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퀄라이저], 미국, 액션, 2014
헬스클럽에서 근육을 키우고, 각종 무술을 연마하고, UFC 같은 종합격투기에서 피흘리며 싸우는 남성, 정확히는 수컷들을 부러워한다. 수백 만년을 내려온 본능이다. 강한 수컷 만이 살아남는 법칙에 따라.
오래 전 작가 김홍신의 소설《인간시장》에 나오는 주인공 장총찬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싸움이면 싸움, 의리면 의리 그리하여 모든 암컷으로부터 받는 구애. 이소룡을 따라 "아뵤~" 엄지손가락으로 콧잔등을 툭 치던 동작이 얼마나 유행했던가! 이소룡의 강인함을, 민첩함을, 타격과 발놀림을, 그리하여 어떠한 수컷과, 심지어는 여러 수컷들과의 떼싸움에서도 패배를 모르는 초강력 파워를 갖고 싶어했다.
여기 영화 [다이하드]에서의 불사신 형사 맥클레인(부르스 윌리스 분)과 같은, [테이큰]의 리암 니슨과 같은, [007 시리즈]의 첩보원 같은 영웅이 탄생했다. 약간은 어울리지 않는 댄젤 워싱턴이 연기한 맥콜이라는 주인공이다.
영화 [레옹]이나 우리나라 영화 [아저씨]와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더 이퀄라이저]가 바로 그 영화인데, 신분을 감추고 외롭게 살아가는 맥콜(댄젤 워싱턴 분) 앞에 러시아 마피아의 매음조직에 팔린 소녀 테리(클로이 모레츠 분)가 나타난다. 소녀 테리가 강압적인 성매매와 폭행으로 시달리자 맥콜이 복수에 나서는데...
영화는 매우 불친절하다.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첩보조직의 엘리트였다든지 아니면 과거 주인공의 활약상과 은둔할 수 밖에 없는 아픔을 보여주어 관객이 저 사람 대단하다, 걸어다니는 살인무기다, 일당 백의 능력자다 하여 그의 엄청난 싸움꾼 기질을 예견할 수 있도록 해주는데 이번 영화 [더 이퀄라이저]에서는 그런 힌트가 없다. 따라서 관객은 막연히 그럴 것이다 짐작할 수 밖에 없다.
아무튼 러시아 소녀 테리가 속한 마피아 조직은 미국 동부를 장악하고 있는 결코 작지 않은 조직인데도 맥콜은 혈혈단신 러시아 마피아 조직의 근거지에 들어가 테리를 자유롭게 놔줄 것을 요구한다. 조폭이 달리 조폭인가? 꿈쩍도 안하자 있는 놈 없는 놈 모조리 몰살하고 유유히 사라진다. 뭐 지문을 지우거나 시체를 치우는 따위의 일도 안한다. 왜? 맥콜은 지상에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니까.
러시아 본토의 마피아는 라이벌조직의 복수극으로 짐작하고 보복을 위해 나선다. 그런데 흔적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놈이 저지른 만행(?)은 만천하에 공개되어 있는데 정작 놈의 정체를 알 수가 없다. 겨우겨우 CCTV를 뒤져 맥콜을 찾아낸다.
찾아내지만 별 수 있나? 본토에서 온 무리들도 모조리 죽임을 당하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맥콜은 결국 러시아까지 찾아가 마피아 조직의 두목도 응징해준다. 그것도 경호원이 수도 없이 깔린 철통보안 속의 별장으로 찾아가서 말이다.
태연히 돌아온 맥콜은 지난 40년 간 근속하고 있다고 조작된 슈퍼마켓에서 자연스레 점원 노릇을 이어가고 병원에서 퇴원한 소녀 테리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떠난다. 훈훈하다.
참으로 대단한 능력이다. 맨손으로 싸우는 거면 상대방들은 대부분 몇 군데는 부러져 사망하고, 총으로 싸우는 거면 일발즉살이고, 약품 몇 개 대충 섞어 폭탄도 만들고, 좁은 마트 넓은 창고 할 것 없이 도면을 머리 속에 넣은 듯 제 집 안방 보다 자세히 알고 있는 이 사내. 반 만이라도 닮고 싶다.
한창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이슬람국가 IS에 침투시키면 좋을텐데, 북한의 김정은도 벌벌 떨텐데, 일본의 야쿠자도, 이탈리아 마피아도, 중국의 삼합회도 이미 끝장 나 있을텐데. 우리나라 조폭은 맥콜이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사라지고 없을텐데.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댄젤 워싱턴과 클로이 모레츠라는 걸출한 배우들을 섭외해놓고서.
감독도 맹렬한 수컷 본능을 지녔음에 틀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