氷水 (2)
빙수는 일본을 통해 들어온 음식이다. 1897년 8월 5일자 독립신문에 언급된 ' 슈표 다리(수표교) 빙슈 파는 집에서 빙슈를 사 먹는데' 라는 구절은 현재까지 필자가 확리인한 빙수 관령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황성신문 1900년 7월 2일자에는 '氷水店이 한자로 등장한다. 빙수점에서는 빙수뿐만 아니라 라무네(레모에이드) 사이다 같은 청량음료도 팔았다.
당시 빙수는 '잘 익은 레몬이나 딸기를 집(즙)을 내어 설탕을 타가지고 ' (매일신보 1930년 7월 12일자 ) 먹는 일종의 '과실빙수'(동아일보 1920년 8월 7일자)였다.
당시 인기 있던 과일은 '딸구물((딸기물)'과 파나나물(바나나물) (동아일보 1926년 5월 24일자)등이었다. 최고 인기는 단연 '샛빨간 (딸긔물)이었다. 사랑하는 이의 보드라운 혀끗 가튼 맛을 어름에 재운맛! 올타 그 맛이다. (별건곤 1929년 8월 1일자)
1915년에 일본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봉정(충정로.명동)에만 321개의 빙수점이 있었고 한국인들이 거주하는 종로에는 121개의 빙수점이 잇었지만 상당수가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것이었다(매일신보 1915년 8월 7일자)
손으로 기게를 돌리면 얼음이 자동으로 갈리는 '회전빙조기'의 사용은 1920년대 후반부터 사는 '보통대상빙조기'를 이용했다. 빙수 장사는 5월 초에 시작해서 9월 말까지 이어지는 계절 장사였다. 그 때문에 빙수장사들은 '겨울에는 고구마장사, 팥죽장사, 만주(만두) 장사, 우동 장사('(동아일보 1933년 9월 6일자)로 생계를 이었다.
오늘날의 팥빙수와 유사한 빙수로 추정되는 '사탕팟(사탕팥)' (동아일보 1933년 9월 6일자)도 팔았다는 기록이 있지만 , 팥빙수는 1970년대 이후 대중화된다.
조선시대부터 여름철 보양식으로 먹던 팥과 미숫가루, 떡이 들어가는 한국식 빙수의 특징이다. 하지만 한국식 빙수 문화의 가장 큰 차별성은 비빔밥처럼 빙수 위에 각종 재료를 얹고 이를 섞어먹었다는 점에 있다.
박정배(음식강산)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