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술을 좋아하셨던 시골소년의 아버지는 눈 쌓인 겨울날도 어김없이 얼큰한 모습으로 들어오셨다. 아버지의 손에 들린 종이봉지에는 사과 대여섯 개가 들려있었다. 술을 드시면서도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식들을 생각하셨나 보다. 생긴 모양이 약간 비뚤어 졌어도 그 맛이 너무 달콤하고 식감이 단단하여 계속 먹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그 사과는 껍질이 푸른색인 ‘인도’라는 사과였다.
1970년대 후반 ‘후지’품종이 정착되면서 1980년대 들어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요즈음은 품종전시회에서나 볼 수 있는 추억속의 사과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재래종 사과인 ‘능금’을 재배했었다.
1884년부터 선교사들이 서양품종을 몇 그루씩 가지고 들어왔고 1901년이 되어서야 원산에 대규모 과수원을 조성하여 ‘국광’과 ‘홍옥’ 품종을 심어 상업적 재배가 시작되었다.
전 세계인의 대표과일인 사과는 4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품종도 2500여종이 넘는다. 사과(沙果)는 모래와 과일이 합쳐진 말이다. 이집트 람세스 2세는 사과를 처음 재배한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BC 13C경 나일강변에 사과를 심으라고 장려하였다고 하는데 습기가 없는 이집트의 토양은 사과재배에 적격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스인들은 BC 7세기경 처음 사과를 재배하였고 ‘황금과일’이라고 부르며 즐겨 먹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는 제우스와 결혼해서 선물로 사과를 바쳤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계림유사》에 ‘임금’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최초이지만 사과를 먹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서이다. 박지원은 청나라 사신 행렬에 참여했던 기록인 《열하일기》에서 ‘우리나라에는 사과가 없는 데 효종의 사위 정재륜이 청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사과를 접붙여 가져온 후 많이 퍼졌다’고 하였고 추사 김정희는 《완당집》에서 ‘사과는 부처님께 바치는 제물 중에서 그 이상 좋은 것이 없을뿐더러 자연에서 자라는 신선의 과일이요. 군자의 담담한 향기와 같으니 모든 과일 중에서 이만한 과일이 없다. 지금 귀양 와서 있는 처지에 이런 과일을 얻었으니 하늘이 맛보라고 내려준 복이다’라고 하였다.
사과하면 떠오르는 말은 ‘선악과’이다. 사실 구약성서에는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따 먹은 과일이 사과라는 기록은 없다. 다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로 그 열매를 선악과로 표기했다. 400년경 히에로니무스(기독교 성직자로 라틴어 성경 번역가)가 히브리어로 쓰여 진 성경을 라틴어로 옮기던 중 선악과를 ‘말룸(Malum)’ 이라는 단어로 번역하였는데 선악과의 부정적인 단어를 찾다가 ‘악의적인 (malicious)’과 느낌이 비슷한 ‘말룸(Malum)’을 선택했는데 말룸이 ‘사과(Malus)’로도 해석될 수 있다. 말룸으로 기록된 성경은 15C 쿠덴베르크 인쇄술 덕분에 널리 퍼지고 르네상스시대 화가들이 이 성경을 참고하면서
에덴동산에 사과를 그려 넣었다. 또한 영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존 밀턴이 1667년 펴낸 대서사시《실락원》에서 창세기의 선악과는 ‘사과’라고 표현했다. 이후 수많은 예술가가 아담과 이브를 다루는 작품에서 선악과를 사과로 표현하였다. 사실 사과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기 짝이 없다.
사과는 우리의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일들과도 관계가 많은데 아담과 이브의 사과 말고도 미의 여신 비너스는 여신들 중 최고의 미인으로 선택될 때 황금사과를 받았고 빌헬름텔의 사과는 지배 권력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다. 뉴턴은 사과를 보면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생각해 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컴퓨터 A사의 베어 먹다 만 사과는 창업주의 의도를 떠나 썩은 것은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낸다는 상징이 아닐지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 사과는 품질도 좋아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수출도 되고 있으며 생산액이 매년 1조원이 넘는 중요한 농산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국민 1인당 연간 10kg 정도를 먹고 있다.
최근 소비패턴의 변화에 따라 과일을 먹는 방법도 다양 해 지고 있다.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사과도 있고 껍질째 먹는 사과도 있다. 특히 청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칩이나 스낵과 같은 가공품도 개발되어 있다. 너무 익은 사과나 수확하여 오랜 시간이 지난 사과는 과일 표면에 끈적끈적한 왁스물질이 생기는데 이것은 과일 자체가 노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과일은 분질화 되어 맛이 떨어지므로 기름기가 끼어 보이거나 오염된 듯한 과일은 고르지 않는 것이 좋다.
‘아침에 먹는 사과는 금, 저녁에 먹는 사과는 독’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위장에 문제가 있는 사람만 아니면 아무 문제가 없다. 언제 먹든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고 소화흡수를 돕는다. 실제 필자도 겨울철 사개월 정도는 거의 매일 사과를 먹는다.
‘하루에 사과 한 개를 먹으면 의사가 필요 없다’라는 영국 속담이 있다.
각종 영양소가 풍부한 과일임을 설명할 필요도 없다.
단맛과 신맛의 조화는 우리의 입맛을 유혹한다.
기분 좋은 유혹이다. 망설이지 말고 유혹에 빠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