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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11.26
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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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7년 조선일보에 실린 롯데 풍선껌 광고. 국내 기업들은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껌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조선일보DB
최근 껌 소비량이 크게 줄었다고 해요. 코로나 시기 마스크를 착용하며 껌을 씹기 불편해지자 껌 판매가 급격히 줄었는데, 코로나 이후에도 껌 소비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껌 회사들은 금연 껌과 같은 기능성 껌에 주목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인류는 껌을 언제부터 씹어왔을까요?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무언가를 계속 씹어왔어요.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유향수라는 나무에서 나오는 진액을 씹었으며, 고대 마야인들은 사포딜라 나무에서 나오는 치클을 씹었어요. 또한 북유럽에서는 자작나무의 진액으로 만든 껌을 씹었는데, 자작나무는 오늘날 자일리톨이 함유된 껌의 원료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시 껌'들은 씹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도 있었지만, 양치 목적으로 씹는 경우도 있었죠. 미국에서는 1848년에 가문비나무의 진액을 이용해 껌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껌이 상업화되면서 파라핀 왁스도 껌의 재료로 이용됐어요.
19세기에 접어들면서는 껌의 재료에도 또 한번 변화가 일어납니다. 멕시코 장군이자 대통령이었던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안나는 공업 원료로 천연 고무 '치클'을 사용하는 법을 찾고 있었어요. 산타안나는 미국의 발명가 토머스 애덤스에게 치클 활용법 연구를 의뢰했어요. 애덤스는 치클을 공업 원료로는 사용하기 힘들어도 껌의 재료로는 사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이에 애덤스는 치클에 여러 가지 맛을 첨가한 껌을 개발해 팔기 시작했고, 이 껌에 '치클렛'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껌이 세계 곳곳으로 퍼지게 된 계기는 전쟁이었습니다. 전쟁 중인 군인들은 수통에 있는 물을 아껴 마셔야 했기 때문에 갈증에 시달리는 일이 잦았는데요, 이를 껌이 해결해주었어요. 껌을 계속해서 씹으면서 침을 삼키게 되자, 갈증을 일시적으로 잊을 수 있었던 것이죠. 달콤한 맛과 향이 나는 껌을 씹는 것은 전투로 인한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역할도 했기 때문에 제1·2차 세계대전 시기 미군에 의해 껌이 퍼져 나갔답니다.
우리나라에는 언제 껌이 들어왔을까요?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대 신문 광고 중에는 '리구레제 충잉껌'이란 광고가 있었어요. 리구레는 미국의 껌 회사인 리글리를 의미하고, 충잉껌은 '추잉 껌(chewing gum)'을 뜻한답니다. 적어도 일제강점기 때에는 미국산 껌이 한반도에 수입됐다는 것이죠. 또한 미 군정기나 한국전쟁 이후 많은 아이들이 미군 트럭을 따라다니며 먹을 것을 달라고 했는데, 이때 초콜릿이나 껌 등을 받았다고 합니다. 최초의 국산 껌은 1956년 해태제과의 껌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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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서울 영동고 역사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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