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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일본에 가본 건 약 20년 전 대학교 때였나 보다.
사실 일본에 가봤다기 보단 말 그대로 일본땅에 “발을 디딘” 정도였다. 캐나다를 가는 중이었는데, 일본을 경유하는(심지어 나리타 공항에서 내려 하룻밤 자고 가는..^^;;) 티켓이 비교적 싼 값으로 나와 잠깐 거쳐간 적이 있다. 그 당시엔 일본 여행도 비자가 필요했었는데, 비자가 없는 환승 여행객들의 경우, 항공사가 마련해 준 공항 호텔 밖으론 나갈 수 없는 규정이 있었다. 암튼, 호텔방에 걸려있던 유카타도 신기했고, 고춧가루 한 점 없었던 아침 식사도 생소했다.
그리고, 두 번째 방문은 2011년.
마침 친한 대학 후배가 일본에서 석사과정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의 도움으로 3박 4일 동경을 여행한 적이 있다. 달랑 비행기표와 숙소만 예약하고 떠난 여행이라, 집사람 발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많이 걸었지만 덕분에 도쿄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었다. 도시 곳곳으로 잘 연결된 전철 덕분에 이동하는 것은 별 문제없었지만, 의사소통의 문제가 제일 컸다.
2011년 도쿄 오다이바에서 후배랑....(목마클 가입 직전이였나...이 땐 날씬했군....^^;;)
후배랑 함께 다닐 때는 더없이 편했지만, 헤어지고 난 후 일정에서는 맥주 한잔 제대로 시키기 어려웠다. ^^;; 담에 일본에 올 땐 꼭 일본어 몇 마디라도 꼭 공부해서 오자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기회가 4년 후에 찾아왔다.
벳푸(Beppu)
일본은 크게 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 이렇게 4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규슈의 동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인구 12만의 작은 관광 도시이다. 벳푸에서 차로 약 2시간 정도 떨어져있는 후쿠오카항이 부산과 가까워 한국 관광객들이 국제 여객선으로도 여행을 많이 오는 곳이다. 무엇보다 규슈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세계 최대의 활화산 아소산(지난 8월에도 분화했다고...^^;;)의 자락에 위치해, 유휴인과 더불어 일본 최고의 온천 휴양지로 유명하다
이 온천의 도시 벳푸시와 목포시는 벌써 30년 전에 자매결연을 맺었다는데, 벳푸시 관광과의 초청과 목포시의 지원으로 지난 10월 11일 벳푸 유케무리 마라톤 대회를 다녀올 수 있었다. 사실, 벳푸 마라톤 대회라고 처음 들었을 때, 도쿄 대회, 오사카대회와 더불어 일본 3대 메이져 대회라는 벳푸-오이타 대회를 떠올렸다.
아, 드뎌 외국에서도 풀코스를 함 뚸 보는 구나...ㅋ
했는데.... 이번 벳부 유케무리(일본어로 저녁연기, 근처에 유케무리 전망대가 있단다.) 대회는 전혀 다른 대회였다. ^^;;
일정은 2박 4일.
금요일 오전 목포 출발, 저녁에 부산국제여객선 터미널에서 후쿠오카행 페리 승선, 배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일본 입국. 벳푸에서 이틀을 보내고 대회 다음날인 월요일 아침 벳푸-후쿠오카-부산-목포로 돌아오는, 이동하는데 거의 이틀을 꼬박 소요하는 힘든 여정이였다.
출발 당일 아침 해수부.
목포 각 클럽별 한 분씩(목마클에서는 주경남선배님, 저는 운좋게 꼽사리 ㅎ) 오셨고, 목포 시청 행사 담당자도 함께 했다.
긴 여정의 시작
부산 국제 여객선 터미널의 야경 후쿠오카 항
뜨거운 연기들을 뿜어내는 산들을 지나(오이타 고속도로) 굽이 굽이 산길 아래로 벳푸항이 보인다.
목포를 떠난지 딱 24시간만에 벳푸에 도착했다. ^^;;
벳푸 후지칸 호텔(조금 오래된....전망은 좋았던...ㅎ) 호텔앞에서 바라본 마리나(오른쪽엔 벳푸 시내)
그리고 대회 당일.
아침 일찍 숙소내에 있는 온천(이 동네 목욕탕은 다 온천이다...ㅋ)에서 몸을 풀고, 아침을 넉넉히 먹고 행사장 가는 버스를 탄다. 대회 장소는 벳푸시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시다카 호수(志高湖) .
숙소를 떠난 버스가 다시 구불구불 산길을 한참을 오르더니, 마라톤 복장의 큰 무리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목적지인 시다카 호수. 깊은 산속에 있다 믿지 못할 정도로 작고 예쁜 호수가 자리잡고 있다.
시다카 호수 전경
국립공원임에도 불구하고 호수 곳곳에 캠핑을 하는 가족들이 눈에 띈다.
그 중엔 마라톤에 참가하는 가족들도 많다 하니, 진정한 레포츠의 천국이다.
꼭 텐트가 아니더라도 간단한 먹을거리와 돗자리를 챙겨 응원나온 가족들도 많다.
시다카호 안내도 행사장입구이자 대회 출발점
오늘 대회는 4k 걷기를 포함, 4k, 8k, 16k 코스로 나뉜다.
호수 한바퀴가 대략 2k. 어찌 짧다 했더니, 위 안내도에서 빨갛게 표시된 지점에서 출발,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 1시 방향 오른쪽 갈래길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호수를 한 바퀴 돌면 총 8k. 16k는 이 코스를 두 바퀴를 돌면 된다.
하지만 정작 대회 출발전에는 코스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어 잔뜩 긴장했는데...
막상 뛰어보니 거리만 조금 길 뿐 유달산 두 바퀴다...ㅎㅎ
대회 포스터
일본 가기전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조금 익혀갔더니, 포스터가 대충 읽힌다. 오...신기...ㅋ
대회 공식명은 "제 28회 벳푸 유케모리 건강 마라손 & 워쿠(걷기) 대회" (회장님, 이렇게 읽는거 맞나요? ㅎㅎ)
토끼처럼 생긴 애는 대회 마스코트인 "벱폰". 귀와 머리카락(?) 부분이 온천의 상징 ♨ 를 본땄단다.
선착순 2000명 모집에 이번 참가자는 걷기 포함 약 1700명이라니 산꼭대기에서 치르는 행사치곤 많은 편이다.
참가비가 포스터에 안나와 있어 무료인 줄 알았더니 포스터 하단에 나온 대회 홈페이지(www.sportsentry.ne.jp)에 가보니 성인은 3000엔, 고등학생 이하는 1500엔 이다. 우리나라랑 거의 비슷.
그러면 이 동넨 참가비를 내면 뭘 줄까? 배번과 기념품 봉지를 열어보니....
여러가지가 나온다.
안내책자, 배번과 배번하단에 붙어있는 기록칩, 기념티, 볼펜, 그리고 조그만 타올.
사진엔 안나와 있지만 안내 책자안에는 대회전후 서비스구역에서 주먹밥과 이온음료로 바꿀수 있는 쿠폰과 대회 후 근처 온천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쿠폰이 붙어 있다. 저 조그만 타올은 그 때 쓰라고 주는 듯. (이번에 가본 온천에도 수건이 없어서 개인이 별도로 준비해야 했다.) 나름 초청 선수라 참가비도 안냈는데, 그래서인지 더 횡재한 기분 ㅋㅋ.
대회장 이모저모
대회 본부 신나는 생음악을 연주해준 군악대(?) 실력이 꽤 좋았다
쿠폰을 간식으로 내어주는 "서비스" 구역 42세의 젊고 잘생긴 벳푸 시장님 개회사 (조금 길었다....ㅋㅋ)
멀리 목포에서 온 한국분들도 소개해주고...^^ 보이쉬한 "벳부 스포츠 센타" 센세이의 재밌었던 스트레칭
시장님도 열심히...^^ 다들 무척 진지하게 따라한다.
오전 10시. 드디어 대회 시작.
순서는 4k 걷기부터 출발, 10시 30분에 4k 달리기, 11시에 16k, 8k로 순으로 출발.
시간 간격을 잘 계산해서 인지, 주자들끼리 꼬이는 경우가 없었다.
16k 주자인 난 스트레칭하고도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해서 호수 한바퀴 2k를 워밍업 삼아 돌아보기로 했다.
호수 반바퀴를 돌아 대회장 정반대편쯤을 지나고 있을 땐가....
저 멀리서 4k 선두 주자들이 들어온다.
큰 보폭으로 들어오고 있는 4k 선두 주자들
내가 도는 방향과 반대 방향이여서 주자들 얼굴들이 정면으로 스쳐간다.
놀라운건 선두권 다음으로 초등생쯤으로 보이는 앳된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뛰는데, 그 뒤를 바짝 쫓는 50대 선수들의 얼굴이 더 힘들어 보인다. 아이건 어른이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리고 드디어 16k 주자들 출발.
출발전 사람들이 막 박수를 치길래 물어봤더니 작년 이 대회 1등이 이번에도 참가했단다. 기록은 무려 52분대.
"탕"
총소리와 함께 나도 출발...
호수 6시 방향에서 출발, 반시계 방향으로 300여 미터 뛰고 바로 오른쪽 도로로 내려간다.
울창한 삼나무 숲을 가로지르는 왕복 2차선 도로 옆으로 경사 심한 내리막이 한없이 이어져 있다.
아직 코스를 몰랐던 상태라, 만약 반환 코스일 경우 이 경사를 2k 이상 올라갈 걸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하다.
1k쯤 내려왔나, 타닥 타닥...발소리가 들리더니 후발 8k 주자들이 날아가듯 내리막을 내려온다.
목포에서 함께 왔던 목포 시청분과 여자분도 지나가며 화이팅을 해준다.
초반 2k 내리막 코스 (여유를 부리는 걸 보니 두번째 바퀴때 찍었나 보다...ㅎ)
8k 코스는 초/중학생들도 참가가 가능한지, 어린 학생들이 무서운 속도로 성인들과 동등한 레이스를 펼친다.
국내 대회와 비교해 보니, 대회 참가자들의 구성에서 차이가 크다. 한국 대회의 경우 40~50대 남성 주자들의 참가가 대부분인 반면, 벳푸 대회에는 남녀노소가 거의 비슷한 비율로 참가하는 것 같다. 모녀처럼 보이는 두 출전자가 나란히 달리는 모습이 참 좋아 보인다. 이번 대회 참가 최고령자가 89세라고 하니, 이 또한 놀랄 따름.
2k 내리막 구간이 끝나는 구간에서 첫번째 급수대가 나온다.
한바퀴 8k를 도는 동안 대략 네 번 정도 급수대를 만난다. 코스가 짧아서인지, 이온 음료나 간식 없이 생수만 준비되어 있다. 익히 들어왔지만, 역시나 바닥에 버려진 물컵은 없다. (선두권들이 버리고 갔을 듯한 몇 개 빼고...ㅎ) 급수대를 지나 십여미터 지점에 학생들이 큰 비닐봉투를 들고 있는데, 마신 물컵은 다들 그 곳에다 버리고 간다.
짧은 평지를 지나,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들며 그리 길지 않은 오르막들이 계속 나온다.
아침에 흐렸던 날씨가 점점 걷히더니, 12시에 가까워지자 한여름 날씨처럼 쨍하다.
다행히 곳곳에 나무 그늘이 있어 그리 덥지 않게 달릴 수 있었다.
옆에서 달리던 주경남 선배가 한마디 한다.
"코스가 밀당을 하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오르막이 힘들만 하면 내리막이 나오고, 햇볕에 몸이 뜨거워질만 하면 시원한 그늘이 나온다. ^^
3k 지점 오르막이 막 시작되는 구간. 아토 1K (마지막 1K 지점....^^)
제일 힘들었던 4~5k 지점 오르막. 경사가 심하고 조금 길다. (그래도 나주 금성산 코스에 비하면 양반이지만...ㅎ)
6k 지나 500여 미터 오르막을 오르고 나면, 처음 갈림길이 시작되었던 호수가로 다시 나온다.
그 곳에서 호수 한바퀴를 돌아 출발점으로 도착하면 1회전 8키로. 이제 똑같은 길로 한바퀴만 더 돌면 된다.
처음 긴 내리막을 다시 올라오지 않아도 돼 천만다행. ^^;;
전체적으로 "ㅣ"자로 내려갔다가 "ㄹ"자 형태로 올라오는 코스이다.
이제 코스를 알았으니, 좀 더 속도를 내 달려본다. (그래봤자 6분 페이스지만..ㅎ)
선배랑 중간중간 사진도 찍어주고 펀런 한바퀴....^^
골인 500M 전.
멀리 아름답기로 유명한 유후다케(유후산, 왼쪽)과 케이블카 전망대가 있는 츠루미산(오른쪽)이 보인다.
그리고 골인. 기록은 1시간 42분대 (전체 260등...^^;;)
싱그런 삼나무 숲과 눈부신 호수를 끼고 도는, 말그대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벳푸 건강 마라톤 대회였다.
애들이 좀 크면 외국 대회도 많이 다니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좋은 기회가 왔다.
비록 풀코스는 아니지만, 한글이 아닌 다른 언어로 이름이 적힌 배번을 달고 뛴 첫 대회인만큼 더없이 좋은 경험과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사실 대회 전날 몸이 조금 안좋아 걱정했었는데, 끝까지 무거운(^^;;) 동생 데리고 뛰느라 고생한 주경남 선배, 좋은 기회 마련해 주신 목포시 관계자 분들 그리고 목마클 조인형 회장님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p.s.) 외쿡가면 이런거 찍어야 한다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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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내가 갔다 온 것처럼 자세히 올려줘 실감나네 오랜 추억이 되겠네 부럽다
가깝지만 먼 나라. 힘든 일정을 멋지게 소화하고, 생생한 소식 멋지게 전해줘서 고맙습니다.달리는 즐거움과 보고 느꼈다는 행복감이 예까지 밀려옵니다.
실감나는 후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거린 짧아도 고급진 후기라니... 역시 수현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