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호카이도(記)
<영화 ‘러브레터’의 고향 북해도(호카이도) 여행>
-엄마, 이번에는 엄마하고 휴가 기간이 딱 맞네.
-그래, 이런 적이 없었지 아마...
-엄마랑 같이 여행 가자.
-그래, 우리 둘이 일을 저지르자...
궁합이 딱인 딸과 나는 들떠서 여기저기 여행 정보를 알아봤지만
성수기라 만만치 않았다. 고생하지 않고 그야말로 심신을 풀고 휴가를 즐길 곳을 찾았다.
-7/28(수)-31(토), 엄마 호카이도, 어때? 꽃도 보고 온천하고 들판 보고...
-그래, 예약하자.
연수 중인 남편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도리어 당신이 시간을 맞추지 못해 미안하단다. 그러면 떠나면 된다.
3박 4일이라 짐을 챙기기도 단출하고 좋았다.
새벽에 인천공항까지 데려다 준 남편을 보내고
그때부터는 딸이 내 보호자가 되었다.
다 알아서 찾아 데리고 다니고, 면세점 들리고 탑승했다.
아사히카와 국제공항은 깨끗하고 작았다.
아사히카와(옥천)는 ,빛나는 강‘이란 뜻을 지닌 예쁜 마을이다.
기다리는 432 도케이다이 버스에 올랐다.
시골이다.
길가에는 보라색 라벤다(허브)가 줄지어 심어져 있다. 주택의 화단도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고 꽃이 피어있었다. 들꽃도 많다.
들판을 달릴 때는 메밀밭이 펼쳐져서 한국 같았다. 소바면과 소바차가 메밀임을 딸에게 얘기하며...
시내와는 좀 떨어진 전원이 펼쳐진 언덕 위의 마가렛 교회에 도착했다.
마가렛 교회는 종교와는 무관한, 결혼식을 올리는 웨딩홀이다. 18세기 영국 가구를 수입하여 내부 시설을 꾸몄으며 유럽풍의 스테인드글라스, 건물양식 등이 어우러져 품위가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운치를 더하였다.
일본에는 일생동안 여러 개의 종교를 거친단다.
태어나서는 신사에 들러서 신고하고, 결혼은 교회에서, 죽으면 불교식으로 떠난단다. 버스로 2시간 30분쯤 달렸다.
삿뽀로 시내에 와서 오오도리 공원에 내렸다. 삿포로 중심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도심 속에 펼쳐진 시민공원으로 여러 행사가 열리는 시민들의 쉼터이자 문화공간이다. 북해도 청사는 북해도 개척의 역사가 담겨 있는 붉은 벽돌의 중후한 건물로 약 250만개의 벽돌을 사용하여 미국풍 네오바르크 양식으로 1888년 건설되었다. 현재 이곳에서는 업무를 보지 않고 관람용 전시관이었다. 버스를 타고 본 북해도 시계탑은 1878년 세워진 이래 지금까지 변함없이 맑은 종소리가 온 도시에 가득 울리고 있는 삿포로의 상징물이다.
저녁을 먹고 호텔에서 딸과 둘이 일본의 첫밤을 맞았다. 블루웨이브인 호텔에 짐을 풀고 나와서 준비한 약도를 보고 하루 일찍 도착한 딸 친구를 만났다. 게요리 전문점에서 식사를 하고 헤어져 오는 길을 잘못 접어들어 헤매다가...일본을 두 번 여행한 딸은 여유를 부리며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으며... 겨우 아니, 쉽게 호텔을 찾아서 한바탕 웃었다.
2008년 12월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으로 후지마루호를 타고 옛 선조 통신사들이 다녀간 바닷길을 오갈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그 때는 현해탄을 건너며 70여년 전 마산에서 밀항선을 타고 일본 유학길에 오른 아버지 생각에 갑판에 서서 망망대해만 봤다. 아버지 생각만 내내 났다. 소년이었던 아버지는 배멀미를 심하게 해서 오사카항에 내릴 때는 거의 기진맥진했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 시절의 밀항선은 통통배 수준이었을 것이다. 현해탄만 건너면 살았다고 했을 정도로 현해탄은 소용돌이가 제일 심하단다. 23,000톤급 후지마루도 약간 흔들렸다. 눈물이 났다. 밤의 현해탄은 검푸른 색이었다. 왕인박사와 아지끼, 고구려의 담징, 일본국보 1호인 반가사유상이 갔던 길이며 수많은 통신사와 밀항선, 선박여행객들, 등이 오갔던 길이다. 별이 머리 위에 쏟아졌고 멀리서 가끔 불빛이 보일 뿐 바다 한가운데를 나아가는 뱃전에서의 나는 그저 아버지의 딸이었다. 6박7일 내내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아렸었다. 멀미약을 준비했는데, 다행히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늘은 캐나다에서 어학연수 중인 아들을 생각하며 이렇게 밤을 보낸다.
이번에는 아이들의 엄마다, 나는 오직 엄마다.
아들 재윤이는 여러 번 일본을 오갔다. 어느 해 겨울 방학 때는 느닷없이 일본어를 배우겠다고 교토의 일본식 전통여관에서 한 달간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다. 못 말리는 아이다.
남편도 일본을 연수차 오갔고.
네 명이 함께 왔으면 더 좋았을걸.
둘쨋날.
부슬부슬 비가 내렸으나 싫지 않았다. 폭염을 피해서 좋고 일하지 않아서 좋고...기다리던 버스에 올라 편히 달렸다. 날씨가 개었다가 다시 비가 오기도 했다. 오타루다. 겨울에는 눈 덮인 설경으로 유명하며 오르골당은 1912년에 지은 3층 창고를 개조한 것으로, 외간부터 독특한 멋을 풍긴다. 호카이도 개척시대 초기에 유행하던 구미 스타일의 붉은 벽돌과 르네상스양식의 아치형 창문이 멋을 풍긴다. 유리제품이 10만종 이상 진열돼 있으며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오르골을 보며 유리공예의 아름다움에 놀랐다. 딩동딩동 동동댕 동댕동댕...음악도 갖가지. 유리로 못 만드는 물건이 없을 정도였다. 강화도의 유리박물관에 가서 본 것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옛날 무역항이었던 작은 항구에 비가 내리고 있어서 풍경을 더했다.
유리공방은 1891년 석유램프를 제조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기타이치가라스(유리공방)가 되었다. 오르골당과 유리공방은 100여년 전에 오타루항에서 선적하거나 수입한 물건을 쌓아두는 창고였던 건물을 개조해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1세기의 역사를 그대로 둔 일본 사람들의 지혜가 여행객의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게 했다.
후키다시공원으로 와서 비속에 사진을 찍었다. 요테이산의 눈이나 비가 지층으로 스며들어 생겨난 약수가 하루 약 8만톤 가량 솟아오른다고 했다. 준비해 간 페트병으로 약수를 받아먹었다.
도야호수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사이로 전망대는 뿌연 안개로 시야가 흐려서 멀리 보는 것은 포기하고 여기서 가꾼 사쿠람부를 한 통 사서 먹었다.
유람선을 타고 돌아본 도야호수는 아주 커서 바다 같았다. 1943년 12월 우수산의 활발한 활동이 일으킨 지각변동으로 생긴 소화신산활화산은 지금도 뿌연 분연과 유황 냄새를 내뿜으며 화산 활동을 하고 있단다.
저녁에는 유모토 노보리벳츠 호텔에서 유까따를 입고 식사를 했다. 유까따 체험도 재밌다. 라벤더로 만든 때 지우는 세제로 몸을 닦고 유황온천을 했다. 여행은 즐기며 얻는 것이다.
세쨋날
아침을 먹고 급히 서둘러 노보리벳츠 지옥계곡으로 지옥을 보러 간다. 벌거숭이 산 곳곳에서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고 계란 노른자 냄새 같은 유황 냄새가 우리를 반긴다. 저 세상에는 천국과 지옥이 있다. 죄를 많이 지으면 지옥으로 떨어지고, 복을 많이 지으면 천당으로 올라간다. 알고 죄 짓는 삶은 없을 것이다. 모르고 무지해서...먹고 살기 위해서...너무 사랑해서...인간은 태초이래 권력과 사랑으로 인해 삶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권력에는 돈이 따르고, 돈 옆에는 사랑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 세상의 남자들이여, 돈과 사랑 앞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인생의 90%는 성공한 삶이다.
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오토코야마 주조공장은 에도시대부터 대대로 이어져 오는 일본 대표 명주란다. 술의 물은 ‘연명장수의 물’로 아사히카와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으며 한 번 쯤은 찾아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단다. 연어 수족관에서 연어의 일생을 생각해 본다. 연어는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바다에서 강을 거슬러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가 알을 낳고 죽는다. 낙엽도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간다. 사람도 죽으면 고향으로 간다.
아사히카와 워싱턴 호텔에 짐을 풀었다.
딸은 내일 새벽 아사히카와역에서 첫기차를 타고 카미후라노역에 있는 히노데 일출공원을 보러 가잔다. 라벤더가 유명한 꽃공원이란다. 미리 책자를 봤는데 꼭 가보고 싶단다.
마지막날
시계를 여러 번 보다가 잠을 설쳐서 비몽사몽간이었지만 딸과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여행 일정에는 없는 곳을 가이드 몰래 다녀오는 것도 좋으리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머리를 감고 딸을 깨웠다. 못 일어날 것 같은 딸은 눈을 비비며 피곤을 떨치고 준비를 했다. 짐 정리도 끝냈다.
아사히카와역에 와 보니 엊저녁에 보던 불빛과는 달리 화려하지 않은 정돈된 시골역이었다. 딸이 카드기계에 카드를 넣고 버튼을 눌러도 표가 나오지 않는다. 다른 카드를 넣고 해도 마찬가지다.
정액권만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딸이 창구에 가니 친절하게 역장이 나와서 안내를 했다.
딸은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며 왕복표를 구입했다.
5시 47분 출발(아사히카와역)
6시 46분 도착(카미후라노역)
7시 43분 출발(카미후라노역)
8시 42분 도착(아사히카와역)
이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우리는 집에 가는데 차질이 생긴다.
전철을 타고 가는 길에는 메밀밭이 펼쳐져 있고, 루드베키아, 호박꽃, 분홍토끼풀꽃 등이 피어 있었다. 일본 전철은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딱딱 시간을 맞추었다. 다시 한 번 놀라웠다.
카미후라노역에 도착해서 라벤더 공원으로 더 잘 알려진 히노데 일출공원을 걸어서 갔다.
건너다보이는 곳이지만 찾아가는 첫길은 만만하지 않았다.
걷다가 뛰다가 해서 왕복 45분 정도 걸렸다.
공원의 오르막 길에 운동 나온 할아버지 한 분이 내려가고 난 뒤 그 공원에는 딸과 내가 주인공이 되었다. 라벤더가 한물지나 지고 있었지만 향기가 좋았다. 해바라기가 대신 만발해 있었다. 15분 정도 둘러보며 사진을 찍었다. 라벤더 꽃을 조금 뜯어 코에 대니 향기가 온몸으로 들어온다. 보라색 꽃을 휴지에 싸서 핸드백에 넣었더니 가방을 열면 향기가 솔솔 번진다.
동틀 무렵의 라벤더 공원이여 안녕. 있는 힘을 다해 카미후라노역에 도착하니 5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땀에 젖었다.
7시 43분에 전철을 타고 8시 42분 아사히카와역에 내려 숙소인 워싱턴호텔 식당에서 여유롭게 아침을 먹었다. 가이드에게 히노데 공원에 다녀왔노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달싹거렸지만 참았다.
-엄마, 그런 건 나중에 집에 가서 얘기해야 매력 있는 거예요.
-응, 알았어.
조금 불안했던 시도였지만 유럽을 배낭여행으로 다녀오고, 세미나차 미국, 일본, 덴마크...등에 다녀왔으며, 일본을 두 번 여행한 딸을 믿고 나서기를 잘했다.
어른들은 감히 실행을 못하는 일을 젊은이들은 해낸다.
젊기에 그들은 용기가 있다.
일행을 일탈해서 3시간만에 다녀온 그 일은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온다.
나에겐 이제 자랑거리가 되었다. 혼자서는 엄두도 못낼 일이니.
동행한 딸이 고맙다. ‘딸과의 추억 만들기 여행’ 만점이다.
독서는 앉아서 여행을 하는 것이고,
여행은 걸어다니면서 독서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첫댓글 딸과의 짜릿한 여행 실감나게 적었구나......
나도 딸과 여행하고 싶다.....
두고두고 추억하며 깔깔 웃을수 있겠다......^^*^^
언젠가는 그 애도
입학하고 졸업하는 것처럼
내 곁을 떠나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겠지.
우리가 그렇게 했듯이...
사랑 받는 아내, 좋은 엄마 되기를 기원하며 갔다온 여행^^이란다.
내가 이 세상 사람들 중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 딸이란다.
나에게는,
때로는 친구 같기도 하고,
언니 같기도 하고,
선생님 같기도 한 연인이야^^그 애도 알아^^
딸레미와의 멋진 여행기를 잘 읽었다네.
가슴 한켠에 영원히 묻어두고 보고싶을 때마다
펼쳐볼수있길.......
그라고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니남편 아이가 ㅋㅋㅋ
여턴 모두를 사랑하는 우리 작가님의 행복을 기원하리다....
우리 딸이 첫번째고^^
두번째가 남편과 아들이란다^^
남편도 아는 사실^^
둘이서 일을 꾸미면 슬쩍 넘어가준단다^^
행복한 여행 이구나 잠시 나도 일본 여행길에 젖어 보았나 보다.
바람의 딸 한비야 선생의 걸어서 지구 세바퀴를 여행한 것에 이해가 갈만하다.
언제 배 타고 한 번 더 가고 싶다.
밤에 갑판에 서서 바다 구경하고 싶어서...
가끔 후지마루를 타고 보았던 그 바다가 생각나서...
그때 실컷 봤는데도 또 보고 싶으네...친구들과 어우러져 가는 것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