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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50 - 새로운 시작 1
S#1. 기숙사 전경
S#2. 기숙사 로비
짐을 들고 움직이는 여학생 몇 명이 보이고
지원이 마악 들어서고 있다. 양손에 짐가방을 들고 잠시 쉬었다가 이층으로 올라간다.
S#3. 지원/경진의 새 방
사방에 어지럽게 널려져있는 경진의 짐.
경진은 책상 앞에 앉아서 노트북의 화면을 확인하는 중이다. 메일 화면에는 글이 한줄 적혀져 있다.
경진 : (읽는) 다섯 마리의 고양이가 다섯 마리의 쥐를 잡는데 5분 걸린다.
그럼 100마리의 쥐를 100분동안 잡는데는 몇마리의 고양이가 필요한가. ....으음...
모니터를 노려보며 생각을 하는데 문이 열리며 짐을 들고 들어서는 지원.
지원 : 먼저 와 있었네.
경진 : 아이구 어서 오십쇼. (달려가 짐을 받아주며) 새로운 석사생활을 그대와 함께 할 민경진이라고 합니다.
지원 : (웃으며 방안을 둘러본다) 저번 방보다 좀 어두운 거 같지 않어?
경진 : (정색을 해서 손을 내밀며) 우리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고 시작할까요. 잘 부탁합니다.
지원 : (경진을 피해 짐을 안으로 들이며) 부탁은 내가 해야 될 거 같은데?
경진 : (내밀었던 손을 바지에 닦으며) 무슨 부탁?
지원 : 방 쓰는 규칙은 작년과 같아. 괜찮지?
경진 : 알았어. 걱정 마. (짐을 옮겨주며) 근데 넌 무슨 생각으루 나랑 같은 방 쓰겠다고 신청했냐?
지원 : 익숙하잖아. 새 사람 만나서 첨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 성가셔.
경진 : 그런 게 재미있는 일일 수도 있지이. 모르는 사람과 첨부터 뭔가를 시작하는 거.
지원 : (짐을 정리하기 시작하며) 그런 넌 왜 나하구 같은 방 신청했어?
경진 : 너 몰랐냐? 나에게 넌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야. 아무리 애써도 그 속을 알 수가 없다구.
지원 : (웃는)
경진 : 가만 있어봐. 자현이도 여기 3층이라고 하는 거 같든데..
지원 : 민재는 방 구했대매? 학교에서 가까운가?
경진 : 글세. (갑자기 딴 일 시작하며) 아무리 멀어봤자 대전안이겠지 뭐.
지원 : (무심한듯한 경진의 반응을 새삼 돌아보는)
S#4. 민재 방 앞 골목
진수가 골목길에 차를 대놓고 짐을 내리고있고 민재 거드는데 정태, 건물을 보고 서서.
정태 : 여기야?
민재 : (두리번거리다가) 그런거 같은데.
정태 : 그런거 같애? 니가 얻은 거 아냐?
민재 : 그렇게 됐어.
민재, 짐을 들고 앞서 들어간다.
정태, 보다가 짐 들고 따라 들어가며 혼잣말.
정태 : 그렇게 됐다고?
S#5. 민재 방
민재, 문을 열고 들어온다.
뒤따라 들어온 정태, 짐을 대충 놓고 방안을 둘러본다.
정태 : 야, 넓은데? 너 혼자 쓰기는 너무 넓은거 아니냐?
민재 :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짐이나 풀어.
정태 : 풀 데가 어딨냐. 맨땅인데.
민재, 새삼스레 둘러보니 그렇다.
민재 : 구석에다 대충 쌓아놔 그럼.
진수 : (짐 들고 들어와 얼굴 찡그려 보며) 청소부터 해야되겠는데요.
정태 : 동아리방에 청소도구들 좀 있지? 그거부터 가져와야겠다.
진수 : 어차피 계속 여기 살거면 기본적인 청소도구쯤은 있어야 되지 않나요?
정태 : 그렇네. 빗자루에 쓰레기통부터 사와야겠는데. 또 뭐가 필요하지? 냄비도 있어야되고, 숟가락. 밥그릇....
여기 가스 들어오냐? 내 버너 빌려줘?
민재 : 왜 니가 그렇게 신이 나 있냐?
정태 : 그러게. 내가 아주 신이 나네.
진수 : 어뜩하실래요? 지금 장에 다녀올까요?
민재 : 아니 됐어. 내가 천천이 살게. 진수 오늘 수고했다.
진수 : 부담없이 불러주세요. 요즘 차도 맨날 놀고 있는데요 뭐.
정태 :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며 내부를 가늠해보고 있다) 이쯤에 침대를 놓으면 될거 같고.. 저쪽이 부엌인가?
바닥에 앉을 수가 없으니까 소파도 있어야겠는데?
민재 : 소파같은 소리 그만하고 너 안 가? 석사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있잖아.
정태 : 그게 오늘이었나?
민재 : 제발 가라. 나 아주 불안해죽겠다.
정태 : 뭐가.
민재 : 어째 여기가 어떤 놈한테 점령당할 거 같은 불안감.
정태 : (흐흐 웃는데)
진수 : 대욱이랑 마이클도 잔뜩 기대하고 있어요. 이제 라면 사들고 갈데가 생겼다구요.
민재 : 내 이럴 줄 알았어. 이래서 방을 얻으면 좀 먼데다 얻으려구 했는데 말이야. 이렇게 가까운 데 얻어놓으면 어뜩하냐구.
정태 : 이 방, 니가 얻은 게 아니란 얘기야?
민재 : 그게... 그렇게 됐어.
박스를 하나 번쩍 들어 구석으로 옮긴다.
S#6. 센터 실험실
작업하던 자세의 석우, 휘익 돌아본다.
석우 : 또 니가 맞추겠다고?
경진 : (천진하게 웃으며 그 뒤에 서있다가) 네. 이거 어뜩하나요. 맨날 아침 미안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네.
석우 : 좋아. 다섯 마리의 고양이가 다섯 마리의 쥐를 잡는데 5분 걸린다.
경진 : 그럼 백마리의 쥐를 백분동안 잡으려면 고양이 몇마리가 필요하냐. 이게 문제였죠?
석우 : 몇마리야.
경진 : 다섯 마리.
석우 : 어째서.
경진 : 고양이가 쥐 한 마리만 잡고 열중쉬어 할 리가 없잖아요. 옆에 쥐가 있는 한 계속 잡겠죠. 그러니까 다섯 마리면 충분합니다. 맞죠?
석우 : 이그.. (머리를 긁으며 일어선다)
S#7. 센터 내 휴게공간 자판기 앞
석우가 커피를 한잔 뽑아 경진에게 내준다.
경진 : 잘 먹겠습니다. (한모금 맛나게 마시는)
석우 : (보다가) 맛있냐?
경진 : 네에. 엔돌핀이 팍팍 돕니다.
석우 : 민경진.
경진 : 네에.
석우 : 너 우리 랩에 들어오지 마. 절대로 들어오지 마.
경진 : 그건 너무 무리하신 부탁입니다. 전 오로지 인공위성을 내 손으로 쏘아올리기 위해서 이 학교에 있는 건데요.
석우 :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래도 안되니?
경진 : 전 존경하는 은사님이나 사랑하는 남편의 명령이 아니면 듣지 않을 생각입니다. 우후후..
웃던 경진의 얼굴이 석우의 등 뒤를 보는 순간 굳어진다.
석우, 뭔가해서 돌아본다.
거기 민재가 오다가 머뭇거리며 둘을 보고 있다.
경진 갑자기 큰 소리로 석우에게.
경진 : 예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그 일을 해놓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후다닥 뒤돌아 몇걸음 가다가 돌아오더니 들고있던 커피를 석우의 손에 쥐어주고 이번에는 아예 뛰어간다.
그동안 민재쪽은 보지도 않는다.
석우, 으잉해서 가는 경진을 보고 민재를 돌아본다.
민재, 난처한 듯 경진이 가는 것을 보고 서있다.
S#8. 센터 랩
경진, 털레털레 걸어들어와서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멍하니 앉았다가 옆에 있는 연구원에게.
경진 : 저기 있잖아요.
연구원 : (돌아본다)
경진 : 화학과에서 아직 투명인간 만드는 시약을 개발 못했대요?
연구원 : 투명인간?
경진 : 예. 투명인간이요. 그 약만 먹으면 절대로 남이 나를 볼 수 없는 거. 내 몸 자체가 투명해지는 거. 그거 아직도 못 만들었대요?
연구원 어처구니 없어 웃으며 하던 일 계속하고.
경진 시무룩해서 아예 두발을 의자에 올리고 턱을 얹는데.
민재 : (E) 경진아.
경진 : 엄마야.
깜짝 놀라 의자에 떨어질 뻔 해서 돌아본다.
민재가 입구에 서서 경진을 부르고 있다. 연구원과 눈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 숙여 인사해보이고.
경진 : (얼른 앞에 있는 아무거나 잡아 일하는 척하며) 왜. 나 바쁜데.
민재 : 잠깐이면 돼.
경진, 내키지 않아서 슬그머니 돌아보면, 민재는 벌써 몸을 돌려 나가고 있다.
S#9. 복도
경진, 정말로 내키지 않아서 고개를 떨구고 걸어온다.
기다리던 민재, 역시 어색해서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 채로.
민재 : 오늘 이사했어.
경진 : 어. 애썼네.
민재 : 고맙다는 말 하려구.
경진 : 어. 괜찮아.
민재 : (돌아본다) 너한테 빌린 보증금은 다음 주면 갚을 수 있을거 같애. 어머니가 보내주신다고 했거든.
경진 : ...(여전히 딴데 보며) 그래.
민재 : (망설이다가)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될지 모르겠는데...
경진 : 안해도 돼.
민재 : (보는)
경진 : 하지 말아줘. 암말도. 그냥... (말 돌려서) 나 지금 들어가봐야 돼. 할 일이 태산이야. (벌써 뒷걸음질치기 시작하며) 도대체 아직
랩원으로 뽑힌 것두 아닌데 말야. 얼마나 시키는 일이 많은지 아주 돌아가시겠다구. 나 없을 때 저 랩이 어떻게 유지됐나 몰라.
그럼 나 갈게.
경진, 억지로 웃어보이고는 후다닥 돌아서 가버린다.
민재, 한숨 나오는 기분으로 보고 있다.
S#10. 복도 다른 곳
헐레벌떡 뛰어온 경진이 벽에 등을 대고 기진해 선다. 우두커니 서있다가...
경진 : 민경진. 겁쟁이. 가서 그냥 얼음물에 코박고 죽어라.
으휴우우우... 한숨을 쉰다.
S#11. 이교수 연구실
자료를 보던 이교수, 들어서는 민재에게.
이교수 : 왔니? 거기 앉어.
민재, 인사하고 가르킨 의자에 앉고.
이교수 : 학교 밖에 방 구했다며?
민재 : 예.. 저 교수님.
이교수 : 응?
민재 : 그동안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이교수 : (웃는) 아니. 나야말로 별 도움이 못되서 미안했다. 어쨌든 학교로 돌아왔대니까 안심되고 좋드라.
민재 : ...죄송합니다.
이교수 : 근데 너 다음 학기 계획은 섰니?
민재 : 글세요. 석학사 연계 과정을 많이 들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 중인데요. 이 기회에 영어 공부도 좀 더 하고 싶고.
이교수 : 인공 위성 프로젝트엔 관심없니?
민재 : 인공위성이요?
이교수 : 그래 서교수 팀에서 협조요청이 왔는데. (책상을 뒤져 자료를 찾으며) 이제 거기서 핌스 프로토타입 제작에 들어간대.
거기 신호시스템하고 대용량 저장, 수신장치를 맡아줄 전자과 학생이 하나 필요하다고 하는데.. 어때 생각있어?
민재 : (당황스럽다) 인공위성..에요?
이교수 : 알에프 통신에 대해서 잘아는 학생이면 좋겠다고 하든데 그거라면 로봇 축구에서 쓰던 거니까 나도 안심하고 널 추천할 수 있고.
민재 : (난처한 듯 대답을 못하는)
이교수 : (의외여서) 왜. 생각없어? 니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민재 : 그게... 저.. 좀 더 생각을 해보면 안될까요?
이교수 : (이상해서 본다)
S#12. 석학의 집
자현이 신이 나서 얘기 중이고 옆에는 병석과 대욱. 지민.
자현 : 랩 투어 들어가는 데마다 난리다 난리. 여자 처음 본 사람들처럼 헤벌레해가지고 커피주지. 쥬스 주지. 과자도 주지.
밥도 사준대지.
대욱 : 참 그 사람들도 불쌍하네. 아니. 기계과에 아직도 추자현이 어떤 인간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나?
자현 : 내가 어떤 인간인데.
대욱 : 여자라고 하기엔 좀 미안하고 남자라고 하기엔 좀 불쌍하고..
자현 : 어쭈. 너 요즘 점점 눈에 뵈는 게 없어지는데.. (일어설까하는데)
지민 : (얼른 사이로 끼며) 근데 그거 랩 결정하는 거 말야. 랩 결정되기 전에는 정말 잘해주다가 일단 딱 들어가고 나면
그 순간, 180도 달라진다면서.
병석 : 그야 당연히 그러겠지. 드디어 새로운 머슴이 들어오는 건데.
자현 : 알어. 나도 안다고. 그래도 말이지. 내 평생 언제 이렇게 남자들한테 대접을 받아보겠냐.
지민 : 언니도 남자들한테 대접을 받는 게 좋아?
자현 : 마. 상대가 남자고 여자고 대접을 해주면 좋은거지. 그런 걸로 남녀차별하고 그럼 못써.
지민 : 무슨 얘긴지..
병석 : (자현에게) 넌 엔진랩으로 가고 싶다고 했잖아.
자현 : 참 너도 엔진랩이지?
병석 : 그래. 근데 거긴 티오가 두세명밖에 안된다든데.
자현 : 그럼 너하고 나하고 라이벌이냐?
병석 : 그렇게 될 거 같은데?
대욱 : 뭡니까? 둘이 같은 랩에 들어간다고요?
자현 : 안돼. 병석이 얜 성적이 너무 좋아. 내가 불리해. (병석에게) 너, 내가 좋게 충고하는데 다른 랩 알아봐.
병석 : 어이구. 나만 양보해주면 니가 들어갈 수 있을 거 같냐?
대욱 : 아니 왜 둘이 같은 랩에 들어가요? 둘이 그렇게 친해요?
떠들썩한데...
마이클 : (E) 어 진수형. 어서 와. 뭐 마실래?
진수가 들어서고 있고 마이클이 음료수를 배달하다가 맞고 있다.
애들 떠들썩하게 진수를 맞이하며..
대욱 : 민재형 집에 이삿짐 날라줬대매? 날 부르지.
진수 : (자리 잡으며) 짐도 별로 없었는데 뭐. 참. 니들 전에 민재선배한테 받은 책이며 물건들 있지? 그거 도로 갖고 와.
모아서 내가 한꺼번에 갖다주게.
마이클 : 에? 내가 갖고 간 책도?
진수 : 그래. 나 커피 한잔 줘.
지민 : 집 좋아? 깨끗해? 넓어?
진수 : 넓기는 하더라. 근데..
자현 : 근데.
진수 : 넓기만 해. 안에 아무것도 없고. 아주 썰렁하다고.
미순 : (끼어들며) 아무 것도 없겠지 그럼. 뭐뭐 필요하디? 우리 가게서 남는 거 좀 챙겨주랴?
지민 : 그래주면 고맙죠. 잘됐다. 우리 아주 신혼방을 차려주자.
미순 : 예끼. 공부하는 학생방을 놓고 신혼방이 뭐야.
마이클 : 사장누나. 우리 저번에 가게 수리하면서 옛날 의자들 창고에 넣어놓은 거. 그거 민재형 줘요.
자현 : 밥그릇하고 숫갈이 더 중요하지. 여기 그런 거 많죠?
진영 : (끼어들며) 우리 냄비도 많잖아요. 새로 세트 사고 나서 잘 안쓰는 거.
대욱 : (벌떡 일어서며) 어딨습니까? 말난 김에 제가 챙겨놓겠슴다.
미순 : 스토옵.. 아니 얘들이 지금 내 가게를 뭘루 보고 이러는거야?
지민 : 뭘루 보긴요. 산타누나의 보물창고로 보는거죠.
미순 : 뭐이 어째.
아이들 저마다 의자는 몇 개면 되냐. 여기 남는 책상은 없지? 컵도 있어야 돼. 우리꺼까지 많이.. 언니 옷장은 없어요? 등등
정신없이 떠들어댄다.
S#13. 지원 경진의 방 / 밤
경진은 벽에 포스터를 붙이느라 바쁘고..
지원은 책꽂이에 책들을 정리하고 있고..
지원 : 민재 방에 아무것도 없다고 애들이 물건 모으러 다니구 있어.
경진 : 그래?
지원 : 남는 옷장, 싸게 파는 냉장고, 방석까지 구한대.
경진 : (무심한 듯) 중고품 가게같이 되겠네.
지원 : (돌아보며) 내일 다 같이 가자든데.. 넌 안갈래?
경진 : 내일? 내일이라.. 아.. 아마 안될걸. 내가 요즘 무지 바쁘거든.
지원 : (이상해서 보다가) 랩투어는 다 했니?
경진 : (화제가 바뀌자 안심되서) 뭐 할것두 없어. 나야 무조건 위성센터로 들어갈거니까.
지원 : 그렇게 자신있어?
경진 : 야야 내가 지난 반년동안 거기다 들인 공이 얼만데. 자기들도 사람이면 날 내칠 수는 없지. 지원이 넌 박교수님 랩에 들어갈거지?
지원 : 글세..
경진 : (돌아보는) 글세라니. 글루 안갈거야?
지원 : 생각중이야.
경진 : 에? 남희언니는 니가 들어올 거라구 굳게 믿고 있든데. 너 계속 거기서 연구했잖아.
지원 : 전산과는 교수랑 학생이 1지망부터 주욱 써서 프로그램에 넣고 돌려. 원래부터 그렇게 해왔대.
경진 : 그거야 너도 1지망으로 쓰고, 박교수님도 1지망으로 너 쓰고 그럼 끝나는 거 아냐?
지원 : 생각 중이라고 했잖아.
경진 : (에잉? 해서 보는데)
지원 : (책을 챙기며) 너 민재하고 무슨 일 있니?
경진 : (움찔) 내가? 민재하고? 왜?
지원 : 너 민재 얘기만 나오면 피하잖아.
경진 : 내가? 민재 얘기만 나오면 그랬어?
지원 : .... (보다가 좀 웃는) 말하기 싫으면 관두고.
지원 하던 일 계속한다. 경진 머쓱해져서 서있다.
S#14. 민재의 방 / 밤
아직도 썰렁한 내부. 민재의 짐들은 한구석에 얌전히 쌓여져 있고.
민재 혼자 바닥을 대걸레질 하고 있다. 걸레질을 하다가 바닥에 뭔가 안지워지는지 쭈그려 앉아서 손으로 긁어보는데.
정태 : (E) 이쪽입니다. 잠시만요.
민재 본다. 문이 열리며 정태가 인부 하나와 침대를 들고 들어오고 있다.
민재 놀라서 일어선다.
정태 : 어, 있었구나. 문 잠겨 있으면 어뜩하나 했다 야. (인부에게) 저 안쪽으로 놓을건데요.
인부와 정태는 낑낑대며 침대를 한쪽에 붙여놓는다.
정태 : (민재에게) 여기 놓는게 낫겠지?
민재 : 웬 침대야?
정태 : 기다려. 아직 남았어.
인부와 함께 부지런히 나간다. 민재, 놓여진 침대로 가서 들여다본다.
침대의 뼈대만 들어왔는데, 중고품으로 보이며,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민재, 입구로 나가려다가 어어해서 뒷걸음질친다.
정태와 인부가 또 하나의 침대를 들고 들어오고 있다.
민재 : 건 또 무슨 침대야.
정태 : 침대의 이층부분.
정태는 인부와 함께 침대 옆에 들고온 뼈대를 놓는다.
정태 : 너도 좀 나와. 매트리스도 들여와야 되니까.
인부 먼저 나가고 정태 따라 나가려는데 민재 정태를 잡더니.
민재 : 뭐야.
정태 : 뭐가 뭐야.
민재 : 침대가 왜 두 개냐고.
정태 : 두 개 아니야. 하나지. 여기 두 개나 들여놓으면 좁아지잖아. 그래서 이건 이층침대 하나라고.
중고 가게에서 아주 싸게 샀어. 튼튼하게 생겼드라구.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민재를 떼어놓고 부지런히 밖으로 나간다.
민재, 황당해서 보다가 쫓아나간다.
민재 : 야. 김정태. 야임마.
S#15. 이교수 랩 / 밤
만수가 중앙에 우뚝 서서 발표 연습중이다. 중희가 웃으며 보고 있는 중이고.
만수 : 안녕하세요. 저는 지능제어 연구실 석사과정의 정만숩니다. 우리 지능제어실의 연구목표는 "computational intelligence를 통한
지능제어 기법의 연구와 이를 이용한 intelligent machine의 구현"입니다. 쉽게 설명을 드리면 지능을 구현하는데 필요한
이론적인 연구와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분야를 모두 다룬다는 의미입니다. 뭔가 있어 보이죠? 하하... 정말 뭔가 있습니다.
명환이 들어오다 보고..
명환 : 뭐야. 내일 랩 오리엔테이션 발표, 만수가 하기로 된거야?
중희 : 하도 지가 하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교수님께서 허락하셨어요.
명환 : 어이그.. 정만수. 너 우리 랩 망신시키면 알아서 해.
만수 : 아니 왜 자꾸 자라나는 후배 기를 죽이고 그러십니까. 솔직히 우리 랩에서 저만큼 인기있는 사람이 또 있습니까? 사실 이번에
들어올 신입들.. 정만수하면 다 압니다. 올라가그래이.. 이거 해를 넘기면서 카이스트의 유행어가 되있는 거 모르십니까?
명환 : (자리에 앉아 작업 준비하며) 됐어됐어. 안그래도 우리 랩, 인기 많어. 니가 쇼를 안해도 우수한 애들 골라오게 되있다구.
만수 : 하이구. 내가 무슨 우수한 놈 땜에 이러는 줄 아세요. 저기 중희선배같은 후배라면 암만 우수해도 사양입니다. 노땡큐라구요.
중희 : 너 요즘 나한테 덜 맞고 있지?
만수 : 아유. 선배는 그저 가만 계세요. 네?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리땁고 상냥하고 나긋나긋한 여학생 후배를 델구 올테니까.
중희 : 여학생 후배?
만수 : 바로 그겁니다. 여! 여! 여!
만수, 생각만 해도 너무 좋다.
S#16. 센터 외경 / 밤
S#17. 센터 랩
서교수가 혼자 우울하게 모니터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석우, 칫솔을 물고 들어오다가 서교수를 보고.
석우 : 아직 퇴근 안하셨어요?
서교수 : 어. 오늘 밤 지킬건가?
석우 : 예. (잘 만났다는 듯 칫솔을 주머니에 꽂으며 다가와) 스팩트로그래프 쪽에선 각 부품에 대한 톨로런스 스터디는 마쳤구요.
종합적인 분석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서교수 : 아 그래. (별로 말하고 싶지가 않다)
석우 : 전자부 쪽은 DSP를 포함한 기본설계는 다 된 상태구요. 알테라(ALTERA) 칩의 내부 설계도 거의 다 되갑니다.
지금 시뮬레이션 중에 있는데요.
서교수 : 그래. (자리를 피하고 싶어서 문쪽으로 가지만)
석우 : (졸졸 따르며) 이제 티스트피스 제작에 들어가야 되거든요. 그 전자과랑 전산과에서 지원온다는 학생들은 어떻게 되가고 있죠?
서교수 : 아.. 그게 전자과는 이희정 교수께서 한명 추천해주신다고 했어. 전산과 학생은 내일 올거야.
석우 : 그으래요? 그럼 저 좀 만나게 해주십쇼. 첨부터 군기를 꽉 잡아둬야 되거든요. 그게.
서교수 : (도망치려던 것 단념하고 석우를 향해 선다) 사실은 말이야. 오늘, 그게 결정이 났어.
석우 : (정지해서 보는)
서교수 : 공문이 내려왔다구. 그래서 현재로선 우리별 4호 프로젝트.. 이거..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석우 : ... (멍해서 보다가 억지로 웃더니) 공문...이라면 얼마나 높은데서 내려온건데요?
서교수 : 아주 높은 곳. 결정된 거라고 봐야돼.
석우 : 어.. 그럴 수는 없는데요.
서교수 :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구. 긍정적인 방향으로.
서교수, 우울해서 입구 쪽으로 걸어간다.
석우, 벙해서 보다가 급히 그 뒤를 따르며.
석우 : 그럼요.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는 건 자신있습니다. 지난 십년동안 단련된 건데요 뭐.
긍정적으로 해결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서교수 입구에 멈췄다가 차마 돌아보지 못하고 그냥 나간다.
석우, 끝까지 웃고 있다가 웃음기가 사라진다. 잠시 할 일을 잃은 사람처럼 머뭇거리다가 센터의 기기들을 돌아본다. 거기 각 기기들..
S#18. 석사 기숙사 앞 / 이른 아침
S#19. 지원/경진의 방 / 아침
경진이 하품을 하며 잠이 덜 깬 얼굴로 노트북의 메일을 확인하고 있다.
지원이 머리를 빗으며 등교 준비를 하고 있다가..
지원 : 무슨 메일인데 그렇게 아침마다 챙기는거야?
경진 : 챙겨야지 그럼. 내 모닝커피가 달려있는데.
지원 : 커피?
경진 : 어.. (계속 마우스로 클릭해서 찾아 들어가며) 센터에 최고참 선배가 한명 있는데 말야. 김석우라고 86학번인가 그래.
인공위성의 초창기 멤버거든 이 선배가.
지원 : 그 선배가 너한테 메일을 보낸다구? 아침마다?
경진 : 나한테만 아니구 센터 연구원들한테는 다 보내는거야. 아침마다 퀴즈 하나씩. 그리고 그걸 맞추는 사람에게는 아침 커피 한잔을
사준다 이거야.
지원 : ... 아무도 못 맞추면.
경진 : 그럼 연구소 사람들이 당번제로 이 선배의 점심을 사줘야 되는거지. 내가 왜 연구소에서 그렇게 귀염을 받고 있는 줄 아냐.
바로 아침마다 석우선배를 케이오 시키는 전사라서 그렇거든. 전사 민경진.
지원 : (어처구니 없어 웃고.. 다른 등교 준비)
경진 : 근데 이게 뭐야. (모니터에 코를 박고 다시 확인한다)
지원 : (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뭐가 또.
경진 : 메일이 없어. 이게 웬 일이지? 이런 날이 없었는데.
S#20. 민재의 방
아직 썰렁한 내부. 천장에 붙은 작은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오고.
주욱 팬하면 한쪽에 이층침대가 완성이 되어 덜렁 놓여있고.
침대 아래칸에서 자던 민재가 부시시 잠이 깬다. 눈을 비비며 비칠비칠 걸어나오다가 위를 본다.
침대 위에서는 정태가 잠에 들어있다.
민재 : 김정태.
정태 : ....
민재 : (이층 난간을 펑펑 치며) 야 일어나.
정태 : 에이참.. (돌아눕는)
민재 : 너 정말 기숙사 안들어갈거야?
정태 : 한번은 들어가야지.
민재 : 한번은?
정태 : 짐 싸갖고 나와야 되니까.
민재 : (잠이 번쩍 깬다. 얼굴을 부비고) 어이 일어나. (거칠게 흔들어 일으키며) 일어나서 나하고 말 좀 하자구.
정태 : (할 수 없이 일어나 앉는데 눈은 감겨 있다)
민재 : 짐을 싸갖고 나오다니. 누구 짐을 왜. 어디루.
정태 : 아 자식. 진짜 쫀쫀하게 구네. 내가 월세 반은 낼게.
민재 : (기가 차다) 너 정말 나오겠다는거야? 여기루?
정태 : 그래. (잠이 덜 깨서 떨어질 뻔해서 아래로 내려오며) 이런데 놔두고 내가 왜 기숙사에서 지내냐.
민재 : 안돼.
정태 : 좀 봐주라.
민재 : 글세 안돼. 너 일루 들어오면 보나마나 애들 다 몰려와서 지네 안방으로 삼을 게 뻔해. 안. 돼.
정태 : 그건 그래. (히히 웃으며 옆에 걸려있는 민재의 수건을 하나 들고 입구로 가며) 아마 제일 먼저 민경진이 와서 진을 치겠지.
그러고보니 어째 경진이가 조용하네. 벌써 와서 한바탕하구 갔어야 되는 거 아냐.
민재 : (조용해졌다)
정태 : (문을 열려다 돌아서더니) 근데 세수는 어디서 하는거야?
S#21. 캠퍼스 외경 / 아침
그 위로 들리는 박교수의 목소리.
박교수 : (E) 무슨 소리야. 그게.
S#22. 박교수 연구실
박교수, 테이블을 탕탕 치며 말도 안된다는 듯이..
박교수 : 우리별 4호를 발사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니. 그게 무슨 말이 되는 말이냐고.
그 앞에 앉아있는 서교수. 피곤한 듯이 얼굴을 부비며..
서교수 : 글세. 일이 그렇게 되가고 있다고.
박교수 : 그니까 항공우주 연구소랑 여기 인공위성센터를 통합해라. 이런 통보가 내려왔다는거잖아.
서교수 : 그래.
박교수 : 그건 벌써 옛날부터 심심하면 나오던 얘기 아닌가? 우리나라에 인공위성을 개발하는 데가 둘이나 있을 필요없다.
거기랑 여기랑 똑같은 위성을 연구하고 있으니까.
서교수 : 똑같은 연구는 아니지. 우리야 소형 과학위성을 만드는 거고 그쪽에서 하는 건 대형 통신위성이고.
박교수 : 하여간에. 여기는 자체 위성을 제작해 본 경험이 있고 거기는 무궁화니 아리랑이니 대형 통신 위성을 쏘아올린 경험이 있으니까
둘이 합하면 잘될거다. 좋은 얘기네. 합해서 우리별 4호 만들면 되잖아.
한쪽에서는 남희가 자기 일을 하면서 힐끗거리고 둘의 대화에 신경쓰고 있다.
서교수 : 그게 맘대로 되냐고. 통합을 하게 되면 우리 센터의 연구원 50명 중에서 40명을 데리고 가고,
여긴 우리별 1,2,3호를 운영할 열명만 남겨둔대는 거야. 그 인원으로 4호를 어떻게 만들어.
박교수 : (어리버리) 아니 그럼 거기 통합되어 들어가서 같이 만드는 게 아니고?
서교수 : 으유.. (일어나며 ) 나 갈래. 안그래도 머리 복잡해 죽겠는데.
박교수 : 아이. 하나만 더 물어보고.
서교수 : 나 가봐야 돼.
박교수 : 봉급은 어때.
서교수 : ...뭐?
박교수 : 거기에 들어가게 되면 어쨌든 거긴 버젓한 연구손데.. 여기보다야 봉급을 많이 주지 않을까?
서교수 : ...많이 주겠지. 우리 연구원들이 받는 거야 봉급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니까.
박교수 : 그럼 연구원들의 반응은 어때. 돈 많이 주는데서 오라는데 좋아하는 거 아냐?
서교수, 박교수를 보는 얼굴에서..
석우 : (E) 솔직한 생각들을 말해봐.
S#23. 센터 회의실
석우를 비롯한 연구원들 이십여명이 우루루 모여앉아있다.
석우는 앞의 책상에 걸터앉다시피 해서 회의를 이끌어가고 있고.
석우 : 여기까지만 해도 우리 소장님이랑 학교측에서 애를 쓴거라고 봐. 통폐합을 하면서 우리 연구원들 반 이상 잘라버릴 수도 있었어.
다 잘라버렸어도 할 말 없었고. 그런데 40명을 다 고용해 주겠다는 거야. 그리고 아마 연봉은 지금보다 한참 많을거고.
연구원1 : 우리 중에 돈 때문에 여기 센터에 붙어있는 사람이 어딨어요.
연구원2 : 솔직히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벌써 나갔죠.
연구원1 : (2를 보며) 나가면 돈 벌데 있었어?
연구원2 : 그야 나가봤어야 알죠.
연구원들 웃는 분위기. 석우도 따라 웃고 있긴 한데 답답하다.
S#24. 센터 내 복도
경진이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다. 시간에 늦은 것.
S#25. 센터 랩
경진 벌컥 문을 열고 들어서며 무조건 꾸벅 인사하며.
경진 : 늦었슴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보면 내부에는 아무도 없다.
경진 : 아무도 없잖아.
S#26. 센터 내 다른 방
이곳 역시 내부가 텅 비어있다. 입구 쪽, 경진이 고개를 들이밀고 둘러보고 있다.
경진 : 도대체 여기 지구인들이 다 어디 갔지? 그새 외계인이 왔다갔나. 실험용으로 다 끌구 간 거 아냐이거.
S#27. 회의실 앞 복도
경진 두리번거리며 오다 보면, 회의실 앞 복도에 서너명의 연구원들이 모여 서서 수근거리고 있다. (좀 젊은.. 석박사 과정)
경진 : 에구 여기 남아있는 인간이 있었네. (반가이 다가가며) 아니 어째 랩마다 텅텅 비었어요. 여기서 뭐해요?
남1 : 지금 다 모여서 회의중이야.
경진 : 회의중? 무슨 회의중이요?
남1 : 못 들었어? 우리 인공위성 센터가 문을 닫을지도 모른대.
경진 : (놀라서 보는)
남2 : (자기들끼리 하던 얘기인 듯) 우리 논문 쓰던 건 어떻게 되는 거야. 말짱 헛수고가 되는 거 아냐?
S#28. 센터 로비
석우가 찡그린 얼굴로 나오다 보면 로비의 의자에서 기다리던 경진이 석우를 보고 얼른 다가오며.
경진 : 안녕하세요.
석우 : 안녕 못해. (지나치려는데)
경진 : 오늘 아침 퀴즈는 어떻게 된거에요. 내 아침 커피는 어뜩하고.
석우 : (한심하다) 미안하게 됐다. 내가 퀴즈 낼 정신이 아냐. 지금.
경진 : 진짜에요? 우리 위성센터 없어지는 거?
석우 : 누가 그래.
경진 : 다 알든데?
석우 : 안 없어져. 못 없어져. 오늘 그렇게 회의 결과 났어.
경진 : 에.. 여기서 연구원끼리 회의해서 결과내면 저 위에서 오냐 그러니? 그럼 그렇게 해. 그래요?
석우 : (흘겨보는)
경진 : (좀 심각해지며) 정말 괜찮은거에요?
석우 : .... 경진아.
경진 : 네.
석우 : 동전 있니?
경진 : (의심스러워 보며 백원짜리 하나를 꺼내 준다)
석우 진지하게 그 동전을 두 손 사이에 넣고 눈을 감고 뭔가 주문을 왼다. 경진, 따라서 진지하게 본다.
석우 동전을 높이 올렸다가 손등에 받는다.
석우 : 앞? 뒤?
경진 : ... 앞이요.
석우, 조심스레 손을 떼어본다. 경진, 조심스레 들여다본다.
동전은 글자면으로 되어있다.
경진 : 이건.. 뒷면인데요.
석우 : 그래 바로 이거야. 동전 뒤가 나오면 다아 잘되게 되있어.
경진 : 에?
석우 : 그니까 걱정 마. 잘될거야.
동전을 경진에게 건네주더니 문쪽으로 간다.
경진, 가는 석우를 보다가 에구..해서 후다닥 돌아선다.
석우가 마악 문을 여는 유리문 밖에 민재가 기다리고 서있었다.
// 로비 코너 뒤.
경진 재빨리 코너를 돌아와 벽에 고개를 박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데.
민재 : (E) 너 도대체 언제까지 그럴거야?
경진, 으이그...해서 할수없이 돌아선다. 민재가 바로 뒤에서 보고 있다.
경진 : 안녕. 어째 요즘 너 여기서 자주 본다.
민재 : 아무래도 이런 식으론 안되겠어.
경진 : 뭐가.
민재 : 나 어쩌면 여기 센터의 랩으로 오게 될지 몰라.
경진 : ....니가? 니가 왜.
민재 : 오게 되면 서교수님 팀인데. 거긴 니가 있는데잖아.
경진 : 지금은.. 그렇지.
민재 : 너 석사과정 랩도 일루 정할거잖아.
경진 : 뭐.. 그럴려구 하지.
민재 : 근데 너 이렇게 나를 불편해하면서 나하구 같은 랩에 있을 수 있겠어?
경진 : (말 못하고 보는)
민재 : 너한테 먼저 물어보러 왔어. 내가 불편하면 말해. 그럼 교수님께는 못한다고 말씀드리면 되니까.
경진 : 내가.. 내가 왜 널 불편해해.
민재 : (보는)
경진 : 아냐. 그런 게 아니구.. (말을 잇지 못하다가) 사실은 그래. (시무룩) 알았어. 앞으로 안 불편해하도록 노력 할게. 그럼 되지?
민재 : ...경진아.
경진 : 노력한다구. 난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그니까 내 신경 쓸 거 없어. ..아이구 배고파.
아침을 못 먹었드니 세상이 잘 안보인다. 그럼.. 나중에 봐.
얼른 자리를 피하는데..
민재 : 같이 갈까? 사줄게.
경진 : (저도 모르게 두손을 저어대며) 아냐아냐. 나 식권 사놓은 거 있어. 너 가서 볼일 봐.
경진, 점점 걸음이 빨라지며 간다.
민재 우두커니 보고 서있다. 답답하다.
S#29. 박교수 랩
진수가 돌아본다.
진수 : 음성인식랩이요?
남희와 지원, 마이클이 있는 상태.
남희도 놀라서 지원을 본다.
지원 : 응. 그쪽을 1지망으로 하려구.
마이클 : 그런 게 어딨어. 누나. 이제까지 여기서 우리랑 같이 있었잖아.
지원 : 그거야 졸업연구를 한거고. 랩을 결정하는 건 평생이 걸린 문젠데 신중히 생각해야지.
남희 : 너.. (말이 잘 안나오며) 여기루 안 올거야? 너 인공지능에 관심 있어했잖아.
지원 : 관심이나 흥미보다 더 중요한 게 전망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솔직히 여긴 신설랩인데다가 사회에 나간 선배들도 없고.
박교수님 방식은 저로선 따라가기가 힘들어요.
진수 : 음성인식랩이면.. 전망이야 좋죠. 그래서 거기 경쟁률도 치열하다고 하든데요.
지원 : 각오하고 있어.
남희 : (여전히 못 미더워서) 지원이 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그래도 너라면 우리 랩의 일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교수님도 너를 먼저 생각하고 계시든데. 어머. 어째 배신감 든다..
마이클 : 나도 배신감. 지원이누나. 비젼보다 더 좋은 건 사람이야. 좋은 사람들하고 있는 게 제일 행복한 거야.
여기 봐. 좋은 마이클, 좋은 남희누나. 좋은 싸부님.
지원 : (웃는) 알어. 아는데.. (남희를 보며) 미리 말씀드리려구요. 그러니까 저 말고 다른 좋은 학생을 쓰세요.
남희 : 그래. 그렇지만.. 그래도 섭섭하네..
진수 : (그사이 컴의 화면에 음성인식랩의 홈페이지를 뽑아놓고) 여기 음성인식랩 불러냈는데요. 야아. 여기 프로젝트들이 만만치 않네요.
지원 : (진수의 옆으로 가서 같이 본다)
진수 : 보세요. 정부 과제로 하는 프로젝트들도 여러개 있어요.
지원 : 산업체 과제는 어떤 게 있어?
진수 : 여기 출신 선배들을 좀 알아보는 게 어때요. 그것도 중요한데..
지원과 진수가 열심히 모니터를 보고 있는 동안.
마이클, 남희를 돌아본다. 남희 시무룩해서 지원네를 보고 있다.
S#30. 이교수 랩 / 낮
퍼스널 로봇의 도면과 헤드부(카메라가 2개 달린 구조물)을 놓고 중희, 명환, 만수가 토론을 벌이고 있다.
명환 : (헤드부를 보며) 지금 이 구조의 문제는 시야각이 너무 좁게 나온다는 점하고 로봇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초기각도가 얼마인지
모른다는 거야.
중희 : 일단 시야각 문제는 두 카메라 사이를 늘리고 팬, 틸트의 구조를 조금만 손보면 될 거 같은데...
초기각도를 알아내는 게 문제에요. 절대 좌표 엔코더는 비싸고...
명환 : 너무 커서 사용할 수도 없지.
만수 : 아니 이 구조가 왜 초기각도를 몰라요. 처음 보이는 물체하고 주위를 휘익 한번 둘러보면 알 수 있는 거 아녜요.
명환 : 너 또 지난번 프로젝트 미팅 때 졸았지.
만수 : 제가 언제요.
중희 : 아닌데. 내가 보니까 아주 진지하게 듣던데요.
명환 : 그럼 너 정말로 머리가 나쁜 거구나.
만수 : 우씨...
뭔가 한마디 하려는데, 노크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면, 랩투어를 하려는 학생들 세명. 하나는 여학생이다.
남1 : 저희 랩투어 왔는데요.
학생들 분분이 인사하는데.
만수 : 오우 웰컴투 인텔리젼스 콘트롤 랩. 으하하하.. 아 뭘 알고 싶습니까? 제가 여기 실세 정만수라고 하는 선밴데..
명환 : (만수를 뒤로 끌어내며 작은 소리로) 니가 뭐 아는 게 있다구 설명을 해. 괜찮은 애들 다 쫓아내지 말고 절루 가 있어.
중희 : 어서들 와요. 저번에 실험실 소개할 때 수행 프로젝트들에 대해선 다 들었죠?
여 : 예. (시선이 헤드에 가있다) 저것도 퍼스널 로봇의 일부인가요?
만수 : (재빨리 여학생의 옆으로 가 서며) 이게 퍼스널 로봇의 눈에 해당되는 부분이죠. 보시는 거 처럼 카메라가 두 대 달려있구요.
상하좌우로 움직일 수 있는 구조로 되있어요. 더 물어보고 싶은 거 있어요?
남2 : 저..인터넷 기반 퍼스널 로봇은 어디에 쓸 수 있습니까?
만수 : (여학생만 살피느라 정신이 없다가) 네? 뭘 어디에 쓰냐고요?
명환 : (할수없이 나서며) 아 그건 가정 기업 전시관 상점 등에서 아주 폭넓게 사용될 수 있어요. 텔리 프리즌스, 즉 원격 존재 기능을
구현 할 수 있는 겁니다. 노약자나 유아를 실시간 모니터링 할 수 있고, 도난방지.. 원격방문.. 원격 전시물 관람 등등
아주 다양한 기능을 할 수 있어요.
명환이 설명하는 도중에 만수는 그저 여학생의 시선을 끌기 위해 애쓰고 있다.
S#31. 이교수 연구실
이교수와 정태 앉아있다.
이교수 : 너만큼 우리 랩 사정 알고있는 애도 없을테지만 좀 먼저 알았다고 해서 들어올 수 있는 건 아냐.
정태 : 예.
이교수 : 그래, 그럼 정식으로 면담을 한번 해볼까? (성적표 보며) 성적이 나쁜건 아니고...왜 우리랩에 들어올려고 생각한거지?
그냥 잘 알기 때문이니?
정태 : 로봇에 관심있습니다.
이교수 : 너야 관심있는게 로봇 뿐만이 아니잖아. 시에도 관심 있고, 여행에도 관심 있고. 인생문제로 고민도 많고.
연구보다 중요한 게 너무 많지 않니?
정태 : (말이 막혀있는)
이교수 : 석사과정이 되면 학부때하고는 달라. 진짜연구를 시작해야 되는거라구. 연구는 그냥 시간 남아서, 관심만 있어서 하는게 아니야.
그 분야에 미쳐주지 않으면 곤란해. 그게 제일 우선순위가 되어줘야 한다구. 그것도 평생을. 그럴 수 있겠어?
정태 : ...
이교수 : 대답할 거 없어?
정태 : ... 그건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요. 앞으로의 평생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교수 : (슬며시 웃고) 너 말고도 몇십명의 신입생들이 있어.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에 입학했다면 나름대로 다 재주가 있고 능력있는
학생들일거라고 봐.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그중에서 두세명을 고르는거야. 니가 물건이라고 생각하고 널 한번 팔아봐.
정태 : ... 전 결함이 좀 많은 물건입니다.
이교수 : (의외라서 보는)
정태 : 테스트가 아직 덜 끝났습니다. 그래서 오작동이 많고 프로그램에 버그도 자주 발생합니다. 그렇지만.. (잠시..)
이교수 : 그렇지만?
정태 : 옆에 다른 장치들과 호환만 잘되면 앞으로 개선가능성이 많습니다. 무한한 개발 가능성이 있다고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교수 : ....옆의 다른 장치들은 뭘 말하는 거야.
정태 : 이를테면 이민재같은 동료를 말하는 건데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이번에 교수님 랩에서 석사신입을
한명만 적게 뽑으면 안될까요?
이교수 : 뭐?
정태 : 한학기만 랩원이 하나 모자란 상태에서 지낼 수는 없을까요. 제가 두사람 몫을 충분히 하겠습니다.
이교수 : ....그래서 한학기 뒤에 민재를 받아주자는 얘기니?
정태 : 그렇습니다.
이교수 : (말없이 보다가) 정태야.
정태 : 주제넘은 부탁을 드리는 거 알고 있습니다.
이교수 : 세상에는 OX 문제만 있는 게 아니야.
정태 : ..예?
이교수 : 맞는 게 아니면 틀리고, 이게 아니면 저거고 그런식으로만 세상을 보면 많은 걸 놓치게 돼.
민재 앞에는 지금 열두개도 넘는 길이 있어. 그 중에 어떤게 정답인지는 아무도 몰라.
정태 : 민재는 로봇을 정말 좋아합니다. 아주 미쳐서 평생을 보낼 수 있는 녀석입니다.
이교수 : 자기가 택한 답을 정답으로 만드는 건 그 자신이야. 민재의 정답은 너나 내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고.
정태, 더 말을 못하고 보기만 한다.
S#32. 처장실
처장, 난처해서 손에 들린 진정서 뭉치를 보고 있다.
그 앞의 서교수와 박교수.
처장 : 그럼 위성센터의 연구원들이 모두 서명한겁니까? 이 진정서에?
서교수 : 그런 모양인데요.
박교수 : 하아..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거 같지 않으세요? 여기 서명한 연구원들이라면 지금 세계 시장 어디 내놔도 남부러울 게 없는
박사들이에요. 이런 친구들이 돈도 싫고, 안정된 조직도 싫다. 그저 하던 연구만 계속하게 해달라.. 이러구 서명을 한거래요.
처장 : 그래서.. 통합을 강행하게 되면 연구원들이 모두 나가버리겠다.. 이 얘기에요?
서교수 :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나봐요. 저로서도 뭐라고 말려야될지..
박교수 : 비장하네. 아주 처절해.
처장 : 허어.. 어쨌든 우리별 4호는 만들어야 됩니다. 그건 이미 예산도 받아놓은 거고, 그게 여기서 중단되면 과기부도 곤란해져요.
서교수 : 사실..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별 4호를 만든다는 게 의미가 없어지는 거죠.
처장 : 의미가 없다니요.
서교수 : 우리별 4호는 그냥 4호가 아니구요. 5호 6호 7호를 만들기 위한 과정 중에 4호거든요. 어차피 4호만 발사하고 중단될 거라면
4호를 제작하는 건 의미가 없다..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죠.
박교수 : 그건 그러네요. (처장에게) 뭔가 방법을 좀 생각해보세요. 이러다가 정말 다 뿔뿔이 흩어지고 말겠어요.
그럼 지난 10년동안 쌓아온 위성기술이 다 없어지는 거라구요. (서교수에게) 그렇지? 그런 얘기지?
처장 : (좀 언짢아져 있다) 이거 참. 아무튼 안됩니다. 아시겠어요? 연구원들 하나 빠짐없이 일단 센터 안에 붙잡아두세요.
원장님하고 우리도 방법을 강구해볼테니까 시간을 좀 벌어보시라구요.
S#33. 도서관 외경 / 밤
S#34. 도서관 내부
주욱 원서의 서가가 있는 곳.
민재가 그 중에 서서 책들을 찾아보고 있다. 하나 뽑아내어 보는데 위성에 관련된 책이다.
S#35. 도서관 로비. 혹은 휴게공간
서너권의 책을 안은 민재가 걸어오다가 돌아보는 곳.
사복 차림의 백곰과 석우가 퍼질러 앉아서 떠들고 있다.
석우 : 60만원. 예? 한달에 단돈 60만원을 받으면서도 우린 암말 안했어요. 왜?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니까.
백곰 : 알어요. 안다고. (하다가 민재를 발견하고) 어이 이민재. 일루와. 일루와서 우리하고 같이 한잔 하자고.
민재 : (이상해서 다가오며) 한잔..이라구요?
하며 보면, 백곰과 석우 앞에는 여러 종류의 음료수 캔들이 즐비하다.
석우 : (민재를 보고) 어이. 경진이 친구 아닌가? 혹시 경진이한테 돈 빌려줬어요? 경진이가 거기만 보면 도망치든데.
민재 : 안녕하세요. 전자과 이민재라고 합니다.
백곰 : 앉어 앉어. (민재를 잡아 끌어앉히며 음료수 하나를 건네준다) 앉아서 마시고 취하자고. 오늘은 취할 수 밖에 없는 밤. 크아..
민재 : (어리둥절해서 음료수를 받아들며) 이거 마시고 취해요?
백곰 : 어이 학내에서 음주는 안되니까 기분만 취하자 이거야. (석우에게) 아까 어디까지 얘기하고 있었죠?
석우 : 예 그게 그러니까 우리 연구원들은 한달에 60만원 받으면서도 즐겁게.. 행복하게.. 미쳐서.. 연구를 해왔다. 여기까지 했죠 아마.
백곰 : 바로 그겁니다. 그게 바로 진짜배기 인생이라는 거에요. 가난을 모르는 자. 인생을 논하지 말라. 크아.. (마시는)
석우 : 그게 10년 세월이에요. 소위 선진국이란데 가서..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 거지 떨거지 취급을 받으면서... 우리 기술 배우고
연구해왔어요. 그리고 내 청춘 다 바쳐서 이것만 해왔어요. 과학위성 우리별 1호 2호 3호.
백곰 : 그거 아십니까? 인간이 내 청춘을 바칠 무엇을 찾는다는 거. 이건 최상의 행복이라는 거. 크아..
석우 : 지금 내 친구들이요. 여기저기 기업에서 연구팀장. 연구실장. 벤처 사장. 다 하고 있어요. 나 오라는데도 많았어요.
근데 나 안갔어요. 왜? 우리별을 만들어야 되니까.
민재, 뭔 얘긴가 따라가지 못하며 보고 있다.
// 시간경과.
테이블의 음료수 캔들이 더 많아져 있고.
백곰과 석우는 완전히 취한 모습이 되서... 캔을 부딪히며 건배를 하고 있다.
백곰 : 원샷. 원샷.
석우 : 오케이. 원샷. 콜.
민재, 둘이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시는 걸 보고 있다가.
민재 : 근데.. 그 정부에서 하라는대로 다른 연구소하고 통합을 하게 되도.. 그래도 위성 연구는 계속할 수 있는 거잖아요?
석우 : (거나하게 취한 모습으로) 할수 있겠지. 하라는 것만 하면서 살수도 있겠지.
돈 되는 연구하라면 그거 하고. 이거 팔라면 팔고. 그렇게 살 수도 있지 거럼.
민재 : 그런..데요?
석우 : 그러다가 하나씩흩어져가겠지. 이놈은 이리로. 저놈은 저리로..그럼 어떻게 되느냐. 우리가 10년동안 쌓아온게 물거품이 되는거지.
물거품 알어?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되서 죽잖아왜. 사랑하는 왕자가 나를 몰라주기 때문에. 아아 취한다. (음료수 마시는)
민재 : 그럼..그렇게 선배님들이 흩어지고 나면 후배들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는건가요?
선배들이 남의 나라 가서 휴지통 뒤지던 때부터. 다시요?
석우, 천장을 보고 있다가 민재를 보는데 술취한 척 하던 기색이 말짱 걷히면서.
석우 : 전자과에서 우리 위성랩에 추천을 받은 학생이 너란 말이지.
민재 : 예.
석우 : 오지 말라고 하고 싶다.
민재 : 선배님.
석우 : 딴 거 해. 남들이 다 가는 넓은 길로 가. 민족적 자부심. 자존심. 그런 거 없어도 연구할 수 있는 걸로 선택하라고.
이거 너무 힘들어.
석우 일어서더니 백곰에게..
석우 : 잘 마셨습니다. 다음번에는 제가 거하게 사겠습니다. 그럼 저는 취해서 이만..
석우. 털레털레 걸어간다.
백곰. 취한 척하고 널부러져 눈을 감고 있다가. 노래하기 시작한다.
백곰 : 인생은 나그네길. 어어디서 왔다가 어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S#36. 민재의 방 / 밤
문을 열고 들어서던 민재 놀라서 선다. 방안 가득이 아이들이 모여서 떠들고 있다.
대욱 진수 마이클 진영 정태. 모두 책상, 의자며 식기 등을 여기저기 배치하느라 분주하다.
이거 엇다 놔. 거기 놓으면 안되나? 찬장 없어? 떠들어대며 정태가 먼저 민재를 발견했다.
정태 : 여어 집주인. 들어와. 사양하지 말고 들어오라고.
애들 분분이 떠들며 민재를 맞이한다.
민재 : (물건들을 둘러보며) 이게 다 뭐야. 그리고 정태 너 어떻게 들어왔어?
정태 : (열쇠 하나를 들어보이며) 아까 니 열쇠 복사해뒀지.
대욱 : 선배. 이 책상 어때요. 우리 산디과 박사 선배가 쓰던건데요. 그 선배 이번에 외국 가거든요. 잽싸게 얻어왔습니다.
진수 : 책꽂이 정리는 선배가 하셔야겠어요. 순서를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요.
지민 : 오빠. 여기 부엌 정리했는데 와서 좀 봐봐요.
진영 : 미순 언니가 그릇 많이 줬어요.
마이클 : 내가 다 뺏어왔어. 그치 진영씨. 내가 잘했지?
진영 : 잘했어요.
민재, 정신이 하나도 없다. 뭐라 말하려는데 노크소리.
돌아보면 자현, 병석, 지원이 들어서고 있다. 병석은 라면 박스를 하나 들고 있다.
자현 : 이야아 여기가 바로 거기구나. 민재 안녕.
병석 : 자 이거 집들이 선물. (라면박스를 민재에게 안긴다)
자현 : 아주 한박스 사왔다. 자주 올게. 야아.. 너무 좋다. 여기선 라면도 끓여 먹을 수 있고. (방을 구경하며 들어가는)
민재 : (라면박스를 들고 망연한데)
병석 : (민재를 툭 치고 가며) 부럽다. 나도 자취방으로 나오고 싶은데.
지원 : (종이 봉투를 내주며) 휴지하고 빨래비누야. 진부하지만 필요할 거 같아서.
민재 : 어 고마워.
지원. 민재 옆에 서서 방안을 둘러본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떠들고 야단이다.
자현 : 뭐야 뭐가 더 필요한거야.
정태 : 냉장고.
대욱 : 기계과에 남는 냉장고 없어? 내가 신품으로 색칠 싹 해줄 수 있는데.
병석 : 냉장고라면 우리 랩에 하나 남는데. 고장난 거긴 하지만.
자현 : 마 그거야 고치면 되지.
마이클 : 라면 먹을 사람?
아이들 나.나. 손들고. 지민이 세고..
민재 : (우두커니 입구에 서서 보다가) 뭔가 굉장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거 같애.
지원 : (웃으며) 좀 더 넓은 방을 얻었어야 될 걸 그랬다.
민재 : (우물거리다가) 경진이는.
지원 : (돌아보는)
민재 : 같이 안왔어?
지원 : 경진이 바쁘대. 방에 남아서 뭐 할게 있는 모양이든데?
민재 : 그래...
마이클이 달려와서 민재가 안고 있는 라면박스를 잡아채 간다.
지원 : 경진이 요즘 뭔가 좀 이상해.
민재 : 경진이가?
지원 : 응. 혼자 뭔가 생각하는 게 많은 거 같고. 걔답지 않게 우울해 있기도 하고. 원래 안 그런 애였잖아.
생각하는 건 바로바로 말하고 그런 앤 줄 알았는데.
민재, 말없이 앞만 보고 있다.
S#37. 경진/지원의 방 / 밤
경진 혼자서 우두커니 침대 위에 책상다리로 앉아있다. 그러다 벌떡 일어나더니 책상 앞의 의자에 가서 앉는다. 그 자세도 불편하다.
다시 일어나더니 이번엔 바닥에 누워서 다리를 침대에 올려본다. 그렇게 잠시 있다가 벌떡 일어나더니 외투를 집어들고 나간다.
S#38. 센터 앞 / 밤
경진이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오고 있다. 걸어오면서 탭댄스 비슷한 걸 추어보기도 하고.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든 풀어보고 싶은 심정.
문으로 다가서며 카드키를 꺼내는데 안에서 나오는 서교수.
경진 : 안녕하세요.
서교수 : 웬일이야. 이 밤중에.
경진 : 그냥요. 오늘 밤은 시간이 좀 이상하게 흘러가는 거 같아서요. 일분이 꼭 100분처럼 흘러가요.
저의 상대성 시계가 고장난 거 같습니다.
서교수 : (웃더니) 심심하다는 얘기야?
경진 : 그리고 따뜻한 율무차도 마시고 싶구요.
S#39. 센터 내부 로비 혹은 휴게공간
경진이 인스턴트 율무차 두잔을 두손에 들고 와서 한잔을 서교수에게 내민다.
경진 : 여기 있습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여기 자판기의 율무차는 대한민국 최고로 맛있거든요. 드셔보세요.
서교수 : (웃고 마시는)
경진 : 그렇죠? 관리자가 누군지 배합을 아주 잘하는 모양입니다.
서교수 : 경진군.
경진 : 예.
서교수 : 우리 랩에 들어오고 싶다고 했었지?
경진 : 들어가고 싶은 게 아니라 들어가야만 합니다. 저는 우리별 4호를 발사시켜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서교수 : ...요즘 센터 돌아가는 사정을 좀 아나?
경진 : ...좀 아는데요.
서교수 : 군이 하고 싶은 게 인공위성 연구라면. 우리 랩에 들어와도 어렵게 될지 몰라. 아마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될지 모르니까.
경진 : ....그러면 안되는데요.
서교수 : 아직 랩을 결정하는 거 시간이 있으니까 다른 랩도 잘 알아보도록 해. 그 얘길 해주고 싶었어. (우울하게 율무차를 마신다)
경진 : (마시는 거 잊고 서교수를 바라보고 있다)
S#40. 센터 내 랩
석우가 칫솔을 입에 물고 들어서다 보면 경진이 의자에 앉아 빙빙 돌리며 있다.
석우 : 뭐냐. 내일 아침 퀴즈를 미리 몰래 보려고 온 건 아니겠지?
경진 : (농담할 기분이 아니다) 우리별 4호 중단되는 거에요?
석우 : (대답 회피하고 자기 자리로 간다)
경진 : 그럼 진짜 곤란해요.
석우 : 너한테 곤란할 게 뭐 있어. 우리별 4호에 주식이라도 투자해놨냐?
경진 : 전 위성 연구를 해야 된다구요. 그래야 나중에 내 고향별로 돌아가죠.
석우 : 인공위성을 타고 고향별로 간다고? 거 너무 무식한 발언이잖아.
경진 : 그게 아니고 그 위성으로 내 고향별하고 통신을 해야 된단 말이에요. 소식이 끊어진지 너무 오래 됐다구요.
석우 : 어이. 미안한데 오늘은 니 헛소리를 들어줄 기분이 아니다. 심심하면 가서 게임이라도 해. 씨디 빌려줘?
경진 : ... 위성 연구는 어디가 제일 세요?
석우 : 세다니?
경진 : 세계의 대학 중에서 제일 센데가 어디냐구요.
석우 : ... 왜 유학이라도 갈려구?
경진 : 네.
석우 : 거 참 간단하게도 대답하는구만. 돈이 아주 많은 아가씨인 모양이네.
경진 : 인생이란 게 이런 건가 봐요. 계획한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고..끝없이 돌발사태가 벌어지고... 변수가 끼어들고..
그리고 휩쓸려서 흘러가다 보면.. 환갑이 되있는 거.
석우 : (어이없어 보며) 이십대 초반에 하기엔 좀 어색한 얘기 아니냐.
경진 : 선배는 스무살 때 알았어요? 오늘 이렇게 되있을 거란 거.
석우 : ... 아니 몰랐어. 알고 싶지도 않았고.
경진 : 그래도 꿈꾸던 미래가 있었을 거잖아요.
석우 : 그렇게 멀리 꿈 꿀 시간도 없었어. 그냥 오늘의 프로젝트가 있었지. 오늘 이걸 다 끝낼 수 있나. 끝내야 되는데.. 그런 거.
경진 : 재미없다.
석우 : 인생이 원래 재미없는거야. 넌 바이킹이 재밌냐? 난 재미없어. 인생은 바이킹 같대니까. 올라갔다 내려갔다.
또 올라갔다. 또 내려오고.. 그걸 돈내고 타는 게 인생이다.
석우는 이미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S#41. 위성 센터 앞 / 밤
경진이 걸어나온다. 어두운 밤이다. 돌아보면 센터의 안테나가 밤하늘에 서있다.
경진, 하늘을 본다. 그렇게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가.. 하늘에 대고 말한다.
경진 : 어이 고향 친구들.. 뭐하고 있어? 아직도 내가 어딨는지 못 찾았어? 빨랑 찾아서 우주선 좀 보내줘. 나 좀 데리고 가라구.
나 힘들어 죽겠단 말야아..
그렇게 하늘에 대고 말하는 경진의 모습이 멀리. 안테나를 배경으로..
첫댓글 석우 - 김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