. 그리스 자체도 조낸 막장을 달리는 것도 하나의 이유인데.. 이건 티베리우스ㅋ님이 잘 설명해 주셨고.. 조금 더 붙이자면 그리스 본토지역에 대한 패권 다툼으로 지네들끼리 박터지게 싸우고 있었습니다.ㅋㅋ 원래 로마가 그리스에 개입한 이유중 하나가 이 지역의 아카이아 동맹에서 구원 요청 보내서였는데;; 이게 마케도니아 지역의 페르가몬이 왕이 처들어 와서였다죠;;;;
그리고 한니발에게 깨지고 배우면서 로마군의 전술 능력 자체가 크게 향상된 부분도 큽니다. 대표적으로 글라디우스 같은 무기가 도입되었습니다만 이거 보다는 백인대장을 중심으로 하는 코호트 체제와 레기온의 전술 구사능력이 절정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봐도 과언은 아니죠.. 장기전을 치루는 동안 동맹시에 대한 외교 구사 능력도 대단히 좋아져서 말빨로 먹고사는 그리스 애들도 더 이상 로마애들 상대로 사기처먹지는 못합니다.(시오노 여사는 순진한 로마인을 교활한 그리스인이 이용해 먹을라는 것처럼 이야기 합니다만 실제로 로마인들이 그리 순수하지도 않았죠;;;)
마지막으로.. 파괴적인 전쟁문화가 있습니다.(...) 원래 그리스 애들은 전쟁 성격 자체가 내전, 전술 전투 위주고 적 군사력의 제거라던가.. 적 정치세력의 파괴, 적 생산지에 대한 초토화 전술.. 뭐 이런 것을 하진 않았습니다. 다 같은 그리스인이라는 의식이 있었고, 저런 행위를 매우 야만적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로마는 달랐죠.. 도시를 파괴하고, 패주하는 적군을 철저히 추격하여 죽였으며, 도시의 지도자들을 살해하거나 인질로 잡아갔습니다.;; 사실 이런 전쟁문화는 그리스 전체에 굉장한 충격을 주었죠..(뭐 포에니 전쟁에서는 당연한 거였습니다만;;)
델카이져님말에 동감...전술도 바뀌었을테고, 무기의 향상도 한 몫을 당당히 했겠지만, 제가봐도, 로마는 뭐라해도, 자긍심(?) 또는 충성심(?) 높은 시민병들이 많았다는게 가장클듯..어차피 그 당시에 시민병만으로 이루어진 군대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에 비해 로마는 앞도(?)적인 시민병 숫자를 자랑했고, 그 병력들을 훈련후에 정말 잘 써먹는다면..ㅎㄷㄷㄷ 게다가 많은 그 당시 주변국들이 용병들을 많이 운용하거나, 시민병이라고해도 그 충성도가 낮거나 쪽수가 모자르다면요. 뭐 이건..ㅎㅎㅎ 게다가 정책상 포용문화를 가지고 있었던게 크게 작용한듯. 국가가 융성할때는 뭐가 있어도 있는거겠죠? ^^
상대방까지도 흡수 동화해서, 팍스로마나를 위해서 기초를 만들던 시기였으니, 뭐 오죽하겠습니까?
아 본질문으로 돌아가서, 모루-망치 전술은 현대에도 유용하게 운용되는듯..2차세계대전이나, 베트남까지만 하더라도, 그 의미가 컸었던듯...근데 뭐 현대전은 시작하면, 비행기가 쭈욱가서, 바르지 않습니까? 이걸 망치로 봐야하나? ㄷㄷㄷㄷ
로마의 이민족 흡수는 대단하긴 한듯요... 게다가 로마는 다른국가가 쇠퇴할때란 타이밍좋은시점에 가서 메소포타미아지역 이집트지역 비옥한곳은 다먹어치웠으니 ㅎㄷㄷ;;;
삭제된 댓글 입니다.
캬 역시 한니발이 대단한거지 로마군 장군들이 바보였던게 아니였군요. 시오노 할머니는 다들 싸잡아서 정정당당한 싸움만(=닥돌 -ㅅ-)만 할 줄아는 것처럼 써놨던데 ㅋㅋ
시오노 할머니는 좀..심한 로마빠..ㅡㅡ 말도안되는것을 미화시키는것이 좀 있죠. 로마인 이야기 13권까지인가 읽다가 포기하고 요즘은 다른 서적들 본다는..도무지 ..다른책들과 같이 보다보면 어이가 없어요..어이가...
카이사르 편을 읽어보면, 완전히... 로마 동인녀라고나 할까요...
경무장 보병의 무장강화가 가장 그럴듯한 요소인듯요. 중세의 궁수들 무장을 봐도 그렇고 전초전에서 스커미싱이 은근히 사상율이 높으면서 상대전초세력제거시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수 있는 부분이라 중세에도 점차 봉건사회에서 탈피해감에따라 궁수들의 무장부터 챙기는 현상이 나타나는데요, 로마의 경우도 후기엔 경보병까지 죄다 정규화시키는 등의 돈지랄을 하는 것을 보면 결국 결론은 버킹검 같은 유사성이 나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