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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사막을 여행하는 듯한 이미지의 신기루를 만들어내는 김지혜 작가는 끝없는 육체적 갈증의 실제적 경험에서 출발한다. 질식할 것 같은 사막의 건조함, 타는 목마름은 삭막하면서도 실제로 작가가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체험했던 개인적 경험이다. 끝없는 갈증은 작가 자신의 몸 뿐만이 아니라 작가의 이성과 감성에, 그리고 실제 삶에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그래서 그림 속 아름다운 사막의 풍경은 저 멀리 있는 이국의 어딘가가 아니라, 바로 이 곳, 우리가 디딘 현실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작가 김윤희가 빚어내는 조형 이미지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우리가 늘상 보는 차창 밖 풍경에 가까이 있다. 먹과 고운 빛 물감으로 그려내는 그녀의 화면 속 풍경은 아주 예전부터 전해오는 관념적인 산수 풍경에 기대어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을 재해석해 현대적 진경산수로 다시 재현된다. 또한 먹이 만들어내는 자연과 물감이 만들어내는 인공의 풍경은 극적으로 대비되며 우리가 놓인 풍경의 한 복판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 김지혜와 김윤희가 각각 내면의 풍경과 현실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면 박향미와 강은미는 보다 내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박향미 작가는 작가의 마음 속 작은 방 곳곳에 기린, 물개, 팬더 등 동화 나라 속에 살 것만 같은 동물들을 집어 넣었다. 그 동물들은 때로는 우리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때로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우리들을 기다리며 작은 공간에 숨어 있다. 그 동물들은 내가 집에 돌아와 방문을 열면 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후다닥 순식간에 숨어버리거나, 때론 지친 나의 어깨에 기대어 괜찮다며 위로해줄 것만 같은 낯설고 친근한 존재들이다.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상상의 동물들은 순식간에 현실로 비집고 들어와 나의 친구가 되고, 상상을 일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강은미 작가는 내면의 방 속으로 꼭꼭 숨어 들어간다. 작은 방에 갇힌 한 인간의 내면은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 혹은 강함과 약함, 숨김과 드러냄의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아름답거나 추한 것도 아닌 다만 존재하는 것 모두에게 깃든 보편적인 것들이다. 강은미는 내면에 숨겨진 우리의 이중성을 발랄하면서 가볍지 않게, 어두우면서 무겁지 않게 드러내 우리에게 보여준다. ● 로비에 설치된 임지연 작가의 「Environnement Sculptural (둘러싼 살점)」은 강은미 작가가 포착한인간 내면의 이중성과는 조금 다른 인간의 이중성을 그린다. 인간의 욕망과 인간의 욕망이 남긴 잉여의 흔적은 현실 속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 중 하나이다. 임지연은 그 남겨진 욕망의 잉여, 분출되지 못한 욕구의 잉여물을 신체에 남겨진 과도한 살들에서 발견하였다. 내면이 결핍된 현대인들은 어딘가 일그러진 욕구를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고, 채워 넣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채울 수 없다. 잘못된 해소의 결과로 나타난 남겨진 살들을 우리가 직접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화려한 색의 인조가죽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살점들은 침잠된 내면의 고통에서 우리를 꺼내 그 안에서 뒹굴고 뛰어 놀게 하면서 잠시나마 작은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장소로 데려간다. ● 다른 작가들은 다른 형태로 잠시 잠깐의 휴식을 가져다 준다. 한 줄기 바람의 흔적, 지나간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어디에선가 흘러나오는 한 소절의 노래는 모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를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하게 붙잡는 것들이다. 이하나 작가는 우리가 흔히 지나치기 쉬운 바람의 소리를 기억한다. 쾌청한 어느 날의 오후 머리카락 사이를 살짝 스치고 지나는 남실바람, 높게 올라간 건물 사이를 지나가는 산들 바람, 찌는 듯한 여름의 열기를 삭히는 하늬바람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도 제마다의 모양의 내며 도시 풍경 속 한 장면을 만들어나간다. 조미영 작가는 보다 정제된 빛깔의 바람을 만든다. 그녀는 땅과 공기가 만들어내는 공간에 떠있는 깃털을 연속적으로 연출해서 전달한다. 정혜경의 「꿈꾸는 오토바이」는 이 바람들을 기분 좋게 가르며 저 멀리 떠있는 별 빛 어딘가로 우리를 인도해 줄 것만 같다. 그녀의 오토바이에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한다. 그녀가 만들어낸 오토바이는 음악을 타고 흘러 현실을 지나 미래로 달린다.
이 밖에도 작가 김도경은 우리가 매일같이 마시는 한 잔의 커피 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소소한 행복들이 채워나가는 일상의 묘미를 만들어나가고자 한다. 작은 커피 잔은 작가의 이야기로만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전시를 보러 오는, 혹은 공연을 즐기러 온 관람객들이 하나씩 쏟아내는 이야기로 함께 만들어나갈 것이다. 또한 김동현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그녀가 만드는 유쾌한 「'오토포이' 박사의 연구실 H=mw2 」의 세계로 초대한다. ● 한승민 작가는 그만이 가지고 있는 따스함을 시각적 이미지로 전환하여 세상사람들에게 보다 더 행복한 기운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작가다. 그는 부채, 장구 등으로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명을 전달한다. 따스함, 행복함에 대한 기억은 다른 작가들에게로 이어진다. 작가 정하명은 통나무 속에 꿈 속에서나 나올 법한 아름답고 평화로운 별이 빛나는 밤을, Leech는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장난감 블록을 크게 만들어 아직 버리지 않고 간직한 마음 속의 꿈을 잇는 고리로 다시 만들어낸다. ● 이 밖에도, 김선진은 새로 형상화된 인연의 망을 아름다운 비즈로 구현하였고, 나광호는 수집가로 변신하여 누군가 우연히 남긴 낙서들을 재조립하여 '날 것' 그대로 전달한다. 작가 성유현은 200여 시간에 걸쳐서 섬세하게 오려낸 종이 위에 하늘 위에 빛나는 태양이 있는 저 먼먼 우주에서부터 불어오는 태양 폭풍을 시각화 했다. 한편, 작가 오소연은 유리로 만든 봉지 속에 든 콩나물이 인상적이다. 그녀는 쉽게 재배할 수 있는 콩나물을 선택해서 도처에 만연해있는 무차별적인 개발이나 폭력성을 거부하고 소소한 이야기로 시작되는 작은 평화를 꿈꾸고 있다. 안선영은 작은 자개를 겹겹이 쌓아 붙여 만든 꽃으로 내밀한 여성성을 드러내고 여러 번의 붓질로 그것을 다시 지워 버리는 작업을 반복하며 숨김과 드러냄을 반복하며 그녀만의 세계를 빚어낸다. 마지막으로 형다미 작가는 무심히 흘려보내는 시간 속에 숨겨진 수많은 이야기들을 붙잡고 싶어한다. 그녀는 식물 등의 형태를 빌려 삶 속에 숨겨진 풍요로움과 힘의 원천이 무한히 증식되는 세계를 펼쳐낸다.
위에 소개된 작가들은 모두 이번 공모전에서 수상을 한 작가들이다. 이들은 아직 젊지만 흥미로운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모두 내일을 여는 도전, 내일을 여는 희망, 내일을 위한 비상이다. 이번 공모전을 통해서 한국 미술의 내일을 열어나가는 작가들의 도약을 기대해본다. ■ 박경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