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번홀에서 하이트컵의 향방이 극적으로 갈리고 말았다.
경기도 여주군에 위치한 블루헤런 골프클럽(파72,6천4백6야드) 18번홀(파5,504야드)에 운집한 갤러리는 단 20여분만에 벌어진 역전 드라마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골프는 장갑을 벗어봐야 한다’는 말을 실감케 한 극적인 장면이 바로 눈 앞에서 생생하게 벌어진 것이다.
제8회 하이트컵 여자프로골프 챔피언십(총상금 4억원, 우승상금 1억원) 최종일, 해외파 최혜정(23,카스코)이 최종합계 6언더파 210타를 기록하며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한편 3라운드 17번홀까지 선두를 달리던 지은희(21,캘러웨이)는 18번홀에서 더블보기를 범하며 무너져 시즌 7번째 준우승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오늘만 보기 없이 버디만 3개를 기록하며 18번홀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선 최혜정은 심호흡을 길게 했다. 드라이버샷이 정확히 페어웨이에 올라갔고 이어진 세컨드샷 역시 좋은 위치로 날아갔다. 50야드를 남겨 놓고 56도 웨지로 공략한 3번째 샷은 핀 뒤쪽 2.5미터 지점에 정확히 떨어졌다. 이 때 최혜정의 눈에 들어온 것은 대형스코어보드에 지은희의 스코어 ‘-7’. 만약 이 버디 퍼트를 홀 안으로 떨군다면 최혜정은 6언더파로 라운드를 마감하게 된다. 지은희가 마지막 홀에서 보기를 한다면 연장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기에 최혜정은 더욱 침착하게 퍼트에 임했다. 딸그랑. 2.5미터짜리 버디 퍼트가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자 그린 주변에 모인 갤러리가 일제히 환호했다.
이 소리에 흔들린 것은 바로 뒷조의 지은희. 18번홀에 올라온 지은희는 드라이버를 꽉 움켜 쥐었다. 너무 힘이 들어갔는지 티샷이 우측으로 밀리면서 깊은 러프에 빠졌다. 지은희는 어쩔 수 없이 레이업을 시도했고 페어웨이에서 친 3번째 샷이 이번에는 좌측 러프로 들어갔다. 여기에 당황한 지은희의 4번째샷도 그린 에지로 올라가고 말았다. 결국 어프로치를 해서 보기로 막아야만 연장에 들어가는 상황까지 맞고 말았다. 지은희는 신중하게 어프로치샷을 시도했지만 핀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흘러 내려가고 말았다. 3미터가 조금 넘는 부담스러운 퍼트를 남겨놓은 지은희는 보기 퍼트마저 홀을 외면해 망연자실했다. 결국 더블보기. 1타차 역전을 당하며 다 잡은 우승컵을 최혜정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한편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최혜정은 “(지)은희가 더블 보기까지 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면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내 마음이 더 아팠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2003년에 KLPGA에 입회한 최혜정은 이듬해 USLPGA 퀄리화잉스쿨에 응시하면서 ‘KLPGA 정회원은 2년간 해외 진출을 금한다’라는 규정을 위반해 출전정지 2년과 벌금 1천만원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결국 최혜정은 미국으로 건너가 퓨쳐스투어에서 활약하다 지난해 파워 오브 드림 퓨쳐스 골프 클래식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현지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하지만 퓨쳐스투어 상금순위 5위까지 주어지는 전경기 출전권을 획득하지 못해 퀄리화잉스쿨에 다시 응시한다. 결국 퀄리화잉스쿨에서 1위로 통과하며 올해 전경기 출전권을 획득한 최혜정은 꾸준한 성적을 보여왔다. 하지만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던 최혜정이 드디어 국내에서 생애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우승자 인터뷰에서 최혜정은 “그동안 나를 믿고 기다려주신 부모님께 이 영광을 돌린다.”면서 “이번 우승은 나에게 큰 힘을 줬다. 앞으로 미국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소중하고 값진 경험이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시즌 8승을 노렸던 신지애(19,하이마트)는 2타를 줄이며 선두 추격에 나섰지만 후반 8개홀에서 더 이상 타수를 줄이지 못한 채 라운드를 마쳤다. 결국 합계 2언더파 214타를 기록하며 디펜딩 챔피언 문현희(24,휠라코리아)와 함께 공동 5위에 올랐다. 시즌 8승은 놓쳤지만 신지애는 한국남녀프로골프 역사상 최초로 시즌 상금 5억원을 돌파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5억원 돌파라는 신기원을 이룩한 신지애는 “지난해 하이트컵에서도 우승은 못했지만 '3억원 돌파'라는 기록을 세운바 있는데 올해도 '5억원 돌파'를 하이트컵에서 하게 됐다.”면서 “내년 하이트컵에서는 개인적으로 어떤 기록이 나올지 기대가 된다.”고 소감을 말했다.
하이트맥주가 주최하고 KLPGA가 주관한 이번 제8회 하이트컵 여자프로골프 챔피언십은 최혜정의 생애 첫 우승과 신지애의 시즌 상금 5억원 돌파 등 풍성한 기록을 남기며 내년을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