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
F. 홀뵈크 지음 / 남현욱 옮김
머리말
흔히 인간에게 있어서 "최후의 일들" (죽음, 심판, 천국, 지옥)이라고 이야기되는 문제들이 우리 시대에 와서는 얼마나 소홀히 취급 되고 있는가. 그것은 이제 별 문젯거리조차 못 되고 왜곡되고 있으며 세속적인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 인간의 종말에 대한 진지한 믿음이 흐려져서 그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으며 비웃음거리로까지 전락하고 말았다. "우리는 모두, 모두, 모두 천국에 갈거예요. 우린 너무나 선량하니까요."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어떤 유치한 유행가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으며, 마귀와 그 족속들에게 마련되어 있는 영원한 지옥 불의 뜨거움(마태 25,41 참조)이란 단지 극소수의 답답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공포의 영상 정도로 여겨질 뿐이다. 왜냐하면 이젠 사람들이 "마귀와는 무관함"을 선언하거나 마귀는 옛날부터 민간에 전승해 오는 흉칙한 허깨비에 불과하다고 여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은총 지위에 있는 상태로 죽은 이의 영혼이 죽음의 순간에 가벼운 죄나 일시적인 벌을 받을 일이 남아 있는 경우 죽은 후에 피 안에서 정화되는 과정을 치르게 된다는 것이 가톨릭 교회에서 명확히 규정하고 있는 진리로서 존속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죽은 사람들이 "연옥(Purgatorium)"에서 정화된다는 것은 거의 중시되지 않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그릇된 교회 일치주의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사람들은 그 문제에 대해 아예 입을 다물거나 의문을 제기하며, 죽음을 맞는 순간에 곧 하느님을 만난다"는 식으로 왜곡하여 표현하거나 공공연히 그 사실을 전적으로 부정해 버리기도 한다.
개신교 신학을 벗어나 가톨릭 신학을 살펴보기로 하자. 만약 오늘날, 인간 영혼은 불멸한다는 가톨릭 신앙 교리와는 모순된 주장, 곧 (육체 및 영혼을 면) 인간의 "완전한 죽음"을 내세우는 주장이 제기되어 신자들간에 퍼진다면, 실천을 중시하는 신자들은 대부분 사후의 생명을 믿지 않는다 현세의 신자들이 연옥 영혼 들을 도울 수 있다는 명백한 신앙 교리가 존재한다 해도 산 이들과 죽은 이들 간의 통공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내세의 정화 상태에 관한 진리와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또 기도해야 한다는 조력(助力)의 참된 진리는 오늘날 유감스럽게도 교회의 개정된 전례서에서조차 은총의 가장 작은 부문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실례를 들 수 있다. 지금까지는 "신자들의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평안히 안식하게 하소서!"라고 일상적으로 경건하게 기도했으나, 개정된 「성무일도(聖務一禱)」에서는 "고인을 위한 매일의 기도"가 빠지고 저녁마다 드리는 병자를 위한 기도의 마지막 대목에서야 죽은 이를 떠올릴 뿐이다. 개정된 장례식 전례서에는 내세 정화의 형벌, 즉 지금까지 우리가 "연옥"이라고 불러 온 것에 관해서는 상세하게 언급되어 있지 않다.
리옹 공의회 (1274년), 플로렌스(1493년)와 트리엔트 공의회 (1563 년)에서 언급된 내용들이나 교황 바오로 6세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교황들의 언명(言明)들은 이런 상태와는 아주 다른데, 곧 "하느님 백성의 신경"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라고 가르쳤다. "치러야 할 정화의 보속이 아직 남아 있든, 육신의 죽음과 동시에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든, 그리스도의 은총 속에 잠든 모든 영혼들은 하느님의 백성에 속하게 됨을 확신하며 죽음의 권세를 궁극적 으로 물리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영혼과 육신이 하나가 되어 부활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교황들의 이러한 언명 에 대해 현대의 어떤 신학자는 냉소적인 견해를 보이면서, "그것은 우리가 처해 있는 세계상(世界相)과는 다른 형상과 표상 모델들이 사용되고 있는 세계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세계상과 전혀 다른 세계상에 속해 있다는 이유 때문에 천국, 지옥, 연옥에 관한 계시적 진리들이 계속해서 포기되어야만 한단 말인가?
본서는 내세 정화(연옥)의 진리와 죽은 이들의 영혼, 즉 "불쌍한 영혼들"의 고통과 기쁨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그러나 돌보아 온 여러 벗들과 조력자들의 활동들을 우선 소개해야 될 것이다. 그중에는 성인 성녀와 복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교회의 공식적 언명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천국에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덕행으로 미루어 보아 진정으로 신뢰할 만한 성인들이며, 연옥 영혼들과 통공하는 가운데 "성인들과의 통공"이 진실하고 확고한 진리라는 것을 체험했거나, 그러한 진리가 주는 희열로 가득차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내세의 정화를 겪고 있는 영혼들을 기도와 자선과 보속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룩한 미사 성제를 통해서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었던 것이다. 수세기에 걸친 교회사 속에서 선별된 성인들과 성인품에 의합할 만한 거룩한 성도들이 연옥의 불쌍한 영혼들과의 통공에 관해서 언급해 왔다. 우리는 이들이 체험했던 것들을 여러 면에서 매우 신중하고 분별력 있는 태도로 파악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병적인 환상이나 환각 현상으로 간주해 버리는 것은 비그리스도교적일뿐 아니라 현실성이 결여된 태도이다. 우리는 이러한 성인들과 성덕이 뛰어났던 성도들로부터 연옥과 불쌍한 영혼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며, 특히 연옥 영혼들을 잊지 않고 돕는 일이 우리 신자들에게 부여된 거룩한 의무라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왜냐하면 내세의 정화라는 것이 결코 무고하게 겪는 사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1977년 3월 7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축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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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註)
1. 이를테면 번의 교의 신학자 그래사케 (G. Greshake)는 "죽음보다 더 강한 것, (Stärker als der Tod, 마인츠, 1976, 92면 역주: 심상태 역, 종말 신앙, 성바오로 출판사, 131년 참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연옥의 의미를 알려는 목적으로 특정한 장소나 특정한 시대, 또는 특정한 사건 속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없다. 또한 '불쌍한 영혼들'에 관해서 유치한 견해들을 피력할 필요가 없다. 다만 우리는 예로부터 가르쳐 왔고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가르치는 바, 연옥을 죽음의 순간 바로 하느님을 만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벨텐(St. Pölten)의 주교인 차크 (Fr. Zak) 박사는 1977년 사순절 교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연옥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거룩하신 하느님과 만나는 순간에 우리 자신에 관한 시각이 열리게 되고 우리는 진리의 인식 과정에서 무한한 고통을 겪지만 이 고통스런 정화를 거치면 비로소 하느님과 만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이다. '죽음의 순간에 하느님과 만 난다는 것'은 우리가 불속의 정화를 거치는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 것이 다. 그런데 이 말은 심판과 연옥에 관한 성경의 내용을 가장 잘 요약한 것이다." 이 러한 연옥론들이 과연 리옹, 플로렌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명백하게 밝혀진 연옥론 에 대한 언명들과 일치할 수 있을까?
1. G. K. Frank, Himmel und Hölle, Angste, Zweifel, Hoffnungen (Stuttgart 1970) 14 면 이하 참조
1. J. B. Heinrich와 C. Gutberlet 공저의 Dogmatische Theologie (Munster 1904) 제10 권 623장(579면 이하)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성인들에게 허락된 계시를 통해 연옥이 설명되었다 해도, 그러한 묘사들은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첫째, 교회의 승인이 반드시 그러한 계시의 진리성이나 객관적 진실성을 확증해 주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 승인의 의미는 단지 그 계시가 신앙의 본질에 반(反) 하지 않고 미풍 양속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일 뿐이다. 둘째로, 이러한 사적(的) 인 계시 속에는 의심할 바 없이 적어도 인간적인 요소나 순전히 자연적인 요소가 혼합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인들이 본 수많은 환영(幻影)들은 병적인 환각 현 상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의 근원이 같을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성인들이 특히 그러한 환각 현상을 일으킬 만큼 히스테리칼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지금에 와서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설령 성인들로부터 순전히 자연적인 요소들이나 어느 정도의 병적인 요소들을 들추어 낸다 해도 그들의 성덕(聖德)이 손상되지는 않을 것이다.. 연옥에 관한 계시들은 매우 순간적이고 비유 적인 성질을 띠고 있다는 것을 밝혀 낼 수 있다.. 그러한 계시들이 교의 신학상 완전히 합당한 것이고, 성자에 허여(許典)된 초자연적 은총의 선물이 다른 예언들을 통해 증명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객관적 실재 여부에 대한 의혹은 분명히 부당한 것만은 아니다."
피앗미희님이 카톡으로 보내온 글
첫댓글 연옥 영혼들을 잊지 않고 돕는 일이 우리 신자들에게 부여된 거룩한 의무라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왜냐하면 내세의 정화라는 것이 결코 무고하게 겪는 사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묵상합니다
저자인 **F. 홀뵤크(Ferdinand Holböck, 1913~2002)**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가톨릭 사제이자 신학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