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유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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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letter No.384
2015/9/15
추석이 멀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근대화 과정에서 추석처럼 비교적 순탄하게 전통
명절의 지위를 유지해 온 명절도 없다. 추석, 설과 함께 4대 명절이라 여겨졌던 한식과 단오는 이미 우리 삶에서 명절의 위상을 상실한지
오래이다. 추석과 함께 한국의 2대 명절의 하나로 인식되는 설도 우여곡절을 거쳐 음력 설이 명절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음력
설은 1910년대부터 일제에 의해 양력이 사용되면서 양력 설로의 전환이 추진된다. 당시에 생활개선이나 합리화의 명분으로 이중과세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조선인들로부터 제기되기까지 한다. 흥미롭게도 그런 상황에서도 음력 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는 달리 추석은 조선의 고유 명절로 인식된다.
이런 상황은 광복 이후에도 지속된다. 대한민국 정부가 1949년 6월 4일에 공휴일을 처음으로 지정할 때, 설은 양력 설로
지정되지만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지정된다. 양력, 음력을 떠나 단오나 한식은 공휴일로 지정조차 되지 않는다.
설의 경우,
양력 설이 보다 강력하게 추진된 것은 오히려 광복 이후 특히 박정희 정권 때이다. 1985년에 이르러서야 음력 설이 민속의 날로 지정돼 하루를
쉴 수 있게 되며, 1989년에 비로소 음력 설이 3일간 쉬는 공휴일로 지정된다. 설이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제 자리를 찾은 반면에, 추석은
그런 과정 없이 명절로서의 지위를 유지해왔다.
오늘날 추석은 어느 지역에서나 명절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든 지역에서 주요 명절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설은 어느 지역에서나 중요한 명절로 여겨졌지만, 이와 달리 추석은
지역에 따라서는 큰 명절로 여겨지지 않았다. 지금처럼 우리사회에서 추석이 2대 명절의 하나로서의 지위를 갖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특히 단오가 지배적인 명절로 자리잡고 있었던 지역에서는 추석은 전혀 인식되지 못한 채 지나쳤다. 조상에 대한 차례도 추석 때 행해지지 않았다.
안동 지역을 예로 들면, 1960년대 까지만 해도 단오가 큰 명절로 여겨져 3일씩 놀았지만 추석에는 아무런 행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차례도 추석에 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추석 차례 때 햇곡식 즉 햅쌀을 조상에게 천신해야 하는데, 추석 때는 햅쌀이 수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까지만 해도 안동 지역에서 가을에 천신을 하는 시기는 추석이 아니라 중구일이었다. 추석은 단순한 공휴일로서 객지에 나간
식구들이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날 정도로 여겨졌다고 한다.
현재는 이 지역에서도 추석은 중요한 명절로 자리잡고
있고, 차례도 추석에 지낸다. 이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추석이 공휴일로 지정된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공휴일이
포함된 일주일 주기의 시간 리듬이 도시와 시골 등 지역을 막론하고 지배적인 삶의 리듬으로 자리잡으면서, 삶의 활동 거의 대부분이 그 리듬에 맞춰
규정된다. 주말이나 공휴일 외에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할 시간을 거의 확보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아마 한식이나 단오도 공휴일로 지정되었더라면
추석 못지않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명절로 자리잡았을 가능성이 크다.
옛말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있다. 이는 추석이 일년 중 넉넉한 수확의 기쁨을 즐기는 가장 여유있는 시간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막연한 추정이지만, 설과 함께 추석이
우리사회에서 중요한 명절로 인식되고 공휴일로 지정된 것도 그러한 이유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며칠 남지 않은 추석이 우리에게
예전의 그런 넉넉함의 시간으로 다가올 지는 의문이다.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점점 생산의 결과를 함께 나누기 어려운 상황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의 전개는 쉽게 멈출 것 같지 않아 보이고, 그런 상황의 전개를 보완해줄 사회적 시스템을 갖추는 노력도 충분하지 않다.
오직하면 현재 우리사회를 ‘헬조선’이라 부를까? 추석 보름달은 휘영청 밝겠지만 우리들 마음은 달빛처럼 밝지 못할 것 같다.
이용범_ 안동대학교 인문대 민속학과 조교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