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고유한 말을 갖고 있지만, 글이 없던 민족이었다. 그러다가 세종대왕과 그 당시의 학자들이 뛰어난 글 곧 한글을 만들었다. 지구상에서 문자적으로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 받는 한글은 다른 민족의 글자보다 휠씬 늦게 만들어진 늦둥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은 한글을 천한 것으로 여기어 하층민과 여성들을 위해 사용하다가 구한말에 기독교가 전래되면서 한글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선교사들이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여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 한글 보급에 큰 일조를 한 것이다. 이 당시의 한글은 수 백년이 지나왔지만 지식인들로부터 천대를 당한 터라 세련되게 발전하지 못해 투박한 모습이 많았다.
한글은 1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엄청난 발전을 했다. 문법을 발전시켰고 새로운 단어를 창출했으며, 보급화에 힘써 세계적으로 문맹률은 선진국 안에서 가장 낮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 사람들은 한문에 익숙한 문화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있다. 신문이나 잡지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한자의 의미로 된 단어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현재도 이런 상황인데 과거에 만들어진 성경은 얼마나 한자가 많았겠는가? 현재의 한글 세대는 한자 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성경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다음의 글자들을 읽고 아는 단어들을 몇 개인지 체크 해 보자.
이 단어들은 욥기에 나온 것들이다. 이것은 한자 시대에 교육 받은 사람들이 번역한 단어들이다. 1950, 60년 대의 우리나라 신문들이 사용한 한자는 지금보다 휠씬 더 많았다. 그 중에 일부 단어는 현대에 사용하고 있지 않다. 시대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을 구독하는 세대가 한글 세대이기 때문에 한자의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개혁 성경은 한자 세대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문장 표현법과 한자적 의미의 단어들은 현대인에게 너무나 생소하다. 그나마 신앙생활을 오랜 한 사람들은 성경적 단어라고 생각해서 어느 정도 어려움을 참을 수 있지만, 한글 시대의 불신자들에게 다른 나라 말처럼 생소한 것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가라사대, 하옵나니, 하시니라” 등등은 T.V의 사극에서 볼 수 있는 표현들이다.
각 종교마다 진리를 다루고 있는데, 대부분 글로 이루어졌다. 불교나 유교의 신자들은 어려운 한자 때문에 자신들의 종교적 이해에 어려움을 겪고있다. 중세의 종교 개혁자들이 라틴어나 그리스어로 된 성경을 자국 언어로 번역하면서 종교개혁을 한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중세에 성경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은 기독교와 미신을 혼합하여 거의 새로운 수준의 종교를 만들기 일보 직전이었다. 마틴 루터는 교회의 잘못된 관행과 평신도의 미신적 행위를 종식시키고자 종교 개혁을 시도했고 곧 이어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해서 나누어 주었다. 만약 루터의 독일어 성경이 없었다면 그는 이단 죄로 처형되었을 것이며 독일의 종교개혁도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 교회가 침체되는 원인 중에 성경의 역할이 크다는 사실을 깊이 주목해야 한다. 성경의 어려운 단어가 현재 성도들로 하여금 성경을 가깝게 하는 삶과 멀어지게 했고, 불신자들이 성경을 통해 생명되신 예수님을 만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한국교회의 침체는 단순히 경제 성장으로 인하여 백성들이 편해져서 하나님을 섬기기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변명이다.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성경을 멀게 느껴지게 했다.
현재의 한글 세대에게 한자 시대의 단어와 표현법은 마치 독일사람에게 라틴어 성경과 같은 의미가 될 수 있다. 더욱이 새로 교회 온 사람들에게 성경은 읽어도 이해하기가 어려운 종교서적이 되었다. 그렇다면 불경과 논어가 대중적이지 못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믿음의 선조들은 성경을 평이한 자국어로 해석해서 종교 개혁을 했지만, 현재 그 정신은 사라지고 알기 힘든 단어와 생소한 표현으로 가득찬 성경을 고집하고있다. 이것은 개혁적 성향이기 보다는 자신의 문화적 신앙 패턴에 대한 아집과 독선이다. 이제 한국 기독교는 한자 시대를 훌륭하게 이끌어 왔던 개혁 성경의 뒤를 이을 한글 시대의 성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
신약 성경은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 신약 성경을 기록한 사람 대부분은 히브리인이지만, 그들은 그 당시의 상용어인 그리스어로 기록해서 사람들을 이해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그리스어는 여러 종류의 방언으로 나누어졌다. 가장 일반적인 방언이 코이네(koine)이었다. 이것은 여러 방언들을 통합하여 문법도 단순하게 만들었던 상용어이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이 코이네어가 문제가 있다고 해서 고대 그리스어 사용을 고집했다. 만약 성경이 철학 책처럼 고대 그리스어 방언으로 기록되었다면 성경을 보급하는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 가장 쉽고 평이한 코이네로 성경을 기록한 것은 그때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전도의 문이 가장 잘 열린 시대에 오셨다. 알렉산더 대왕이 지중해와 아라비아와 인도까지 정복한 후에 그리스어가 그 지역의 만국 공통어가 되었다. 그 다음에 로마는 그 당시 세계 중심지였던 지중해을 정복했고 항로와 도로를 정비했고 행정체계를 일원화해서 성경 말씀이 잘 전파되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즉 만국 공통어인 그리스어로 기록된 성경과 만국을 연결할 수 있는 도로와 행정이 복음 전파에 훌륭히 이용된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이나 유대인을 위한 조치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을 위한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정신을 되살려 성경은 한글 시대를 위하여 다시 쓰여져야 한다. 성경이 보급되면 이단들이 나타날 것을 우려하여 성경을 감춘 천주교의 잘못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 교회에 적지 않는 교계의 분위기는 성경 번역을 통해 자유주의 신학과 이단들이 득실거릴 것을 우려하여 성경의 한글화 작업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이 주님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천주교와 같은 잘못된 행동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예수님과 종교개혁자들의 심정처럼 성경은 각 세대에 맞게 번역되어야 하며, 또한 각 연령층에 맞게 어린이로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표현과 적절한 단어들로 번역되어야 한다. 또한 불신자들을 위해 현대어에 충실한 번역 성경이 있어야 하고 목회자와 성경 연구자들을 위해 원어에 충실한 번역 성경이 나와야 한다. 다양하고 쉬운 성경이 보급되어 이 세상에 죽음의 공포와 병의 신음과 삶의 절망과 좌절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쁨의 소식이 되어야 한다.
이제 한국 교회도 다양한 성경의 보급을 통해 전도의 문을 넓히고 성도의 삶을 풍성하게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을 변화시키고 주님에게 인도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글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종교 개혁자들의 후예로서 각 시대마다 계속해야 할 위대한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