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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에밀리 디킨슨(1830-1886)의 것입니다. 디킨슨은 가장 미국적이고, 가장 보편적이며, 가장 혁신적인, 가장 보수적인 불가사의한 시인입니다. 1830년 12월 10일 미국 매사추세츠 Massachusetts의 앰허스트 Amherst에서 변호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How happy is the little Stone
How happy is the little Stone
That rambles in the Road alone,
And doesn't care about Careers
And Exigencies never fears......
Whose Coat of elemental Brown
A passing Universe put on,
And independent as the Sun
Associates or glows alone,
Fulfilling absolute Decree
In casual simplicity......
길에 뒹구는 저 작은 돌
길에서 혼자 뒹구는 저 작은 돌
얼마나 행복할까
세상 출세일랑 아랑곳 없고
급한 일 일어날까 두려움 없네
천연의 갈색 옷은
지나던 어느 우주가 입혀줬나
혼자 살며 홀로 빛나는 태양처럼
다른 데 의지함 없이
꾸미지 않고 소박하게 살며
하늘의 뜻을 온전히 따르네
I like a look of Agony
I like a look of Agony,
Because I know it's true-
Men do not sham convulsion,
Nor simulate, a Throe-
The Eyes glaze once- and that is Death-
Impossible to feign
The Beads upon the Forehead
By homely Anguish strung.
나는 고뇌의 표정이 좋아
나는 고뇌의 표정이 좋아,
그것이 진실임을 알기에-
사람은 경련을 피하거나
고통을 흉내낼 수 없다.
눈빛이 일단 흐려지면- 그것이 죽음이다.
꾸밈없는 고뇌가
이마 위에 구슬땀을
꿰는 척할 수는 없는 법이다.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
That perches in the soul,
And sings the tune without the words,
And never stops at all,
And sweetest in the gale is heard;
And sore must be the storm
That could abash the little bird
That kept so many warm.
I've heard it in the chillest land,
And on the strangest sea;
Yet, never, in extremity,
It asked a crumb of me.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
영혼 속에 머무르면서
가사 없는 노래를 부르면서
결코 멈추는 일이란 없다.
광풍 속에서 더욱더 아름답게 들린다.
폭풍우도 괴로워 하리라.
이 작은 새를 당황케 함으로 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었는데.
얼어들 듯 추운 나라나
멀리 떨어진 바다 근처에서 그 노래를 들었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 있으면서 한 번이라도
빵조각을 구걸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I died for beauty
I died for beauty but was scarce
Adjusted in the tomb,
When one who died for truth was lain
In an adjoining room.
He questioned softly why I failed?
"For beauty," I replied.
"And I for truth,--the two are one;
We brethren are," he said.
And so, as kinsmen met a night,
We talked between the rooms,
Until the moss had reached our lips,
And covered up our names.
美를 위해 난 죽었지
美를 위해 난 죽었지, 하지만
무덤에 안장되자마자
진실을 위해 죽은 이가
이웃 무덤에 뉘어졌지.
그이는 소곤소곤 내게 물었지, 왜 죽었느냐고?
" 美를 위해" 난 대답했지.
"나 역시, 진실 때문에--그러나 이 둘은 한몸;
우린 형제로군" 그는 소리쳤네.
그리하여 밤길에 만난 동포처럼,
우린 무덤 사이로 얘기했네,
이끼가 우리 입술에 닿을 때까지,
그리고 우리 이름을 덮어버릴 때까지.
To flee from memory
To flee from memory
Had we the Wings
Many would fly
Inured to slower things
Birds with surprise
Would scan the cowering Van
Of men escaping
From the mind of man
새가 되어 기억에서 달아나리라
추억으로부터 우리
달아날 날개가 있다면
무수히 날게 되리라
느리디 느린 사물에 익숙해지며
놀란 새들은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달아나고 있는 자들의
움추린 커다란 날개를
빤히 바라보게 될 것을
I felt a clearing in my mind
I felt a clearing in my mind
As if my brain had split;
I tried to match it, seam by seam,
But could not make them fit.
The thought behind I strove to join
Unto the thought before,
But sequence ravelled out of reach
Like balls upon the floor.
내 마음 속에 정화를 느꼈네
나는 내 마음 속에 정화를 느꼈네,
마치 나의 뇌가 쪼개어진 듯이.
나는 그것을 맞추려고 노력했네,
한 솔기 한 솔기씩.
하지만 양쪽을 꿰어맞출 수 없었네.
앞 생각을 뒷생각에
끼워맞추려 나는 애를 썼네,
그러나 손 댈 수 없을만큼 줄줄이 엉켜버렸네
바닥 위에 놓인 두 개의 공처럼.
작품과 감상
-미안하다 박복하다. 첫번째 - 에밀리 디킨슨
나는 개인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았던 여자 작가를 발견하는 것은 가뭄에 콩 나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자 작가들의 전기를 읽다보면 어쩌면 하나같이 그녀들의 삶은 비극에 비극을 더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끝나는지, ‘성공한 여성 작가 되려면 불행해져라’라는 매뉴얼이라도 있는 것 같다. 우울증, 아버지에 대한 증오, 히스테리, 불행한 독신녀, 이혼, 자살로 얼룩진 그녀들의 삶은 글쓰기가 얼마나 남성중심적인 공간이였는지를 보여주는 예가 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녀들의 삶이 그렇게 줄곧 불행한 것이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불행한 작가의 삶은 대중을 매료시키고 때때로 대중들은 작품보다 그들의 사생활에 더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영리한 편집자들은 불행한 작가의 삶이 더 많은 부수와 대중의 관심을 보장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여성 작가들의 정신병력과 화려한 이혼 경력, 좌절과 절망을 다른 무엇보다 강조하게 되고, 그녀들의 생은 '불행'이란 두 글자로 간단히 정리된다.
그러나 항상 행복할 수 없듯이 아무리 박복한 사람도 평생 매순간 불행할 수만은 없다. 가끔은 좋은 일도 있고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할 때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나는 “미안하다 박복하다” 시리즈를 통해서 영문학사에서 대표적으로 “박복한 년”들의 삶과 작품을 소개하고 그녀들의 삶이 그렇게 불행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주장을 하고 싶다. 그래야 천국에서 그녀들이 좀 덜 억울할 것이 아닌가.
“에밀리 디킨슨은 정말 미친년 같아.”라고 한 친구는 나지막히 말했다. 사실 그녀의 전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든다.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작품집은 지금에야 걸작 중에 걸작으로 읽히고 있지만 그녀는 살아 생전 7편의 시를 선보였고 그녀의 사후 1775편의 시들이 집에서 발견되어 출판되었다. 에밀리 디킨슨은 33년 동안 집에서 은거하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그리고 그녀는 33년 동안 흰 옷만을 고집했다. (여기서 미친년 확정!)
디킨슨을 다룬 많은 전기들은 그녀의 은거를 월간 아틀랜틱 편집장이자 문학평론가인 토마스 히긴슨에게 버림 받았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하곤 하는데, 사실 그녀의 시에는 사랑의 고통이나 아픔을 다룬 부분이 별로 없다. 그러니까 좀 오버해서 생각해보면 에밀리 디킨슨은 그냥 세상이 피곤했을 수도 있다. 조용히 혼자 글을 쓰는 것을 즐겼을 수도 있다. 흰 옷을 많이 좋아한 것 뿐일 수도 있다. 누구도 그녀가 33년 간 어떻게 살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건만, 이 상상력이 빈곤한 전기 작가들은 여자가 혼자 살면 하늘이라도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광기야 말로 가장 신성한 지각입니다.
분별력 있는 눈에게,
지각은 순수한 광기입니다.
다수입니다.
득세하는 것은.
동의하시오 그러면, 당신은 정상.
반대한다면 당신은 곧장
쇠사슬에 묶일 것입니다.
(Much Madness Is Divinest Sense)
에밀리 디킨슨 시의 많은 부분은 ‘소수자’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그녀는 ‘의미있는 누군가’(Somebody)가 되는 것보다 '아무도 아닌 사람'(Nobody)으로 남고 싶어 한다. 디킨슨의 시가 많은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에게 발굴되고 그녀가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의 반열에 들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날카로운 ‘통찰력’ 때문이었다. 디킨슨이 말한 것처럼 “성공의 가치는 성공하지 못한 자들에게 가장 달콤하게 들리는”는 것이기 때문에. (Succeed is Counted Sweetest)
죽음을 위해 내가 멈출 수 없음으로
친절하게도 죽음이 나를 위해 멈춰주었다.
마차 안에는 우리 둘과
불멸만이 남아있었다.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아주 간결하고 짧지만, 가장 번역하기 어려운 시들로 꼽힌다. 왜냐하면 문법 파괴와 극도로 간결한 단어들, 추상적인 비유는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에게도 난해하기 때문이다. 또 에밀리 디킨슨이 1775편이나 되는 시에 제목을 하나도 붙이지 않았다는 점도 특이하다. 그래서 보통 그녀의 시는 학자들이 임의로 붙인 번호를 따르거나 시의 첫줄을 제목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곧잘 동시대를 살았던 월트 휘트만과 비교되곤 한다. 남성 작가이자 미국의 대표적 자유시 작가로 유명한 휘트만은 정말 사내 중에 사내이다. 그는 19세기 미국의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어떤 운율이나 라임을 무시한 자유시(free verse)의 형태로 쓰고 있다. 그에 비해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마치 단어 하나하나를 내뱉기를 망설이고 괴로워하는 것처럼 뚝뚝 끊어진다. 그녀의 시에는 대쉬(-)가 많이 쓰이는데 대쉬는 각 단어의 호흡을 끊어버린다. 그녀는 문법을 지키지 않는다. 불필요한 단어를 생략한다. 고르고 고른 단어에 의미를 부여한다. 휘트만이 무한대로 확장하는 언어를 쓰고 있다면 디킨슨은 마치 “제 친구를 골라낸 뒤 문을 닫아버린 영혼”처럼 내면으로 수렴되는 언어를 구사하는 셈이다.
영혼은 제 친구를 골라낸 뒤
문을 닫아버린다.
그녀의 신성한 다수에
더 이상 끼여들지 마라.
(The Soul Selects Her Own Society)
이 얼마나 오만한 여자인가.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결코 자신의 의미를 쉽게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녀는 33년을 홀로 보내며 1775편의 시를 썼지만, 이런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을 싫어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평론가들은 그녀가 쓸쓸하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삶을 살았다고 하지만, 사실 그녀가 세상을 버린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겠는가. 그녀는 말한다. “외로움이 없다면 더 외로워지겠죠.” (It Might Be Lonelier)
나는 슬픔을 건널 수 있어요.
가슴까지 차 올라도
익숙하거든요.
하지만 기쁨이 나를 살짝만 건드려도
나는 발을 헛디뎌
넘어집니다. 취해서.
(I Can Wade Grief)
디킨슨의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시들은 그녀의 고통과 폐쇄적인 자아관, 죽음을 주제로 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다음 시를 읽고도 과연 그녀가 불행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에밀리 디킨슨의 사랑스러운 시 한 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미안하다 박복하다” 시리즈의 첫 번째 칼럼을 마칠까 한다. 더 불행한 여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초원을 만들고 싶으면,
클로버 한 잎과 벌 한 마리면 돼요.
클로버 한 잎과 벌 한 마리,
그리고 꿈이 있으면 돼요.
꿈만으로도 만들 수 있지요
벌들을 찾기 힘들 땐.
(To Make a Prairie)
그녀의 시 중에 가장 완벽하게 써진 것으로 평가되는 이 시는 그런 죽음의 모습을 아주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시인은 이 죽음을 삶 속에서 늘 직관적, 또는 선험적으로 경험한다. 그러므로 에밀리 디킨슨의 죽음은 동양의 죽음에 가까운 것이다. 이런 죽음과의 친교, 그것은 시인에게 하나의 질서를 요구한다.
- Beacause I could net stop for death-
- He kindly stopped for me
- The Carriage held but just Ourselves-
- And Immortality. (이하 생략)
- 내 죽음 때문에 멈출 수 없기에-
- 친절하게도 죽음이 날 위해 멈추었네-
- 수레는 실었네, 우리들 자신은 물론-
- 또 영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