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산등성이를 한가롭게 오르며 주위를 살피니 온통 녹색의 푸르름이 싱그럽다. 지저귀는 새 소리 하나 없이 고요한 산의 침묵은 천상를 거니는 듯 안온함과 나른한 평화를 자아낸다. 한 걸음 두 걸음 발길을 옮기는데 왼쪽에 잘 가꾸어 놓은 묘지가 보인다. 어떻게 저렇듯 정성을 들였는가 감탄하고 서 있는데, “자네 시댁 어른이 잠든 곳이네.” 하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바람처럼 일러준다.
푹신하게 밟히는 풀섶들이 연초록빛을 띄며 하늬바람에 한들한들 춤을 추고 있다. 묘소 뒤에는 푸른 소나무들이 다양한 모양으로 늘어져 잠시 쉬었다 가고픈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얼핏 볼 때는 몰랐는데 다시 눈여겨 보았더니 오른쪽 풀섶에는 원색의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인네들이 석유 풍로에 무쇠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먹음직스런 녹두전을 부치고 있다.
진초록 치마에 쪽빛 저고리를 입은 또 다른 여인이 부침개질을 하고 있었다. 그 여인에게 다가 가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물었더니, 시댁 어른이 돌아가셔서 장례식 음식을 장만하고 있다고 생경스런 목소리로 말해 주었다.
그런데 초상을 치르는 풍경이 이별의 정한을 삭이는 눈물겨운 정경이라기보다는 마치 한정지워진 삶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자유로이 승천하는 한 영혼을 축하하는 축제의 분위기처럼 보였다.
여자들은 한결같이 머리에 쪽을 찌고 있었고, 동백기름을 발라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문상을 가야 하겠기에 발길을 옮기는데, 또 허공에서 “자네는 문상 안 가도 되네.”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안 가도 되네.” 하는 말끝의 여운이 큰댁 형님의 목소리였다. 그래서 가던 길을 멈추고 먼 발치에서 초상집을 건너다 보았더니, 꽃이 만발한 커다란 수목들이 온통 집 전체를 가리고 겨우 지붕만 빠끔히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난 서 있던 자리에서 발길을 옮겨 서서히 내리막길로 접어드는데 눈부신 햇살 속에 수많은 민들레 홀씨가 허공에 현란하게 둥둥 떠다녔다. 나는 어찌 할 바를 몰라 그 꽃씨 속에 망연히 서 있는데, 또 다른 내가 보였다. 깡통한 검정 치마가 받쳐주는 흰 저고리는 부서져 내리는 햇볕을 받아 순백의 찬란함으로 반사하며 휘날리는 꽃씨들을 하늘로 되돌려 보내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날리는 홀씨에 눈을 뜨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는데, 온몸을 굵은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
둥둥 떠 있는 황홀함까지는 꿈이었고, 바늘로 찌르는 통증은 현실이었다. 머리는 따로 떨어져 있고, 몸은 무슨 보따리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혼수상태에서 의식이 돌아오고, 시골에 있어야 할 동생의 걱정스런 얼굴이 붕 떴다 사라지곤 하더니 한참만에야 또렷이 보였다. 이렇게 아픈 몸이었는데 꿈은 왜 그렇게도 평온하고 아늑했을까?
며칠 동안 동물 같은 신음 소리를 내며 물도 못 마시고 고통에 시달렸다. 자꾸만 꿈속으로 다시 돌아가고픈 마음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어른거렸다. 닷새째가 되니 저녁 식사로 멀건 미음이 나왔다. 쌀죽을 먹고 나니 혼미했던 정신이 또렷해지며 주검에서 다시 살아난 느낌이 들었다. 내 옆을 지키던 동생의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저녁 무렵 아들이 병실로 찾아왔다. 나는 그 날의 꿈이 하도 기이하고, 마치 환상의 그림 같기만 하여 혼자 마음에 담고 있기가 아쉬워져 꿈 이야기를 했더니, 아들은 한참을 묵묵히 듣고 있다가 그 꿈속에서 엄마가 문상을 갔거나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을 받아들여 쫓아갔다면 혼수상태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홀씨가 바람에 날린 것은 엄마가 어디엔가 땅 위에 안착되어 새로이 태어난 뜻도 된다며 그럴 듯하게 꿈풀이를 했다.
서양의 어느 정신분석학자는 꿈은 잠재의식의 표현 양식이라고도 했지만, 내게 있어서 꿈은 항상 어떤 사안에 대한 예고와 예언적 의미가 더 강하게 부각되는 듯싶다. 홀씨가 바람에 날린다던가, 앞니가 갑자기 빠진다거나, 또는 뱀에게 물린다거나 하는 꿈은 대개의 경우 그 뒤에 일어나는 일들과 연결되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몇 년을 두고 친정집 벽이 무너지고 서서히 건물이 소멸해 가는 꿈을 꾸었는데, 어느 날 생각지도 않게 젊고 건강한 둘째 오빠가 암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부모같이 의지하던 그런 오빠였다. 돌아가신 후로는 그런 꿈은 두 번 다시 꾸지 않았다. 그러나 나를 더욱 꿈풀이에 매달리게 만든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꿈속에서 앞니가 빠져 친정 어머니에게 얘기했다가 재수 없는 꿈이라고 혼줄이 났던 일이다. 어머니는 내 꿈 때문에 은근히 걱정을 하셨는데 보름만에 뇌졸중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나는 이런 경험들로 인해 꿈이 암시하는 예언적 기능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믿고 싶어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옥에 갇힌 춘향이의 꿈 모양, 꿈은 해몽 나름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꿈을 꾸면 좋은 꿈인지 나쁜 꿈인지 꼭 풀이를 해보곤 한다. 그래서 아침에 혼자 해몽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보이지 않는 어떤 절대자와 가깝게 접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꿈자리가 사나우면 그 날은 매사에 조심하고 신경을 쓰게 되며, 기분 좋은 꿈을 꾼 날은 괜스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곤 한다.
어젯밤에는 남편 몰래 달콤한 꿈을 꾸었다. 만약 꿈의 내용이 실지로 저지른 행동이었다면 나는 이혼녀가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잠재의식의 표현이든 예언적 의미이든 좋은 쪽으로 해몽이 되는 그런 꿈들은 내 정신건강을 지켜주는 활력소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때로는 스스로 해몽이 되지 않아 여러 사람들에게 꿈이야기를 하며 꿈풀이를 부탁하지만, 혼자서 해몽이 될 때면 오붓하게 나만의 비밀을 즐긴다. 내가 잠자리에서 눈을 뜨고도 얼른 일어나지 않고 이불 속에서 뭉기적거리는 이유는 어젯밤의 꿈을 통해 오늘 일을 미리 엿보려 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상큼한 내용이라면 나는 밤마다 그런 꿈을 꾸고 싶다.
첫댓글 넘 길어서 생략~~ 밤마다 꿈을 꾸면 피곤 하지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