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宗敎)와 철학(哲學) >
종교와 철학의 차이는 서양에서 중세에 신학과 철학의 구분으로 시작됐다.
그리하여 신학은 신(神)에 대한 학문이고, 철학은 인간(人間)에 대한 학문이었다.
신(神)이라는 존재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설정된 것으로,
신을 내세워 종교학은 구원이라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종교는 사후세계에 대해 논하는데 이 점이 철학과 달랐다.
종교란 뭇 사람이 절실히 희구하는 바가 응집돼 형성되는 것이다.
그 희구하는 바가 철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보다 더 궁극적인 문제였을 때 종교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신론자 로버트 피시그(Robert Maynard Pirsig)는 말했다.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그래서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에 대한 물음에 대해,
철학은 이성의 입장에 서서 인간능력의 한계 안에서 사실을 생각하고
학문과 이론의 차원에 머물러 탐구하는 것이지만
종교는 그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능력뿐만 아니라
인간능력의 한계 밖의 어떤 힘(神)을 믿고 그에 의지해서
실천(신행)을 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신(神)을 설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종교는 인간생활에 있어서 뚜렷한 현상의 하나임이 틀림없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미약하고 불안한 존재이므로 종교의 힘에 의존하고,
절대자에 의지해 영혼의 깊은 근원과 접촉하고 고뇌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러한 종교의 탁월한 의의와 놀라운 감화를 부정할 수 없다.
그리하여 철학자 흄(David Hume, 1711~76)은 말했다.
“인간을 가리켜 불가피하게 종교적인 존재라며,
종교가 전혀 없는 사람을 찾아보라 만일 찾는다면
분명히 그들은 어느 정도 짐승에서 멀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종교는 이 세상을 세속적인 것, 일차원적인 것만이 아닌
신성의 차원, 이차적인 세계로 승화시킨다.
그리고 종교란 일종의 예언에 관한 것인데,
철학은 현재의 상황(존재)에 대한 고찰이지 예언의 영역은 아니다.
철학이란 일상생활의 이치에서 시작해 근본적인 존재의 이치까지 사색(연구)하는 것이고,
종교란 생명을 바르게 유지하는 길을 가르치는 일종의 미래학이다.
그러나 철학이나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중요시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 그리고 ‘나’라는 존재를 규명하고
그것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대처방법이 옳은 것인지, 혹은 옳지 않은 것인지를 밝혀내고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철학은 그러한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기본원리를 밝혀내고,
그것에 맞추어 어떻게 살아야 옳은 것인지에 대한 윤리관을 세우는 것인데,
철학은 구원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종교는 그 기준을 신에서 찾는다. 그리하여 종교는 반드시 구원을 포함한다.
폴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 1886-1965)는
인간의 실존적 불안은 심리적인 불행과 갈등과 고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 안에 박혀있는,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그리고 인간이기 때문에 지녀야 하는 ‘불안(不安)’이라는 것이다.
불안은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고(苦)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철학으로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다.
종교는 믿음을 근간으로 한다.
나를 포함한 사람과 다른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 사람과 다른 초월적 능력을 가진 존재에 대한 믿음을 근간으로 한다.
그리고 그 믿음에 의지해서 불안을 극복하려고 한다.
이러한 대중적인 사고를 이끌어 가며 우리 삶에 포괄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종교이다.
종교와 철학 사이의 실질적 차이는
'도덕적 명제'를 진술하는 방식들 사이의 차이다.
종교적 진술은 항상 이성에 의존하지 않고
대개 절대적이며 논쟁의 여지가 없는 복종을 요구하는 명제이다.
그런데 철학자의 도덕적 명제는 결코 명령적이지 않다.
철학은 대개 형이상학적이다.
따라서 철학은 지적탐구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지적 탐구를 통해 사회현상을 비판하고 선도하는 기능을 가지는 것이다.
특정한 세계관을 진리로 보지 않고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 한다.
종교는 세상을 구제하는 실천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 그들에게 힘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철학은 세상을 구제하는 원리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에 제자백가들이 나왔다.
자신의 생각으로 세상을 구제해 보자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산업혁명 이후 비참하게 살아가는 노동자가 속출하자 사회주의사상이 나왔다.
종교와 철학이 가지는 근본적인 차이점은 계시에 있다.
계시(啓示)란, 신이 자신이 존재함을 인간에게 알리는 것이다.
'신이 존재함'을 누가 알릴 수 있을까. 당연히 신밖에 할 수 없다.
종교는 창조론이 가능하다. 전능하기에 창조가 가능하다.
동시에 전지하기에 창조한 피조물의 세계에서 벌어질 일들을
모두 알고 있고 예견할 수 있다. 인간 또한 신의 피조물일 뿐이고,
신을 갈구하는 것 자체도 신의 의지이다.
그것이 계시이다. 종교인들의 절대적인 믿음이기도 하다.
따라서 계시라는 개념은,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과학적이지는 못하다.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계시라는 것은
그 논리적 근거가 없다. 막연히 신이 준 것이라는 주장뿐이다.
이와는 반대로 철학에는 계시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철학자들이 무조건 회의론자가 아니다.
진리(혹은 종교의 계시) 같은 게 존재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진리는 분명 존재하지만 아직 얻지 못한 것으로 본다.
그리하여 논리적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을 철학자라고 하고
그런 학문을 '철학'으로 규정한다.
철학의 경우는 논리적인 비판과 체계성을 기본으로 삼기 때문에
자신의 이론을 정립한 사람은 그 근거와 그 근거로부터 연역 또는
귀납해낸 이론의 논리성을 중심으로 자기이론을 정립한다.
다만 세계 4대 성인들은 종교의 창시자이자 철학자였고,
철학과 종교를 하나로 봤다는 점에 유의해야 하겠다.
그러나 원래 서양에서는 종교와 철학은 잘 어울리는 존재가 아니었다.
philosophy(철학)의 원래 뜻은 지혜 사랑이다.
인간과 세계의 근본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이지만,
한편 철학은 구체적인 사용처를 가진 학문과는 차이가 큰 분야이다.
종교가 이성을 지배하기 이전에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철학자들이 있었다.
중세시대에는 종교철학이 발달했지만, “불합리하므로 믿는다.”는 유명한 명제처럼,
궁극적 진리를 합리적, 논리적, 분석적 방법으로 탐구하고자 하는 철학은 기독교의 교리와 맞지 않았다.
결국 기독교의 이론적 허약함을 보충해주는 역할에 불과했다.
때문에 중세시대는 문화적 암흑기였다.
르네상스로 신의 권위가 약해지고 인간을 다시 돌아보게 되면서
철학도 힘을 받게 된 것이다. 이후 철학은 종교를 압도할 정도로 발전해나갔다.
― 불교와 철학 ―
흔히 불교는 종교인가 철학인가 하는 의문의 대상이 된다.
불교는 철학이 아니라 종교이다. 불교가 깨달음을 추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불교를 철학적으로 사변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니다.
올바른 신앙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信), 이해하며(解), 가르침대로 행(行)하는 것이다.
구사(俱舍), 중관(中觀), 유식(唯識)과 같은 불교철학을 배우는 것은
경전의 말씀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불교가 종교인만큼
무엇보다도 먼저 믿는 것이 필요하며 가르침대로 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해는 믿음을 더욱 깊게 하는 수단일 뿐이다.
불교도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구원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의 삶은 고통으로 얼룩져있으므로
사성제(四聖諦), 육바라밀(六婆羅密)과 팔정도(八正道)의 과정을 거쳐
열반(일종의 천국)에 들어 고(苦)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불교는 신(神)이 존재하지 않는 무신론의 입장이므로
인간이 이성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신에 의지해서 그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해석하려는 지혜의 종교이다.
때문에 불교는 종교와 철학을 분리하지 않는 독자적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해석체계를 수립하고 있다.
그래서 불교가 마치 철학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불교의 종교적 이해와 그 실천에 ―
종교인지 철학인지 구분을 못해 혼란을 느끼는 주요배경은
‘신(神)과 인간의 관계’에서만 종교를 파악하는 일부 서구종교중심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데에서 비롯된 오해이다.
불교는 분명히 가르침의 창시자 붓다와 교리, 교단(僧伽), 신자가 있으며
삶의 의례, 시설, 활동, 사회적 기능을 활발히 펴나가고 있는 세계적 종교이다.
더욱이 불교는 2천 600여 년에 걸쳐 수많은 종교적 천재들이 모두 참여해 이룩해낸
동양의 종교적, 문화적 성과의 집적이며, 오늘날 가장 강력한 전통과 수행체계,
설득력 있는 교리를 지니고 있는 대중적인 종교(religion)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불교는 절대자에게 의지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는 종교이다. 불교는 모든 사람들이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불성)을 지녔기에
자기 자신과 법(진리)에 의지한다. 인간이 이성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신에 의지해서 그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해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모든 현상을 해석하려는 지혜의 종교이다.” - 이인복
그리고 불교 교주인 붓다는 신으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진리로서의 존재이다.
그 진리를 찾는 불교는 진리의 학문, 즉 철학임과 동시에 과학이기도 하다.
신이 없고 진리만 있는 종교이므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
기독교식으로 생각하는 신앙(신을 중심으로 된 종교)과는 구분돼
불교를 종교라기보다 철학으로 보는 이도 있게 된 듯하다.
다만 불교 내에서도 정토교(淨土敎) 계통, 혹은 일부 일본 불교는
절대자에 귀의하는 비슷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탸력신앙(他力信仰)이란 것이 그렇다.
그러나 이것은 불교 본래의 입장은 아니다. 불교가 확장하는 과정에 잘못 발전한 것이다.
[출처] 블로그 아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