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진 초록색 타올이 하나 있었다. 두껍지도 않으면서 바깥쪽은 벨벳처럼
부드러웠고 안쪽은 아주 톡톡한 면으로 잘 짜진 멋진 타올이었다.
싸이즈가 아주 크지도 작지도 않아서 머리를 감고 나면
나는 이 수건으로 멋지게 터번을 틀어 올리곤 했었다. 여행할 때도 부피가 작아서 항상 가방에 넣고 다니면
그 어떤 호텔의 타올 보다 더 물기를 잘 흡수해줘서 내가 몹시도 좋아하는 타올이 되었다.
나는 사실 물건에 대한 애착을 별로 느끼지 않는 편인데, 왠지 이 타올에 만은 애착을 느낄 정도로 긴 세월을 나와 함께 해주었다.
애착을 느끼는 모든 물건에는 그 스토리가 있는데, 내가 이 초록색 타올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32년 전인 1981년, 내가 독일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나는 그 때 독일 칼스루에 오페라극장의 전속단원으로 활약하고 있었는데, 동양여자 가수로서는
처음으로 바그너의 오페라 로엥그린에서 드라마틱 소프라노가 노래하는 오르트루트라는 배역을 처음으로 시도하고 있었다. 음역이 높아서 사실 나에게는 좀 무리가 가는 역할이었지만 드라마틱한 그 역에 매력을 느껴서 모험을 하고 있었다.
만일 이 역할을 잘 해낸다면 나는 바그너 가수로서 나의
활동무대의 전망이 밝을 것이라는 매니저들의 권고 때문에 나는 집을 떠나 북독일에 있는 올덴부르그라는 작은 극장에서 이 배역을 준비하고 있었다.
매니저의 말대로 나는 이 역할을 잘 소화해서 그 후 스위스 쮜리히 오페라 극장에서도 이 배역을 노래해 극찬을
받은 바 있지만, 결국 나는 이 배역을 자주 노래함으로서 내 목소리에 무리를 가져다 줬기 때문에 몇 달을 쉬어야 하는 뼈아픈 경험을
한바 있다. 욕심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게 된 큰 교훈이었다.
나는 이 초록색 멋진 타올을 올덴부르그에서 샀는데, 오페라 가수들이 다른 도시에서 공연을 하게 되면
집을 떠난 허전한 마음에서 많은 쇼핑을 하면서 그 외로움을
달랜다.
나는 내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이것저것 사면서 초록색
타올도 함께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나는 많은 여행을 하면서도 항상 이 타올 만은 꼭 챙겨서
가지고 다녔다.
1994년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교수로 초빙되어 한국에 갔을 때도 초록색 타올은 함께
한국으로 왔다. 한국으로
돌아온 2년 후, 이혼이라는 힘든 시간을 보낼 때에도, 이 초록색 타올은 내 곁에 있었다. 15년이란 긴 세월을 한국에서
보낸 후, 나는 정년퇴임을 하게 되었고 2010년에는 이삿짐을
싸들고 아프리카 말라위로 왔다. 그 이삿짐 속에는 물론 초록색 타올도 함께 따라와주었다. 자주 샤워를 해야 하는 아프리카에서 초록색 타올은 충성스럽게 나를 섬기고 있었다. 그러던 오늘, 나는 타올 끝들이 낡아 찟어진 것을 보게 되었다. 아니, 이럴수가! 영원히 함께 할 것 같던 친구가 떠나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매번 이 타올을 쓰면서 10년이 지나도 상하지 않는 독일산 타올을 찬양했었다.
그 후 20년이
지날 때는, 이렇게 튼튼한 타올을 만들어 파는 독일사람들의 양심에 감동했고,
30년을 함께 한 이 타올은 이제 내 재산목록 제 1호로 올려야
할 정도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을 때,
드디어 그의 한계가 들어난 것이다.
비록 생명은 없지만
32년이란 긴 세월을 묵묵히 한 주인만을 섬겨온 충성스런 종이었다.
처음에는 주인의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아주었고 세월이 지나면서
면의 부드러움이 없어졌을 때는,
발 밑에서 주인을 섬겼다. 이제는
너무도 쇠약해져서 더 이상 주인을 섬길 수없게 되니 주인을 떠날 수
밖에 없다. 아프리카의 흙먼지를 닦아내는
걸레가 되어 마지막 날 까지 주인 곁에 있겠노라 약속을
하는 듯, 정말 고마운 친구였다.
나도 이 친구처럼 다른 이들을 닦아주며 그들의 발 밑에서 짓밟혀도 묵묵히 그들을 섬기고, 그들의 흙먼지를 쓸어내는 일에 온전히 내 삶을 내어줄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첫댓글 진솔한 나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참으로 놀랍기만 합니다.으로 있었줬던 타올에게
32년이란 긴 세월을 선생님 곁에서 충성스런
왠지 저도 고마운 마음이 드네요.
슈니님, 항상 기도와 응원으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슈니님의 사랑으로 카페가 외롭지 않네요.
우리 이번 피정때 평창에서 만나요. 전시회에서도 만나구요.
타올아~우리 선생님곁에서 조금만 더 견뎌줘~선생님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선생님 글솜씨는 정말이지 감동이에요ㅠ
사랑하는 딸, 오랫만에 카페에서 만나는구나, 고마워, 잘있지? 나는 지금 독일에 있는데, 다니엘의 안드로메다 오케스트라가 다음주 10월3일에 라이프찌히 오페라 하우스에서 연주를 하게 되어서 보고 가려고해. 10월7일에 한국에 도착한다. 우리 곧 만나야지, 너랑 고등어 구이정식 먹고싶어. 우리 꼭 같이 가자. 사랑해 지은아.
저두여~~*^^* 다니엘 넘 멋져여!! 공연도화이팅!! 선생님 조심히 오셔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