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언 땅 밑에서부터 온다. 겨울 흙을 끌어안은 뿌리의 온기 속에서 이미 봄은 시작한다. 얼음 같은 바람에 맞서 함께 걸어온 발자국 위에 이미 봄의 몸짓이 나직하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새해를 코앞에 둔 12월 28일은 ‘오비에스(OBS) 경인TV’가 첫 전파를 내보낸 날이다.
[특집] 기지개
OBS, 희망 전파를 쏘다
글·김기돈
봄은 언 땅 밑에서부터 온다. 겨울 흙을 끌어안은 뿌리의 온기 속에서 이미 봄은 시작한다. 얼음 같은 바람에 맞서 함께 걸어온 발자국 위에 이미 봄의 몸짓이 나직하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새해를 코앞에 둔 12월 28일은 ‘오비에스(OBS) 경인TV’가 첫 전파를 내보낸 날이다. 아프게 문을 닫고 힘겨운 길을 지나 ‘다시’ 맞이하는 시작이어서 함께 준비하고 만들어온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되었다. 희망을 놓지 마
인천방송(iTV)이 있었다. 8년 가까이 수도권에 전파를 내보냈다. 몇몇 프로그램으로 그 방송을 기억하기도 하고, 그런 방송이 있었나 싶기도 할 것이다. 명맥을 이어오던 방송이 ‘정파’되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사라졌다. 그곳에서 방송을 만들던 수많은 사람들과 그간 겪었던 뼈저린 순간들이나 속사정까지 그렇게 이름 없는 시간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일하는 사람들을 몹시도 힘들게 하던 방송이었다. 사주가 방송을 ‘개인방송’으로 생각하고, 방송으로 돈 벌 궁리만 하는 동안 방송의 공공성이 심각하게 뒤엉키고 틀어진 모습이 되었다. 방송이 더는 이래서는 안 된다고 여겼던 사람들이 ‘새방송’을 만들자는 마음을 먹었다. 얼마나 힘겹고 아픈 상황이 펼쳐질지 짐작하면서도 이런 방송을 이어가는 것을 더는 봐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임소연(38세) 피디는 새방송을 만들기 위해 동료들과 마음을 모았던 순간을 이렇게 기억한다. “사주가 방송이 뭔지도 모르고, 이게 얼마나 공적인 일인지도 관심이 없었죠. ‘전파는 공공의 것이다.’라는 원칙을 지키고 싶었어요. 새로운 방송을 만들기 위한 싸움의 시작이었죠.” 우여곡절 끝에 인천방송 사주는 방송위원회의 재허가 추천을 받지 못했다. 결국 인천방송은 2004년 12월 31일에 ‘정파’되었다. ‘경인 새방송 희망조합’을 만들고 바른 언론을 희망하는 사람들과 함께 새방송을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뒤로 3년여를 기다리며 거리에 있었다. “방송은 예술성과 창조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일이잖아요. 의미와 가치를 담아 전파하고, 그것에 대한 반응을 받으면서 행복해하는 과정인 거예요. 신명나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람들과 방송을 통해 소통하고 만나는 일, 정말 필요한 것은 이러한 신명이었어요. 희망조합은 바로 이러한 희망을 만드는 일이었어요.” 처음엔 막막했지만 ‘새방송을 만들겠다’는 마음을 먹으니까 함께 염려했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대의 마음이 ‘경인 새방송 희망조합’으로 이어졌다. ‘독립적 민영방송’이라는 목표도 더 분명해졌다. “방송은 공공의 것이란 뜻을 확인하는 연대의 끈을 보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어요. 아, 되겠구나 싶었던 거죠. 거기서 가능성을 보고 든든했죠. 힘겨운 여정을 버틸 수 있는 힘이었어요.” 새 방송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희망조합원들 스스로 변화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 서로가 성숙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서로 격려가 되는 시간이었다. 결국 2006년 4월 경인방송 사업자가 선정이 되었다. 임소연 피디는 ‘많은 사람들의 절실함과 연대와 바람이 만든 결과’라고 생각한다. “조합원 모두 다시 입사했을 때, 껴안고 막 울었어요. 일하는 공간에서 다시 만난 얼굴은 그 자체로 감격이었어요. 지난 12월 28일 개국할 때 개국 프로그램 스튜디오에 제가 있었는데, 그때도 눈물이 났어요. 앞으로 어떻게 시청자를 만날까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지만, 서로 다독이며 시작하는 마음을 일으켰어요.” 오비에스 개국 특집 다큐를 임소연 피디가 맡았다. 개국하고 첫 촬영이었다. “그때 출정식을 했거든요. 첫 프로그램 출정식, 직원들 다 와서 자축하면서 첫 시작을 했어요. 아주 영광스런 일이었죠. 가슴 뭉클했어요.” 첫 방송은 여러 가지 상징성을 담고 있게 마련인데, <생명의 땅, 디엠지(DMZ)>를 제안했을 때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디엠지는 이 시대를 보여주고, 문화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미래를 말해주고, 지역과 세계를 동시에 말해주고 있는 공간이었어요. 단순히 이데올로기 산물로 알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엄청난 반전을 느꼈어요.” 그이는 평생을 두고 풀어갈 화두 같은 공간을 발견한 것 같다고 한다.
내 스타일은 어깨가 가벼워야 해요
새 방송의 탄생을 함께 시작하면서 ‘주철환’이라는 명랑하고 따스한 선장을 초대했다. 피디로 오래 방송활동을 했고, 많은 프로그램에 그이의 개성과 풍부한 감성과 재능을 보여주었다. 최근까지 학교에서 방송을 가르친 주철환(53세) 님은 오비에스 대표이사 겸 사장으로 새로운 방송에 대한 기대와 바람으로 시작된 역사에 첫발을 함께 내딛었다. “어깨가 무겁죠. 그렇지만 내 스타일은 어깨가 가벼워야 해요. 가볍게 모두가 행복하게 시작하고 싶어요. 저는 사람의 보편성이라는 것을 굉장히 믿는 편이에요. 오비에스에서 일하는 많은 분들은 아픔을 겪었던 분들이고, 그분들과 함께 행복해지고 싶어요.” 그이는 희망을 찾아서 희생했던 사람들과 그냥 즐겁게 사는 사람이 만난 거라고 말한다. 그이는 이 만남이 기적을 만들고 있다 믿는다. 많은 우여곡절과 파란만장을 가로질러온 경인방송의 역사에는 개인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누리고 공감하는 존재의미가 담겨있다. 주철환 님은 오비에스에서 ‘시청자 지상주의’라는 방향을 잡았다. “1등급 방송을 하는 것이 목표예요. 1등급은 여러 개 있거든요. 칭찬받으면서도 건강한 방송, 재미있으면서도 의미도 있는 방송, 시청자들과 소통하면서 공감하는 방송, 그런 걸 항상 목표에 두고 있어요.” 그이는 ‘시청자 지상주의’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가 고민하는 것조차도 즐겁다. “다들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당당히 겨룰 수 있는 저력도 있고요. 예전에 방송사들이 가장 신경 쓰는 일이 뉴스에 제일 먼저 나오는 게 뭘까, 대통령 동정은 몇 분이나 보도를 하는가, 이런 것이었어요. 나는 그런 걸 0.0001퍼센트도 신경 안 써요. 우린 ‘중립’과 ‘독립’이라는 기준이 있으니까 그대로 가면 되는 거죠.”
그이의 바람은 하나다. 오비에스가 늠름하고 우람하게 목소리를 내면서 이 사회에 자리매김을 하는 것을 보는 일이다. 그이를 추천해준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방송인으로 역할을 하고 싶다. “오비에스는 달라야 되요. 기존의 관성, 타성과 다른 어떤 전략을 따르지 않는 거죠. 특별해야(special) 된다. 바보상자가 되지 말자. 똑똑해(smart)져야 한다. 재미(sweet)있어야 한다. 독해지지 말고 강해(strong)지자. 마지막은 치장하지 않는 단순함(simple)에서 오는 강점을 살리자는 거예요. 오직 아이디어로 승부하려는 거죠.” 말 그대로 오비에스는 ‘공평, 공정, 편향되지 않은 중립, 독립’을 지향한다. 그렇지만 지금 아무리 뭐라고 해도, 앞으로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오비에스가 어떻게 걸어가는가, 무엇을 말하면서 실천하는가를 보게 될 거예요. 방송은 방송으로 말하는 거니까요.”
오비에스는 사람들에게 즐겁고 의미 있는 생산물을 방송을 통해서 나누려는 열망이 있다. 조금 더 애정을 가지고 기다리며 제안하고 기대하는 마음과 함께 방송은 성숙해갈 것이고, 한국방송에 ‘긴장’을 주는 그런 존재가 되어갈 것이다. “다른 기성 방송사에 비하면 10분의 1 정도 규모이지만, 오비에스니까 가능한 것들이 있고, 작지만 그래서 아름다운 방송으로 늠름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주철환 님은 늘 ‘어떠한 문제든 반드시 해답이 있게 마련’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이는 문제를 푸는 과정이 재미있고, 그래서 행복하다. “좋은 직원들, 젊은 직원들을 만나서 대화하고 뭔가 만들고자 하는 걸 도와주고, 이것으로 시청자와 만나는 것, 오비에스가 풀어내는 즐거운 상상이 사람들에게 즐거움으로 다가서는 과정을 즐기는 거죠.” 오비에스 경인방송이 기지개를 켰다. “기지개를 켜기 전에 하는 행동은 잠자면서 충분히 쉬는 거예요. 그러면서 꿈을 꾸지요. 기지개는 그 꿈을 품고 그것을 다시 찾아가는 일이에요. 새로운 꿈을 만들기도 하고 만나기도 하면서 말이지요. 오비에스는 신생아나 마찬가지에요. 예방주사도 맞아야 되고 면역 접종도 해야 되잖아요. 신생아에게는 그런 따뜻한 시선이 필요해요.” 4월쯤이면 인천과 경기도 곳곳에 오비에스가 거의 들어간다. 서울에서도 케이블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그때쯤 다시 개국방송을 하면서 오비에스의 존재를 알리게 될 것이다. 희망하는 사람들이 꿈을 꾸며 상상하는 세상이 여기에 있다고. 지난 달, 오비에스 개국 다큐프로그램인 임소연 피디의 <생명의 땅, DMZ>이 방송위원회에서 달마다 전국 방송사들에서 출품한 프로그램을 가운데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에 주는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에 뽑혔다.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맑은 징소리 같은 첫 걸음이다. 좋은 조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