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과 아토피
*범례: 금체질(태양인)=금양․금음, 토체질(소양인)=토양․토음, 목체질(태음인)=목양․목음, 수체질(소음인)=수양․수음
“삼림욕이 피부병이나 알레르기에 좋다고 하던데 정말 그래요?” 가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 요즘 건강을 중시하는 추세에 편승하여 자연휴양림이나 삼림욕장이 전국적으로 많이 생겼다. 곳곳에 경관을 아름답게 조성한 수목원도 눈에 띄게 늘었다. 암과 같은 중병의 치유를 위해, 또는 요즘 많은 사람들이 시달리는 이런 알레르기 질환의 치유를 위해 건강을 테마로 한 캐빈이나 캠핑장을 설치한 곳도 적지 않다. 건강과 레저가 결합된 신상품이다. 나도 작년 여름휴가 때 자연휴양림에서 가족과 함께 캠핑을 한번 해볼까, 해서 알아봤는데, 예약이 죄다 끝났다는 메시지만 잔뜩 받아 계획이 좌절된 적이 있었다. 최근 상종가로 떠오른 삼림욕장의 인기를 실감했다. 현대인은 대부분 도시의 찌든 때 속에서 살다 보니 막연히 자연을 동경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산이나 나무, 이런 것들은 무조건 좋다는 검토되지 않은 낙관론이 팽배하다. 하지만 이것도 체질을 잘 고려해야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체질적으로 볼 때 삼림욕은 금체질(태양인)에게는 그다지 좋지 않다. 반면 목체질(태음인)에게는 아주 좋다(토체질[소양인]이나 수체질[소음인]에게도 나쁘지 않다). “맑고 깨끗한 숲속의 나무에서 나오는 산소와, 몸에 좋은 갖가지 항산화제, 생리활성물질 같은 것을 들이마시는 건데 왜 해롭다는 거죠?”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의 대표작으로 ‘다다익선(多多益善)’이란 작품이 있다.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 이런 말인데, 진짜 그런가? 땅도 많을수록 좋고, 돈도 많을수록 좋고, 친구도 많을수록 좋고, 그리고 지식도 많을수록 좋다. 아, 정말 그렇군! 그런데… 반드시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도둑이 많으면 좋은가? 전쟁은? 질병은? 그리고 사기꾼은? 이런 것들은 물론 많을수록 좋지 않다. 건강에 있어서도 그렇다. 혈당이 너무 높아도 좋지 않고, 체중이 너무 많이 나가도 좋지 않고, 열이 너무 많아도 좋지 않고, 소변이 너무 잦아도 좋지 않다. 다다익선, 이 말은 건강에 있어서는 맞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요즘 같이 풍요에 겨워하는 세태라면 더욱 그렇다. 비만,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이런 질병들이 다 뭣 때문에 생겼나? 식습관과 섭생이 죄다 다다(多多)해서 생긴 것 아닌가? 다다익선, 이 말은 현금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말의 하나다. 울창한 삼림에서는 광합성의 결과로 많은 산소가 기공을 통해 배출된다. 높은 농도의 산소는 폐를 강화시킨다. 이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시 산소는 좋은 것이여!”라고 할 것이다. 이런 사고가 맹목적 낙관론의 전형인 것이다. 산소는 폐를 강화하므로, 체질적으로 볼 때 고농도의 산소는 폐를 약하게 타고나는 목체질에게 가장 유리하다. 하지만 폐를 강하게 타고나는 금체질에게는 오히려 불리한 경우가 많다. 삼림의 맑고 깨끗한 공기 중에 풍부한, 다량의 산소는 오히려 금체질에 독이 되는 것이다. 다다익선이 아니라 다다익악(多多益惡)이다. ‘산소 같은 여자?’ 금체질이라면 이런 여자는 멀리 해야 한다. 당신을 파멸시키는 팜므파탈일 수 있다.
현대병의 특징 중 하나는 과거에 비해 알레르기 질환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한의원에서 환자를 접하다 보면 알레르기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아하, 이제 바야흐로 알레르기의 시대로구나!” 알레르기와 체질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혹자는 알레르기를 체질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생각할 정도다. 알레르기에 대해 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주위에 보면 아토피(atopic dermatitis, 아토피성피부염)로 고생하는 아이들이 많다. 이 아토피도 음식이나 환경적 요인으로부터 오는 알레르기 질환의 하나이다(현대의학이 이를 자가면역질환이라고 보는 것은 그리 정확한 견해라고 보기 어렵다). 그 어린 것들이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짓무르고, 피부가 두터운 가죽처럼 각질화 하고, 한시도 쉬지 않고 엄습하는 악귀 같은 가려움에 피가 철철 나도록 긁어 피부와 이불, 옷가지에 온통 핏자국이 낭자한 것을 보면 정말 가엽기 그지없다. 종종 TV에 사랑하는 아이가 그런 끔찍한 형벌을 받고 있는 모습에 눈물을 흘리며 방법을 호소하는 엄마들의 절박한 얼굴이 짠하게 나와 보는 이들마저 눈시울이 뜨겁게 한다. “아이가 저렇게 고통 받고 있는데도 엄마로서 해줄 게 없으니 정말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에요. 아이가 너무 불쌍해요.” 부모와 아이 모두 사는 것이 정말 지옥 같을 것이다. 그래서 내 한의원에는 아토피를 치료하고자 내원하는 아이들이 종종 있다. 온 얼굴이 벌겋게 짓무르고 전신이 몹시 가렵고 피부 곳곳에 각질이 뒤덮은 4살 난 아이(토음체질)도 저 멀리 경기도 수원에서 잠실에 있는 내 한의원까지 와 치료를 받고 있다(심지어는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사람도 있다). 치료만 된다면야 이들에게 이 정도 고생은 고생도 아닌 것이다. 그 아이는 1년 이상 치료를 받아 이제는 정말 몰라보게 좋아졌다(아토피 치료는 정성과 끈기를 요한다). 얼굴과 피부가 말끔해진 지금, 알고 보니 녀석은 아주 잘 생긴 아이였다(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 먼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을 왕래한 엄마의 지극정성을 녀석은 알까?). 그런데 요즘 보면 꼭 아이들만 아토피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성인아토피라는 것으로, 20대, 30대, 심지어는 40대 이상인 사람도 이 아토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 내게 치료받고 있는 다른 젊은이(금양체질)는 30대 초반인데, 내원 당시 온몸이 각질로 뒤덮이고 태선화(코끼리가죽처럼 피부조직이 변한 상태) 한 상태로 와서 정말 심각한 지경이었다. 다행히 수개월 동안 내게 체질침과 체질약 치료를 받고 지금은 꽤 좋아졌다(역시 끈기가 미덕이다). “각질도 정말 많이 줄고 가려움에 잠이 깨는 횟수도 많이 감소했어요”라고 한다. 이 아토피는 금양체질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아토피가 금양체질에만 있는 질환은 아니다. 금양 외의 다른 체질들―토양, 토음, 수양체질―에서도 가끔 나타난다(이것은 나의 근래 발견이다). 물론 금양체질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다(금양 다음으로 토양이 많고, 수양, 토음이 그 뒤를 따른다). 따라서 자신에게 아토피가 있다면 우선 금양체질이 아닌가, 의심할 수 있다(하지만 그 밖의 다른 특징들을 다 함께 고려해서 체질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산속 공기 좋은 곳에서 살면 좀 나을까요?” 아토피가 너무 심한 금양체질 아이를 가진 엄마가 이렇게 물었다. 온갖 오염물질과 유해한 화학물질이 난무하는 도시에서 벗어나면 혹시 아이 피부가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서다. 오죽했으면 그런 생각까지 할까! 일전에 TV에서 아토피를 다룬 또 다른 프로를 본적이 있었다. 새 아파트에 들어가자마자 전혀 없던 아토피가 발병한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왔다. 이 아이가 자는 동안을 촬영한 영상이 화면에 나오는데, 녀석은 단 한 시도 쉬지 않고 자는 동안 내내 온몸을 긁어댔다. 피가 나도록 몸뚱아리 여기저기를 박박 긁는 모습은 너무 안쓰럽고 보기에도 정말 괴로웠다. 밖에서 제작진과 함께 모니터를 보는 아이 엄마의 눈가엔 어느덧 굵은 물방울이 맺혔다. 이런 병이 생기면 사람들은 제일 먼저 양방병원으로 달려간다. 아토피 전문 피부과 같은 곳으로. 이 가족도 그랬다. 거기서 주는 약을 먹고 외용약을 바르니 아토피가 귀신 같이 쑥 들어갔다. 스테로이드제! 정말 말 그대로 매직이었다. 그런데 그 약을 안 쓰고 좀 있으면 도로 피부가 막 일어났다. 아이쿠, 약을 덜 썼나? 다시 약 먹고 약 바른다. 금방 아토피가 다시 들어갔다. 다 나았으려니 하고 약을 끊으니 또 다시 아토피가 기어 나온다. 마치 약과 아토피가 서로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다. 이런 실랑이를 1년여 하다 “아, 이건 아니구나!” 깨달았다. 그래서 방향을 틀었다. 이젠 한의원으로. 전국 방방곡곡의 용하다는 아토피 전문 한의원을 다 찾아다녔다. 한약도 먹고 한의원에서 자체 개발한 외용제도 써봤다. 그러나 역시 좀 나은 듯 하다가 다시 심해지거나, 아니면 아예 반응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 가족은 결국 마지막 코스, 즉 양방도 한방도 아닌, 무자격 의료인, 흔히 말하는 돌팔이에게 희망을 걸었다. 이런 무자격자들은 어디라도 매달리려는 환자들의 약점을 익히 간파하고 있기 때문에 되려 비용은 터무니없이 비싼 경우가 많다. 그렇게 비싼 돈 주고 자체 개발했다는 약도 먹여보고, 시술도 받게 했다. 그러나 결과는 매한가지. 도무지 나을 기미는 보이지 않고 아토피는 날로 심해졌다. 이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부부는 마침내 “우리 힘으로 아이를 낫구자!”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아이 병의 원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토피는 분명 새집에 들어간 이후로 발생했다. 새집에 사용한 건축자재가 원인인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정답은 이 해로운 자재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건물 곳곳에 단단히 박혀있는 이 자재을 어떻게 뜯어낸단 말인가! 건물을 해체하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산 좋고 물 좋은 데로 이사 가볼까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직장이나 아이 교육문제를 고려해보니 그것도 전혀 해답이 아니었다. 고심 고심하다 아이 아버지는 불현 듯 아이디어를 하나 냈다. 깨끗한 환경에 갈 수 없다면, 깨끗한 환경을 집에 구현하자! 여기 저기 알아보니 아토피에 우리 토종 소나무가 좋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 좋다! 아이 방을 소나무로 바꾸자! 유해 자재를 토종 소나무로 덮어버리기로 했다. 온갖 루트를 통해 품질이 좋다고 소문난 진품 조선 송판을 구했다. 그리고 아이 방 동서남북상하 육합(六合)을 모조리 두터운 소나무판으로 덧대었다. 말 그대로 송판으로 도배를 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그 안에서 생활하게 했다. 아이는 그 소나무 상자 같은 방안에서 공부하고 놀고 잠자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은 아무 변화가 없었다. 아이는 전과 똑같이 잠을 설치며 긁고 괴로워했다. 2주가 다 되도록 별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부모는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아니, 절망에 빠질 지경이었다. 이렇게까지 해도 안 된다면 어떡해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한 2~3주 정도 지나자 조금씩 변화가 나타났다. 아이가 긁는 시간이 약간 줄어들고, 잠도 전보다는 좀 잘 자는 것이다. 서광이 비쳤다! 1달쯤 지나자 눈에 띄게 덜 긁는다. 그리고 벌겋던 피부색도 좀 밝아지고 피부표면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두세 달이 더 지나니 이제는 상태가 일사천리로 나아진다. 6개월쯤 되자 아이를 그토록 괴롭히던 아토피는 거의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오! 송목신(松木神)이시여 감사하나이다. 이런 사례를 본다면 수목원 같은 공해가 없는 깨끗한 환경은 아토피에 좋을 것 같다. 도시의 환경독소에 의한 아토피라면 상당히 좋은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산소.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삼림에서 풍겨 나오는 고농도의 산소는 금양체질의 경우엔 오히려 불리할 수도 있다. 아토피가 더 심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유·불리의 상황을 잘 저울질 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환경독소 요인이 산소농도보다 더 중요한 인자라는 판단이 선다면 맑은 공기가 풍부한 삼림을 택할 수도 있다. 커다란 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광릉수목원이나, 숲이 울창한 두메산골 같은 곳만 아니라면(일반적인 농촌이나 전원주택 정도라면), 설사 금양체질이라고 해도 그다지 불이익은 없을 것이다. 물론 금체질이 아닌, 다른 체질의 아토피 환자는 이런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거의 없다. 오히려 산소가 풍부한 깨끗한 환경이 병의 치료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아토피 치료에서 중요한 건 사실 이런 환경적 요인보다는 음식 요인이다. 앞에서 소개한 명백한 새집증후군과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아토피는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의 섭취가 더 결정적인 요인인 것이다. 수목원을 찾기보다 체질식을 지키는 것이 보다 현명한 방법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동일한 건강법이라도 체질에 따라 효능이 제각기 차이가 있다. 자신의 체질을 정확히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이다. 우리 모두 체질을 알아, 그에 맞는 적절한 건강법을 찾아보자. 체질을 아는 것은 금쪽같은 시간을 아끼고 고귀한 금전을 보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 체질을 알라!(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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