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개천절.
풍납동 골목을 들어서니 집집마다 걸린 태극기들 단군왕검께서 세운 이 나라 열린 날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6일까지 나흘간 <한성백제문화제>가 열리는 첫날이기도 합니다.
백제의 첫 서울의 왕성인 하남 위례성, 풍납토성의 역사에 대한 해설을 하는 나에게는 가슴 설레는 날이기도 합니다.
경당역사공원, 둘레를 파서 숯을 채우고, 백마의 목을 베어 하늘에 제를 지내고, 병과 작은 입 항아리의 주둥이 한 쪽을
떼어내 땅에 묻었으니 이 곳은 분명 삼국사기에 기록된 온조왕이 동명신을 모시던 사당.
<제13회 한성백제문화제>의 혼불을 피워 올리는 신성한 터입니다.
신목[神木] 가지를 들고 두 줄로 늘어선 선녀들 사이로 신하를 거느리고 나타난 백제왕, 선녀가 불을 피워 전하는
성화를 받아듭니다. 때를 맞춰 일본 오사카에서 바다 건너온 하비키노시의 시그너스합창단 찬가가 울려 퍼집니다.
한성백제의 마지막 왕 개로왕의 동생이자 동성왕의 아버지인 곤지왕을 시조로 모시는 아스카베신사가 있는 곳의 주민
들이자 백제의 후손들이 현해탄을 건너와 노래를 부르는 뜻 깊은 순간입니다. 한강을 끼고 배처럼 생긴 풍납토성,
서해 바다 건너 중국으로, 남으로 내려가 일본으로 배를 타고 교류하던 해양왕국 한성백제의 뱃사람들이 부르던 뱃노래
처럼 들렸습니다.
사적 243호 <석촌동 백제고분> 앞에서는 한성백제의 왕과 왕비가 주관하는 <제18회 백제고분제>가 치뤄졌습니다.
493년간 한성백제의 역사를 열었던 온조왕부터 개로왕까지 21대에 걸친 왕들에 대한 제사와,
<한성백제문화제>의 성공을 기원하는 제례의식(祭禮儀式)입니다.
왕성 가까운 거리에 왕릉이 있는 법, 방이동 가락동 석촌동 일대가 백제의 고분지역으로 300기 정도 분포되어 있는 것이
조사되었는데, 왕릉은 적석총이 남아 있는 석촌동 지역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 이 곳에는 적석총을 비롯한 돌무덤이 5
기, 토광묘 2기, 봉토분 1기 모두 8기의 크고 작은 고분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중국 길림성 집안에 있는 장군총보다 규모가 더 큰 적석총 3호분, 학자들은 근초고왕릉으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취타대를 선두로 군사의 호위를 받으며 왕과 왕비, 신하들이 입장하면서 큰 북을 울리는 대북타고를 합니다.
왕인박사 문화사절단 퍼포먼스는 한성백제 문화의 해외 전파 모습이고,
무가민속예술단은 문화사절단의 환송 장면을 재현합니다.
기념식이 끝나자 곧이어 제례를 지냅니다.
소머리 올려 놓은 젯상 앞에서 향불 피우고 축문 읽고, 무녀들의 춤 사위 신비로워 아름답기 그지없고,
술을 올리는 제관(祭官)의 자세도 엄숙하니 <한성백제문화제>의 성공은 명약관화입니다. ^^^
2000년 전 한성백제시대 500년의 도읍지. 서울의 역사가 시작된 장소,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군 등 백제의 혼과 숨결을 곳곳에 간직하고 있는 역사문화의 서울 송파.
한성백제시대의 문화적 자긍심을 바탕으로 지역주민과 관람객들이 함께 참여하고 만들어가는 체험형 역사문화축제
<한성백제문화제>.
문화제의 주요 무대인 올림픽공원에 갔습니다.
평화의 문을 들어서자 흙을 다져 위례성을 쌓는 축성놀이가 많은 사람들이 성처럼 둥굴게 늘어선 가운데 진행되고 있었
습니다. 내가 회원으로 있는 <문화살림> (*예전 이름은 위례역사문화연구회)에서 시연하는 행사입니다.
나도 얼른 앞에 나가 밧줄 한 가닥 허리에 감고 어기야 영차 당겼다 놓았다 힘을 써봅니다.
<풍납토성 바람드리 축성놀이>의 노랫가락이 사방으로 우렁차게 퍼져 나갑니다.
어기영차 축성을 하세/
성모 국모 소서노가 / 문무백성 끌어내어/ 온조대왕 나라 세우네/ 그, 게, 바로... 대. 백. 제. 일,세
네모 난 틀을 만들어 판자를 댄 후 땅에서 파낸 흙을 채우고 다지는 1단계 작업, 다진 흙 위에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깔고
흙을 붓고 다지는 2단계 작업, 같은 방식으로 흙을 쌓아 올려 만든 한성백제의 하남 위례성, 바로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입
니다. 판자를 대고 흙을 붓고 다져 쌓았으니 판축법, 나무가지와 잎을 깔아 흙이 밀리는 것을 막으니 부엽법,
학생들에게 시험에 많이 나오는 문제라고 일러주면 모두 판축법과 부엽법을 받아 쓰느라 무척 바쁩니다. ^^^
<문화살림>의 두 번째 행사는 문화재 발굴사업 프로그램인 <땅속에서 백제를 찾아라>,
유적 발굴에 나선 고고학도처럼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어린이들,
꽃삽을 들고 백제 토기 세발토기와 굽다리접시를 찾아 내느라 조심스레 손을 놀립니다.
내가 보기에는 백제를 찾는 것이 아니라 보물을 찾아 내는 모습이라서 흐뭇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합니다.
"찾았다 !!!' 세발토기 찾아낸 어린이 환성 드높고 옆에 있던 친구, 줄 자 들이대고 크기를 잽니다.
<몽촌토성 성곽돌기>가 <문화살림>의 세 번째 프로그램.
지등(紙燈)에 소원과 이름을 적어 들고 몽촌토성을 돌며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비는 소박한 행사입니다.
"몽촌"의 뜻이 꿈마을이니 등불에 비치는 어린이들의 작은 소원이 꿈마을에서 모두 다 성취되기를 비는 마음 간절했습니다. 곁들여 어린이들을 따라나선 부모님들의 소원 또한 함께 이루어지겠지요.
나흘 동안 밤낮으로 행사는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호응 속에 곳곳에서 성대하게 개최되었습니다.
여기저기 뜬구름처럼 기웃거리면서 나도 덩달아 바빴지만, 모처럼 2천년전의 백제 사람처럼 살아보았습니다.
날마다 몽촌토성을 돌고 토성길을 걷고, 망월봉에서 바라보는 성내천과 한강과,
그리고 개로왕이 최후를 맞은 아차산과 온조가 어머니소서노와 형 비류와 함께 오른 부아악, 인수봉의 매끈한 몸매를
바라보면서 나는 백제사람이야, 되뇌곤 했습니다. 근거 없는 말이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내 몸 속에 섞여있는 몇 퍼센트
백제인의 피가 끓어오르는 인연 때문일것입니다. 실제로 나는 위례성 몽촌토성 옆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
행사의 마지막 날인 6일 밤,
올림픽공원의 밤 하늘 위에 불꽃이 터지면서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합니다.
사람들의 입에서 환성이 울리고 박수소리 요란합니다. 위례성은, 한성은 역사 속의 기록으로 남아 있지만 송파,
이 땅이 사라지지 않는 한 백제의 역사는 오롯이 천년 만년 저 불꽃처럼 아름답게 이어 나가리라 이 밤 확신합니다. ****
< 금강산도 식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