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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黃山) 기행
중국 황산에 다녀왔다. 산 전체가 바위로 된 기묘한 산이다. 해발800m 아래에는 대나무 와 삼나무가, 그리고 그 위에는 소나무가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멋진 산이다.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는 황산의 신비감을 더해준다. “황산을 보지 않았다면 산을 보았다고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어도 오래전부터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지난 7월 10일 3박 4일 일정으로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서울건축사 회원 26명과 함께.
항주국제공항에 도착하여 먼저 ‘서호유람’을 하고 황산으로 이동하니 갈수록 산세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산 구릉지에 녹차밭이 즐비하고 초록빛 대나무 숲이 무성하다. 산골마을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집들은 한결같이 흰 벽에 검은 기와지붕 일색이다. 그런데 처마 끝에 말머리 모양의 장식인 ‘마두벽’이 특이하다. 돈 벌러 나간 가장이 돈 많이 벌어 말잔등에 가득 싣고 오라는 뜻이어서 중국인들의 경제관을 엿볼 수 있다.
절강성 성도인 항주에서 안휘성 황산시 까지 208km 거리의 고속도로를 달려 3시간 만에 도착했다. 네온불빛으로 물든 신한강 둔치에서 휴식과 운동을 즐기는 중국 사람들 모습이 여유롭다. 식당에서 현지식으로 저녁을 먹으며 성공적인 황산등정을 위해 건배했다. 밤하늘의 반달도 우리를 반겨주 듯 밝아 내일 날씨는 좋을 것 같다.
이튿날 호텔에서 아침식사 후 1시간 정도 전용버스로 이동하여 황산아래 비취계곡부터 보러 갔다. 약 2km구간의 계곡으로 비취색 돌 때문에 계곡물이 더 푸르게 보인다. 300m의 대나무 숲길과 시원한 폭포 등이 어우러져 영화 ‘와호장룡’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명산계곡, 오대산 소금강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愛(사랑애)’ 붉은 글자가 새겨진 널따란 바위에 앉아 첫사랑을 생각하며 사진을 찍고 붉은 주단이 깔린 정인교(情人橋)를 건너기도. 약 2시간 정도의 트래킹으로 몸을 풀고 점심 후 황산 등반에 나섰다.
2년 전 백두산 종주 시 중간에 점심 도시락을 먹고 2시간 동안 계속된 오르막길에 죽도록 고생한 적이 있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현지 여행사의 정해진 스케줄에 따를 수밖에. 황산으로 향하는 길옆으로 활짝 핀 두견화와 산기슭에 피어난 억새무리가 인상적이다. 컴컴할 정도로 짙게 우거진 대나무와 삼나무 숲길을 따라 심연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오후 1시 30분 드디어 황산 운곡사 입구에 도착했다. 약간 긴장되고 설렌다. 황산을 오르는 3개의 코스 중 동해 쪽인 운곡사 코스가 일반적이지만 서해 자광각 코스가 트래킹하기엔 더 좋을 듯싶다.
황산을 걸어 오르다
황산은 그리 높지는 않다. 제일 높은 연화봉이 1,864m인데 제3봉인 천도봉(1,810)과 함께 너무 험해서 폐쇄되고 제2봉인 광명정(1,860)이 사실상 정상인 셈이다. 면적은 약 5백평방 km로 지리산국립공원(4백40평방km)과 설악산국립공원(3백73평방km)에 비해 조금 넓은 편이다. 그러나 국내 산 과는 느낌부터가 다르다. 거의 대부분 기암으로 등산로가 우리나라 산처럼 자연스러운 게 아니고 순전히 돌계단으로 이루어져 걸어서 오르기가 매우 부담스럽다. 1979년 덩샤오핑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든 황산을 볼 수 있게 하라”는 지시를 내린 후 21년 동안 14만 여개의 돌계단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일부 험한 구간은 대다수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다.
우리 일행 중 15명은 케이블카를 이용하고 11명은 걸어서 오르기로 했다. 나를 포함한 등산팀 11용사는 마치 출정식을 방불케 하듯 ‘살아서 돌아오라’는 전송을 받으며 등산길에 올랐다. 현지 산악가이드를 앞세우고 입장(요금 200위안/32,000원), 처음에는 완만한 계단과 숲길이라 시원했는데 이내 가파른 돌계단을 계속해서 오르자니 온 몸이 땀에 젖고 숨소리는 거칠어진다.
황산 지역은 제주도와 비슷한 기후인데 여름 기온이 37도를 오르내리고 습도 또한 높아 국내산을 오를 때 보다 훨씬 더 힘들다. 외길로 된 가파른 계단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런 와중에 수시로 인력으로 짐을 나르는 사람들을 비켜가야 하는 주의도 기울여야 한다. 그냥 맨몸으로 걷기도 힘든데 60kg이나 되는 짐을 메고... 황산으로 올라가는 모든 짐은 이런 분들의 노동에 의해 운반되는데 케이블카 요금(60위안)이 비싸기 때문이다. 건물을 짓기 위한 H빔 등도 마찬가지다. 네 사람이 간신히 들어올릴 수 있는데, 도로를 내거나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것에 비해 아름다운 환경도 보존하고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기도 하기 때문이란다.
서로를 격려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간 끝에 케이블카 정류장이 있는 백아령(1,860m)에 도착 했다. 케이블카(2,803m로 아시아 최장)로 10분이면 올 수 있는데, 우리 등산팀은 6.5km를 2시간 20분이나 걸어서 온 것이다. 그러나 그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다.
대자연이 연출한 기암괴석 과 노송의 오케스트라
백아령에서 한숨을 돌리고 비로소 기암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들을 보며 황산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 황산의 비경은 단연 기암괴석이다. 그러나 그 틈에 뿌리를 박고 서 있는 소나무가 더 눈길을 사로잡는다. 해발 800m이상은 이러한 소나무들이 90%를 차지하고 있다. 백아령에서 정상까지는 2km로 대략 1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여기도 역시 돌계단이다. 주로 능선 길로 내리막과 오르막의 연속이다. 인력 가마를 타고 편하게 가는 사람이 간혹 눈에 뜨인다. 개중에는 전혀 미안해하는 기색이 없는 두꺼운 얼굴도 있다.
얼마쯤 가다보니 지금까지 좋았던 날씨가 일순간 안개구름이 몰려오더니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돌변했다. 기상대를 지나자마자 정상인 광명정(光明頂:1,860m)에 도착했다. 그렇지만 주변에 사람들만 보일뿐 정작 기대했던 조망은 볼 수가 없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산세와 운해는 사진 속에서만 가능하단 말인가! 대자연도 가끔은 제 모습을 감추고 싶을 때가 있겠지만 하필 오늘... 정상 표지석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일행들과 팩소주로 정상주 한 잔씩 나누었다. 추위를 느낄 정도였는데 뱃속에 불을 지피니 몸이 훈훈해지고 기분도 좋아진다. 일기가 안 좋다고 보채는 가이드를 따라 비래석 쪽으로 하산하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 나중엔 천둥 번개까지. 수많은 등산객들이 갑자기 비옷 및 우산행렬로 바뀌었다. 낙뢰 때문에 우산을 접으라고 했지만 그럴 순 없었다.
황산의 명물 비래석에 올라 포옹과 입을 맞추고 배운정을 향해 가는데 도중에 빗줄기가 점차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름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뿌옇던 시야가 트이고 황산의 모습이 보석처럼 드러나기 시작. 빗물로 말끔히 세수한 듯 청신한 기암과 노송이 어우러진 황산의 진면목을 대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기상 악화는 앞길을 막는 게 아니라 더 멋진 장관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감춰져 있던 것이 벗겨질 때의 짜릿하고 오묘한 맛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높은 봉우리와 아득하게 깊은 계곡의 조화, 옅은 구름과 피어오르는 안개에 싸여 유토피아가 펼쳐진다. V자 대협곡사이로 피어오르는 운해, 그 신비로운 비경 속으로 풍덩 빠져들 것 만 같다.
배운정(排云亭)에 도착해서는 비가 멎으며 날씨가 완전히 개었는데 황산의 제 4경인 운해를 마음껏 볼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 구름은 파도가 넘실대듯 끝없이 펼쳐지고 점점이 피어오른 산봉우리는 작은 섬처럼 보인다.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감상하는 듯 하다. 언제까지나 여기 그대로 머물고 싶었지만 먼저와 호텔에서 기다리는 일행들이 있어 숙소인 서해호텔로 향했다.(6:30P도착) 테라스하우스형 2층 건물인데 해발 1,840m의 산 중에 이런 호텔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샤워 후 개운한 기분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곧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왠지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나가니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달무리가 짙게 드리워져 내일 날씨는 좋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새벽녘에 겨우 잠이 들었는데 모닝콜이 울린다. 04: 30 일출을 보기위해 호텔 앞에 집합했다. 역시 날씨가 흐리다. 가이드를 따라 손전등을 들고 30분정도 걸어서 주운봉에 올랐다. 산 아래 기온과는 10도 이상 차이가나 얇은 잠바를 입고 혹시나 하고 기다려 보았지만 역시나로 끝나고 말았다. 일출을 볼 수 있는 확률이 3%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하니 너무 서운하게 생각지는 말자고 단념하고 서해대협곡 입구로 갔다.(어제의 배운정 위치였는데 처음엔 몰랐다)
그런데 짙게 드리운 운무가 걷히지 않아 뿌옇기만 해 그 천하의 비경들을 볼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여기저기서 원망의 소리가 들린다. 어제 처음부터 서해대협곡 코스로 올라왔어야 했는데...저녁을 굶더라도 여길 와봐야 하는 건데...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호텔에 돌아와 아침식사를 하면서 가이드에게 다시 한 번 주문을 했다. 운해가 바다처럼 펼쳐진 황산 일출까지는 아니더라도 서해대협곡의 비경들을 어느 정도는 보고 가야하는 것 아니냐고. 그래서 아침식후 1시간 정도의 시간을 허락받아 다시보기로 했다. 마침 햇볕이 나서 가능했던 것이다. 거의 똑같은 코스로 돌아봤는데 이렇게 멋지고 신비로운 모습을 두고 그냥 갔더라면 평생 한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 보이는 곳마다 환상적이라 그저 입이 딱 벌어지고 감탄사의 연발이다.
황산의 비경 중 으뜸가는 기암괴석과 소나무를 원 없이 보고 즐겼다. 보일 듯 말 듯 기암(奇岩)위에 기송(奇松)이라- 금상첨화(錦上添花)란 이럴 때 쓰는 말인 듯. ‘황산에 오르면 다른 산이 보이지 않고, 천하의 절경은 모두 황산에 모여 있다’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밟으면 떨어질 것 같은 돌계단을 따라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환상적인 경치를 자랑하는 서해대협곡을 구경하니 꼭 꿈만 같다. 천길 낭떠러지 기암절벽 허공에 철근을 연결하여 만들어진 콘크리트 계단을 조심스레 건너가면서 이것을 만든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긴 만리장성을 만들어낸 그들이 아닌가.
2억년 전 실제 바다였던 이곳이 이제는 구름과 안개로 바다를 이룬다. 운해와 기암괴석, 기송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는 천하제일경 황산, 하늘아래 아름다운 것들이 모두 모여 있는 곳. 산이자 계곡이자, 동시에 구름바다인 황산을 내 생전에 와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지...세계 자연유산으로 인정(1990.12 유네스코 지정)받은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남겨두고 떠나는 것도 여행
2%부족한 것을 채웠는데도 또 0.2%부족하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이제 산을 내려가야 했다. 사진으로 눈으로 마음으로 담아가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다. 남겨두는 것도 여행이다. 올 때와 코스를 달리해 백아령으로 가는 데 또 비가 내린다. 이렇게 황산의 기후는 변화무쌍하고 그것이 더 큰 매력이다. 운곡사 까지 케이블카(요금 80위안)로 너무 쉽게 내려오면서 어제 걸어 올랐던 길을 되짚어 본다. 산 아래는 날씨가 좋았다. 황산 시내에서 쇼핑 및 점심을 먹고 명대(明代)의 옛 거리를 걸어 보기도 했다. 망고와 복숭아 등 과일이 엄청 싸(5천원에 한 보따리) 배불리 먹을 수 있었지만 사올 수는 없다.
오후 늦게 다시 항주로 출발했다. 원래 오나라였던 황산에서 월나라였던 항주로 가는 것이다.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말의 근원지이다. 밤중에 항주 도착하여 ’송성가무쇼‘를 관람했다. 기본 3만원에 1만원을 더 주고 앞쪽 특석에서 보면서 6개월 만에 또다시 황홀감을 느껴보았다. 그러나 감동은 역시 첫 번째가 최고다.
‘고려정’이라는 한식당에서 불고기(돼지고기 삼겹살) 상추쌈에 소주를 마시며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모두 돌아가면서 건배를 제의하고 식당 여종업원들의 노래도 들으면서. 밤 12시가 넘어 호텔에 도착, 마지막 밤을 보내고 이튿날 아침 귀국길에 올랐다.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황산과 쌍벽을 이룬다는 금강산에서 북한군의 남한 관광객 사살 사건이 보도되고 있었다. 슬픈 현실이다. 중국은 저렇게 발전하고 있는데...
첫댓글 제가 황산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생동감있는 황산산행기 잘 보았습니다.
가고싶은 멋진 황산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