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프랭클린 자서전]
‘말 위에 있지만 절대 달리는 법이 없는’ 로던 경
로던 경은 나보다 앞서 뉴욕으로 떠났다. 우편선의 출항 날짜를 결정하는 것은 그의 소관이었다. 그때 뉴욕에는 두 척의 우편선이 남아 있었는데 로던 경은 그중 한 척이 금방 떠날 거라고 말했다. 나는 혹시라도 뉴욕에 늦게 도착해 배를 놓칠까봐 정확한 출발 시간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로던 경이 대답했다.
“다음 토요일에 출항하도록 명령을 내린 상태입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만 특별히 알려주는 건데, 월요일 아침까지만 오면 배를 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더 늦으면 절대 안 됩니다.” 그런데 나룻배에서 뜻밖의 사고를 만나는 바람에 월요일 정오가 지나서야 뉴욕에 도착했다. 그날은 바람도 잔잔했기 때문에 배가 분명 떠났을 것 같아 몹시 불안했다. 하지만 배가 아직 항구에 있으며 다음 날이 되어야 떠날 거라는 얘기를 듣고 마음을 놓았다. 누구라도 내가 곧 유럽으로 떠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로던 경의 성격을 잘 모르고 한 착각이었다. 로던 경은 한마디로 ‘우유부단’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내가 뉴욕에 도착한 때가 4월 초였는데 배가 떠난 것은 6월 말이 다 되어서였다. 한참 전부터 항구에 우편선 두 척이 정박하고 있었지만, 로던 경이 편지를 다 쓰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꾸만 하루하루 미루는 바람에 출항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또 한 척의 우편선이 도착했지만 그 배 역시도 항구에 묶였다. 우리가 떠나기 전에 네 번째 배가 들어오기로 되어 있었다. 우리 배가 가장 오래 있었기 때문에 제일 먼저 떠나야 했다. 승객들은 승선 예약을 끝내놓고 출발만 기다리고 있었고 몇몇 사람들은 배가 빨리 떠나지 않아 몹시 초조해했다. 상인들은 편지와 보험에 든 어음(전쟁 중이었으므로), 가을 물건 때문에 안절부절못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발을 동동 구르는데도 로던 경은 개의치 않았다. 그의 편지는 끝날 줄을 몰랐다. 누구든 로던 경을 찾아가면 어김없이 책상 앞에서 펜을 쥐고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을 보았고 아직 쓸 편지가 많은 거라 생각했다.
어느 날 아침 로던 경을 찾아갔다가 필라델피아에서 온 이니스라는 심부름꾼을 대기실에서 만났다. 이니스는 데니 지사가 로던 경에게 전하는 편지를 전하러 급히 왔다고 했다. 그가 필라델피아의 친구들이 내게 보낸 편지 몇 통도 전해주기에 나는 그의 편에 답장을 보낼 생각에 언제 필라델피아로 돌아가는지, 어디에 묵고 있는지 물었다. 이니스는 로던 경이 지사에게 보내는 답장을 다음 날 아침 9시에 와서 받으라고 했다면서 편지를 받는 즉시 출발할 거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날로 편지 몇 통을 써서 이니스에게 주었다. 2주 뒤에 같은 장소에서 이니스를 또 만났다. “이니스, 그 사이에 벌써 다녀온 건가?”
“다녀왔냐고요? 아직 떠나지도 못했는걸요.”
“그게 무슨 소리인가?”
“경의 편지를 받으려고 2주째 매일 아침에 왔는데 아직 쓰지 못했다고 하시는군요.”
“글을 굉장히 많이 쓰시는 것 같은데 그럴 리가 있나? 항상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계시던데 말이야.”
이니스가 대답했다.
“그렇죠, 하지만 그분은 그림에 나오는 세인트 조지(용을 물리쳤다고 전해지는 영국의 수호신. 전설적인 인물로 말을 타고 용과 싸우는 그림을 흔히 볼 수 있다.) 같아요. 항상 말 위에 있지만 절대 달리는 법이 없죠.”
이 심부름꾼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내가 영국에 있을 때, 피트 수상이 로던 장군을 해임하고 애머스트 장군과 울프 장군을 새로 임명하면서 들었던 이유 한가지가, 로던 장군으로부터 한 번도 보고를 받은 적이 없어서 그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매일같이 출항만을 기다리던 우편선 세 척은 샌디훅으로 가서 정박 중이던 함대와 합류했다. 승객들은 갑자기 출항 명령이 내려져 배를 놓치기라도 할까 봐 배 안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때 우리는 배에서 6주를 기다렸고 그동안 식량이 다 떨어져서 다시 사야 했다. 드디어 함대가 로던 경과 그의 군대를 태우고 요새를 함락하기 위해 루이스버그로 떠났다. 떠나기 전 로던 경은 같이 정박해 있던 우편선들에게 편지가 완성되면 와서 받아가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닷새를 기다리고 나서야 편지 한 통과 출항 허가증을 받고 함대를 떠나 영국으로 갈 수 있었다. 다른 두 척의 우편선은 여전히 떠나지 못하고 로던 장군을 따라 핼리팩스까지 가야 했다. 로던 장군은 그곳에서 얼마간 머물면서 군인들에게 가상 요새를 가상 공격하는 훈련을 실시하더니 루이스버그를 공격하려던 마음을 바꾸어 군대와 앞서 말한 두 척의 우편선과 승객들 모두를 이끌고 뉴욕으로 돌아왔다! 그가 뉴욕을 비운 사이 프랑스 군대와 인디언들이 최전방에 있던 조지 요새를 점령했고 인디언들은 그들에게 항복한 수많은 수비병들을 학살했다.
그 우편선 중 한 척의 선장인 보넬 씨를 나중에 런던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가 내게 말하길, 그때 한 달 동안 배가 서 있다 보니 심하게 더러워져서 우편선의 생명인 속도를 내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배를 기울여 바닥을 청소할 시간을 달라고 장군에게 청했다. 장군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냐고 물었고 보넬 선장은 사흘이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 “하루에 끝낼 수 있다면 허락해주겠네. 더 이상은 안 돼. 모레에는 반드시 출발해야 한단 말일세.” 결국 선장은 청소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로던 장군은 출항을 하루하루 미루더니 결국 석 달을 끌었다.
보넬 선장의 배에 탔던 승객도 런던에서 만났다. 그는 로던 장군이 자기를 속이고 뉴욕에 그렇게 오래 잡아둔 것도 모자라 핼리팩스까지 끌고 갔다가 돌아왔다며 분을 삭이지 못하면서 손해배상 소송을 하겠노라고 했다. 그가 정말 소송을 했는지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말한 대로라면, 로던 경 때문에 입은 손해는 막대했다.
이 모든 일들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그런 사람이 대규모 군대를 지휘하는 막중한 임무를 마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을 더 많이 알게 되니 그런 자리를 어떻게 얻는지 또 어떤 배경으로 그런 자리를 주는지가 더 이상은 궁금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브래드독 장군이 죽고 나서 군대 지휘를 맡았던 셜리 장군이 그 자리에 계속 있었더라면 군 지휘를 로던 경보다 훨씬 잘했을 것 같다. 1757년 로던 경은 경솔한 판단으로 종군을 감행해 혈세를 낭비했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국가에 치욕을 안겼다. 셜리 장군은 직업군이은 아니었지만 지혜롭고 판단력이 뛰어났으며 다른 사람의 좋은 충고에 귀를 기울였다. 용의주도하게 계획을 세울 줄 알았고 그 계획을 실행할 때는 주저하지 않고 민첩하게 움직였다. 로던 장군은 막강한 병력을 거느렸으면서도 식민지를 지킬 생각은 않고 핼리팩스에 가서 한가하게 노닥거리다가 조지 요새를 적의 손에 넘겼다. 뿐만 아니라 식량 수출을 오랫동안 금지해서 상업 활동을 방해하고 무역을 압박했다. 적에게 물량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는 구실을 내세워ㅉ지만 실제로는 가격을 낮춰 본토 상인들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하려는 수법이었다. 의혹일 뿐이었지만, 로던 장군이 그 수익 일부를 차지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마침내 수출 금지를 해제했을 때는 찰스타인에 그 사실을 통지해 주지 않아 캐롤라이나 함대가 석 달이나 더 항구에 묶여 있어야 했다. 그 때문에 뱃바닥이 심하게 썩어 영국으로 돌아가는 도중 여러 척의 배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내 생각에 셜리 장군은 군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부담이었을 군 지휘 임무에서 벗어나게 되어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로던 경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뉴욕 시가 마련한 만찬에 참석했다. 전임자인 셜리 장군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 그 외에 장교, 시민, 일반 방문객이 굉장히 많이 참석해 근처에서 의자를 빌려와야 했다. 그중 유독 낮은 의자가 하나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셜리 장군이 그 의자에 앉게 되었다. 내가 옆에 앉았다가 그 의자를 보고 “장군님 의자가 너무 낮군요”라고 말하자 그가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낮은 의자가 편하거든요.”
앞서 얘기했듯이 나는 뉴욕에 오랫동안 묶여 있었는데, 그사이에 브래드독 장군에게 대주었던 식량과 물품에 대한 회계 보고를 받았다. 내가 보급 업무를 하면서 도와줄 사람들을 여러 명 고용했기 때문에 새롭게 비용 청구를 해야 하는 것도 있었다. 나는 회계 보고서를 로던 경에게 보이면서 잔금을 지급해 달라고 했다. 로던 경은 담당 장교에게 보고서 검토를 지시했고, 장교는 모든 품목과 영수증을 일일이 대조해보고는 틀림없다고 확인해 주었다. 로던 경은 지불계에 잔금 지불 명령을 하겠다고 내게 약속했다. 하지만 지급은 계속 미뤄졌다. 몇 번이나 그를 찾아가보았지만 받을 수가 없었다. 그러더니 내가 그곳을 떠나기 직전에 겨우 한다는 얘기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전임자가 쓴 비용을 자신이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영국에 가서 재무성에 이 회계 보고서를 제출하면 즉시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뉴욕에 오래 머무는 바람에 생각지도 않게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지금 받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내가 수고비를 바란 것도 아니고 우선 가져다 쓴 내 돈을 받는 건데 이렇게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려야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로던 경이 대답했다.
“아, 전혀 이익을 못 봤다고 하지는 마시오. 이쪽 일이 어떤지 훤히 알고 있으니까요. 군대에 납품을 하다보면 자기 주머니 채우는 방법쯤은 누구나 다 알게 되는 것 아니겠소?” 나는 단 한 푼도 챙기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했다. 하지만 그는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런 일을 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잔금은 지금까지도 받지 못했다. 그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