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의 도시 춘천(2)김유정 문학촌
삼십 여분을 달려서 우리들이 닿은 곳은 바로 김유정 문학촌이었다. 춘천시 신동면 실레마을은 「봄·봄」「동백꽃」의 작가 김유정의 고향 마을이다. 김유정의 소설 대부분이 이곳에서 구상되고 작품의 등장인물이나 지명 등도 대부분 이곳의 실제의 상황과 일치한다고 하는데 마을 전체가 작품의 산실이며 그 현장이다. 그 곳의 사무국장님으로부터 기념관부터 설명을 들었다. 그 곳에는 아쉽게도 김유정의 유물을 많이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 곳에는 김유정의 생애와 작품 그리고 얼마간의 유물이 전시되어있었다. 그의 작품이 실린 잡지나 그의 소설집 등이 전시되어있었고 그 안에는 컴퓨터를 두 대나 설치해놔서 검색을 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는 휘문고보(徽文高普)를 거쳐 연희전문(延禧專門) 문과를 중퇴, 한때는 일확천금을 꿈꾸며 금광에 몰두하기도 했다. 1935년 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노다지》가 《중외일보(中外日報)》에 각각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데뷔하였다. 폐결핵에 시달리면서 29세를 일기로 요절하기까지 불과 2년 동안의 작가생활을 통해 30편에 가까운 작품을 남길 만큼 그의 문학적 정열은 남달리 왕성했다.
데뷔작인 《소낙비》를 비롯하여 그의 작품은 대부분 농촌을 무대로 한 것인데 《금 따는 콩밭》은 노다지를 찾으려고 콩밭을 파헤치는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을 그린 것이고, 《봄봄》은 머슴인 데릴사위와 장인 사이의 희극적인 갈등을 소박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필치로 그린 그의 대표적인 농촌소설이다. 그 밖에 《동백꽃》 《따라지》 등의 단편이 있다. 동백꽃의 표지가 빨간 꽃으로 나와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그림이라는 지적을 해주었다. 소설 속에서도 '노란'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었다.
전시관 옆에는 김유정 동상이 서있었고 그 옆에는 생가가 복원되어 있었다. 생가는 1908년 1월 11일 태어난 곳으로 조카 김영수씨와 금병의숙 제자들에 의해서 고증되어 복원되었다고 한다. 생가는 안방과 대청마루 사랑방 봉당 부엌 곳간으로 이뤄진 전형적인 ㅁ자 형으로 그 형태는 북부지방에서는 드물게 나타난다고 한다. 집을 그렇게 지은 이유는 마을 사람들을 배려한 때문인데 그 당시 서민들이 어렵게 살고 있는데 그들의 잘사는 모습을 밖으로 내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굴뚝도 아주 낮게 설치되어있는데 그 이유는 연기가 집밖으로 내 보내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장독대, 디딜방아, 위양간과 뒷간을 만날 수 있었고 집 앞에는 정자와 연못이 있었다.
그 곳을 돌아보면서 내가 가진 한가지 부러움은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노력이었다..다른 곳은 문학관인데 그 곳이 문학촌이어서 지원금을 얻는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뒷 얘기를 들었는데 문학촌 건립을 위해 25억이 들었는데 국비, 도비 그리고 군비까지 유치했다고 한다. 잘 정돈된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많은 행사를 하고 있는데 1969년부터 3월 29일에 김유정 문학촌 내 김유정 동상 앞에서 추모 제가 개최된다고 한다. 또한 동서문학사가 1986년부터 마련한 동서문학상을 1990년 제4회 때부터 김유정문학상으로 이름을 바꿔 시상을 하는데 1994년부터 다시 동서문학상으로 바뀌어졌다. 전년도 6월부터 해당연도 5월말까지 출간된 창작집 또는 장편소설을 대상으로 추천을 받아 10월중에 시상식을 열고 있는데 김유정문학상으로 상명칭이 바뀐 후 전상국(사이코시대) 유순하, 안정효씨(악부전)가 수상했다.
김유정 백일장이 강원도민일보사가 1993년 처음 시작해 매년 열어오고 있는데 김유정백일장은 토속성 짙은 배경과 해학적인 언어로 삶의 발랄함을 단편소설 속에 그려내 1930년대 한국소설문학사의 새 지평을 연 강원도 작가 김유정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청소년들의 창작 의욕을 북돋우기 위한 것이다. 2001년부터 전국 단위 백일장으로 확대되었으며 ‘동백꽃’‘봄·봄’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김유정의 고향 춘천 실레마을 생가터 현장 숲 속에서 개최함으로써 소중한 문학 체험의 기회가 되고 있는데 김유정 소설문학상 시상식 및 초청작가의 문학특강, 문인과의 대화 등 다채롭게 진행이 되어서 강원도 문학의 산실이 되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문학촌에서 바라보이는 금병산(652M)은 가을이면 그 산기슭이 비단병풍을 둘러친 듯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금병산 산자락 곳곳은 향토색 짙은 김유정 작품의 배경이기도 하다. 이를 기리기 위하여 금병산에는 김유정의 작품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등산로가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작가의 작품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안내 역할을 하고 있는데 시간 관계상 그 곳을 돌아볼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그 곳을 떠나서 우리들이 닿은 곳은 춘천시 서면 방동리 의암호 변에 위치한 신승겸묘소였다. 신승겸은 TV드라마에서도 보았듯이 고려 태조 왕건의 개국시 개국공신의 한 사람으로 대구 공산 전투에서 후백제 견훤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는데 태조 왕건이 이를 기리기 위하여 춘천 방동리에 제사 지냈는데 금으로 만든 두상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며 봉분을 세 개로 만든 것이 특징인데 이는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얘기를 후손인 신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그 곳에서 출발해서 소설가 이외수씨를 만나자는 의견이 있어 수소문을 해서 한림대앞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갔는데 그가 작업중이라는 이유로 접견을 해주지 않았다. 미리 약속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는데 씁쓸한 마음으로 그 곳을 나와 중앙고속도로를 통해서 원주까지 그리고 원주부터 다시 영동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를 통해서 9시가 넘은 시간에 우리들이 출발했던 곳에 도착을 했다.
첫댓글 가보지 않았지만,수필가의 필체로 자세히 들으니,반은 갔다 온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여독 푸시고,또 기대 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