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의 언어 아람어
11년전 상영되었던 "그리스도의 수난 (The Passion of Christ)"에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아람어로 대화를 나눈다. 영화의 한 부분인 예수와 본디오 빌라도의 만남과 대화에서 그 둘은 라틴어로 대화를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예수께서는 아람어와 라틴어를 일상 생활에서 주로 사용하셨을까?
먼저 구약성서에서 사용된 아람어의 흔적을 보자. 구약 성서들 중 일부분 (에스라, 다니엘서)은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직접적으로 아람어를 사용하였다는 증거는 없지만 주전 5세기 느헤미야는 국제 결혼을 한 유대인의 자녀가 유대 방언 (히브리어)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책망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보다 앞선 주전 8세기 (702-701년 사이)에 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공격할때 랍사게가 히브리 방언으로 히스기야의 항복을 요구한다. 이때 예루살렘의 관직자들이 "청하건대 아람 말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시고 (왕하 18:26)" 라는 표현이 나온다. 아마 당시 고위 관직자들은 아람어를 이해하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구사하였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때만 하더라도 일반 백성들은 아람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람어는 점점 혼성 국제어 (Lingua franca)가 되었고 예수 시대 당시에는 지금의 영어가 국제어인것처럼 아람어가 국제어로 통용되었다.
신약성서에도 국제어인 아람어의 흔적들을 찾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אלי אלי למה עזבתני - 히브리어 / אלי אלי מטול מה שבקתני - 아람어, 마태 27:46; 막 15:34)" 이다. 마태와 마가가 기록한 헬라어 σαβαχθανι (사박다니)는 아람어를 음역한 것이다. 야이로의 죽을 딸을 살릴때도 예수께서는 아람어로 "달리다굼 (막 5:41)" 이란 용어를 사용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와 당시 제자들, 더 나아가 갈릴리의 유대인 혹은 유대 사회 전체적으로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어를 일상 언어로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예수 당시의 문헌이나 고고학적 증거들은 오히려 히브리어가 일상 언어였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주전 2세기경의 유대 문헌 Ben Sira는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사해 사본의 기록 역시 주로 히브리어로 되어 있다. 주세 2세기 경의 문서인 바르 코크바의 편지도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사도행전 21:40에 보면 바울이 히브리어로 대중 앞에서 자신의 무죄함을 변명하기도 한다.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행 21:40-22:2).
사진: "탈리타쿠미" 예루살렘에 있었던 아동 구제소의 흔적
더 나아가, 유대인들에게 히브리어는 일상 언어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종교 의식때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로 의식을 진행하였다. 누가복음 4장에 나오는 예수의 나사렛 회당 방문과 그가 읽었던 이사야서 두루마리 (61장)는 분명 히브리어였다. David Flusser (저명한 신약 성서시대 학자 - 히브리 대학교)에 의하면 예수의 제자들의 성서 기록물들은 성서 히브리어에 배경을 둔 랍비 히브리어의 언어적 구조가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 성서에 나타나며, 사도 바울이 기록한 헬라어로된 서신서들 문장 구조에서도 히브리어의 흔적들이 나타난다.
한편 예수께서 로마 백부장과 대화를 나누는데 백부장이 아람어나 혹은 히브리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기 보다는 헬라어로 예수와 대화를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로마인들은 아람어가 아닌 라틴어와 헬라어를 주로 사용하였다. 실제 예수께서 자라나신 나사렛은 당시 갈릴리 지역의 수도였던 찌포리로부터 약 12 km 정도 떨어져 있기에 어느 정도 로마인들과의 접촉이 있었을 것이고 헬라어를 배웠을 가능성을 추정해 볼수 있다. 멜 깁슨의 그리스도의 수난에서는 라틴어로 예수께서 본디오 빌라도와 대화를 나누지만, 영화가 상영된 후 학자들이 지적하는 영화의 언어-역사적 배경의 문제로 "라틴어"를 지적한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 군병들이 라틴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전제하더라도 유대 지역에서는 라틴어 보다는 헬라어가 일상 생활에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제자들이 헬라어로 사복음서를 기록한 것 역시 당시 일반 유대인들은 헬라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증거한다.
결론적으로, 유대 지역과 주변 나라에서 아람어가 링구아 프랑카로서의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며 예수께서 아람어를 구사하였다는 것을 성서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지만, 히브리어 역시 아람어와 함께 유대인들의 모국어로 그 역할을 감당하였고 라틴어보다는 아람어와 함께 국제어로가 된 헬라어를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구사하였다는 것을 신약 성서와 당시 문헌 및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알 수 있다.
출처: https://www.myloveisrael.com/715 [:: 나의 사랑 이스라엘 - Voice of Wilderness]
골고타·파스카·탈리타 쿰… 모두 아람어
▲ 예수님은 갈릴래아 지방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사용했던 아람어로 주로 복음을 선포하셨다. 사진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룬 「선 오브 갓」의 중 한 장면. |
▲ 예수님은 갈릴래아 지방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사용했던 아람어로 주로 복음을 선포하셨다. 사진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룬 「선 오브 갓」의 중 한 장면.
네 복음서는 모두 헬라어(그리스 말)로 쓰여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오늘날 영어처럼 당시 국제 공용어인 헬라 말을 하신 것일까?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평소 가르치실 때는 ‘아람 말’을 하셨다. 또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두루마리를 펼쳐 토라와 예언자 이사야의 글을 낭독하신 것을 보면 히브리 말과 글도 아신 것이 분명하다.
아람어는 일찍이 비옥한 반월형 지대인 북시리아 평야에 정착했던 아람 민족의 말이다. 유다인들이 하느님께 맏물을 봉헌할 때 “저희 조상은 떠돌아다니는 아람인이었습니다”(신명 26,5)하고 고백한 것처럼 아람 민족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다.
아람어는 기원전 10세기 전후 유프라테스 상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페르시아만, 시리아, 이란, 팔레스티나, 지중해 연안까지 근동 아시아 모든 지역에서 사용하던 공용어였다. 성경학자들의 일반적 견해는 아람 민족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해 가나안 땅에 정착해 살면서 언어도 그 지역 말과 섞여 히브리말로 고착됐다고 한다. 이때부터 바빌론 유배 때까지 유다인의 일상 언어는 히브리 말이었다고 한다. 유배 생활에서 돌아온 후 아람어의 다른 방언들에 눌리어 히브리말은 서서히 변화해 갔다. 마치 오늘날 우리 사회의 10대들의 통속적 말을 기성세대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처럼 언어가 변질한 것이다. 이 시대 율법학자들은 회당에서 히브리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에게 가르쳤고 유다 지방의 히브리 말로 성경을 필사했다.
하지만 기원전 6세기 바빌로니아가 멸망하고 페르시아 제국이 통치하면서 페르시아 왕들은 아람어를 행정 공용어로 채택해 유포시켰고, 이스라엘도 그 영향을 면할 수 없었다. 마치 로마 제국시대 헬라어가 귀족 상류층의 언어였고, 라틴 말이 백성들의 언어였던 것처럼, 아람어는 이스라엘의 사제와 귀족 등 상류층의 말이 됐고, 히브리 말은 일반 민중의 언어가 됐다고 한다. 그러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제국을 정복한 후 헬라어가 아람어의 자리를 대신했다.
예수님 시대에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다 지방 사람들이 주로 히브리 말을 썼으며, 예수님과 제자들처럼 갈릴래아 지방 사람들은 주로 아람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가 예루살렘에서 체포됐을 때 군중들을 진정시키고 자신을 해명하기 위해 연설할 때 굳이 히브리 말로 한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사도 22,2).
복음서에는 유다인들의 일상어로 아람 말이 등장한다. ‘압바’(마르 14,36), ‘가빠타’(요한 19,13), ‘골고타’(마태 27,33), ‘맘몬’(마태 6,24- 본문에는 헬라어 마모나스로 음역해 놓음), ‘파스카’(루카 2,41), ‘하켈 드마’(사도 1,19), ‘마라나 타’(1코린 16,22) 등이 복음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아람 말이다.
또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실 때 “탈리타 쿰”(마르 5,41)라고 하신 말씀이나,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라고 하신 말씀 모두 아람 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죄명패에는 히브리 말, 라틴 말, 그리스 말로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쓰여 있었다(요한 19,19-20). 이는 당시 팔레스티나 지역에 이 말들이 상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라틴 말은 칙령의 언어로 공용어였다. 유다 역사학자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에 의하면 로마에서 내려온 훈령은 늘 헬라어로 번역됐다고 한다. 당시 이스라엘의 랍비들은 “헬라 말을 자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돼지고기를 먹는 것과 같이 저주받아야 한다”고 경멸했지만 로마 제국에 통용되던 헬라어를 막을 수 없었다.
한편, 구약의 에스테르기와 예레미야서 일부, 다니엘서 일부도 아람어로 쓰였고, 마태오 복음도 처음에는 아람어로 쓰였다가 후에 헬라어로 번역된 것이라는 게 성경학자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사순 ㆍ부활 시기에 자주 상영되는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용하는 말이 모두 아람어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말이 궁금하면 이 영화를 꼭 볼 것을 추천한다.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 그리고 이디쉬
장주현 특파원 승인 2017.10.02 16:14 댓글 0기사공유하기
프린트
메일보내기
글씨키우기
이스라엘 이야기9
내가 처음 이스라엘에 도착했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지만 그 가운데 특히 더 낯설었던 것은 전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말이었다. 그러나 “서툴러도 그 나라 말로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이 자네를 그 나라 말을 가장 잘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거야.”라고 하신 스승 목사님의 가르침이 큰 힘이 되어 낯선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말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어느 큰 슈퍼마켓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필요한 물건을 고른 뒤 계산대 앞에서 서툰 이스라엘 말로 직원에게 더듬더듬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검은 옷을 입은 유대 종교인이 갑자기 내게 “너는 이방인인데 왜 거룩한 말을 사용하지? 히브리어는 거룩한 언어라서 너 같은 외국인은 사용하면 안 돼. 그 말 당장 쓰지 마!” 하고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는 영어로 말했고, 나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없었지만 그가 하는 말을 대강 알아듣고 “I am holly so it’s ok.(나는 의롭기 때문에 괜찮습니다.)”라고 답했다. 그가 화를 내며 계속 말하자 계산대에 있던 아주머니가 우리 때문에 거스름돈을 세기 어렵다며 둘 다 조용하라고 짜증을 냈던 기억이 난다.
고대 히브리어와 현대 히브리어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히브리어다. 현재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용하는 히브리어를 현대 히브리어라고 하는데, 그것은 고대 시대 즉 성경 시대에 사용했던 히브리어와는 조금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옛날 우리나라 한글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말하는 것과 글로 적어 표현하는 것이 차이가 많았던 것처럼 히브리어 역시 그러했다. 실제 말은 그렇지 않은데 문자로 표기할 때는 어색한 표현 방식이 많았다.
고대 히브리어는 구약성경을 기록한 문어체 히브리어를 말하며, 현대 히브리어의 뿌리가 되는 언어지만 현재 실제 생활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문자로 된 고대 히브리어가 사용되는 경우는, 회당에서 성경을 낭독하거나 성경공부를 하며 성경 구절을 적용할 때, 그리고 절기나 안식일같이 특별한 날에 유대교만의 의식을 행하며 성경과 기도문 등을 읽을 때 등이다.
그에 비해 말할 때 사용했던 히브리어는 우리가 조선시대로 간다 해도 당시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 같이, 현재 이스라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유대인들은 과거에 2천 년 이상 여러 나라에 뿔뿔이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언어가 각기 달라졌지만 성경을 대할 때와 절기를 지킬 때만큼은 히브리어를 사용했다.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유일신인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이 동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히브리어가 유대인들을 하나로 만들어 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히브리어의 역사와 특성
히브리어는 히브리음으로 ‘이브릿’이라고 한다. 원래 ‘히브리’라는 단어는 갈대아 우르(현재 이라크 지방) 출신인 아브라함의 사람들을 가나안 족속들이 ‘헤부르인’들이라고 부르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그 뒤 아브라함의 계보에 있는 사람들을 ‘히브리인(이브리)’이라고 부르고, 그들이 쓰는 언어를 이브릿, 즉 히브리어라고 불렀다.
고대 히브리어는 모음 없이 자음만 22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해문서 같은 고대 히브리어 성경은 모두 자음으로만 적혀 있다. 당시에는 성경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약성경은 히브리 민족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다가 필사본이 등장하면서 구전되던 방식은 점점 사라졌다.
열왕의 시대에 이르러 아람(시리아)이 이스라엘을 자주 침입하면서 그 영향으로 히브리어에 아람어가 섞이기 시작했고, 그 결과 고대 히브리어는 성경에만 사용되고 일상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언어가 되었다.
그 후 7세기경에 히브리어 성경을 번역하는 새바람이 불었다. ‘맛소라’ 학파 사람들이 처음으로 히브리어 자음에 모음을 추가하면서 성경이 읽기 편하게 필사되었고, 그 뒤로 지금까지 필사된 구약성경에는 모두 모음이 달려 있다.
히브리어의 특색으로는 남성동사(쟈카르)와 여성동사(네케바)가 있고, 우리나라 말과 반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 현대 히브리어와 구약성경의 히브리어를 비교해 보면, 마치 현대 한글과 세종대왕 때 만든 용비어천가가 차이가 나는 것과 같다. 즉 현대어와는 전혀 다른 모양이다. 현대 히브리어는 1900년대에 접어들어서 일상적인 언어로 부활했다.
현대 히브리어의 아버지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
히브리어는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성경에만 사용되고, 소수의 공동체 유대인들에게만 전통적인 모국어로 실생활에 사용되었고, 대부분의 유대인들에게는 이미 잃어버린 모국어가 되어버린 경우가 많았다. 특히 유대종교인들은 히브리어가 거룩한 성경의 언어라는 이유로 일상생활에서 사용은 물론 읽고 쓰는 것조차 철저히 금했기 때문에 더욱 모국어로써의 이미지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렇게 지내오다가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시온주의자인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1858∼1922)’와 같은 사람에 의해 히브리어가 보편화되어 일상 언어로 자리 잡았다.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는 “이스라엘 땅과 이스라엘 말이 없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될 수 없다”는 신념으로 매일 새로운 단어들을 만들었다. 그는 히브리어가 신문과 책과 학교 교육에서 사용되고, 일상 언어로 널리 보급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진 선구자다. 우리나라의 한글 학자 주시경 선생과 같은 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런 시온주의자들의 노력으로 히브리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쓰는 일상어가 되었고, 지금은 누구든지 교육 기관에서 현대 히브리어를 접하고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이민자나 외국 학생들을 위해 현대 히브리어를 단계적으로 가르치는 ‘울판’이라는 제도도 있다.
예수님은 어떤 언어를 쓰셨는가?
예수님은 어떤 언어를 사용하셨지에 대해서는 견해도 다양하고 논란도 많다. 어떤 이들은 아람어를 쓰셨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히브리어, 어떤 이들은 헬라어를 쓰셨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람어가 섞인 히브리어를 쓰셨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즉 글이 아닌 말을 할 때는 아람어가 섞인 히브리어를 쓰셨다는 것이다.
히브리어는 고대 시대 오랜 세월 동안 유대인들의 실생활 언어였는데, 아람어와 섞이면서 예수님 시대에 와서는 아람어를 마치 지방 사투리처럼 혼용해서 썼다는 것이다. 특히 나사렛과 가버나움 같은 갈릴리 지역의 사람들이 아람어를 유난히 많이 섞어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아람어가 섞인 히브리어를 말하면 그 사람은 갈릴리 출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때도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의 말투를 듣고 그가 갈릴리 사람인 것을 구별했다. “…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마 26:73) 마치 우리가 말투로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사람을 구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신약성경에 나온 아람어들
옛 시리아 말인 아람어는 에스겔 다니엘 같은 성경의 일부에 쓰여 있어서 고대 히브리어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신약시대 갈릴리 지역에 아람어가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여전히 대화체 히브리어가 유대인들의 모국어였음을 앞에서 이미 언급했었다. 그러면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이 아람어를 쓰셨던 부분을 살펴보자.
▪탈예타 쿠미(달리다굼)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막 5:41)
▪히파탘흐(에바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막 7:34)
▪엘리 엘리 레마 쉬바크타니(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6)
위의 성경 구절에 보면, 순수 아람어를 사용한 부분은 아람어 음으로 표기했고, 그 뒤에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 해설이 꼭 붙어 있다. 아람어에 부연 설명을 단 것은 마치 우리나라에서 텔레비전 방송 중에 어떤 사람이 알아듣기 어려운 사투리로 말하면 그 부분을 자막에 표준어로 바로잡아 주는 것과 같다. 아람어가 히브리어에 섞여 통용되었지만 아람어가 당시 공용어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주는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빌라도가 예수님이 못 박히신 십자가 위에 패를 써 붙일 때 히브리어, 라틴어, 그리고 헬라어로 기록한 것 또한 당시 유대인들의 공용어가 히브리어였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예수의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요 19:20)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말씀하신 여덟 마디의 말씀 중 아람어로 표현된 부분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다. 이 부분도 성서 공회의 히브리어 번역본에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음이 약간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여덟 가지 말씀은 다음과 같다.
1.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2.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3.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 19:26)
4. “… 보라, 네 어머니다….”(요 19:27)
5.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 막 15:34)
6. “… 내가 목마르다….”(요 19:28)
7. “… 다 이루었다….”(요 19:30)
8. “…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이 가운데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마태복음에서는 ‘엘리 엘리’로, 마가복음에는 ‘엘라히 엘라히’로 기록되어 있는데, 둘 다 같은 말이다. ‘엘리’는 주로 히브리어에서 쓰는 말로, 예수님 시대에 아람어가 섞인 히브리어를 사투리처럼 사용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의 하나다.
바울이 사용한 언어는 헬라어가 아니다
일부 학자들은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신서가 헬라어로 기록된 것을 보고 초기 기독교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헬라어를 썼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의 행적을 보면 당시 유대인들의 모국어가 헬라어가 아니라 히브리어라는 것을 정확히 알 수 있다. 또한 4복음서 가운데 특히 마태복음이 처음 기록될 때 유대인들에게 유대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는 점 등을 미루어 보면 더욱 그러하다.
사도행전 21장 37절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잡아 죽이려 할 때 천부장이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면서 바울에게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라고 묻는다. 만약 당시 유대인의 언어가 헬라어였다면 천부장이 바울에게 굳이 헬라어를 아냐고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헬라어를 아는 유대인들과 모르는 유대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나타내 준다. 당시 귀족들이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헬라어에 능통했는데, 그런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20퍼센트 정도였다고 한다. 사도 바울이 헬라어를 안 것은 교육을 받은 사람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헬라어를 아는 유대인들은 갈릴리에서 아람어가 섞인 사투리 같은 히브리어를 구사한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바울이 유대인들 앞에서 간증할 때마다 히브리어 방언으로 말했다는 것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행 21:40, 행 22:2). 특히 사도행전 26장 14절에는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예수님이 자신에게 직접 히브리어 방언으로 말씀하셨다고 증거하고 있다. 이것 또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언어가 히브리어였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성경에 히브리 방언이라고 적힌 것은 회화로 사람들이 일상에 사용한 구어체 히브리어를 가리킨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 즉 예수님이 사셨던 시대를 포함한 무렵에는 헬라어가 유럽의 공용어로서 지금의 영어와 같은 역할을 했다. 로마제국 때문에 유럽이 세계의 중심인 시대였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외교와 유통 같은 국제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헬라어를 잘하는 것이 성공을 보장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당시 로마에서도 귀족들은 헬라어를 주로 사용했고 서민들은 길거리 라틴어를 사용했기에 로마 귀족들은 자신들이 헬라어에 능통한 것을 과시했다.
이 당시 쓰였던 헬라어를 코이네 헬라어라고 하는데 현대 그리스어가 아닌 고대 그리스어를 가리킨다. 당시에는 헬라어를 알면 세계 어디에서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신약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되고 기록된 이유 중 하나도 헬라어를 통해 전 세계 이방인들의 눈과 귀에 복음과 믿음의 삶을 전해주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유럽 유대인들이 만들어 쓴 언어 ‘이디쉬’
이스라엘 사람들의 언어 가운데 재미있는 언어는 이디쉬다. 예루살렘 안에 살면서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쓰는 유대인이 있는데, 그들이 쓰는 언어를 ‘이디쉬’라고 한다. 약 2천 년 간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들 가운데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 살았던 사람들을 ‘아쉬케나지’라고 한다. 그들이 독일어와 히브리어와 슬라브계 언어가 혼합된 언어를 만들고, 그것을 히브리어 문자로 표기하면서 유럽의 유대인들만이 사용하는 새 언어가 탄생되었다. 히틀러가 당시 세계의 유대인 약 1440만 명 가운데 약 600만 명을 학살했을 당시에 죽은 유대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디쉬를 사용하는 유럽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이 학살당함으로 이디쉬가 사라지는 듯했으나 생존자들에 의해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히브리어가 거룩한 언어라는 이유로 소수의 종교인들은 아직도 이디쉬를 고집하며 사용하고 있다.
모든 언어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한 유대인 친구가 내게 이렇게 말한 적 있다. “나는 한국과 독일에서 신학을 배우러 이스라엘에 온 목사들이 싫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유대 종교인들에게 핍박을 받는데 그들은 이스라엘에 와서 수년 간 공부하면서도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과 복음을 전하지 않고 박사 학위만 받아서 돌아간다.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 박사학위만 따고 가면 이스라엘에서 배운 히브리어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자기 명성만 높이는 수단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마음이 무척 상한다.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실까?”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깊이 생각되었다. 어떤 언어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어를 주신 이유는 그 나라 말로 복음을 전하라고 주신 것이 확실하다. 히브리어든 한국어든 어느 언어든지 하나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죄를 다 씻으셨다는 사실을 그 나라 말로 전해주고 싶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마음을 표현하라고 우리에게 언어를 주셨다. 특히 복음을 전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가장 아름답게 빛난다고 믿는다. 히브리어가 아직까지 살아 있는 이유는 예수님과 바울이 복음을 전한 것처럼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히브리어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으시기 때문이다.
11년전 상영되었던 "그리스도의 수난 (The Passion of Christ)"에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아람어로 대화를 나눈다. 영화의 한 부분인 예수와 본디오 빌라도의 만남과 대화에서 그 둘은 라틴어로 대화를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예수께서는 아람어와 라틴어를 일상 생활에서 주로 사용하셨을까?
먼저 구약성서에서 사용된 아람어의 흔적을 보자. 구약 성서들 중 일부분 (에스라, 다니엘서)은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직접적으로 아람어를 사용하였다는 증거는 없지만 주전 5세기 느헤미야는 국제 결혼을 한 유대인의 자녀가 유대 방언 (히브리어)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책망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보다 앞선 주전 8세기 (702-701년 사이)에 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공격할때 랍사게가 히브리 방언으로 히스기야의 항복을 요구한다. 이때 예루살렘의 관직자들이 "청하건대 아람 말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시고 (왕하 18:26)" 라는 표현이 나온다. 아마 당시 고위 관직자들은 아람어를 이해하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구사하였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때만 하더라도 일반 백성들은 아람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람어는 점점 혼성 국제어 (Lingua franca)가 되었고 예수 시대 당시에는 지금의 영어가 국제어인것처럼 아람어가 국제어로 통용되었다.
신약성서에도 국제어인 아람어의 흔적들을 찾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אלי אלי למה עזבתני - 히브리어 / אלי אלי מטול מה שבקתני - 아람어, 마태 27:46; 막 15:34)" 이다. 마태와 마가가 기록한 헬라어 σαβαχθανι (사박다니)는 아람어를 음역한 것이다. 야이로의 죽을 딸을 살릴때도 예수께서는 아람어로 "달리다굼 (막 5:41)" 이란 용어를 사용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와 당시 제자들, 더 나아가 갈릴리의 유대인 혹은 유대 사회 전체적으로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어를 일상 언어로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예수 당시의 문헌이나 고고학적 증거들은 오히려 히브리어가 일상 언어였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주전 2세기경의 유대 문헌 Ben Sira는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사해 사본의 기록 역시 주로 히브리어로 되어 있다. 주세 2세기 경의 문서인 바르 코크바의 편지도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사도행전 21:40에 보면 바울이 히브리어로 대중 앞에서 자신의 무죄함을 변명하기도 한다.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행 21:40-22:2).
사진: "탈리타쿠미" 예루살렘에 있었던 아동 구제소의 흔적
더 나아가, 유대인들에게 히브리어는 일상 언어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종교 의식때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로 의식을 진행하였다. 누가복음 4장에 나오는 예수의 나사렛 회당 방문과 그가 읽었던 이사야서 두루마리 (61장)는 분명 히브리어였다. David Flusser (저명한 신약 성서시대 학자 - 히브리 대학교)에 의하면 예수의 제자들의 성서 기록물들은 성서 히브리어에 배경을 둔 랍비 히브리어의 언어적 구조가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 성서에 나타나며, 사도 바울이 기록한 헬라어로된 서신서들 문장 구조에서도 히브리어의 흔적들이 나타난다.
한편 예수께서 로마 백부장과 대화를 나누는데 백부장이 아람어나 혹은 히브리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기 보다는 헬라어로 예수와 대화를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로마인들은 아람어가 아닌 라틴어와 헬라어를 주로 사용하였다. 실제 예수께서 자라나신 나사렛은 당시 갈릴리 지역의 수도였던 찌포리로부터 약 12 km 정도 떨어져 있기에 어느 정도 로마인들과의 접촉이 있었을 것이고 헬라어를 배웠을 가능성을 추정해 볼수 있다. 멜 깁슨의 그리스도의 수난에서는 라틴어로 예수께서 본디오 빌라도와 대화를 나누지만, 영화가 상영된 후 학자들이 지적하는 영화의 언어-역사적 배경의 문제로 "라틴어"를 지적한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 군병들이 라틴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전제하더라도 유대 지역에서는 라틴어 보다는 헬라어가 일상 생활에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제자들이 헬라어로 사복음서를 기록한 것 역시 당시 일반 유대인들은 헬라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증거한다.
결론적으로, 유대 지역과 주변 나라에서 아람어가 링구아 프랑카로서의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며 예수께서 아람어를 구사하였다는 것을 성서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지만, 히브리어 역시 아람어와 함께 유대인들의 모국어로 그 역할을 감당하였고 라틴어보다는 아람어와 함께 국제어로가 된 헬라어를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구사하였다는 것을 신약 성서와 당시 문헌 및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알 수 있다.
출처: https://www.myloveisrael.com/715 [:: 나의 사랑 이스라엘 - Voice of Wilderness]
골고타·파스카·탈리타 쿰… 모두 아람어
▲ 예수님은 갈릴래아 지방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사용했던 아람어로 주로 복음을 선포하셨다. 사진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룬 「선 오브 갓」의 중 한 장면. |
▲ 예수님은 갈릴래아 지방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사용했던 아람어로 주로 복음을 선포하셨다. 사진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룬 「선 오브 갓」의 중 한 장면.
네 복음서는 모두 헬라어(그리스 말)로 쓰여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오늘날 영어처럼 당시 국제 공용어인 헬라 말을 하신 것일까?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평소 가르치실 때는 ‘아람 말’을 하셨다. 또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두루마리를 펼쳐 토라와 예언자 이사야의 글을 낭독하신 것을 보면 히브리 말과 글도 아신 것이 분명하다.
아람어는 일찍이 비옥한 반월형 지대인 북시리아 평야에 정착했던 아람 민족의 말이다. 유다인들이 하느님께 맏물을 봉헌할 때 “저희 조상은 떠돌아다니는 아람인이었습니다”(신명 26,5)하고 고백한 것처럼 아람 민족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다.
아람어는 기원전 10세기 전후 유프라테스 상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페르시아만, 시리아, 이란, 팔레스티나, 지중해 연안까지 근동 아시아 모든 지역에서 사용하던 공용어였다. 성경학자들의 일반적 견해는 아람 민족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해 가나안 땅에 정착해 살면서 언어도 그 지역 말과 섞여 히브리말로 고착됐다고 한다. 이때부터 바빌론 유배 때까지 유다인의 일상 언어는 히브리 말이었다고 한다. 유배 생활에서 돌아온 후 아람어의 다른 방언들에 눌리어 히브리말은 서서히 변화해 갔다. 마치 오늘날 우리 사회의 10대들의 통속적 말을 기성세대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처럼 언어가 변질한 것이다. 이 시대 율법학자들은 회당에서 히브리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에게 가르쳤고 유다 지방의 히브리 말로 성경을 필사했다.
하지만 기원전 6세기 바빌로니아가 멸망하고 페르시아 제국이 통치하면서 페르시아 왕들은 아람어를 행정 공용어로 채택해 유포시켰고, 이스라엘도 그 영향을 면할 수 없었다. 마치 로마 제국시대 헬라어가 귀족 상류층의 언어였고, 라틴 말이 백성들의 언어였던 것처럼, 아람어는 이스라엘의 사제와 귀족 등 상류층의 말이 됐고, 히브리 말은 일반 민중의 언어가 됐다고 한다. 그러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제국을 정복한 후 헬라어가 아람어의 자리를 대신했다.
예수님 시대에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다 지방 사람들이 주로 히브리 말을 썼으며, 예수님과 제자들처럼 갈릴래아 지방 사람들은 주로 아람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가 예루살렘에서 체포됐을 때 군중들을 진정시키고 자신을 해명하기 위해 연설할 때 굳이 히브리 말로 한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사도 22,2).
복음서에는 유다인들의 일상어로 아람 말이 등장한다. ‘압바’(마르 14,36), ‘가빠타’(요한 19,13), ‘골고타’(마태 27,33), ‘맘몬’(마태 6,24- 본문에는 헬라어 마모나스로 음역해 놓음), ‘파스카’(루카 2,41), ‘하켈 드마’(사도 1,19), ‘마라나 타’(1코린 16,22) 등이 복음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아람 말이다.
또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실 때 “탈리타 쿰”(마르 5,41)라고 하신 말씀이나,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라고 하신 말씀 모두 아람 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죄명패에는 히브리 말, 라틴 말, 그리스 말로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쓰여 있었다(요한 19,19-20). 이는 당시 팔레스티나 지역에 이 말들이 상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라틴 말은 칙령의 언어로 공용어였다. 유다 역사학자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에 의하면 로마에서 내려온 훈령은 늘 헬라어로 번역됐다고 한다. 당시 이스라엘의 랍비들은 “헬라 말을 자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돼지고기를 먹는 것과 같이 저주받아야 한다”고 경멸했지만 로마 제국에 통용되던 헬라어를 막을 수 없었다.
한편, 구약의 에스테르기와 예레미야서 일부, 다니엘서 일부도 아람어로 쓰였고, 마태오 복음도 처음에는 아람어로 쓰였다가 후에 헬라어로 번역된 것이라는 게 성경학자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사순 ㆍ부활 시기에 자주 상영되는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용하는 말이 모두 아람어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말이 궁금하면 이 영화를 꼭 볼 것을 추천한다.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 그리고 이디쉬
장주현 특파원 승인 2017.10.02 16:14 댓글 0기사공유하기
프린트
메일보내기
글씨키우기
이스라엘 이야기9
내가 처음 이스라엘에 도착했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지만 그 가운데 특히 더 낯설었던 것은 전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말이었다. 그러나 “서툴러도 그 나라 말로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이 자네를 그 나라 말을 가장 잘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거야.”라고 하신 스승 목사님의 가르침이 큰 힘이 되어 낯선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말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어느 큰 슈퍼마켓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필요한 물건을 고른 뒤 계산대 앞에서 서툰 이스라엘 말로 직원에게 더듬더듬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검은 옷을 입은 유대 종교인이 갑자기 내게 “너는 이방인인데 왜 거룩한 말을 사용하지? 히브리어는 거룩한 언어라서 너 같은 외국인은 사용하면 안 돼. 그 말 당장 쓰지 마!” 하고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는 영어로 말했고, 나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없었지만 그가 하는 말을 대강 알아듣고 “I am holly so it’s ok.(나는 의롭기 때문에 괜찮습니다.)”라고 답했다. 그가 화를 내며 계속 말하자 계산대에 있던 아주머니가 우리 때문에 거스름돈을 세기 어렵다며 둘 다 조용하라고 짜증을 냈던 기억이 난다.
고대 히브리어와 현대 히브리어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히브리어다. 현재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용하는 히브리어를 현대 히브리어라고 하는데, 그것은 고대 시대 즉 성경 시대에 사용했던 히브리어와는 조금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옛날 우리나라 한글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말하는 것과 글로 적어 표현하는 것이 차이가 많았던 것처럼 히브리어 역시 그러했다. 실제 말은 그렇지 않은데 문자로 표기할 때는 어색한 표현 방식이 많았다.
고대 히브리어는 구약성경을 기록한 문어체 히브리어를 말하며, 현대 히브리어의 뿌리가 되는 언어지만 현재 실제 생활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문자로 된 고대 히브리어가 사용되는 경우는, 회당에서 성경을 낭독하거나 성경공부를 하며 성경 구절을 적용할 때, 그리고 절기나 안식일같이 특별한 날에 유대교만의 의식을 행하며 성경과 기도문 등을 읽을 때 등이다.
그에 비해 말할 때 사용했던 히브리어는 우리가 조선시대로 간다 해도 당시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 같이, 현재 이스라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유대인들은 과거에 2천 년 이상 여러 나라에 뿔뿔이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언어가 각기 달라졌지만 성경을 대할 때와 절기를 지킬 때만큼은 히브리어를 사용했다.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유일신인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이 동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히브리어가 유대인들을 하나로 만들어 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히브리어의 역사와 특성
히브리어는 히브리음으로 ‘이브릿’이라고 한다. 원래 ‘히브리’라는 단어는 갈대아 우르(현재 이라크 지방) 출신인 아브라함의 사람들을 가나안 족속들이 ‘헤부르인’들이라고 부르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그 뒤 아브라함의 계보에 있는 사람들을 ‘히브리인(이브리)’이라고 부르고, 그들이 쓰는 언어를 이브릿, 즉 히브리어라고 불렀다.
고대 히브리어는 모음 없이 자음만 22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해문서 같은 고대 히브리어 성경은 모두 자음으로만 적혀 있다. 당시에는 성경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약성경은 히브리 민족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다가 필사본이 등장하면서 구전되던 방식은 점점 사라졌다.
열왕의 시대에 이르러 아람(시리아)이 이스라엘을 자주 침입하면서 그 영향으로 히브리어에 아람어가 섞이기 시작했고, 그 결과 고대 히브리어는 성경에만 사용되고 일상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언어가 되었다.
그 후 7세기경에 히브리어 성경을 번역하는 새바람이 불었다. ‘맛소라’ 학파 사람들이 처음으로 히브리어 자음에 모음을 추가하면서 성경이 읽기 편하게 필사되었고, 그 뒤로 지금까지 필사된 구약성경에는 모두 모음이 달려 있다.
히브리어의 특색으로는 남성동사(쟈카르)와 여성동사(네케바)가 있고, 우리나라 말과 반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 현대 히브리어와 구약성경의 히브리어를 비교해 보면, 마치 현대 한글과 세종대왕 때 만든 용비어천가가 차이가 나는 것과 같다. 즉 현대어와는 전혀 다른 모양이다. 현대 히브리어는 1900년대에 접어들어서 일상적인 언어로 부활했다.
현대 히브리어의 아버지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
히브리어는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성경에만 사용되고, 소수의 공동체 유대인들에게만 전통적인 모국어로 실생활에 사용되었고, 대부분의 유대인들에게는 이미 잃어버린 모국어가 되어버린 경우가 많았다. 특히 유대종교인들은 히브리어가 거룩한 성경의 언어라는 이유로 일상생활에서 사용은 물론 읽고 쓰는 것조차 철저히 금했기 때문에 더욱 모국어로써의 이미지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렇게 지내오다가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시온주의자인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1858∼1922)’와 같은 사람에 의해 히브리어가 보편화되어 일상 언어로 자리 잡았다.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는 “이스라엘 땅과 이스라엘 말이 없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될 수 없다”는 신념으로 매일 새로운 단어들을 만들었다. 그는 히브리어가 신문과 책과 학교 교육에서 사용되고, 일상 언어로 널리 보급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진 선구자다. 우리나라의 한글 학자 주시경 선생과 같은 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런 시온주의자들의 노력으로 히브리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쓰는 일상어가 되었고, 지금은 누구든지 교육 기관에서 현대 히브리어를 접하고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이민자나 외국 학생들을 위해 현대 히브리어를 단계적으로 가르치는 ‘울판’이라는 제도도 있다.
예수님은 어떤 언어를 쓰셨는가?
예수님은 어떤 언어를 사용하셨지에 대해서는 견해도 다양하고 논란도 많다. 어떤 이들은 아람어를 쓰셨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히브리어, 어떤 이들은 헬라어를 쓰셨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람어가 섞인 히브리어를 쓰셨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즉 글이 아닌 말을 할 때는 아람어가 섞인 히브리어를 쓰셨다는 것이다.
히브리어는 고대 시대 오랜 세월 동안 유대인들의 실생활 언어였는데, 아람어와 섞이면서 예수님 시대에 와서는 아람어를 마치 지방 사투리처럼 혼용해서 썼다는 것이다. 특히 나사렛과 가버나움 같은 갈릴리 지역의 사람들이 아람어를 유난히 많이 섞어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아람어가 섞인 히브리어를 말하면 그 사람은 갈릴리 출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때도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의 말투를 듣고 그가 갈릴리 사람인 것을 구별했다. “…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마 26:73) 마치 우리가 말투로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사람을 구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신약성경에 나온 아람어들
옛 시리아 말인 아람어는 에스겔 다니엘 같은 성경의 일부에 쓰여 있어서 고대 히브리어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신약시대 갈릴리 지역에 아람어가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여전히 대화체 히브리어가 유대인들의 모국어였음을 앞에서 이미 언급했었다. 그러면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이 아람어를 쓰셨던 부분을 살펴보자.
▪탈예타 쿠미(달리다굼)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막 5:41)
▪히파탘흐(에바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막 7:34)
▪엘리 엘리 레마 쉬바크타니(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6)
위의 성경 구절에 보면, 순수 아람어를 사용한 부분은 아람어 음으로 표기했고, 그 뒤에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 해설이 꼭 붙어 있다. 아람어에 부연 설명을 단 것은 마치 우리나라에서 텔레비전 방송 중에 어떤 사람이 알아듣기 어려운 사투리로 말하면 그 부분을 자막에 표준어로 바로잡아 주는 것과 같다. 아람어가 히브리어에 섞여 통용되었지만 아람어가 당시 공용어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주는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빌라도가 예수님이 못 박히신 십자가 위에 패를 써 붙일 때 히브리어, 라틴어, 그리고 헬라어로 기록한 것 또한 당시 유대인들의 공용어가 히브리어였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예수의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요 19:20)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말씀하신 여덟 마디의 말씀 중 아람어로 표현된 부분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다. 이 부분도 성서 공회의 히브리어 번역본에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음이 약간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여덟 가지 말씀은 다음과 같다.
1.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2.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3.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 19:26)
4. “… 보라, 네 어머니다….”(요 19:27)
5.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 막 15:34)
6. “… 내가 목마르다….”(요 19:28)
7. “… 다 이루었다….”(요 19:30)
8. “…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이 가운데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마태복음에서는 ‘엘리 엘리’로, 마가복음에는 ‘엘라히 엘라히’로 기록되어 있는데, 둘 다 같은 말이다. ‘엘리’는 주로 히브리어에서 쓰는 말로, 예수님 시대에 아람어가 섞인 히브리어를 사투리처럼 사용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의 하나다.
바울이 사용한 언어는 헬라어가 아니다
일부 학자들은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신서가 헬라어로 기록된 것을 보고 초기 기독교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헬라어를 썼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의 행적을 보면 당시 유대인들의 모국어가 헬라어가 아니라 히브리어라는 것을 정확히 알 수 있다. 또한 4복음서 가운데 특히 마태복음이 처음 기록될 때 유대인들에게 유대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는 점 등을 미루어 보면 더욱 그러하다.
사도행전 21장 37절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잡아 죽이려 할 때 천부장이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면서 바울에게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라고 묻는다. 만약 당시 유대인의 언어가 헬라어였다면 천부장이 바울에게 굳이 헬라어를 아냐고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헬라어를 아는 유대인들과 모르는 유대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나타내 준다. 당시 귀족들이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헬라어에 능통했는데, 그런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20퍼센트 정도였다고 한다. 사도 바울이 헬라어를 안 것은 교육을 받은 사람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헬라어를 아는 유대인들은 갈릴리에서 아람어가 섞인 사투리 같은 히브리어를 구사한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바울이 유대인들 앞에서 간증할 때마다 히브리어 방언으로 말했다는 것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행 21:40, 행 22:2). 특히 사도행전 26장 14절에는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예수님이 자신에게 직접 히브리어 방언으로 말씀하셨다고 증거하고 있다. 이것 또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언어가 히브리어였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성경에 히브리 방언이라고 적힌 것은 회화로 사람들이 일상에 사용한 구어체 히브리어를 가리킨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 즉 예수님이 사셨던 시대를 포함한 무렵에는 헬라어가 유럽의 공용어로서 지금의 영어와 같은 역할을 했다. 로마제국 때문에 유럽이 세계의 중심인 시대였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외교와 유통 같은 국제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헬라어를 잘하는 것이 성공을 보장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당시 로마에서도 귀족들은 헬라어를 주로 사용했고 서민들은 길거리 라틴어를 사용했기에 로마 귀족들은 자신들이 헬라어에 능통한 것을 과시했다.
이 당시 쓰였던 헬라어를 코이네 헬라어라고 하는데 현대 그리스어가 아닌 고대 그리스어를 가리킨다. 당시에는 헬라어를 알면 세계 어디에서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신약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되고 기록된 이유 중 하나도 헬라어를 통해 전 세계 이방인들의 눈과 귀에 복음과 믿음의 삶을 전해주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유럽 유대인들이 만들어 쓴 언어 ‘이디쉬’
이스라엘 사람들의 언어 가운데 재미있는 언어는 이디쉬다. 예루살렘 안에 살면서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쓰는 유대인이 있는데, 그들이 쓰는 언어를 ‘이디쉬’라고 한다. 약 2천 년 간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들 가운데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 살았던 사람들을 ‘아쉬케나지’라고 한다. 그들이 독일어와 히브리어와 슬라브계 언어가 혼합된 언어를 만들고, 그것을 히브리어 문자로 표기하면서 유럽의 유대인들만이 사용하는 새 언어가 탄생되었다. 히틀러가 당시 세계의 유대인 약 1440만 명 가운데 약 600만 명을 학살했을 당시에 죽은 유대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디쉬를 사용하는 유럽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이 학살당함으로 이디쉬가 사라지는 듯했으나 생존자들에 의해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히브리어가 거룩한 언어라는 이유로 소수의 종교인들은 아직도 이디쉬를 고집하며 사용하고 있다.
모든 언어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한 유대인 친구가 내게 이렇게 말한 적 있다. “나는 한국과 독일에서 신학을 배우러 이스라엘에 온 목사들이 싫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유대 종교인들에게 핍박을 받는데 그들은 이스라엘에 와서 수년 간 공부하면서도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과 복음을 전하지 않고 박사 학위만 받아서 돌아간다.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 박사학위만 따고 가면 이스라엘에서 배운 히브리어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자기 명성만 높이는 수단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마음이 무척 상한다.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실까?”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깊이 생각되었다. 어떤 언어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어를 주신 이유는 그 나라 말로 복음을 전하라고 주신 것이 확실하다. 히브리어든 한국어든 어느 언어든지 하나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죄를 다 씻으셨다는 사실을 그 나라 말로 전해주고 싶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마음을 표현하라고 우리에게 언어를 주셨다. 특히 복음을 전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가장 아름답게 빛난다고 믿는다. 히브리어가 아직까지 살아 있는 이유는 예수님과 바울이 복음을 전한 것처럼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히브리어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으시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