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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봉 철쭉밭은 면양떼에 의해 가꾸어졌다. 71년부터 면양을 키우고자 바래봉 능선까지 찻길을 내고 초지 조성을 한 뒤 울을 친
다음 면양떼를 풀어놓았다. 그 때 면양들은 수목이 새순을 내밀기 바쁘게 먹어치우곤 해서 다른 수목은 깡그리 말라죽었는데, 독성이 있는 철쭉만은 건드리지 않았다.
이로 인해 철쭉만 무성해진 것이다.
바래봉에 오르는 길은 수월한 편이다. 바래봉 정상 일대까지 올랐다가 내려오는 데 서너 시간이면 충분하다. 종축장 옆문으로 들어서서
종축장 건물 뒤로 돌아 산기슭을 향해 뻗은, 면양 수송로로 쓰이던 비포장로를 따라 능선까지 걸어 오르면 된다. 운봉면에서는 철쭉이 만개할 무렵에 맞추어 바래봉
철쭉제를 열기도 한다.
운봉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24번 국도를 따라 1.5km쯤 가면 도로 오른편에 축사기술연구소 남원지소라 쓴 간판이 서 있다.
이 간판 앞 길로 400m쯤 가면 종축장 입구가 나온다.
남원에서 운봉종축장 바로 앞에 정차하는 시내버스가 하루 20회 운행한다. 30분 소요.
운봉읍내에 옥계타운((063)634-1234), 서광파크(634-7508) 등의 숙박업소가 있다. 남원에서 30분 거리이니 남원에서 머물러도 된다.
운봉면사무소 전화 (063)634-0024.
산수유(山茱萸)나무는 층층나무과에 딸린 낙엽교목으로 키가 7~10m까지 자란다. 3월경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나며,
8월경부터 길고 둥근 열매가 열린다. 이 열매는 약재나 차의 재료로 쓰인다.
벚나무와는 달리 산수유가 크게 군락을 이룬 곳은 드문 편이다. 산동면사무소에 따르면 산동면 내 34개 마을 1,038호에서
총 28,000그루쯤의 산수유나무를 키우고 있는데, 아마 전국적으로 가장 크게 산수유군락을 이룬 곳일 것이라고 한다.
상위 마을은 산동에서는 유일하게 지리산관광휴양지 민박촌으로 지정된 마을로서 산동면내 부락 중 산수유 생산량이 가장 많다.
또한 지리산 특유의 바윗덩이들이 절경을 이룬 묘봉골이 마을 가운데를 지나고 있어 가장 멋진 산수유꽃 풍광을 보인다.
가장 오랜 산수유나무 수령이 약 500년. 현재 호당 평균 약 100그루씩 가지고 있으므로 상위부락 전체의 산수유나무 그루 수는 2,500주가 된다.
그중 절반쯤은 심은 지 10년쯤 된 어린 것들이며 나머지 절반은 나이를 추정하기도 어려울만큼 오랜 것들이다.
1960년대 들어 일본과 홍콩 등지에서 염료와 약재의 원료로 대량으로 사가기 시작하며 산수유 열매값이 올라 이제는 주소득원이 되었다.
멀리 지리산 만복대에 눈꽃이 허옇게 피어날 무렵이면 상위 마을의 산수유 열매는 한껏 붉어진다.
전북 진안의 명소 마이산의 돌탑과 흡사한 모양의 원추형 돌탑, 맷돌로만 쌓은 맷돌탑, 단지로만 쌓은 단지탑 등이 완경사를 이룬 골짜기
여기저기에 솟아 있다. 높이는 한 길 정도 되는 것에서 10m 가까운 것도 있다. 이 돌탑들에 대해 배치와 조형미 등이 극치를 이루었다고 설치미술가들이 찬탄하곤 한다.
이 탑들은 실은 탑이 아니라 이곳이 소도(蘇塗), 즉 신성지역임을 알리는 솟대다.
삼성궁이란 환인, 환웅, 단군왕검 세 분을 모신 궁이라는 뜻. 이 삼성궁을 구경하려면 우선 입구인 석문에 이르러 징을 세 번 쳐서 손님이
왔음을 알려야 한다. 그러면 칼을 찬 삼성궁의 수행자가 한 사람 나와 정중하게 손님을 맞는다.
불가에서 말하는 바의 한소식을 했다고들 하는 한풀선사(36)에게는 수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어, 3년간 함께 생활하며 계를 받은 수자만
100명 가까이 있으며 3주에서 몇 개월간 수련을 받은 일반 방계(傍系) 수자는 수천 명을 넘는다고 한다. 이들은 매년 가을 개천절에 개천대제라는 행사를 연다.
99년으로 삼성궁 개천대제는 16회째인데, 이 날만큼은 삼성궁 문을 활짝 개방, 누구든 마음놓고 들어와 구경할 수 있게 한다.
삼성궁 전화 (055)882-8342.
조선 중기 승려 침굉(枕肱)은 '청학동가'라는 가사를 남겼는데, 이는 지리산 청학동의 승경과 그에 대한 심회를 읊은 것이다.
오늘날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학동에 있는 지리산 청학동은 청학동 전설이 전해주는 이상향을 현실화시키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60여 년 전 생겨난 지리산 청학동은 20여 가구였는데, 최근 몇 년 사이 40여 가구로 늘어났다.
주민들이 갱정유도(更定儒道)라는 단군계(檀君系) 신흥종교를 믿으면서 상투 틀고 갓 쓰고 도포 입고 초가집에서 전통적 예법에 따라
생활하고 있으나, 전화·텔레비전 등 기본적인 문화시설은 갖추고 있고, 관광객들은 위한 찻집과 음식점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관광수입에 의해 주민 소득이 높아진 청학동 주민들은 최근 들어서 고루한 유교교육만으로는 2세들이 현대사회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자제들이 성장하면 하동이나 진주 등 주변 도시로 유학을 보내고 있다.
1920년대 당시 한국에는 미국, 영국, 호주, 프랑스 등 여러 나라 선교사들이 들어와 있었는데, 이질이나 말라리아 같은 풍토병이 무척 심했다.
당시 신생아 중 9할이 이런 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여름에 특히 심하게 번지는 이 수인성 질병을 피하고자 노고단에 건물 수가 무려 52동에 이르는 수양관촌을 세웠던 것.
그러나 이 노고단 수양관촌은 6.25가 지나며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제2의 장소로 왕시루봉을 고른 것이다. 61~62년 간 20여 동의 건물이 완성되었고,
지금은 11동만 남아 있다.
칠불사를 일러 동국제일선원이라고 한다. 이는 이 절에 버금 아(亞)자 형상의 구들을 놓은 선방인 아자방이 있기 때문이다. '구들선사'라는 별명을
가졌던 운공선사가 897년부터 13년간 공을 들여 이 방을 지었고, 그 구조가 오묘하여 한번 불을 때면 온기가 49일 간다는 방이다. 이 아자선방의 규칙은 매우 엄격하여,
묵언(默言)을 지키고, 앉되 눕지 않으며, 하루 한 끼만 먹어야 머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덕에 이 방에서는 많은 각자가 태어났으며, 서산, 부휴, 초의, 용성 등의 선사가 이 방을 거쳐갔다고 한다. 특히 추월 스님의 계족(鷄足)정진,
즉 닭처럼 발 뒤꿈치를 든 채로 하는 참선 수행은 유명하다. 초의선사는 다서(茶書)인 동다송(東茶頌)을 여기서 썼다고 전한다.
칠불사 대웅전 목불 조성에 또한 전설같은 얘기가 얽혀 있다. 1981년부터 3년간 27세의 젊은 목조각가가 조각을 맡았는데, 약혼도 파기하고
끝내는 삭발까지 했다고 한다.
온천랜드는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로서 2층의 대형 온천장과 실내수영장에는 한꺼번에 3,000명을 동시수용할 수 있다.
가장 큰 자랑거리는 온천수. '기적의 물'이라고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프랑스 남부의 '루르드성수(聖水)'가 바로 게르마늄이 함유된 물인데,
바로 이곳의 물이 게르마늄 온천수라는 것이다. 주민들 말로는 과거 유황물로 병을 치료하려는 사람들이 무수히 몰려와 동네에서 물구멍을 막아버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온천랜드 건물 안의 대중탕은 게르마늄탕과 유황탕을 구분해 두고 있다. 또한 노천온천탕도 있으며 그밖에 쑥찜탕, 원적외선실, 온천수 수영장 등
여러 시설이 있다. 한번 입욕하면 이들 시설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입욕료 5,000원). 온천장 전화 (061)781-1414.
칠정삼거리에서 하루 2회(09:05, 13:35) 무료셔틀버스가 운행하고, 온천장에서 진주로 나가는 버스도 1∼2시간 간격으로 다닌다. 전화 (055)884-5955.
자그마한 절집 안에는 경남 유형무화재 제75호인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삼층석탑이 고적하게 서 있는데, 많은 부분 훼손되어 검붉은 색을
띄고 있다. 대웅전 안에는 '석남암 수석조 비로자나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다(보물 제1,021호). 이 불상은 자비로운 미소와 안정감 있는 풍모가 돋보여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이 불상의 중대석 사리함에서 발견된 명문은 이미 국보 제233호로 지정돼 있다.
경내에 높이 6.6m의 9층석탑(경남 유형문화재 30호)이 있는데, 신라시대의 화강암 석탑으로서 조선시대의 재건을 거쳐 현재의 모습은 1972년
보수한 것이다. 그밖에 특별한 문화재는 없지만, 정갈하게 정리된 장독대의 모습이 어느 시골집 뒷마당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도시생활에서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나선 이들에게 청량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정경이다. 대원사계곡 매표소 지나 2.5km 정도 진행하면 왼쪽으로 보인다.
서암 굴법당은 벽송사 주지를 지냈던 원응(元應) 스님이 원력을 내어, 13년 전부터 조성하기 시작했다. 스님은 화엄경 82권의 금글씨 필사를
시작하는 한편 전국에서 이름난 석공들을 불러모아 화엄경의 일화들을 형상화한 그림을 조각하게 했다. 그러나 석공들은 대다수 중도 포기했고 그중 홍덕희씨(43)만이 남아
작업을 마무리했다.
오른쪽 벽면부터 목련존자, 사리불존자, 남순동자, 관음보살, 아미타불, 대세지보살, 도명존자, 지장보살, 그리고 아래쪽 평등문 안에는 부처님의
10대 제자와 신장들을, 가운데 기둥에는 500나한의 모습을 정교하게 새겼다.
82년 전국기능경진대회 석공예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한 바 있는 홍씨는 무언가 남기고 싶다는 평소의 염원이 바로 이 굴법당 조성이었구나 하는
숙명같은 것을 느끼고, 지난 10년동안 부인도 자녀도 찾아오지 못하게 하고, 술담배도 금하는 등 구도자적 자세로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굴법당 이외 입구의 사천왕상, 북쪽 절벽 비로전에 새긴 비로자나불상 등도 모두 감탄스럽다. 그중에도 특히 심혈을 기울인 것은 지장보살상이라고 한다.
여느 절이 산기슭 또는 산 위에 올라앉아 있는 것과 달리 너른 논밭 한가운데 들어서 있다는 점이 우선 특이하게 느껴지는 사찰이다. 홍척 이후
3대조인 편운(片雲)선사에 이르러 크게 중창하는 등, 실상산파의 근본도량을 이룬 실상사는 정유재란 때 거의 폐허한 것을 숙종 7년(1681년) 벽암(碧巖)대사가 중수했고,
이후 고종 19년(1882년) 화재로 피해를 입었으나 그 이태 후인 1884년 월송(月松) 등이 재건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고찰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광전(普光殿)을 비롯,
약사전·명부전·칠성각·선리수도원(禪理修道院) 등이 있다.
얼마 전부터 농장과 귀농학교도 부설로 운영하고 있는 사찰 내에는 보물 11점과 지방문화재 1점, 민속자료 1점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산내 삼거리에서 인월 방면의 도로변 산 중턱에 위치한 실상사 말사 백장암(百丈庵)에는 신라 하대의 미탑을 대표하는 삼층석탑(국보 제10호)이 있다.
쌍계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조선 인조 10년(1632년) 벽암(碧巖)이 중건하여 지금에 이른다. 중요문화재로는 국보 제47호인 진감선사대공탑비와
보물 제380호인 부도가 있다. 대공탑비의 비문은 진성여왕 때 최치원이 쓴 것으로 한국의 4대 금석문 가운데 첫째로 꼽는다. 그밖에 적묵당(보물 제458호), 대웅전(보물 제500호),
5층석탑, 칠불아자방, 마애여래좌상, 일주문, 팔상전 등의 문화재가 있다.
불무장등, 삼신봉 산행의 기점이기도 하다.
이 절에는 동부도(東浮屠·국보 제5호)·북부도(北浮屠·국보 제54호)·삼층석탑(보물 제151호)·현각선사탑비(玄覺禪師塔碑, 보물 제152호)·동부도비
(보물 제153호)·서부도(보물 제154호) 등 여러 문화재들이 있다. 1967년 통일신라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을 해체, 보수할 때 하층 기단부에서
동조여래입상(銅造如來立像) 1구가 발견되기도 했다.
천은사에는 당대 불화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는 극락보전 아미타후불탱화(보물 제924호)가 소장되어 있다. 굵은 삼베에 채색한 그림으로
당대 불화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며, 귀중한 불화 연구자료가 되고있다.
절 입구 계곡을 가로질러 서 있는 정자 수홍루는 흐르는 물과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곳으로 쉬엄쉬엄 산책을 즐기며
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일주문에 걸린 물 흐르는 듯한 글씨체로 쓰여진 현판 또한 천은사에서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포인트다.
화엄사의 창건은 신라 진흥왕 5년(554년)에 인도 승려 연기에 의해서이며, 선덕여왕 11년(642년) 자장이 중창했고, 의상이 장륙전(현재 각황전)과
화엄석경을 만들었다는 등 구구한 창건설이 전해져 왔다.
그러나 1979년 발견된 '신라화엄사경'에 의해 화엄사는 8세기 중엽 통일신라 경덕왕 때 황룡사 소속의 화엄학 승려였던 연기가 창건한 절임이
밝혀졌다는 기록이 나와 유력시되고 있다. 화엄사에는 큰 가람답게 각황전, 석등, 4사자5층석탑 등 국보 3점과 보물 5점, 천연기념물 1점, 지방문화재 2점, 사찰문화재 29점이
보존돼 있다.
국보 제67호인 각황전은 원래 석가여래의 등신불 만한 황금불입상을 모셨다고 하여 장육전(丈六殿)이라 불렸다. 이 목조건물은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숙종 25년(1699년) 계파선사가 중흥불사를 일으켜 각황전(覺皇殿)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각황전은 여수의 진남관(鎭南館), 충무의 세병관(洗兵館)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목조건축물로 꼽히고 있다.
이 휴양림은 숲이며 산막시설이 탁월하게 뛰어난 것도 아니다. 지난 97년 문을 열어 연륜도 짧고, 경사가 급해 자연휴양림으로서 입지가 그다지
좋지도 못하다. 하지만 왜 사람들은 이곳에서 보낸 추억을 잊지 못하는 걸까?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소프트웨어의 충실함에 있다. 산이 좋아 무작정 산에 든 사나이들 김은규(관리소장), 박종원씨(기획실장)의 헌신적인 노력과
고객에 대한 배려가 바로 이 휴양림의 장점이다. 산에 오르려는 손님이 있으면 기꺼이 동행하고, 술자리가 파할 때까지 잠들지 못하는 착한 지리산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이곳을 찾아보라.
중산리 매표소에서 500m 가량 내려오면 길 오른쪽에 자연휴양림 표지석이 보이고, 이 길로 1km 들어가면 고개 너머로 통나무집이 보인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는 진주에서 출발하는 중산리행 버스(요금 3,200원·40분 간격 배차·1시간 소요)를 이용한다. 정류장에서 휴양림까지 도보로 15분 정도 걸리며,
전화하면 데리러 나가기도 한다.
샤워시설과 침구 등을 갖춘 산막 2동(24실·이용료 1박 30,000원)과 단체숙소 1동(2실·이용료 150,000원), 식당(120명 동시 식사 가능·4,000∼5,000원),
세미나실, 캠프파이어장과 주변에 산책로 2km가 조성되어 있다. 전화 (055)972-0675∼6.
이 휴양림은 숲이며 산막시설이 탁월하게 뛰어난 것도 아니다. 지난 97년 문을 열어 연륜도 짧고, 경사가 급해 자연휴양림으로서 입지가 그다지
좋지도 못하다. 하지만 왜 사람들은 이곳에서 보낸 추억을 잊지 못하는 걸까?
이 자연휴양림에는 23평형 단체산막(50명 수용·15만 원) 1동, 43평형의 산막(30명 수용·10만원) 1동, 7평형(50,000원) 6동, 21평형(가족용·10만 원),
18평형 통나무집(가족용·10만 원) 숲속교실 1동과 오토캠핑장, 야영데크, 야영장 등의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220볼트의 전기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산막에는 침구도 비치돼
있다. 6~8월 성수기와 공휴일을 제외한 비수기에는 30% 할인한다.
입장료는 1,000원(성인 기준·비수기 700원), 단체 20명 이상 800원. 주차료는 1일 소형 3,000원, 대형 5,000원이다. 오토캠핑장 5,000원(주차료 포함),
야영데크 4,000원, 야영장 3,000원. 예약전화 (055)963-8133.
지리산의 명소
바래봉지리산 - 최고의 철쭉밭
지리산 국립공원 북서쪽에는 지리산 최고의 철쭉밭인 바래봉이 있다. 세석고원이 이 바래봉으로 명성을 넘긴 지 이미 오래 되었다.
운봉면에는 대개들 '운봉종축장'이라 부르는 농촌진흥청 축사기술연구소 남원지소가 있는데, 이 목장 뒷산이 바래봉이다. 지리산 주능선 상의 만복대에서
북동쪽 정령치, 고리봉, 세걸산으로 이어진 능선이 막 꼬리를 내리기 시작한 지점에 솟은 봉우리다. 철쭉 절정기에는 멀리 24번 국도에서도 산등성이의 벌건 빛이 바라뵌다.
[상세히 보기는 여행의 바래봉 항목으로]
산수유마을 상위
만복대 산행 기점인 위안리 상위 마을을 비롯해 그 아래 대평리 평촌, 대음, 신평 등의 마을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산수유 마을이다.
이들 마을은 매년 봄이면 수만 그루의 산수유나무가 일제히 꽃을 피워 온 골짜기가 노란색으로 뒤덮인다.
[상세히 보기는 여행의 산수유마을로]
삼성궁 - 구도자들의 마을
지리산 삼신봉 남쪽 묵계골 최상류부에는 신선도를 추구하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모여 일군 삼성궁(三聖宮)이라는 이색 마을이 있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청학동 도인촌이 위치한 골짜기 서쪽 능선 너머의, 정동쪽으로 열린 골 가운데 약 10만 평 땅에 자리잡았다. 한풀선사(仙師)를 구심점으로 삼아
엄격한 수행의 나날을 보내는 한편 무수한 돌탑 쌓기로 눈길을 끈다.
[상세히 보기는 여행의 삼성궁 항목으로]
청학동 - 현대문물에 퇴색돼 가는 도인촌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지리산 삼신봉 남쪽 골짜기 상류 해발 800m대 청학동에는 도인촌(道人村)이라 불리는 이색마을이 있다.
예로부터 전해오던 도인들의 이상향인 청학동(靑鶴洞) 전설은 전국의 이름난 산에 두루 퍼져 있지만, 일반적으로 청학동은 지리산에 있는 것으로, 도인촌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태평세월에만 나타나 운다는 상상의 새 청학이 사는 아름다운 승경(勝景)에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선교사 수양관촌 - 왕시루봉에 있는 외국인 별장촌
왕시루봉(1,214m) 동쪽 턱밑에는 '한국 주재 선교사 수양관촌'이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이곳을 '외국인 별장촌'이라 부른다.
큼직한 퀀세트형 교회 건물을 비롯해 테니스장과 수영장까지 마련돼 있으며, 수양관 건물은 짙은 숲속 여기저기 늘어서 있다. 규모는 7∼8평으로 작기는
하지만 아담하고 멋진 목조건물들이다. 찻길도 없는, 두어 시간은 족히 진땀을 빼며 걸어야 하는 이곳에 이런 시설들이 들어서게 된 연유는 1920년대로,
그리고 왕시루봉 능선의 뿌리격인 노고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세히 보기는 여행의 선교사 수양관촌으로]
칠불사 아자방
절터 치고 명당 아닌 곳이 없지만 칠불사(七佛寺)는 그중 으뜸 터에 잡았다고 한다. 와우(臥牛) 형국으로 암소가 배불리 먹고 누운 형상의
명당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절에서 나는 샘물은 유천(乳泉)이며, 유천은 한반도에 단 세 곳뿐이라고 한다. 서기 97년 신라 김수로왕의 10명 왕자 가운데 7명이 입산,
6년 후 성불하였다는 데서 유래했다.
하동에서 칠불사행 버스 11:00, 16:40, 19:30 출발.
게르마늄·유황 온천장 - 지리산온천랜드
지리산 만복대 남서쪽에는 신비의 게르마늄성분이 포함되었다는 온천수가 솟는 지리산온천장이 있다. 지리산온천개발이 관산리 중동 마을
일대 55만 평 부지에 지리산온천랜드를 연 것을 시작으로 여러 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옥중 불소유황천
경남 하동군 옥중면 정수리에 위치한 옥중불소유황천은 지리산 동부의 유일한 온천이다. 중산리에서 승용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어,
산행을 마치고 피로를 풀기 좋은 곳이다. 온천수로 채운 수영장을 별도의 비용없이 이용할 수 있고, 마시지 효과가 뛰어난 스파욕조도 8대나 갖췄다.
오전 6시부터 밤 9시까지 연중무휴로 운영하며 입장료는 4,000원. 진주, 하동의 주민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한번에 1,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
내원사
내원사(內院寺)는 흐르는 물소리도 폐가 될 정도로 조용한 곳이다. 원래 이름은 덕산사였다. 신라 태종 무열왕 때 무량국사가 창건해 천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사찰로, 한때 1,000여 명의 대중이 상주하며 수도 정진한 대가람이었다. 그러나 오래 전 화재로 전소된 뒤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가,
지난 1959년 3월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원사
유평리 계곡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어버린 대원사는 지리산 깊은 계곡에 위치한 조용한 산중 비구니 사찰이다. 신라 진흥왕 9년(548년) 연기조사가
창건할 당시 이름은 평원사였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 그 후 조선조 숙종 11년(1685년)에 새로 짓고 대원암이라 했다가 고종 27년(1890년)의 중창을 거쳐 대원사가 되었다.
6.25 동란 때 전소한 것을 중건한 것이지만, 산세와 위치에 어울리는 아담한 규모로 지어져 전혀 어색함을 느낄 수 없다. 비구니들의 청정도량으로 조용하면서도 고즈넉한 경내가
인상적이다.
벽송사 서암 - 굴법당 안에 화엄경 진리 새겨둔 새 명소
요즈음 지리산 북쪽 백무동 사람들은 칠선골쪽으로 관광객을 모두 빼앗긴다고 난리다. 칠선골이 휴식년제로 묶였음을 생각하면 뜻밖이다.
이는 벽송사 옆 암자인 서암(西庵)의 굴법당 때문이다. 굴속에 법당을 꾸몄다고 하여 굴법당인데, 굴 안의 벽에 화엄경의 진리를 형상화한 정교한 조각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미 이 굴법당은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해 사철 가리지 않고 신도뿐 아니라 일반 탐방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실상사(實相寺) - 국보·보물급 문화재 많은 신라고찰
신라 흥덕왕 3년(828년) 홍척(洪陟)조사가 창건한 뒤 선종 전파에 큰 역할을 해온 사찰로 풍수지리설에 의거하여 볼 때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한국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 하여 건립하였다고 한다.
쌍계사 - 최치원의 금석문 남아 있어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쌍계사(雙磎寺)는 조계종 제13교구 본사로 통일신라 성덕왕 23년(723년) 의상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창건한
고찰이다. 삼법은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오면서 육조혜능(六祖慧能)의 두상(頭相)을 모셔와 금당의 탑에 봉안한 뒤 사찰이름을 옥천사(玉泉寺)라 지었는데, 이후 문성왕
2년(840년) 진감선사(眞鑑禪師)가 중국 차(茶)의 종자를 심고 대가람을 중창하였고, 정강왕 때 쌍계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연곡사 - 제비가 나는 형세의 명당에 위치
제비가 나는 형세라는 명당에 자리잡은 연곡사( 谷寺)는 피아골 초입에 위치해 있는 신라 고찰이다. 진흥왕 5년(544년)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하였고, 임진왜란과 6·25 때 각각 소실되었던 연곡사는 1965년 소규모의 대웅전과 요사채를 중건한 이후 81년 새 대웅전을 완공하여 절의 면모를 갖추었다.
현재 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華嚴寺)의 말사다.
천은사 - 아미타후불탱화는 최고 걸작
천은사는 구례읍 북쪽 9km 지점에 있는 자그마하고 아담한 절로, 성삼재로 오르는 고갯길 초입에 위치해 있다. 절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덕운선사가 세운 것으로 그 이름을 감로사라 하였으나, 그 후 조선시대(1773년)에 전란으로 소실되고 이듬해 혜암선사가 재건하여
천은사로 개명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화엄사 - 지리산 최대 사찰
화엄사는 지리산에 산재한 많은 사찰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많은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일주문을 통과해 금강문, 천왕문, 보제루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천년 고찰의 향기에 흠뻑 젖을 수 있다.
중산자연휴양림
사람이 휴양하기 가장 적당한 고도인 해발 650m. 눈을 들면 천왕봉의 근엄한 얼굴이 한눈에 들어오는 중산리 산기슭, 자연에 파묻혀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믿음직한 장소가 있다. 한번이라도 이곳에서 밤을 보낸 사람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곳. 바로 지리산중산자연휴양림(대표 홍성도)이다.
지리산자연휴양림
지리산 자연휴양림은 벽소령 북쪽 광대골에 들어서 있는 자연휴양림이다. 96년 7월 개장한 이래 시설물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암반과 커다란 바위들이 뒤엉켜 있는 웅장한 계곡, 그 골을 울리며 쏟아져내리는 계곡물, 그리고 지리산의 정기를 모두 모을 수 있을 것처럼 경관이 뛰어난 계곡과
어우러져 멋진 분위기를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