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아프리카 메이저리거 ‘은고페이’
백인 클럽팀 쪽방서 살며 야구 시작해
89.5마일(약 144km)짜리 컷 패스트볼이었다. 데뷔 첫 타석. 상대는 2016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108년 동안 괴롭혔던 저주를 끊은 시카고 컵스의 에이스 존 레스터였다. 배트를 휘둘렀고 89.5마일짜리 컷 패스트볼은 투수 옆을 스치는 타구가 됐다. 공은 내야를 빠져나가 중견수 방향으로 뻗어 나가며 안타가 됐다.
한 경기 10여 개씩 쏟아지는 여느 안타와는 많이 달랐다. 아주 특별한 안타. 메이저리그 역사상 1만8954번째 선수이면서 동시에 최초가 된 선수의 데뷔 첫 안타였다. 상대팀 시카고 컵스의 야수들이 서둘러 그 공을 챙겨 피츠버그 덕아웃으로 굴려줬다. 1루에서 코치의 열렬한 환영을 받은 선수의 이름은 ‘기프트 은고페이’. 아프리카에서 태어나고 자란 최초의 메이저리그 선수다.
은고페이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인근 도시 폴로콰네라고 불리는 곳에서 태어났다. 은고페이가 뱃속에 있을 때 어머니 마우린은 21살이었고, 가난했고 혼자였다. 교회에서 만난 어떤 이가 “뱃속의 아이가 자라 자랑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해 마우린은 아이의 이름을 기프트라고 지었다.
은고페이가 어렸을 때 남아공은 여전히 인종차별이 심했다. 오두막에 살던 마우린은 아이를 친정 부모님에게 맡기고 요하네스버그 인근의 랜드버그에 일자리를 얻었다. 아마추어 백인 야구팀 랜드버그 메츠의 클럽하우스를 청소하고 선수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했다. 관객을 위한 간식도 만들어 팔았다. 대신 선수 라커룸 샤워실 옆에 쪽방을 얻어 은고페이를 포함한 아들 셋을 키웠다. 보잘 것 없는 방 한 칸이었지만 마우린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메츠 선수들은 행복한 표정의 마우린을 ‘해피’라고 불렀다. 은고페이는 그때를 떠올리며 “우리는 모든 것을 갖지 못했지만 필요한 걸 다 가진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야구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야구장에서 살게 된 은고페이는 자연스레 메츠 선수에게서 야구를 배웠다. 그는 자신의 이름 기프트 그대로 천부적인 재능을 드러냈다. 주변의 추천으로 은고페이는 이탈리아에 마련된 메이저리그 야구 아카데미에서 야구를 배울 수 있었다. 아카데미 원장은 명예의 전당에 오른 신시내티 명 유격수 배리 라킨이었다. 라킨은 “가장 먼저 와서 가장 늦게까지 훈련하는 선수”로 은고페이를 기억했다. 일찌감치 은고페이의 운동 능력과 천부적인 재능을 눈여겨본 라킨은 피츠버그 스카우트에게 그를 소개했다.
구단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데다 20년간이나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한 피츠버그는 오래전부터 남들이 신경 쓰지 않는 곳에서 재능있는 선수를 찾고 있었다. 인도 출신 투수 2명과 계약한 것도 피츠버그였다. 피츠버그는 은고페이와 1만5000달러에 계약했다. 2008년, 은고페이가 18세 때였다.
하지만 재능만으로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했다. 메이저리그는 최고들이 모인 곳이었다. 첫 4년 동안 그는 최하위리그인 싱글A를 벗어나지 못했다.
수비 능력은 인정받았지만, 타격은 쉽지 않았다. 간신히 더블A에 승격했을 때, 비보가 전해졌다. 어머니 마우린이 위독하다는 소식이었다. 괴로워하는 은고페이에게 닐 헌팅턴 단장이 찾아왔다. 은고페이는 “어머니는 지금 내가 필요하다. 나 좋은 일보다 가족이 우선이다”라면서 “구단에서 내가 필요 없다면 나를 방출해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헌팅턴 단장은 방출 대신 은고페이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머물 기회를 줬다. 은고페이는 5일 뒤 어머니를 하늘로 떠나보냈다. 그녀 나이 겨우 45세였다.
헌팅턴 단장은 “솔직히 은고페이가 다시 돌아올지 확신이 없었다”고 했지만, 은고페이는 2주 뒤 아프리카에서 돌아와 팀에 복귀했다. 은고페이는 “어머니가 하늘에서도 내가 야구를 계속하길 바랬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은고페이는 더욱 강해졌다. 2015년 후반기에 트리플A로 승격했고, 약점이었던 타격을 발전시키기 위해 스위치 히터를 포기한 채 우타석에서만 들어섰다. 때려서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나쁜 공을 참아내기 시작했다. 2017시즌을 앞둔 스프링캠프에서 은고페이는 타율 4할2푼9리, 출루율 0.500을 기록했다. 클린트 허들 감독이 은고페이를 눈여겨봤고 결국 4월27일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를 수 있었다.
은고페이의 도전은 계속 진행 중이다.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 메이저리거가 첫 경기 때 쓴 모자는 이미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전시됐다. 어머니에게 자랑스런 아들이 될 것이라는 예언은 기프트라는 이름과 함께 현실이 됐다. 은고페이는 어깨에 아프리카를 뜻하는 문신을 새겼다. 그리고 항상 하늘에서 자신을 지켜 보고 있을 어머니 마우린의 기대를 그 어깨에 얹었다. 안타를 때릴 때마다 어머니는 말할지도 모른다.
“잘 쳤어.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