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 傳奇의 偶然性 硏究
金 洛 喆 *
-------------------------------------------< 목 차 >----------------------------------------------
1. 序 論 3) 陰謀와 眞相
2. 傳奇에 나타난 偶然性의 배경적 이해 4) 誤解와 判明
3. 인과율에 위배된 偶然性의 유형 4. 현실성을 반영한 偶然性의 기능과 미학
1) 만남과 離別 5. 結 論
2) 危機와 反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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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序 論
중국 고대소설은 당대에 이르러 근대적 의미의 서사문학 체계를 수립하였다. 거기에는 문학사적 발전과정과 문인들의 시대적 자각이라는 측면이 관련되어 있다. 당대는 이러한 본질적인 성숙에도 불구하고, 당대소설이 고대 단편소설로서 세밀한 구성을 보여주지 못했음은 주지하는 바이다. 특히 고대소설에 나타나는 우연성은 그 시대나 주제의 유형에 따라 다소 편차적일 수 밖에 없다. 전기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대체로 지괴류와 같은 비현실의 세계를 그린 초기작품에서는 우연적 요소가 비교적 농후하여, 그것이 서사기교로서 적절하게 수용 처리되지 못하였다. 반면 애정류처럼 인간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작가의 도덕관념을 추구했던 작품에서는 우연적 요소의 운용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따라서 우연성이란 분명 당전기가 보여주는 또다른 소설적 기교의 하나임이 분명하며, 아울러 전기연구에 있어 이러한 특성을 분석할 필요성이 충분히 있다고 하겠다.
본고에서 논의하려는 바는 서사기법으로서의 우연성이며, 이것이 당대 전기에서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며, 또 소설적 의미와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있다. 이것은 전기 작품 속에 내재하는 문학적 개별성과 미학적 특수성을 도출하려는 總論에 있어서 하나의 分論이라 하겠다. 또한 이러한 목적은 당전기가 서사문학으로서 구비하고 있는 문학성을 구체화하기 위한 것이다. 본고는 서사기교로서 因果律에 따른 우연과 필연의 諸樣相을 탐색하여 그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는 데 있다. 물론 선행연구는 본고의 '서사체계로서 당전기'라는 전제와 일치한다. 그러나 본고는 당전기의 史的 가치평가에 치우친 전통적인 연구 방법과는 달리, 당전기를 하나의 시대적 산물로만 보는 관점 즉 外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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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成均館大學校 中語中文學科 博士課程
性보다는 개인적 창작기교로서 內向性에 초점을 맞추었다.
우연성에 관한 분석은 서사체계의 개별성
이라는 일원론적 방법론이지만, 한 시대의 서사체계가 지향했던 인간성이나 의식세계로 확산되는 다원론과 관련이 있다. 더우기 서사기교로서 우연성에 대한 근거 제시에는 선행연구가 全無한 상황임을 감안할 때, 본 연구를 진행함에 대상 작품의 선별과 그 방법론의 선택이 전제되어야 한다. 먼저 대상 작품의 선별 문제이다. 宋代 李昉 등이 編修한 {太平廣記}(977年)에는 500卷에 달하는 작품이 있고, {古今說海} {唐朝小說大觀} {唐人說 } 등에도 상당한 분량을 싣고 있다. 이 가운데 애정류를 중심으로 하여, 당전기를 연구해 온 근대 학자에 의해 비교적 故事性이 뛰어나다고 지적되고 있는 작품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篇 目 撰 人 {太平廣記} 卷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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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娃傳> 白 行 簡 卷 484
<東城老父傳> 陳 鴻 卷 485
<柳氏傳> 許 堯 佐 卷 458
<長恨歌傳> 陳 鴻 卷 486
<無雙傳> 薛 調 卷 486
< 小玉傳> 蔣 防 卷 487
<鶯鶯傳> 元 卷 488
<謝小娥傳> 李 公 佐 卷 491
<非煙傳> 皇 甫 枚 卷 491
< 髥客傳> 杜 光 庭 卷 193
<李章武傳> 李 景 亮 卷 340
<柳毅傳> 李 朝 威 卷 419
<補江總白猿傳> 失 名 {顧氏文房小說篇目}
<枕中記>
沈 旣 濟 卷 82
<任氏傳> 沈 旣 濟 卷 452
<南柯太守傳> 李 公 佐 卷 175
<馮燕傳> 沈 亞 之 卷 195
<離魂記> 王 宙 卷 358
<三夢記> 白 行 簡 未收錄
한편 이러한 연구 대상의 선별에는 후대 문학에의 영향이란 측면을 고려하여 비교적 전파성이 뚜렷한 작품을 포괄하였다. 그리고 이들 작품의 底本으로는 {太平廣記}에 準據하였다. 둘째, 연구 방법의 선택 문제이다. 문학은 시대의 산물이고, 당전기 역시 고전소설의 특수성을 탈피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본고는 당전기가 작가의 의식적인 창작이었다는 점과 서사 문학으로서 허구의 세계에 대해 그 가능성을 입증하였다는 선행 연구의 업적을 기초로 삼고, 문학의 본질적인 요소에 해당하는 우연성에 초점을 두었다.
전기에 내포된 내용과 표현이라는 서사체계에 있어서, 과연 어느 정도의 因果律을 결정하고 지배받고 있는가? 이것은 현대 구조주의자들이 말하는 深層構造와 表層構造의 문제일 것이다. 필자는 전기의 深層構造에는 外延的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전기에 나타나는 인물의 성격과 구성의 특성은 각각 사회성과 역사성이라는 경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전기의 등장인물은 작가의 세계관의 표출인 동시에 사회 현실의 반영이며, 전기의 구성은 紀傳體의 형식을 다분히 수용하는 전통적인 문장양식에
의거하고 있다. 따라서 인물과 구성의 형태는 이야기된 表層構造 이전의 深層構造라는 재구성과 外延的 해석을 가능하게 만든다. 본고에서 다룰 論旨인 전기의 우연성은 이러한 두 가지 기능적 분석을 전제로 삼았다.
제2장에서는 '傳奇에 나타난 偶然性의 背景的 理解'를 다루고자 한다. 傳奇의 深層構造에는 이야기된 表層構造를 통해 우연과 필연이라는 因果律의 재구성 즉 서술의 시간과 허구의 시간이 배합되어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전기는 산만한 구성을 지니고 있고, 전기의 내용으로서 서사성에는 外延的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특히 소설에 있어서 우연성의 운용은 그 정도에 따라서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동시에 共有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우연성이 포괄하는 양면성에 착안하여, 제3장에서는 먼저 당전기에 나타나는 우연적 성분을 다섯 가지 유형 즉 (1)登場人物의 만남과 이별의 過程, (2)事件展開에 따른 危機와 反轉의 樣相, (3)배경적 伏線으로서의 陰謀와 眞相의 處理, (4)作品構造로서의 誤解와 判明의 手法 등으로 분류하고, 인과관계에 근거하여 전기에 나타난 우연성을 분석하였다.
제4장 '傳奇에 나타난 偶然性의 美學'에서는 보다 긍적적인 측면에서 전기가 가진 우연성을 하나의 문학 기교로 인정하고, 그러한 우연성이 소설적 특성으로서 전기 작품 속에 다양한 형태로 내포되어 있다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2. 傳奇에 나타난 偶然性의 背景的 理解
서사물의 의미에 있어 사건이란 행동(action)과 발생(happening)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행동이나 발생에는 상태의 변화가 필연적으로 따르기 마련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시학」이래 서사물의 사건은 상관적이며 연쇄적이라고 주장되어왔다. 따라서 사건의 계기는 인과적이며, 사건들이 결합되어 완전한 하나의 스토리를 이루는 원리는 '인과율'이다. 인과율은 명시적일 수도 있고 동시에 함축적일 수도 있다. 또한 그것은 '시간적 연속'과도 결합되기도 하고, 공간적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포스터(E . M. Foster)가 스토리와 플롯을 구별하기 위해 예로 든"왕이 죽고 그 다음에 왕비가 죽었다"라는 것과 "왕이 죽자 그 다음에 슬픔에 빠진 왕비가 죽었다"라는 두 문장은 표면적 수준에서는 완전히 다르지만 심층적 수준에서는 그 인과관계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소설 속의 사건은 우연성과 필연성이라는 다소 모순되게 느껴지는 이중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우연성과 필연성을 구분해 본다면, 우연성이 인간의 실제 일상생활과 근접한 점에 반하여 필연성은 과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소위 우연성이란 어떤 일정한 목적에 의해 계획했는데 그것이 다른 여러가지 원인으로 해서 처음에 생각했던 계획과 다른 결과에 도달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필연성은 과학적인 인과관계에 따른 사실성을 의미한다.
이에 과학적 사고를 중시하는 근대 이후 작가들은 소설의 가치를 진실을 발견하여 진실을 표현하는 데 있다고 간주하고, 소설에 있어서는 일상 생활과 달리 철저하게 인과관계에 근거한 필연성에 의해 사건이 전개될 것을 역설하였다. 그 중 서양의 소설가인 모파상의 견해를 예로 보면 아래와 같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不意의 사건으로 죽는 사람이 매일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작품 속에서 작가가 사건을 전개시켜 나가다가 주인공이 머리 위에 떨어진 돌을 맞고 죽는다든가, 또는 그를 마차바퀴 밑에 깔리게 해서도 안된다.
이들은 소설의 플롯이 인과관계에 의해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작품은 이미 독자의 설득력을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나아가 많은 현대 비평가들은 소설 창작에 있어 일체의 우연성을 배제하고 전부를 필연성 위에서 설계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소설은 당전기에 와서 비로소 의식적인 창작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근대적 의미의 소설 체제가 성립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전기는 우연성의 기교상 현대소설과 뚜렷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차이에는 전기가 설화문학의 단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고, 우연성을 필요로 했던 당시 문학적 요인이 내포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필자가 앞서 말한 근대적 소설 이론에 근거하여 당전기에 나타난 우연성의 생성 배경을 추론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이 몇가지로 귀납할 수 있다.
첫째로, 전기 작가들의 시간에 대한 초월의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은 흐른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시간은 현재 있는 그곳에 머물러 있다. 지나간다고 하는 이 생각이 아마도 시간이라 불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단지 지나가는 것으로만 보기 때문에 사람들은 시간이 바로 지금 존재하는 곳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위의 인용문은 禪師 道現의 말이다. 이것은 생각이란 것은 시간 속에서 발생하지만 통찰력은 그것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전기작품 속에는 신선방술을 통해 공간의 제약을 받지않고 자유로이 천상계·지상계·용궁 등을 넘나드는 장면이 연출된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 볼 때, 도교와 신선사상, 그리고 불교가 팽배했던 당대 작가들의 심중에는 종교적인 영향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며, 그러한 종교적 염원이 작가의 붓끝을 작용하여 시공을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을 표출했을 가능성도 짙다. 그래서 마치 이러한 禪師 또는 신비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작가들은 시간을 초월하는 속에서 또한 인과율의 세계도 초월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시간예술인 소설형식에서 우연의 힘을 빌어 인과율의 제약을 받지않고 자유롭게 토로하였던 것으로도 짐작이 가능하다.
둘째로, 당시 창작 역량의 한계적 요소이다. 중국소설은 오랜 봉건정치 하에서 소위 '街談巷語, 道聽途說'이라 하여 정통문학의 범주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므로 많은 文論과 詩話 . 詞話 등을 통해 각 쟝르별로 연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소설에 대해서는 단편적 비평 이외에 계통적인 이론이 정립되지 못하였다. 소설이 체계화되기 시작했던 초기단계인 당전기에 있어서, 당시 재능있는 문인들이 소설 창작에 심혈을 기울였을 리는 만무하고, 작품 구성상 일상생활과 구별되는 필연적 인과관계를 규정하는 근대적 의미의 창작 형태를 갖추기에는 무리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기는 작품 구성에 있어 소설에서 언어 서사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우연성이 비교적 명백히 나타나는 전근대적 현상을 피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는 당대 문인작가들이 흥미에 치중하고 구성의 특징과 기능면에 소홀하여, 사실성(reality)을 구체적으로 탐색하지 못했던 창작 역량의 한계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셋째로, 작가의식과 현실에서 비롯된 산물이다. 전기는 당
대라는 시대적 특수성을 띤 서사양식으로서 중국소설사상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후대 서사문학의 영향관계 측면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安史의 亂은 大族들을 멸망시키어 상인과 서민층을 정치 경제면에서 크게 부상시켰고, 이와 아울러 신흥관료계급이 새로이 등장하여 이전의 문벌귀족과 달리 자신의 노력과 실력으로써 정치적 상승을 꾀하였다. 이들은 전기의 창작을 통해 六朝의 鬼神志怪的 내용을 人間社會的 내용으로 변화시키면서, 현실사회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그들의 작품 가운데 風遊에 寄託하여 憂愁를 풀거나 禍福을 말함으로써 勸善懲惡 일변도의 상투적 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들도 있으나, 대부분의 작품 속에는 소설 창작에 있어 자유롭고 다양한 표현방법을 시도하려는 새로운 자각이 싹트고 있었다. 따라서 작품의 주제도 사회 및 시대에 따른 봉건성의 굴레를 탈피하려는 낭만사상 . 평민의식 . 자아각성에 의한 현실반영 요소에 착안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적인 작가의식에도 불구하고, 安史의 亂 이후 조정은 부패하였고 사회는 극도로 혼란한 국면에 이르렀다. 또 한편으로 그 당시 상황에서도 詩人才子나 一般庶民들은 부귀공명과 출장입상의 꿈을 버리지 못하였고, 여기서 비롯된 그들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은 작품 속에 자연스레 표출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작가들은 작품에 반영한 여러 진보적 사상과는 달리, 작품 구성상에 있어 대부분이 현실과 자아의 대결에서 발생하는 필연성보다는 우연성에 기탁하여 인생의 喜怒哀樂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작가의식은 전기 작품을 통해 인과관계에 따르는 현실적 삶의 개척보다 우연에 의존하려는 성향을 띠면서 이상적인 삶을 추구했던 것이다.
넷째로, 文體特性이 조성한 結果이다. 당대 전기 작가들은 주로 神怪 . 愛情 . 諷刺 . 豪俠 등을 내용을 토대로 허구적 문학의 예술적인 가치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전기 작품을 升官의 도구로 삼았던 나머지 溫卷의 성격을 띠었으므로, 관리들이 반드
시 갖추어야 할 조건인 史才 . 詩筆 . 議論 등의 재능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려 하였다. 따라서 文才를 표현하는 데에 치중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작품 구성상 구체적인 인과관계가 주시되지 못하였고, 그 결과 서사진행 역시 대체로 우연적인 사건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우연성은 당시 문인들이 전기를 통해 그들의 사상을 전달하고, 동시에 그들의 문재를 드러내기 위한 계기적 장치로서 인과율의 통제를 벗어나 목적의식을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에 빚어진 양식이라 하겠다.
요컨대 소설의 필연성을 중시하는 근대소설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전기에 나타난 우연성은 당시 시대적 한계 내지는 작가 창작 역량의 빈곤을 반영한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나타나는 여러 사건들이 반드시 어떤 원인에 의해 그 결과가 합리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많은 우연성을 지니고 있고, 소설 속의 사건들은 그러한 가변적인 인간의 생활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면을 고려할 때, 필자는 소설에서 우연성이 무조건 배제되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또 그렇게 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연성은 사실상 모든 소설이 사건을 꾸며낼 때 으례히 사용하는 방법의 하나이며, 사건의 필연성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가지 우연성을 빌어와야 하는데, 이것은 사건을 꾸미는데 있어서 우연에 의지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어떤 우연적인 동기를 부여하지 않으면 사건의 창조나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모든 소설 창작가들이 언제나 직면하는 실제적 문제인 것이다. 당전기에 나타난 우연성의 생성은 전술한 3가지 시대적인 요인 이외에도, 무엇보다 중요한 원인은 우연성 그 자체가 소설의 구성에 있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성질을 띠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전기 작품이 사건의 논리정연한 맥락을 구비하지 못함으로 인해 산생된 우연성을 일종의 창작기교상 문제로서 규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우연성은 고전소설 작가
들의 시대적 한계 즉 세계관과 상통한다는 당위성도 아울러 숙지해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이 우연성에는 否定的인 면과 肯定的인 면의 상반된 관념이 대두되는데, 여기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 보다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수용하면서 전기가 가진 우연성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분석하는 편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3. 인과율에 어긋난 偶然性의 類型
우연성이 전기에서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며, 그것이 소설의 서사구조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것은 본고의 기초 작업인 동시에 본장의 실제적 과제이다. 우연성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작품에서 전개되는 사건의 인과관계를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작품의 사건 전개가 자연스럽지 못한 것 . 경이롭고 의아스러운 것 . 예측불허의 돌발적인 것 . 보편적 상식에서 벗어난 것 등 인과율을 벗어난 논리적 비약을 통해 비교적 용이하게 우연성을 추출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본장은 이러한 방법에 근거하여 우연성의 유형을 만남과 이별, 위기와 반전, 음모와 진상, 오해와 와해 등 네 가지로 나누고, 작품의 부분적 실례를 통해 우연성의 양상을 집중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여기서 부분이라 규정한 이유는 동일한 작품일지라도 그 내면에는 앞서 제시한 네 가지 경우에 따라 여러 우연성의 유형이 복합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1) 만남과 이별
대부분 전기 작품 속에 나오는 인물의 만남은 우연의 일치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말하는 우연의 일치란 사건들 간의 인과적 관계나 사건들 뒤에 숨은 의도적 계획과 상호 동기도 없이, 플롯 또는 인물의 운명이 결정되거나 크게 변화되도록 사건들이 우연히 일치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두 인물이 우연히 같은 장소에 있게 되어 그들 중의 한 사람이나 두 사람 모두에게 중요한 결과가 생겼다면, 그것은 우연의 일치이다.
소설 속의 사건은 구체적으로 인물과 인물들이 만나서 부딪치고 헤어지는 일이다. 하나의 인물이 등장했으면 거기에는 반드시 또 하나의 인물이 등장하도록 되어 있다. 특히 고전소설에서의 사건들은 先兆的으로 일어난다. 즉 사건들은 서로 인과관계로 연결되어 결과들은 최종적인 결과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다른 결과들에 영향을 주게 된다. 따라서 사건의 연속은 결국 인물의 행위가 개입되며, 그 개입은 우연적이든 필연적이든 만남으로써 시작된다. 그래서 인물들은 서로 만나야 한다. 만나서 발생하는 것이 사건이다.
전기의 우연성은 만남과 이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만남은 사건의 발단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이별로써 주로 소설의 종결을 이루는 次元에서 본다면, 만남과 이별이야말로 사실상 전기 작품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根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만남의 유형과 이별의 유형에서 보다 구체적인 우연적 과정을 증거를 기준으로, 인과관계를 완전히 상실하여 우연성이 크게 강조된 부분은 A類로, 그리고 비록 우연성을 띠고는 있지만 그것이 논리적으로 다소 용해된 부분은 B類로 구분하여 서술하였다.
(1) 만남의 유형
【 A 類 】
전기의 개개 작품에는 보편적으로 여러 인물들이 만났다가 헤어지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기도 하며, 사건이 발생하여 해결되고, 또 다른 사건의 해결을 반복하는 樣相이 전개된다. 여기서 사건 발단의 형태를 인물과 인물들이 서로 만나는 일이라 표현했을 때, 그것이 하나의 구체적인 만남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서로 만날 수 밖에 없었던 필연적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전기 작품은 이러한 동기 부여가 미약하여 단순히 만남의 과정을 우연의 일치(시간과 공간의 일치)로만 처리되어 있다.
A―1 : 위음은 흰 말을 타고 동쪽으로 가고, 정생은 나귀를 타고 남쪽으로 가서 승평리의 북쪽 문을 들어갔다. 그때 마침 세 부인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가운데서 흰 옷을 입은 여자가 얼굴이 매우 아름다웠다. 정생은 그녀를 보자 홀딱 반해서 나귀에 채찍질을 하며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말을 붙이려 했지만 감히 그러지 못했다. 한편 흰 옷을 입은 여자 또한 때때로 곁눈질을 하며 돌아다보는 모습이 받아줄 뜻이 있는 듯 했다.
이 부분은 <임씨전>의 전반부로서 정생과 임씨의 만남을 이야기한 것이다. 이들의 만남에서 시간과 공간의 일치가 아무런 인과관계를 구비하지 못한 채 설정되었다. 목적성이라는 측면에서 '정생→목적 有 / 임씨→목적 無'로 나타난다. 이것은 인간과 비인간의 만남(결과)이라는 전제가 성립되기까지 단순한 우연(결과)에 머물러 있다.
한편 남녀의 만남이 실제적으로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율의 지배를 받지 않으나, 그러한 일상생활 중의 우연은 문학적 공간으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인과율로 수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의 만남은'일상생활→작가→작품→일상생활'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처럼 일상성에서 다시 일상성으로 회귀하는 것은 작가의 고의성 즉 사건의 전개를 우연으로만 결부시킨 경우라고 하겠다.
<柳毅傳>의 전반부를 보면 아래와 같다.
A―2 : 육칠 리쯤 이르렀을 때, 그가 타고 있던 말이 새가 날아가는 소리에 놀라 엉뚱한 길로 제멋대로 달아났다. 육칠 리쯤 달아난 다음에야 겨우 멈추었다. 멈추고 보니 어떤 여자가 길가에서 양을 치고 있었다. 유의가 이상히 여기고 그 여자를 자세히 보았더니 뛰어나게 아름다웠다.
<柳毅傳>의 사건 전개는 주인공 유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이 작품 또한 고대소설이 일반적으로 안고 있는 사건 전개의 우연성을 갖추고 있다. 주인공 유의는 경사에서 과거시험에 낙제하여 고향으로 가는 도중에 용녀를 만난다. 여기서 몇 가지 문제를 유추해서 복합적인 요소와 그것의 통일된 성격의 필연적 관계를 대비해 보면 다음과 같다.
유의와 용녀의 만남도 A―1의 우연적 일치와 마찬가지로 인간과 비인간의 불가항력적으로 성립되었다. 이들이 만나는 과정은 '유의의 과거낙제→귀향→말의 돌발성→용녀의 발견'으로 형성되는데, '말의 돌발성(원인)'은 두 사람의 만남에 계기적 역할을 함으로써, A―1의 단순한 일치와는 달리 '용녀의 발견(결과)'이 만남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두 사람의 만남은 '새소리에 놀란 말'로 인한 모티브를 부여받는 인위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비록 말이 자주 놀라는 동물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다루지 못하는 지경이라는 돌발적 행위를 취하고 있음은 인물의 의지가 배제된 일종의 우연적인 요소로 밖에 볼 수 없다. 따라서 이 부분은 전체 작품 구성의 발단으로서, '인간(유의)→동물(말)→비인간(용녀)'이라는 구조를 이루며 동물의 개입이라는 작가의 고의성에 의해 성립된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柳毅傳>에 보이는 우연성은 용녀와 동정군의 만남과 유의와 용녀의 재결합을 통해서도 관찰된다. 먼저 용녀와 동정군의 만남을 보면, 용녀는 자신의 처지를 말한 뒤 그녀를 대신해서 유의를 동정호로 들어가게 한다. 여기에서 작자는 용녀가 왜 직접 입궁하여 동정군을 만나지 못하는지를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용녀가 유의에게 가르쳐 준 方術이 너무 허술하다. 물론 고사의 결말 부분에서 보여주는 유의와 용녀의 결혼은 새로운 만남이며, 용녀는 유의를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고 그 보상심리로 자신의 연모를 성취하였는데, 이는 용녀의 절대적 의지의 결과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자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유의
가 두번이나 상처하고 또다시 쉽게 새로운 부인을 맞이하는 것은 그 동기가 결여되는 극단적 우연을 수반하고 있다.
전기 작품에서 보여주는 이러한 原因不在의 만남은 대개 다음과 같은 경우로 나타난다.
A―3 : 그는 동쪽 거리에 놀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평강리의 동문으로 들어가 장차 서남쪽으로 친구를 방문하려 했다. 명가곡까지 이르렀을 때 집 한 채가 있었는데, 대문과 정원은 그렇게 넓지는 않았으나 그 가옥은 장엄하고 엄숙했다. 그 집의 한쪽 문짝은 닫혀 있었고, 그 앞에 한 어여쁜 여자가 두 갈래로 머리를 땋은 하녀에게 의지하고 서있었는데, 그 자태는 절세의 미인으로서 여태껏 보지 못한 미녀였다.
A―4 : 정원3년, 최신이 화주의 별가로 부임하였으므로, 이장무는 장안으로부터 그를 찾아갔다. 화주에 도착한 지 이삼 일이 지난 어느 날 이장무는 외출을 했다가 시내의 북쪽 거리에서 매우 아름다운 한 여자를 보았다.
A―5 : 한익은 우연히 용수강에서 어떤 하인배가 좋은 소로 발이 느려뜨려진 수레를 끌면서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 수레에는 두 시녀도 따라가고 있었다. 한익은 아무 생각없이 그 수레를 따라갔다. 그랬더니 그 수레 안에서 누가 '한원외님 아니세요? 저는 유에요.'라고 하였다.
A―6 : 제왕이 행차를 나갔다가 가창이 나무로 만든 닭을 가지고 운용문의 길가에서 노는 것을 보고, 궁중으로 불러들여서 계방의 소년으로 삼아 우룡무군의 대우를 해주게 하였다.
A―7 : 어느 날, 풍연이 외출하여 거리를 거닐고 있다가 어느 집 앞에서 부인이 소매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용모가 아주 세련되어 있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간장을 녹이게 하였다.
A―8 : 선객은 서울로 올라가 외삼촌의 소식을
알려고 신창남가로 갔다. 말을 세우고 잠시 머뭇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어떤 사람이 말 앞으로 다가와서 절을 했다. 자세히 보았더니 바로 옛날에 부려먹던 종복 새홍이었다.
A―9 : 그때 날은 저물고 비바람이 몰아쳐 뽕나무 아래에 우선 비를 피해 멈추었다. 그런데 갑자기 길모퉁이에 집이 한 채 보이더니 등불이 반짝반짝 새어 나오고 있었다. 풍온은 그곳으로 가서 하룻밤 묵고가기를 청하려고 하였다. 그 집 앞까지 가서 보았더니 어떤 여자가 20여 세의 나이에 아름다운 용모와 의복 차림으로 세 살 난 어린아이를 데리고 문에 기대어서 슬피 울고 있었다.
A―10 : 개원7년, 도사 여옹이란 사람은 신선술을 터득한 자로서 한단 가도를 가는 도중 여관에서 쉬게 되었다. 모자를 벗고 허리띠를 늦추며 배낭에 의지하고 앉아 있는데 여관에 한 젊은이가 나타났다. 그는 노생이었다.
A―11 : 도중에서 그들은 영석의 여관에 묵게 되었다.……장씨는 머리카락이 길어 땅바닥까지 끌렸고 침대 앞에 서서 빗질을 하고 있었으며, 이공은 바야흐로 말에게 솔질을 해주고 있었다. 바로 이때 갑자기 한 나그네가 나타났는데, 몸집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보통이었고, 수염은 붉으면서도 용의 수염처럼 꾸불꾸불했으며, 당나귀를 타고 그곳에 왔다.
A―12 : 포주의 동쪽으로 십 리가 좀 더 되는 곳에 보구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장생은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그때 마침 최씨 댁의 미망인이 장안으로 가는 길에 포주의 길로 들어 역시 이 절에 묵게 되었다.
소설의 등장인물은 상호 간의 만남을 통해 그들의 인생이 굴절되거나 사건의 추이를 짐작할 수 있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상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주인공이 길을 가다가 그냥 우연히 눈길을 마주친다거나, 여관이나 절에서 뜻밖에 만나게 되는 것은 결코 소설적인 만남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이 보다 소설적인 만남이 되기 위해서는 그 전후 관계를 이어주는 어떠한 사연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전술한 예문들과 같이 만일 어떠한 사연이 전제되어 있지 않았을 경우 그것은 우연적 만남이라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原因不在의 만남은 대부분 일상적인 사실을 문학적 서사구조로 반영한 경우인데, 작가의 故意的 결합에 의해 이루어져 있다. 또한 각 예문의 의도가 애정의 성취에 있든 부귀공명에 있든지 간에, 사건전개의 과정에서 모두 原因不在의 현상을 초래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결국 단순한 우연성인 동시에 돌발적인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에 속한 작품들에서 주의할 만한 사실은 '만남' 자체는 우연이지만 새로운 사건을 유발하는 필연적 원인으로 연속되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우연적 인물의 만남→필연적 사건의 발생→우연적 결과'라는 인과율에 따른 새로운 형식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당전기의 서사구조는 '우연→필연→우연'의 재구성을 통해 하나의 사건이 시작되고 끝을 맺고 있다고 하겠다. 이를 '우연구조'라 전제한다면, A유형은 즉 첫번째 우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 B 類 】
전술한 原因不在의 경우들과는 달리,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만남에 있어 그들이 만나게된 경유를 비교적 사실성에 기초한 원인의 설정이 가미된 작품들이 있다. 먼저 <無雙傳>을 보면 무쌍과 선객의 재결합 과정에서 고의적 우연을 배제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군대의 반란으로 인해 무쌍이 궁녀로 끌려가 있을 때, 선객은 궁중의 환관이 궁녀 30명을 인솔하고 원릉으로 가다가 장락역에서 하룻밤을 쉰다는 통보를 받는다. 그리하여 하녀 새홍에게 그 속에 무쌍이 끼어있는지를 몰래 훔쳐봐 달라고 당부한다. 여기에서 작가는 비록 고의적 우연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만남에 대한 원인으로서 선객의 기대심을 설정하였다. 선객의 기대심리는 무쌍에 대한 사랑의 기대이며 후에 그들이 재회하는 원인으로 제공된 것이다. 그리고 하녀 새홍은 궁녀가 수천 명이나 되는데 어떻게 바로 무쌍이 거기에 끼었겠냐고 반문하자, 선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B―1 "너는 오직 가 보기만 하면 돼, 사람의 일이란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보이는 선객의 추측에는 두 가지 원인이 내포되어 있다. 하나는 막연한 기대심리의 발로이고, 또 하나는 무쌍이 최근 궁녀로 잡혀갈 정도의 미모를 지녔으므로 다시 발탁되었을 것이라는 일종의 확신이다. 과연 무쌍은 30명의 궁녀들 속에 들어있었으므로 새홍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무쌍과 새홍의 대화를 보면,
B―1―1 "새홍아! 새홍아!네가 어떻게 여기 있는 줄 알았느냐? 낭군께서는 건강하시냐?
B―1―2 "낭군께서는 지금 장락역의 역관으로 계신데, 오늘 혹시 아씨께서 이곳에 와 계시지 않을까 의심하시고 저로 하여금 문안드리게 하셨습니다."
라고 되어 있는데, 사실상 이는 새홍과 무쌍이 만나게 된 결과을 인과적 시제관계에 따라 함축한 것이다. 이로써 작가는 B―1에서 선객의 말을 통해 그들의 우연적인 만남을 앞서 예시하였고, 다시 이를 B―1―1에서 새홍의 개입를 빌어 선객의 기대와 확신(원인)이 B―1―2에서 사실(결과)로 드러나는 과정을 밟고 있다. 이것은 인물 간의 새로운 만남을 구체화시켜 원인이 성립된 우연적 일치를 보여준 실례라고 하겠다.
<鶯鶯傳>에서 장생과 앵앵의 만남이나 < 小玉傳>에서 이생과 곽소옥의 만남도 그들의 만남에 대한 구체적인 原因이 제시되어 있다.
먼저<鶯鶯傳>의 경우, 장생과 앵앵의 만남에 앞서 인척관계와 전란이라는 동기부여가 설정되어 있다. 여기에는 보구사(공간)와 군란(시간)이 구체적 사실성을 띠고 있고, 두 인물의 상황설정 즉 '장생→낙제 / 앵앵→피난' 이 자연스러운 우연성을 조성하고 있다. 본문을 보면 아래와 같다.
B―2 : 한참있더니, 앵앵이 몸이 불편해서 못나온다는 전갈이 왔다. 이에 정씨는 화를 내면서, "이 장 오빠가 네 생명을 보호해 주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너는 끌려가고 말았을 거야. 그런데도 촌수만 멀다고 만나기를 꺼려하면 되겠니 ?"라고 말하자, 한참만에야 이윽고 인사하러 나왔다.
당시 앵앵은 처음에는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나타나기를 꺼렸으나 어머니의 권유에 못이겨 그 자리에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장생과 앵앵의 이러한 만남은 사전의 상황설정이 구체적으로 예시되었고, 직접적으로는 최씨 미망인의 강력한 매개역할(원인)에 의해 성립된 것이다.
< 小玉傳>에서도 작중 인물이 서로 막연하게 만나는 서술을 피해 그들이 만나는 원인을 설정해 놓고 있다. 우선 인물설정을 보면, 이생은 명문자제로서 명기를 얻고자 하는 의도(원인1)를 지니고 있었고, 곽소옥은 곽왕의 양녀였다가 퇴락한 기녀로서 명문자제와 교제를 희망(원인2)하였다. 여기서 포십일랑이라는 중매인(매개체)이 등장하고 있다.
B―3 : "소고자께서는 요즘 좋은 꿈을 꾸셨습니까? 듣자니 한 선녀가 마침 하계(下界)에 내려와 있다는데, 재산도 바라지 않고 다만 풍류객을 연모하고 있으니, 그와 같은 인물이면 그대와 잘 어울릴 것입니다."
이와 같은 포십일랑의 소개는 이생과 곽소옥이 만나게 되는 원인으로서 충분한 작용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포십일랑이 개입함으로써 이생의 의도와 곽소옥의 희망이라는 두 개의 원인이 비로소 결합(결과)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작품에서, 작자는 주인공의 만남에 대한 계기의 일환으로 중간 매개인물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밝힘으로써 그들의 만남에 대한 최소한도 리얼리티를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인과율에 따른 만남의 과정을 보면, 예로 든 장생과 앵앵 . 이생과 곽소옥의 만남에 있어, 설사 중간 인물이 그들의 만남에 원인을 제공하였다손 치더라도, 이로써 우연성과 완전히 결별했다고는 단정지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보다 앞서 이 중간인물과 주인공이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관계가 시작되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해서는 작자의 기교적인 설정이 없이 단순히 원인에 의한 우연의 일치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작가는 모든 등장인물의 만남에 있어 그들의 모든 상호관계를 철저히 인과범주에 포함시키려는 세심한 창작 노력은 아직 미비했던 탓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주인공끼리의 만남은 차치하드라도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만남 혹은 주변 인물 간의 만남 역시 필연적 인과관계보다는 우연적 일치로 적용시켰음을 알 수 있다.
(2) 이별의 유형
【 A 류 】
전기 작품에 있어서 등장인물 간의 '만남'이 주로 우연성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앞에서 몇 작품을 예로 설명하였다. 특히 인간 본연의 감정인 애정에 더 큰 관심을 표명하는 애정류 작품에서는 대체로 남녀의 만남을 출발점으로 소설이 전개되어 있다. 그러나 애정소설에 있어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 실현되었을 때 희극적 구성이라 할 수 있고 사랑이 깨어졌을 때 비극적 구성이라 전제한다면, 당대 애정류 소설의 상당수는 비극적 구성을 선호했다는 특성이 있다. 즉 작가들은 사회 현실 가운데서 남녀애정에 보다 큰 가치를 두면서도 작품 속에는 오히려 비극성이 농후하여, 남녀가 만나서 이별로 끝나고마는 유형(만남―이별)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와 대조적으로 남녀가 이별의 아픔을 딛고 다시 결합하는 유형(만남 ―이별―만남) 역시 찾아볼 수 있다. 사실상 前者와 後者의 차이는 작품 속의 남녀 당사자들이 애정의 장애를 극복했는가 못했는가의 단순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거기에 나타나는 우연성의 양상은 다르게 반영되고 있다..
우선적으로 전기 작품의 (만남―이별) 의 단일구조에 있어서는 주인공 남녀가 비록 서로의 의사에 의해 결합이 이루어졌다고해도, 기존 사회에 정식 부부로 인정받기까지는 사회현실에서 야기되는 많은 고난과 함께 이별을 맞게 되고 종국에는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색채가 농후하다. 즉 남녀 주인공들의 만남은 그들이 부딪치는 현실사회, 특히 주인공들과 대립되는 인물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장애가 야기된다. 장애는 주로 사회규범과 신분의 대립, 그리고 그로 인한 주인공 자신의 갈등, 악인형 인물의 횡포 등으로 인해 발생되며, 이 때문에 주인공들은 고의적 우연성을 띤 이별의 단계를 밟는다. 여기에는 불확실한 원인으로 인한 만남이 선행되었던 기교적인 문제를 포괄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단계에서 필연성을 놓치면 그 과정과 결과는 우연의 연속체를 형성하기 쉽다. 더욱 특기할 만한 점은,<遊仙窟>과 같이 남주
인공이 신선의 굴에 유숙하여 선녀와 하룻밤을 잘 지내고 간다는 비교적 가벼운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예외의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 (만남― 이별)의 구조에서 나타나는 이별의 결과는 거의 예외없이 여주인공을 죽음으로 몰고간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 小玉傳>의 소옥은 이익의 배신을 책망하고 통곡하다가 저주하며 죽고 만다.
<李章武傳>의 이장무는 친구 최신을 찾아 화주에 갔다가 그곳에서 우연히 왕씨의 며느리를 만나 밀애를 나눈다. 그러나 얼마 후 이장무는 장안으로 돌아가야 했으므로 그들은 이별을 하게 된다. 8∼9년의 세월이 흐른 뒤 이장무가 그 여자를 찾아갔으나 그녀는 이장무를 그리워하다가 죽은 지 이미 오래였다.
<長恨歌傳>의 현종은 안록산의 난을 당해 피난을 떠나다가 백성들의 원망을 무마하기 위해 부득이 양귀비를 처형하게 된다.
<飛煙傳>은 남녀 주인공의 의지에 의해 봉별이 성립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비교적 사실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남주인공 조상과 여주인공 비연은 옆집에서 살았는데, 문지기를 통해 수차례 서신을 교류하고 드디어 무공업이 숙직하는 날 一次의 봉별이 이루어진다. 이로부터 그들은 열흘에 한번씩 서로 몰래 만나서 정을 통하고 헤어지는 사통이 계속된다. 결국 비연의 하녀가 무공업에게 고자질하여 그들의 사랑은 파국을 맞게 되고, 비연이 죽음으로써 영원한 이별로 끝을 맺는다.
<任氏傳>의 정육은 여호의 화신인 임씨를 우연히 만나 함께 살게 된다. 임씨는 정육을 도와 그를 출세시키나 정육으로 인해 죽음을 면치 못한다.
이상의 예들에서 이별에 봉착한 여주인공은 자신의 애정이 관철되지 못함과 동시에 죽음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는 작자가 애정에 대한 의지와 가치관이야말로 사회의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며 절대적이라는 것을 표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러한 (만남―이별) 유형은 주인공들이 애정의 장애를 극복하려는 노력보다는 쉽게 죽음이라는 파국으로 침체되는 단순한 운명적 사건으로 전개되어 있다. 특히 이별의 단계에서 작가가 여주인공을 이처럼 예외없이 죽음의 운명으로 처리하는 것은 남존여비사상에 따른 논리상의 비약이 아닐 수 없다. 논리적 비약으로 인한 운명적 사건이 끌고가는 스토리는 여주인공의 죽음을 남발하여 결코 죽지 않아도 되는 죽음으로써 이별의 결국을 마무리함은 지나치게 우연적이고 인위적인 기교를 드러낸 부분이라 하겠다.
다음으로, 앞의 작품들이 (만남―이별)이 여주인공의 죽음으로 끝이 나는 예들인데 반하여 남녀 주인공 중 어느 한 사람의 변심으로 인해 이별을 하게되나, 그 결과가 죽음에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단순한 이별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鶯鶯傳>을 들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鶯鶯傳>이 元 자신의 이야기이며, 원래 進士와 妓女의 연애소설인데 작자가 과거에 낙방한 선비와 명문규수의 애정고사로 완성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텍스트 자체에 근거하여 장생과 앵앵의 이별의 과정에서 나타난 인과관계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장생이 과거에 낙방함은 이별의 원인으로써 논리상 이치에 벗어난다는 점이다. 장생이 과거에 낙방하여 앵앵과 멀어졌다기보다는, 만일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후 더 좋은 명문규수를 얻기 위해 앵앵을 버렸다면 이별의 원인으 로서 더욱 합당할 것이다.
둘째, 장생은 미인은 자신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으면 반드시 타인에게 재앙을 미치게 하는 법이라는 미명을 빌어 앵앵을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작품상에 앵앵이 타인에게 재앙을 미치게하는 미인이라는 뚜렷한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 두 사람은 각기 결혼한 후 장생이 그녀를 다시 만나길 청했을 때도 앵앵은 이미 남의 아내의 입장에서 단호히 거절하는 규수의 기질을 보였으며, 장생의 말대로 그녀가 남편
에게 어떠한 재앙을 미치게 했다는 얘기도 없다. 따라서 장생과 앵앵의 이별은 전술한 두 가지 원인으로는 설명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인과율의 결핍은 작가가 단순한 이별의 차원울 탈피하기 위해 조성한 인위적인 서사기교의 결과이다.
이상에서 제시한 살펴본 바, 전기 작품에서 보여주는 이별의 양상이 주인공들의 자의든 타의든 간에 우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자는 그러한 우발적 조짐이 가능하게끔 여러가지 사전 배치를 취해 두지 않았음이 발견된다. 사실상 남녀 주인공의 이별이 우연한 일이었든가 필연적이었든가 하는 문제를 떠나서, 그 두 사람의 만남에는 이별의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어떠한 가능성도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여기서 당대 작가들은 그러한 가능성을 필연적인 성분으로 수용하도록 인과율의 지배를 고려하지 않았음을 지적할 수 있다.
【 B 類 】
전술한 A류와 달리 전기 작품 중에는 (만남―이별―만남)의 유형도 나타난다. 남녀관계에서 맨 처음 충돌이 없던 만남의 상황에서 갈등이 일어나 이별을 하게 되고, 다시 그 이별로부터 야기된 갈등이 해결되어 만남이 이루어진다. 작품 속의 남녀는 아무런 조건이 전제되지 않은 순수한 연애 감정에서 출발하여 본인 자신의 의지와 잘못보다는 타인이나 혹은 다른 상황적 원인에 의해 고난을 겪고 마침내 이별에 직면하게 된다. 그들을 이별의 상태에서 다시 만남의 상태로 옮겨가자면, 작자의 또다른 원인과 결과의 연결쇄가 필요하다. 단지 남녀주인공들이 서로 사랑했기때문에 사랑을 찾으려고 몸부림쳤으며 그 결과 사랑의 승리를 얻어냈다는 사실로만은 온전한 사실성을 찾아내기가 힘든 것이다. 그래서 <離魂記>와 같은 작품에서는 순전한 남녀주인공의 의지를 통해, <李娃傳>과 같은 작품에서는 여주인공의 改過遷善을 통해, 그리고 <柳氏傳>이나 <無雙傳>과 같은 작품에서는 먼저 남녀주인공의 의지를 그 원인 제공의 실마리로 삼고, 다음 단계로 제3인물을 등장시켜 주인공 남녀로 하여금 재회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의 이별은 완전한 이별이 아니고 다시 만남을 위한 과정으로서의 이별이므로, 작가는 이별의 상태에서 연출되는 남녀주인공들의 의지를 통해 그들이 다시 만남에 있어 보다 확실한 계기를 부여하고 있다. 때문에 (만남―이별)의 유형에서 보다는 훨씬 우연성이 감소되어 나타난다.
<離魂記>의 왕주와 장천랑은 서로 사랑하지만 천랑 아버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별하게 되나 천랑은 왕주에게 도망한다. 두 사람은 타향에 가서 5년을 살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와 보니 천랑의 육신은 병든 몸으로 누워 있었다. 즉 생사를 초월한 천랑의 이혼이 왕주를 따른 것이다. 결국 두 영혼이 합쳐져 천랑은 깨어나고 40여년간 행복하게 살게 된다.
<李娃傳>의 형양거족의 아들은 과거를 보러가는 도중 창
녀 이와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매혹되어 여비를 탕진한다. 그 후 그는 이와 모녀에게 버림을 받고 걸인이 되나 다시 이와의 구출을 받아 과거에 급제하고 이와와 정식으로 결혼한다.
<柳氏傳>의 한익은 친구 이생의 미희 유씨를 얻었으나, 번장 사타리가 그녀를 탈취하여 이별의 아픔을 맛본다. 그러나 후에 협사 허준이 사타리로부터유씨를 뺏어다가 한익에게 돌려준다.
<無雙傳>의 무쌍은 난세를 만나 가산을 몰수당하고 궁녀로 들어가 선객과 생이별을 하게 된다. 그러나 선객의 무쌍에 대한 애정은 죽어도 변치 않았으며, 마침내 고생을 만나 그의 기이한 방법으로 무쌍을 구해내어 선객과 무쌍은 재결합을 한다.
이상 대표적인 작품들의 구조를 정리하면 (만남―이별―만남)이 된다. 그러나 재삼 사건의 원인과 동기라는 측면에서 인과율을 따진다면 역시 우연성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李娃傳>의 이와는 처음에 애정의 가치를 뒷전으로 미루고 육체적 쾌락과 상대방의 돈만을 좇는 기생이었으나 후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형양아들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한다는 점은 논리상 무리가 없다. 그러나 기녀의 신분으로 형양공의 아들을 유혹하여 하여금 여비를 탕진케하고 간교한 술책으로 그를 따돌렸던 이와가, 어느 날 갑자기 거지로 전락해버린 형양공의 아들을 다시 만나게 되고, 그를 보살펴 출세시킨다는 사실은 지나친 논리상의 모순점을 안고 있다. 이와가 남주인공과 이별한 뒤, 타락한 남주인공이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 거지가 되어 그녀집 문을 두드려서 그녀와 다시 상봉한다는 것은 극적인 동시에 지극히 돌발적인 장면이다. 또한 그녀는 상대방을 버리고 난 뒤 조금도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사전에 자신이 버린 남주인공을 향한 일말의 그리움이나 다시 그를 찾으려는 과정이 전혀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돌연 잘못을 뉘우친다는 점은 역시 자연스러움이 결여된 偶
然性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함을 지적할 수 있다.
특히 <離魂記>.<無雙傳>등 작품의 구성은 지극히 사실적이지 못하다. 소위 애정소설에서 강조되는 정조는 사실상 남녀가 다같이 지켜야할 미덕이다. 그런데 당대는 유교사상의 테두리 속에서 단지 여성들에게만 수절을 강요했을 뿐 남성들은 일부다처주의를 주장하며 방탕한 생활을 했던 시기였다. 그러한 상황 하에서 사대부의 신분인 남주인공이 여주인공 하나만을 절대적으로 추구한다는 사실은 차치하드라도, 자신의 아내가 납치 당하여 이미 자신의 정조를 지키지 못하였음은 자의였든 타의였든 불문하고 당시 상황으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의 남주인공은 이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補江總白猿傳>에서는 남주인공이 자신의 아내가 괴물에게 겁탈당해 낳은 자식까지 기른다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설사 작품 속에 주인공의 의지가 아무리 여실히 묘사되었다고 해도 논리적 비약을 통한 우연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2) 危機와 反轉
危機(crisis)라는 말은 극적인 반전을 가져오는 모멘트(moment)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소설에서 클라이막스를 유발하는 전환의 계기를 이루는 것이 곧 소설구성에 있어서의 위기이다. 더우기 전기는 초기적 문장구성으로 쓰여져 보다 복잡한 근대 이후의 문장구성과 달리, 위기에 있어서도 비교적 단순한 면모를 띠고 있다. 그러므로 위기가 소설의 전개과정에서 여러 번 반복되기보다는 주로 클라이막스 바로 앞에 설정되어 클라이막스를 가져오는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위기가 절정에 이르게 하는 단계로 극적 전환을 가져오게 하는 사실은 단편소설 형식인 전기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서사진행에 있어서 전기 작품들은 보편적으로 고난의 구조를 내포하여, (고난→위기→구출→반전)의 단계를 중심으로 급박하게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실로 유일한 흥미거리라 할만하다.
(1) 복선의 운용
위기와 반전에 앞서 토론해야할 대상은 바로 복선의 문제이다. 소설에서 하나의 사건을 그릴 때, 그 사건이 내적 . 외적 환경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해야만 그것이 완성된 사건 또는 극적인 사건을 이룰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작자는 철저한 복선을 깔기도 하는데, 이는 사건 전개시, 사건과 사건과의 필연성 내지는 가능성을 주기 위한 암시선을 말하는 것으로 우연성을 배제하기 위한 기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기 작품에서는 그러한 복선의 효과를 충분히 살리고 있음이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전기의 많은 작품들이 사건전개의 리얼리티를 획득하지 못한 채 더욱 우연성에 의지하여 '불완전한 복선→ 위기→ 반전'의 양상을 띠고 있다.
특히 무속이나 꿈의 예시 등에 근거한 복선의 형태는 인과율에 의거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을 지는 모르나, 아무래도 비사실적이고 우연적이다.
<任氏傳>의 예를 보자. 작품에서 임씨는 본시 아름다운 여자의 탈을 쓴 여우였는데, 정생이라는 남자를 유혹하여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 후 정생은 임씨를 잊지 못하던 중에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녀가 여우라는 요물임을 알면서도 함께 살길 청하였다. 둘이 아무런 문제 없이 행복하게 살던 어느 날, 정생이 무관으로 채용되어 한 달 정도 출장을 가게 되자 임씨와 같이 지내지 못함을 참지 못하여 그녀를 데리고 같이 가려고 하였다. 그 때 임씨는 이를 거절하여 말하길,
"어떤 무당이 그러는데, 제가 올해는 서쪽으로 가면 이롭지 못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가고 싶지 않을 따름이에요."
라고 하였다. 임씨가 무당의 말을 빌어 한 언급는 곧 복선으로서 앞으로 닥칠 위기를 암시하였다. 결국 무당의 예시대로 그들이 서문을 지날 때 길에서 개를 만나게 되고, 임씨는 그 개들한테 물려 죽고 말았다. 여기서 무당의 예시가 죽음의 위기를 앞둔 복선이라 하기에는 논리적인 모순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작자는 작품의 결말에서 임씨가 폭력을 당해서도 절개를 잃지 않고 남편을 위해 죽음도 사양하지 않음을 찬양하고, 정생이 주도면밀치 못하여 임씨의 미색만을 좋아했을 뿐 그녀의 性情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은 바를 지적하였다. 그러나 소설 전체의 내용을 볼 때, 주인공 임씨는 여우가 둔갑한 요물로서 매우 지혜롭고 꾀많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녀의 남편인 정생 역시 그녀가 요물임을 알고도 미모에 반하여 함께 살기를 자청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지혜로운 요물인 임씨가 겨우 한 달 정도의 출장에 남편과 동행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것과, 자신의 아내가 요물인 줄 알면서 그러한 조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사실은 논리상 납득이 어렵다. 때문에 임씨의 죽음을 사전에 암시하려는 일환으로 돌연 무당의 예시를 제시함은 복선의 표면적 단계에만 그쳤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후반부에서는 임씨가 죽은 후 정생은 총감사가 되어 돈을 많이 벌었고 말은 10여 필이나 먹여 길렀으며, 예순 다섯의 나이에 죽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임씨가 죽은 것은 전적으로 미색에만 탐했던 정생의 과오인데, 거기에 따른 괴로움의 결과로서 오히려 부귀와 장생을 얻게 되었다는 것은, 그 인과관계가 지나치게 결여되어 반전으로서 원인으로 극히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처럼<任氏傳>에서 보여준 복선은 위기의 바로 앞에 설정되어 작품 구성의 미숙함을 보였으며, 위기에 이어진 반전 역시 인과관계면에서 적절히 처리하지 못했음을 발견 할 수 있다.
< 小玉傳>의 남주인공 이익과 여주인공 곽소옥은 서로 장래를 약속한 사이였다. 그러나 이익의 일방적
인 절교로 말미암아 곽소옥은 몸져 눕고 만다. 이때 협사가 나타나 이익을 강제로 소옥한테 데려다 주니, 이로써 고사의 위기가 전개된다. 그 전날 밤 소옥은 황삼을 입은 남자가 이생을 안고 자기로 하여금 그의 신발을 벗기게 하는 꿈을 꾸고 나서 스스로 해몽하기를,
"신발이란 화합하는 것으로서 부부가 다시 만나는 거에요. 그리고 벗긴 것은 나누는 것으로서 만났으니 헤어지고 이것은 또 영원히 이별하는 거지요. 이렇게 판단해 보면 틀림없이 그이와 마침내는 만나게 되고 만나 보고 난 다음에는 죽게 되는 것이에요."
라고 하였다. 소옥의 해몽은 곧 소설을 위기로 몰고 가는 일종의 복선이며, 결국 소옥의 꿈이 예시하는 바대로 소옥은 이생을 마지막으로 만나고 숨을 거두고 만다. 이처럼 꿈을 통해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암시하는 소설 작법상의 기교는 전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꿈이 현실에서 드러나는 형태는 자의에 의하기 보다는 주변 상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여주인공 소옥은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꿈이라는 틀 속에 끼워맞추고자 하였으며, 해몽 역시 결코 논리적이지 못한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처럼 논리에 어긋난 복선은 우연성을 조장하는 또다른 요인이 된다고 볼 수 있다.
(2) 죽음의 위기와 구출
사람은 어느 누구든지 삶을 영유하는 동안 여러가지 곤란을 겪게 된다. 전기작품 속에서 주인공에게 닥치는 위기는 이러한 인간현실의 차원에서 확대되어 지극히 운명적이며 상식적으로 벗어나기 어려운 심각한 상황에 봉착한다. 이러한 위기와 반전의 형태는 대개 죽게 된 사람이 뜻하지 않게 구출자를 만나 위기에서 벗어나는 유형, 이를테면 자살을 기도하다 다른 사람이 말려 죽음을 면한다든지 <枕中記>, 물에 빠져 사경을 헤메다가 구출되어 살아난다든지 <謝小娥傳>, 매를 맞아 다 죽게 생긴 사람이 구출된다든지 <李娃傳>, 사형을 당하여 죽은 사람을 살린다든지 <無雙傳>, 신변에 닥친 협박을 지혜롭게 처리한다든지 <柳毅傳>, 등과 같은 소위 '絶處逢生'의 유형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밖에도 악한이나 괴물에게 납치되었다가 탈출하게 된다든가 <柳氏傳>.<補江總白猿傳>, 신기한 보물을 빌어 위기를 모면한다든가 <寶鏡記>등 기타 유사한 유형들이 각 작품에 나타난다. 특히 前者의 서사진행과정에서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 생사를 다투는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뜻밖의 구원자를 만나서 목숨을 건지게 되는 위기와 구출, 그리고 그러한 고난으로부터 오히려 轉禍爲福의 결과가 도래하여 반전으로 이어지는 유형은 많은 작품을 통해 쉽게 접할 수가 있다. 이러한 양상은 전기 작품의 전반을 통하여 돌발적인 우연성을 더욱 배가시키는 중심적 유형이라 할 수 있다.
<謝小娥傳>의 주인공 소아는 아버지와 남편이 한꺼번에 도적들에게 죽음을 당하고, 그녀 자신은 강물 속에 던져진다. 이때 그녀는 가슴에 상처를 입고 다리도 부러진 채 강물에 표류했으나, 마침 다른 배에 의해 구출되어 하룻밤을 새우고 나서야 다시 살아난다. 소아의 회생은 복수심으로 이어지고, 이공좌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꿈 속의 계시를 해석하여 복수에 성공한다. 이처럼 주인공이 절망적 위기에 봉착했을 때, 거의 예외없이 돌연 제3의 인물이 등장하여 주인공을 대신하여 문제
해결에 앞장선다. 이로써 위기는 해제되고 주인공으로 하여금 새로운 반전의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枕中記>의 위기는 주인공 노생이 벼슬이 높아지고 공이 많아 명성이 높아지자 당시 재상들의 시기로 말미암아 폅적되고, 다시 동료들이 그가 변장과 밀통하였다고 무고하여 그만 감옥살이의 신세가 되자, 자살을 기도하는 장면으로치닫는다. 그 후 천자가 노생의 억울함을 알게되어 다시 그에게 벼슬을 주어 그가 공을 세우고 가문을 번성시킨다는 반전으로 이어진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위기와 반전의 전개 방식은 모종의 인과적 단계를 일체 거부한 채 연속적으로 이어져, 분명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로 하여금 긴장감을 충분히 느낄 겨를도 없이 반전으로 몰아가고 있다. 다시 말해 소설 작품이라기보다 마치 그 줄거리를 서술하고 있는 것처럼 위기와 반전 사이에 있어야할 구체적인 연결고리가 없다. 소설에 있어서의 재미가 그 문학 양식의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때, 이같이 위기와 반전의 급박한 연결은 소설의 우연성만을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無雙傳>에서 선객이 무쌍을 잃고 고심할 때, 어느 날 갑자기 소문이 들리기를, 어떤 고급관원이 황제의 분묘로 가서 궁녀 한 사람을 처형한다는 것이었다. 그 궁녀인즉 바로 무쌍이라는 사실을 알고 통곡을 한다. 그 때 고생이 나타나 거의 숨이 끊어진 무쌍을 구해와서 약을 먹여 회생시킨다. 그 후 선객과 무쌍은 함께 도망하여 해로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 등장하는 보조인물들이 살해되거나 자결하는 모습은 지나치게 과장되어 인과율에 벗어난다.
<柳氏傳>의 한익은 유씨를 사타리에게 빼앗긴 후 시름에 잠기게 된다. 그 때 마침 술자리에 초대를 받고, 거기서 힘센 장수인 허준을 만난다. 허준은 한익의 사연을 듣고 곧장 사타리의 집에 뛰어들어 유씨를 구해서 한익에게 데려다 준다. 그리고 희일이 천자에게 글을 올려 사타리의 만행을 알려서, 그 결과 유씨는 한익에게 돌
아가고, 한익은 그 후 여러 차례 승진을 하여 벼슬이 중서사인에 이른다. 이 작품은 전기 작품 중 내용상 거의 실화에 가깝다고는 하지만, 구성상으로는 여전히 우연성을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傳奇의 '危機→反轉'의 구조에서, 주인공이 위기로부터 구출됨은 단순히 구출되었다는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여, 위기를 극복함으로써 이성 간의 결연이나 입신양명의 과업을 성취하게 된다는 반전으로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결국 위기와 반전의 연결이 운명적 또는 예정조화적이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전기 작품 속의 주인공은 어떠한 경우에 처해도 구출되게 되어 있다. 그것은 주인공의 노력에 의해서라기보다 타고난 운명에 기인하는 것이다. 또한 주인공에게 위기를 조장한 사람은 벌을 받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위기에 빠진 주인공을 구출하는 인물은 주로 武人으로 구성된다. <無雙傳>의 고생, <柳氏傳>의 허준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는데, 이는 현실적 역량이 부족한 文人으로서 시종 義氣가 넘치는 武人을 통해 자신의 무력감을 해소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더욱이 소설이 처음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등장인물들의 변하지 않는 성격과 그 운명적인 사건들이 끌고 가는 스토리는 아무래도 우연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상에서 열거한 예들은 사실상 전기가 가진 위기와 반전의 단면도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더 나아가 소설적 의미로 해석할 때, 이는 작자와 독자 간에 이루어진 무언의 계약이라고 할 수 있다. 위기에 빠진 사람이 가까스로 구출되어야 독자는 비로소 긴장감과 흥미로움을 가지고서 기대했던 결과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물론 작품의 주인공이 위기에 빠지기는하지만 쉽사리 굴복하여 죽지않는 것이 일반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으나, 그보다 앞서 선량한 사람은 아무리 극한 상황에 처할지언정 쉽사리 죽지 않는다는 것은 실재한다고 인정하는 일종의 도덕적 당위성에 그 근거를 두고 있음은 부인
할 수 없다. 그러한 도덕적 당위성을 토대로 한 작가의식이 빗어낸 전기 작품의 위기와 반전은 단순구성의 형식을 띠면서도, 발단 이후의 사건과 위기 그리고 절정과 대단원을 향한 인과관계를 명확히 계산하고 전개시키지 못한 것이다.
3) 陰謀와 眞相
전기 작품 중 흉계나 음모는 갈등의 표출로서 필연적인 적대감없이 거의 유형적으로 일어난다. 예를 들면, 충신에 대한 간신들의 중상모략 . 남주인공을 미혹하는 미모의 여인 . 위기에 빠진 주인공을 구출하기 위해 벌이는 선의의 계략 등 거의 유형적으로 필연적 근거에 의하지 않고 작품 속에 전개된다.
<枕中記>에서 간신은 사건의 선두에 서서 하등의 양심의 가책없이 노생에 대한 중상모력을 실천에 옮기게 되고, 그러한 음모의 실행으로 인해 여지없이 노생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그러나 후에 모든 사건의 진상이 밝혀져 노생은 누명을 벗고 다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다. 이는 정치문제를 다룬 보편적 주제로서 작자가 간신들의 흉계와 음모를 통해 당시 정치상황의 어지러움을 여실히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주인공 노생을 향해 一次 . 二次 계속되는 간신들의 흉계와 음모 그리고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인과관계가 모호하다. 이를테면 그가 재상들의 모함을 받고 좌천되었다가 3년만에 다시 소환되었다고 하고, 또한 모반의 누명을 쓰고 유배되었으나 수년 후 천자가 노생의 무고함을 알고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노생이 어떠한 동기로 유배되었다가 소환되었고, 두 번째 유배되었을 때는 천자가 어떻게 그가 무고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가. 여기서 작자는 여하한 진상을 밝히지 못하고 단지 수년 후라는 시간적 배경만을 제시하고 있어, 논리적 단계에는 완전히 미치지 못하였다.
<李娃傳>의 기생 이와는 형양공의 아들을 유혹하여 함께 지내다가, 그의 주머니가 비게되자 그를 따돌리기 위한 계략을 구상한다. 그래서 함께 제를 올리고난 도중에 그녀는 그를 어느 사택에 데리고 가서 거짓으로 이모집이라 하여 잠시 머물게 한 뒤, 이와 자신은 집으로 돌아와 노파와 함께 떠나버린다. 이러한 이와의 음모는 지극히 의도적 발상으로 음모의 동기가 뚜렷하나, 그 음모의 와중에서 애정행위와 윤리의식의 갈등이 결핍함은 결
국 우연적으로 처리되었다.
<無雙傳>의 고생은 무쌍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을 벌이는데, 작자는 이러한 계략의 인과관계를 고생의 진술로써 설명하였다.
근자에 나는 모산 도사에게 묘약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약을 먹은 사람은 즉사하나 3일 뒤에는 되살아난다고 하여, 내가 그 약을 구하러 사람을 보내어 한 알을 얻어 왔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채빈을 궁중의 사자로 가장시켜 황제의 분묘로 보내어 무쌍이 역신의 딸이라는 이유를 붙여 이 약을 내려 자진하도록 시켰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은 황제릉으로 가서 내가 무쌍의 친척이라고 둘러대고 백 필의 비단을 주고 무쌍의 시체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작자는 여기서 시간개념의 모순을 보이고 있다. 즉 위의 예문에서 보다시피 모산도사의 묘약을 먹은 사람은 즉사하지만 3일 뒤에는 다시 살아난다고 고생은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무쌍이 묘약을 먹은 시간과 회생하는 시간이 이와 맞지 않다는 것이다. 무쌍이 그 약을 먹고 죽은 그날 밤에 고생에 의해 선객에게 옮겨지는데, 그녀는 죽은 뒤 3일이 경과하기는 커녕 그 날 새벽에 눈을 뜨고 다시 혼절한 뒤, 그 다음날 밤에는 완전히 회복을 한다. 이처럼 작자가 설정한 시간 책정의 착오는 소설에서 결코 리얼리티를 획득하지 못하고 결국 우연적인 성분으로만 이해될 수 밖에 없다.
<任氏傳>의 임씨는 신통력을 이용하여 위음이 흠모하는 조장군의 하녀를 병에 걸려 낫지 않게 해놓은 뒤, 무당을 매수하여 그 하녀를 위음의 집으로 데려와야 낫는다고 전하게 해서 위음으로 하여금 하녀와 통정하게 만든다. 나중에 하녀가 임신을 하자 하녀의 어머니는 급히 와서 다시 조장군에게로 데려 간다. 이렇게 어렵게 성립된 위음과 하녀의 관계는 아무런 갈등없이 불장난에 그치고 만다. 이러한 임씨의 흉계는 심각한 당위성을 띠지않고 있으며 단지 위음의 정욕만을 만족시켜주는 역할만을 할 뿐이다. 이는 필시 작가가 단순히 임씨의 신통력을 보이기 위한 의도에서 파생된 우연적 요소라고 볼 수 있다.
4) 誤解와 判明
전기에서 우연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분의 하나로 오해를 들 수 있다. 오해는 본래 소설 창작기교 중의 하나이다. 작자는 오해의 수법을 이용하여 그 오해가 판명되는 과정을 통해 등장인물의 심층심리를 더욱 진실하게 묘사하고, 나아가 독자들로 하여금 긴장감과 초조감을 일게 만든다. 전기 작품에서도 이러한 오해의 요소가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馮燕傳>이나 < 小玉傳> 등에 잘 드러나 있다.
<馮燕傳>의 풍연이 장영의 부인과 밀회를 즐길 무렵 장영이 들어닥친다. 그러자 풍연은 급히 몸을 감추었고 장영 또한 취한 상태였으므로 그를 발견하지 못한다. 이 때 풍연의 두건이 배개 밑에 떨어져 장영의 부인에게 집어달라고 하자 부인은 곁에 있는 칼을 집어 준다. 이에 풍연은 칼을 받아들고 그녀의 목을 쳐 죽이고 만다. 여기서 일련의 오해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먼저 장영부인이 풍연에게 두건 대신 칼을 집어준 것은 즉 장영을 죽여달라는 암시였고, 동시에 그를 죽이고 자기와 함께 살자는 의도가 다분히 내포된 행동이었다. 그러한 행동이 도덕적 시비를 떠나 그녀로서는 풍연에게 처절한 구애를 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장영의 부인은 풍연이 마땅히 자기 남편을 죽여주리라는 그릇된 오해를 한 것이며, 설마 자기를 죽이리라고는 미처 생각치 못한 일이었다. 반면 풍연은 그녀의 모든 행동을 단지 자신의 남편을 살해하려는 비도적적이며 사악한 행위로만 간주하고 이에 분노하여 그녀를 죽이게 된 것이다. 그 후 그녀의 죽음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또다른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이웃사람들은 그녀를 장영이 죽인 것으로 오해하여 장영을 잡아 관청에 넘기어 결국 사형에 처하게 만든다. 이 때 풍연이 나타나 자수함으로써 진상이 밝혀진다.
<馮燕傳>에 나타난 이러한 오해는 상대방의 성격이나 상황에 대해 확실히 파악하지 못함에서 출발하여, 전혀 생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작용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소설 속의 오해는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역시 어느 정도의 오해가 성립될만한 요소가 사전에 제시되어야 한다. 여기서 장영의 처를 장영이 죽였다는 이웃 사람들의 오해는 앞서 장영이 자신의 아내가 외간 남자와 통간하였다고 여기고 그녀를 구타하였다는 사실을 보임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틀림없이 장영이 그녀를 죽였을 것이라는 오해가 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런데 풍연과 장영의 아내가 상호 연출하는 오해는 지나치게 순간적이므로, 오해라기보다는 마치 혼동이나 착각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작품의 전반부에서 풍연이 의기가 넘치는 호걸이라는 사실 외, 사전에 서로 오해할만한 어떠한 요소가 전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우연으로 밖에는 해석이 되지 않는다.
< 小玉傳>의 이생은 몇번이나 결혼을 하지만 죽은 원귀의 화로 인해 백년해로를 못한다. 이생은 첫째 부인 노씨에 대한 의심이 생겨 점차 부부 사이가 점차 소원하게 되었는데, 후에 노씨가 다른 남자와 사통한다고 오해를 받을만한 단서가 나타나자 노씨 역시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이생에게 내쫒기고 만다. 이처럼 이생은 자기가 만나는 부인에 대해 번번이 시기를 하여 세 번이나 아내를 맞이하였지만 모두 다 같은 결과로 끝이 났고, 심지어 그와 함께 했던 첩이나 시녀 중에는 이생의 질투와 시기로 빗어진 오해로 말미암아 죽음까지도 당한 자도 있었다. 이와 같이< 小玉傳>에서의 오해는 주인공 이생이 자기 부인이나 첩에게 품는 일종의 의처증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작품상 창작수법으로서 오해는 그러한 오해를 일으킬만한 요소가 사전에 전제되어야 하고, 또한 오해가 판명되면서 기존의 사건에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小玉傳>에서 운용된 오해의 수법도 이러한 효과를 충분히 살리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내면에는 역시 우연성이 짙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이생이 부인이나 첩에게 갖는 모든 오해가 곽소옥의 원한으로 빗어진 것이라는 오해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이생은
이전에 소옥이 저주한 바대로 한시도 부인이나 첩들을 편안히 두지 못한다. 그러나 소옥이 죽으면서 이생을 저주하고 이생이 몇 차례나 혼인해도 해로하지 못한다는 원인과 결과의 중간단계에는 충분한 반전의 가능성이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즉 작품 속에서 이생은 소옥을 배신했다는 큰 죄를 지었지만, 소옥이 죽은 후 이생은 그녀를 위해 상복을 입고 조석으로 슬피 울며 자신의 잘못을 심각히 뉘우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자 소옥의 혼령이 나타나 그에게 모욕을 당하면서도 전송을 해주는 그의 정성에 감탄했다고 말하고 사라진다. 비록 소옥이 이생에 대해 원한을 품고 죽었지만 이러한 원인과 결과의 중간단계를 통해 이제 소옥이 이생을 용서하고 그 원한을 풀었다고 여기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옥의 원귀가 다시 이생에게 처절한 복수를 전개함은 우연적인 사건전개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
둘째, 소옥의 원귀가 이생으로 하여금 자신의 부인이나 첩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만드는 데에 있어, 그 오해하는 과정이 지극히 일상적이므로 귀신의 조화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해의 소지는 분명히 들어나 있으나 그 오해가 전혀 판명되지 않는 점 또한 우연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요컨대 전기 작품에 나타난 우연성을 개괄적으로 고찰하고 이를 간단히 귀납하여 논한다면, 다수의 전기 작품은 근대적 의미의 단편소설 중 단순구성의 압축성(compression) 에는 비교적 근접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작품구성이 반드시 지녀야 할 교묘성(ingenuity) . 필연성(necessity) 등의 성분은 상당 부분 결여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까닭으로 전기 작품은 근대소설에서 중시되고 있는 치밀한 인과관계와는 달리 작품 속의 사건전개가 다분히 우연적 성향으로 처리되어 있다는 것이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4. 현실성을 반영한 偶然性의 기능과 美學
본장에서는 전기에 나타난 우연성을 인과율에 어긋난 작가의 창작역량 결핍에 기인한다는 일차적 사고에서 탈피하여, 보다 긍적적인 측면에서 그것을 하나의 문학 기교로 인정하고, 그러한 우연성이 소설적 특성으로서 전기 작품 속에 다양한 형태로 내포되어 있다는 당위성을 제고하고자 한다.
전기 작품의 서사진행의 과정에 보이는 우연성의 양상은 앞장에서 이미 인과율에 의해 여러 밝혀낼 수 있었다. 과학적 사고를 중시하는 근대 이후 작가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과율의 통제에서 벗어난 전기의 우연성은 응당 배제되야할 성분으로 단정될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제2장에서 이미 밝혔듯이, 현실 속의 여러 사건들이 많은 우연성을 지니고 있고, 소설이 가변적인 인간생활을 반영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소설에서 우연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소설에서 어떤 우연적인 동기를 부여하지 않으면 사건의 창조나 서사진행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전기 작품의 우연성을 단순히 사건의 비론리적인 것으로 해석하거나 리얼리티를 감소시키는 저해 요소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그것이 소설창작에 필수불가결한 성분으로서 작품 속에 미치는 효과가 무엇인지를 아울러 규명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전기 작품을 중심으로 우연성의 성질과 기능을 검토한 후, 그것이 지니고 있는 美的인 기준 내지는 근거를 살펴보기로 한다.
1) 전기작품에서의 우연적 기능
소설에 있어서 우연성의 성격은 어떠하며 전기작품의 사건전개에 왜 우연성을 필요로 했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1) 사건구성의 용이성
소설은 이야기로 되어 있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우연적인 것에 의한 사건들로 집약된다면 소설에서의 우연성은 사건의 중요한 계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우연을 필연과 연속체로 보지 않을 수 없다는 데서, 소설에서의 우연성은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예를 들면,<李娃傳>의 이와가 그 날(時間) 그 장소(空間)에서 형양공의 아들과 만난 것은 우연한 일이었다. 그러한 우연적 사건으로 인해 그들의 관계는 성립되고 이로부터 모든 사건은 조직된다. 이처럼<李娃傳>뿐 아니라 많은 전기 작가들이 작품구조상 우연적 계기로서 사건을 조직하고, 우연의 힘을 빌어 사건을 진행시키는 경우가 허다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바로 우연성이 사건을 꾸미는 요소로서 가장 편리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2) 인생의 개별적 표현기능
소위 우연성은 '저절로 갖추어진 사물의 성질'로 정의할 수 있는데, 그러한 의미에서 自然性과 같은 맥락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설이 우연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은 비록 그 주제가 동일한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해도 사건에 있어서 만큼은 예외성 . 개별성을 지니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연성이 전기 작품에 용해되어, 여러 동일한 유형의 작품들이 주제면에서 대부분 통일성을 보이고 있으나, 작품의 구조 . 남녀 주인공의 신분과 성격 . 작품의 체제 및 스토리의 결말 등 작품구조와 작중인물에 있어서는 각자 다른 개별성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고대소설인 전기의 우연성은 개별성에 근거하여 구체적 인생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운용되었는데, 이는 삶 자체가 필연적인 것 뿐만 아니라 우연적인 경험을 배제할 수 없는 본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3) 시간의 현재적 기능
우연은 사건진행 중 자연히 발생하는 것이므로 그 원인이나 동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떠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미래 역시 우연성에는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다시 말해, 우연적인 사건은 과거의 일이 아니고, 미래의 가능성도 아니며, 오직 현재의 일을 가르킨다. 그러므로 사건이 우연에 의존하는 것은 소설이 늘 현재의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전기 작품에서 우연성이 두드러진 이유 중 하나이다. 대부분 전기 작가들이 작품의 후반부인 議論에서 과거의 사실에서 취재한 바를 밝히고 있다. 이처럼 작품제제가 완전한 과거임에도 불구하고 우연성을 띨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사건의 시제가 어떠하든지 간에 현재의 감정이나 판단으로 표현되는 소설의 특수성에 기인했기 때문이다.
2) 전기에 보이는 우연성의 미적 요소
소설 속의 사건이 우연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그러한 우연성을 전기 작품이 수용할 수 밖에 없었던 당위성을 그 기능측면에서 이미 대략적으로 지적하였다. 그러나 소설이 예술의 한 양식으로서 미적 여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에서 볼 때, 우연성의 미적 요소 또한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대상일 것이다. 만일 우연성이 미적인 것과 전혀 무관하다면 그것이 비록 소설의 구성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해도 단지 작품구성의 기능적 역할만을 담당할 뿐 그 이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단정지을 수 있다. 따라서 우연성이 지니고 있는 미적요소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 역시 그것이 가진 기능만큼이나 규명할 만한 가치가 대두된다. 전기 작품에 나타난 우연성의 미적 요소를 여러 방면으로 간추려보면 아래와 같은 형태가 있다.
(1) 우연성 자체의 미적 효과
우선 우연성은 그대로가 일종의 미적 양식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술한 개별성 . 예외성은 우연성의 성격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지닌 신기한 특성은 일종의 미적 요소로 보기에도 충분하다. 그리고 우연성은 대개 돌발적으로 발생하는데, 예를 들면 전기 작품의 서사진행 과정에서 주인공들에게 닥치는 우연적 사건들은 예기치 않는 운명 전환의 도구로 사용된다. 행복이 극단화 되었을 때 돌발적으로 고난이 닥치고, 생사를 다투는 위기적 상황에서 돌연 구조자가 나타나 새로운 운명의 길을 열어준다. 여기서 독자들은 경이감을 맛본다. 본래 美가 경이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경이감을 유발하는 그러한 돌발성 역시 미적 요소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개별적 . 예외적 . 돌발적 성향은 우연성의 성격이면서 그 자체가 미적 형식이다. 결국 우연성에서 비롯된 미적 형식이 신기함과 경이감으로써 고사의 미적 내용을 조성하는 것이다.
(2) 공간배경의 자유
대부분 전기 작품에서는 왕조나 연대를 표시하고 구체적인 지명까지 설정해 놓았지만 소설의 인물과 사건 . 분위기를 뒷받침해 주는 본격적인 역할과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면, <補江總白猿傳>의 배경은 양나라 대동 말년 경 조정에서 평남장군 이흠을 파견하여 남쪽 지방을 정벌토록 하고 계림과 장락에까지 평정하는 것로 설정되어 있으나, 그러한 배경은 큰 역할은 못하고, 다만 백원이 은거하는 깊은 산중이 작품의 주요무대가 된다. 또한 <枕中記>.<南柯太守傳>등에서는 현실과 꿈속을 배경으로 하여 두 세계가 상호 교차되었고, <長恨歌傳>에서는 인간세상과 신선세계를 배경으로 넘나들었으며, <柳毅傳>과 같은 작품에서는 용궁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만남에 있어서도, 서로 아주 먼 거리에 있지만 만날 때는 쉽게 만날 수 있고, 또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하는 먼거리로 나타낼 때도 있다. 이러한 것은 공간적 배경이 전기에서 중요한 역할은 하지 못하는 것으로 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우연의 힘을 빌어 시간과 공간적 배경의 제약을 받지않고 자유롭게 토로함으로 인해, 독자들은 시공을 초월하는 神奇性과 아울러 전기를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3) 창작세계의 오락성
당대의 초중기는 국제적인 무역과 운하 및 교통의 발달로 인해 경제력이 크게 향상되고 백성들의 생활은 안정을 찾아 태평성세를 이루었다. 당대 전기의 묘사대상도 귀족으로부터 상인 . 공인 . 협사 . 창기 등, 일반 평민생활에까지 확대되었는데, 이는 전기가 당시 경제 사회적 측면에서 서민계급의 확대에 따른 불가분의 관계를 갖게되면서 생성된 변화이다. 이러한 추세로 자아각성과 인권신장과 더불어 문학에 있어서도 보다 더 많은 쾌락을 추구하는 상황이 나타나게 되었을 것이고, 전기 작품에 있어서도 오락적 요소를 배제했을 리 없다. 여기서 작자는 불가능의 세계에서 가능의 세계로 연결한다거나 주인공의
운명을 결정하고 혹 역사를 좌우하는 사건을 묘사하는 서사진행의 적절한 방법으로서 우연의 힘에 의존하였고, 당시 독자 역시 인과관계가 분명해야 한다는 진실성의 추구하기 보다는 우선적으로 그러한 우연을 통한 작품세계의 흥미를 수용하는태도를 가졌다고 본다.
(4) 행동소설적 특수성
다수의 전기작품은 행동소설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인물의 성격이나 심리의 움직임 보다 사건 자체 혹 행동 자체에 관심이 쏠리게 하는 작자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른 바 행동소설의 플롯은 독자의 기대감에 일치하지 보편성에 일치하는 것이 아니며, 대체로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는 경향이 있다. < 小玉傳>을 비롯한 애정류에서는 많은 여주인공들의 죽음을 연출하고, 또한 살인도 예사로 감행된다. <無雙傳>에서 무쌍을 구하기 위해 10여명을 죽이고, 심지어 지괴류에 속하는 <柳毅傳>에서는 전당군이 화가 나서 60만명을 죽이고 조카를 배신한 사위를 먹어치우는 장면이 나온다. 에드윈 뮤어는 '행동소설에서는 작가는 제이의적 인물 중의 몇 사람을 중도에서 죽이는 것이 보통이다. 악인은 무더기로 죽어가고 선인도 파란 많은 한 시기를 넘어서 안온하고 부유한 생활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몇 사람 쯤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행동소설은 욕망의 幻想圖이지 人生圖는 아니다. 그러므로 행동소설의 이러한 특성을 지닌 전기 작품에 있어서도 이야기가 반드시 합리적으로 전개되야 할 필요가 없으며, 설사 인과율의 통제를 벗어난다 해도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으므로, 단지 행동소설적 경향으로서 우연성이 나타남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5. 結 論
지금까지 본고는 전기 작품의 서사진행에서 나타난 우연성을 시대와 작가의식을 통한 배경을 먼저 검토한 후, 실제 작품 속에 나타나는 우연성의 양상을 만남과 이별 . 위기와 반전 . 음모와 진상 . 오해와 판명 등 4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이를 인과관계에 촛점을 두어 서사구조의 비논리성을 지적하였다. 또 한편 관점을 달리하여 우연성을 전기 작품의 구조에서 차지하는 필수적 성분의 하나로 인정하고 이와 결부된 미적 요소를 규명함으로써, 전기가 지니고 있는 우연성의 당위성 내지는 그 가치를 재고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양면적 분석을 통해 본 전기의 우연성은 다음과 같이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부정적인 각도에서 비추어 볼 때 이는 전기가 당대 소설양식의 한계성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앞서 말했듯이 소설에서 우연성이란 서사진행에 있어서 근대 이후 많은 소설작가들이 중시하는 인과율에 어긋난 대표적인 성분인 것이다. 그러나 한편 우연성이 사건전개의 필수 성분이라면, 우연성이 생성하는 논리상의 자연스럽지 못함을 우연성 자체의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우연성을 자연스럽게 운용하지 못했던 당시 작가 역량의 한계성에 기인한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많은 전기 작품들은 자연스럽지 못한 우연성의 남용으로 말미암아 사건의 眞僞와 피상적인 세계만을 보여주고, 결국 리얼리티를 획득하지 못한 채 독자의 설득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둘째, 소설에서 우연성이 사건전개를 위한 필수적 성분이라는 긍정적 측면만을 강조한다면, 전기에 나타난 우연성은 인과율을 탈피한 구조의 중심축으로서 사건전개의 경이감을 조성하는 미적 요소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담당하였다는 것이다. 즉 전기의 '발단→ 전개→결말'의 서사구조를 우연성을 통해 비추어 보면, '우연적 인물의 만남→필연적 사건의 발생→우연적 인물 . 사건의 결말'의 또다른 구조로 가정할 수 있다. 이를 다시 압축하면 결국 '우연→필연→우연'이라는 인과
적 재구성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이 우연성에 근거한 구조형태를 '우연구조'라 전제한다면, 필자는 당전기의 '우연구조'는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볼 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기본적인 특성을 구비하고 있다고 본다.
인물의 심리변화와 사건 경과의 과감한 생략 ― 故事의 속도감과 역동성 획득
사건의 돌발성 ― 독자의 흥미유발
결과에 대한 원인의 부재 ― 독자의 상상력 유발
요컨대 전기의 우연성은 근대 소설작가들이 추구하는 인과율에 의해 내적으로 용해된 자연스러움이 강조되기 보다는, 우연성 그 자체가 외적으로 노출되어 스스로의 틀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전기 작품들이 '우연구조'라는 일종의 형태를 갖추었다는 사실은, 당시 작가들이 인과적 보편성에 벗어난 우연성을 이미 다분히 서사진행상 중요한 창작기교로서 인정하고 운용하였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우연성이 당전기의 하나의 흐름으로 형성되어, 가장 우연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라는 하나의 逆說도 성립된다. 즉 당대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史才 . 詩筆 . 議論 등 자신의 文才를 드러내려는 목적에 치중한 나머지 자칫 소홀하기 쉬운 흥미감을 우연성을 통하여 보완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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