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우리가 외부에서 막연히 보는 것과 달리 공학을 '대단히'중시하는 나라이다.(자연과학 그러니깐 기초과학은
지원이 약하다. 그래서 공학에 비해 차별이 심하다며 잦은 시위가 벌어진다) '대단히'보다 차라리 '도가 지나칠 정도로'
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그렇다고 다른 분야를 무시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철학과 문학, 과학과 예술이
일상에서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누구나 철학을 논하고, 과학을 말하며, 예술을 즐기는 사회이다.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에서 불어와 수학이 가장 중요하며,영어를 포함한 외국어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서 교육혁명 또한 시작되어, 나폴레옹에 의해 빠르게 추진되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기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찍 간파했던 포병장교 출신인 나폴레옹이 세운 공과대학들은 지금까지도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는 독일에게 패한 이유가 기술 때문이라고 판단하여, 드골 대통령을 중심으로 방위산업과
항공산업을 국가적 과제로 끈기 있게 추진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기술자들은 최고의 대접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그 전통
이 프랑스 사회에 이어져 오고 있다.
덕분에 프랑스는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이 생산하는 전투기의 성능이 미국에 대등하거나 심지어
더 우수하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는 비행기이기 이전에 예술품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프랑스에서 엔지니어란 말은 직종이 아니라 자격증을 말한다.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엘리트 공학계 졸업자가 취득
하는 학위가 엔지니어다. 영미식으로는 공학석사 정도에 해당된다.
프랑스에서 엔지니어라고 하면 부와 신분이 보장되는 엘리트계층이다. 한편 의사나 변호사는 한국,일본,미국에서와
달리 수입이 그리 높지 못하고 사회적 파워도 약한데, 이것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독특한 구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서 자영업을 하여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전문직이 사회주의 국가로 넘어와서는 많은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에서 탈세는 중범죄로 취급되기 때문에 개인 자영업자가 탈세를 지속적으로 자행하는 일은 절대로 허용
되지 않는다. (한국은 개인 자영업자들의 탈세가 심한편이다) 프랑스에서 탈세란 내란음모죄 정도에 해당되는 중범죄이
기 때문이다.
한편 라틴계 국가들은 논리보다 오히려 그들의 전통이나 가톨릭교회의 관습을 중시한다. 때문에 분쟁을 소송으로 해결하
려는 의지가 영미계 국가들보다 훨씬 약하다. 그러므로 변호사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는 선진국
중에서도 유독 변호사의 수가 현저하게 적은 국가이며, 그들의 신분도 높지 못하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누구나 '돈,돈,돈' 하면서 살고 있다. 우리 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점잖은 척하는 미국사람도 겉보기
와 달리 머릿속에서 가장 많이 생각하는 주제가 돈이라고, 한 여론조사기관이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노후연금이 보장되고,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모든 학비가 무료이며, 전국민의 의료보험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개인이 돈을 많이 벌어야 할 이유가 별로 없다. 그래서인가. 프랑스 사람들 대화에서 음담패설을
쉽게 들을 수 있어도 돈 이야기는 거의 없다. 프랑스에 살면서 돈을 이야기 한다는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음담패설을 하는
사람보다 돈을 화제로 삼는 사람을 더 점잖지 못하다고 보는 경향도 있다.
국민이 모두 게을러서 국가만 바라보고 있거나, 엄살이라도 부려 돈 타낼 궁리만 한다면, 사회주의는 당장 무너질 수밖에
없는 체제이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높은 도덕수준이 요구되며, 엘리트들의 기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여기서 노블레
스 오블리쥬가 나오며, 상류층으로 대접받으려면 사회적인 기여를 하라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엔지니어들이 누리는 사회적 신분은 특별하다. 특별하게 대우받는 만큼, 국민들이 고루 잘살게 하기 위하여
그들이 책임져야 하는 의무 역시 막대하다. 엔지니어 지원자 그러니깡 상위 그랑제콜인 에콜 폴리테크니크 지원자는
프랑스에서 공부를 가장 잘하는 엘리트 고등학생들이다. 이 전통은 적어도 1백년 이상을 내려오고 있다. 그들은 어떤
전공 학생들보다도 공부를 훨씬 잘하는 학생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부심도 대단하다.
한편 요즘 프랑스 과학자들이 가끔씩 정부지원의 부족을 성토하며, 시위중이라는 기사가 국제면에 나고 있다.
" 그렇게 이공계를 중시하는 나라인데, 왜 과학자들이 데모하는거지요? " 이것은 프랑스 정부가 엔지니어링에는 후하지만
기초과학에는 소흘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공학의 반란이 아니라 기초과학의 불만이 프랑스 사회에서 폭발한 것이다.
프랑스는 평준화 국가다. 그런데 이런 대학평준화 속에서 유일한 비평준이 있다 그것들을 여기에서 그랑제콜이라 부르며
그랑제콜에서 취급하는 학문은 프랑스 사회에서 곧 대단한 인정을 받는다는 소리가 된다. 그런데 그랑제콜에서 기초과학
이란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서만 다룰 뿐이다 거기다 여긴 기초과학 전문도 아니다. 의학같이 아예 그랑제콜에
서 취급도 안해주는 학문에 비해선 사정이 좋다지만 그래도 같은 배를 타는 공학에 비해선 형편없는건 사실이다.
프랑스는 정책도 실리형으로 하는 국가다. 그러다보니 20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프랑스는 노벨 물리학상,화학상등의
수상자들을 거의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원자폭탄,수소폭탄에 위성발사기술까지 가졌으니, 방위용 기초과학은
모두 갖추었다는 계산으로 투자를 안하는 것이다. 유전자 분야도 그들의 가톨릭 윤리에 위배되어서, 사회적인 제약이
강력하다. 예외가 있다면 수학만큼은 여전히 강하다.
프랑스 엘리트들은 한국과 같이 교수를 일방적으로 장래희망으로 삼지 않는다. 물론 프랑스 사회에서도 교수란 좋은
직업중 하나다. 하지만 한국과 비교시 주가가 훨씬 떨어진다. 교수의 장점은 긴 방학인데, 사회주의 국가인 프랑스는
일반 직장인에게도 휴가가 아주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직장이든 정년보장이 필요치 않고 대기업 사원들
월급이 교수보다 많어 당연히 교수가 그렇게 선호받지 못한다. 물론 학문 탐구가 인생의 진리인 엘리트들에겐 여전히
로망이다.
프랑스 사회는 어떤 부분에서는 자본주의 국가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공산주의 국가에 가깝기 때문에 평균하여 사회주의
라 볼 수 있다. 가령 국가가 유아들의 우유값을 지불하고 신학기에는 학용품값을 지불하여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교육비도 모두 정부가 감당해준다 심지어 가난한 사람에게는 여름휴가 무료쿠폰까지 정부에서 나온다 나는 프랑스에서
유학생으로 처음 왔는데 이때 나는 가난했다. 이때 프랑스 정부에서 나한테 여름휴가 쿠폰을 우편으로 넣어주더라
일정 수준 이하의 호텔에 3일 동안 숙박할 수 있고, 기타 비용도 모두 부담해줄 터이니 휴가를 다녀오라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집세도 국가에서 일부 부담해주기 때문에 가난한 세입자는 방세의 반만 내는데도 집주인은 방세가 밀린 세입자를
쫓아내기 어렵다 여기까지 따라온 독자들은 금세 공산주의 사회의 배급제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은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그저 안전한 직장에 취업해 직장생활에 출실하고 휴가를 다양하게 즐기면
서 사는 것을 최고의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취업만 되면'이라는 조건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기업이 사회보장기금을 크게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고용을
최소화하려고 한다. 바로 위에서 완벽한 사회보장제도 덕분에 프랑스가 마치 낙원인 것처럼 설명했지만,실업문제에 이르
면 지옥같은 사회이기도 하다. 실업률은 언제나 두 자리 수이며 단순한 아르바이트 자리도 하늘의 별따기다. 취직만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나라가 바로 프랑스다. 하지만 취업사정이 이렇게 열악한중에서도 그랑제콜 졸업생들은 졸업
후 1년이내 98%이상 취직하며 봉급도 일반 평준화 대학 졸업생보다 2~3배나 더 받고 시작한다.
그래서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학문이 그랑제콜에 없음에도 전공을 바꿔서라도 그랑제콜에 가려고 기를 쓴다. 프랑스가
국제사회에는 대학 평준화로 알려져 있지만 그랑제콜에 가기 위한 경쟁은 실로 엄청나다. 해마다 프랑스 언론들은
그랑제콜 인기순위와 졸업생 초봉을 발표하는데 1위에서 출발해 50위까지 내려가면서 월급이 거의 절반 이하 수준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프랑스는 사회주의국가이고 분배개념이 철저하여 어느 누구도 절대빈곤에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프랑스 직장인들은 이직을 잘 하지 않는다. 안정된 고용환경에서 얻는 부수적인 이익도 크고 사회주의 국가다보
니 국유회사나 공기업이 많은 탓이다. 그래서 메뚜기처럼 연봉을 쫓아서 자주 이동하는 한국, 미국과는 많이 다르다.
어찌보면 지극히 낙후된 관리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만큼 오랜 세월을 도제식으로 자기 일에 몰두하여 개발해
온 것이 그들만의 강점이라고도 할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