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사회복지가 아니라 공정한 성과배분입니다
분배의 정의는 일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적정한 대가를 배분하는 것입니다
분배의 정의가 행해질 때 비로소 집단의 구성원들은 자발적으로 최선을 다 하여 노동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공정한 성과배분은 상생의 세계의 초석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분배의 평등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보호하지 않음이라는 생명의 질서를 거스르는 반생명적이요 순억지적 행위일 뿐입니다
분배의 평등이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는 할 것입니다
그렇치만 마라톤경주에서 일등과 꼴등에게 똑같은 선물을 준다면 아마도 모든 참가자들은 꼴등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일등한 대가도 없는데 그 누가 힘들게 일등을 하려 들겠습니까!
분배의 평등은 집단을 무기력하고 비효율적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리하여 집단 자체를 황폐화시켜버립니다
집단이 황폐화되고서 어찌 경제적 약자가 보호될 수 있겠습니까!
보호하지 않음은 비록 고통스럽고 가혹한 질서이긴 하지만 생명의 질서입니다
생태계는 기회의 평등은 지향하지만 결코 결과의 평등을 지향하지는 않습니다
보호는 반생명적이고 반사회적인 매우 어리석은 행위임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오늘날 선진국은 80:20의 사회에서 90:10의 사회로 이전 되고 있다고 합니다
즉 전체 인구의 10%가 전체 부의 90%를 차지하는 사회로 이전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중산층이 사라지고 다수의 빈곤현상이 진행되고 있슴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부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선진국은 결코 물질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아니 과잉생산으로 인해 골치를 썩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1인당 GNP가 상승한다고 해서 다수국민이 잘 사는 것은 아닙니다
성과배분이 왜곡되면 1인당 GNP가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다수국민은 항상 빈곤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수의 빈곤문제은 부의 절대량의 증가가 아닌 공정한 성과배분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성과배분에 대하여 생각해보겠습니다
분배는 노동의 성과에 의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노동의 성과는 노동의 양과 질이 어우러져서 형성됩니다
즉, 노동의 양이 많거나 노동의 질이 높으면 노동의 성과는 커지고 노동의 양이 적거나 노동의 질이 낮으면 노동의 성과는 작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정한 성과배분을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노동의 양과 질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선행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노동의 양에 대한 평가문제에 대하여 생각해보겠습니다
동질(同質)의 노동에서의 노동의 양에 대한 평가는 비교적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노동의 양에 대한 상호비교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보험모집인들간의 노동의 양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 실적에 의해서 공정한 상호비교평가가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동질의 노동에서의 노동의 양적 차이 즉, 실적에 의한 성과배분은 비교적 공정하게 이루어지므로 분배의 왜곡현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흔히 성과배분을 말할 때는 동질의 노동에서의 노동의 양적 차이 즉, 노동의 양에 의한 실적평가만을 말합니다
시장경제원리에 의한 성과배분을 주장하는 내용들이 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노동의 성과 즉, 실적이라는 것은 노동의 양만이 아니라 노동의 질도 함께 어우려져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보험모집인들의 실적에는 그들의 노동의 양만이 아니라 그들의 노동의 질도 함께 포함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정한 성과배분을 위해서는 노동의 양만이 아니라 노동의 질도 함께 고려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노동의 질에 대하여 생각해보겠습니다
개인들간의 노동의 질적 차이는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공정한 성과배분을 위해서는 반드시 노동의 질적 가치가 고려되어야만 합니다
노동의 질적 가치의 평가자는 국가나 자본가집단 또는 경제적 강자들입니다
즉, 현실세계에서 분배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집단이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노동의 질적 가치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노동자, 사장, 회장, 변호사, 의사, 말단 공무원, 대통령, 장관 등의 노동의 질적 가치를 어떻게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가 있겠습니까!
결국 이로 인해서 노동의 질적 가치가 분배주도권을 행사하는 집단이나 사람들에 의해서 악의적으로 왜곡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노동의 질적 가치는 상대적 가치입니다
예컨대 사장의 노동의 질적 가치가 상승하면 노동자의 노동의 질적 가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의사의 노동의 질적 가치가 상승하면 일반인들의 의료비 상승으로 인하여 일반인들의 노동의 질적 가치가 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노동의 질적 가치가 상대적 가치임으로 인하여 부가 상대성을 띠게 됩니다
그리하여 아무리 부의 절대량이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노동의 질적 가치가 왜곡되어 성과배분이 왜곡되면 힘없는 다수는 항상 빈곤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동의 질적 가치의 평가자인 국가나 자본가집단 또는 경제적 강자들은 노동의 질적 가치의 평가 기준을 어떻게 정할까요?
노동의 질적 가치의 결정적 평가기준은 부에 대한 탐욕입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일한 만큼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탐욕)의 부를 원하니까 말입니다
부의 세습제도는 무한대의 부를 축적하게 함으로써 부에 대한 필요량을 무한대로 늘려 버립니다
그리하여 분배주도권층으로 하여금 노동의 질적 가치를 무한대로 왜곡시키게 하여 공정한 성과배분을 유린해버리는 것입니다
예컨대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에 이르는 각종 연봉이나 성과급 등은 부의 세습제도로 인하여 완전히 왜곡된 성과배분의 결과입니다
부의 세습제도가 없었다면 어찌 이러한 황당한 연봉이나 성과급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부의 세습제도가 존재하는 한 공정한 성과배분은 있을 수 없습니다
물론 부의 세습제도가 폐지된다고 하더라도 성과배분을 둘러싼 마찰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마찰은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습니다
공정한 성과배분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부의 세습제도가 폐지되어야만 합니다
부의 세습제도가 폐지되면 공정한 성과배분은 절로 이루어집니다
그리되면 노동조합조차도 필요없게 됩니다
결국 분배주도권층과 피분배주도권층은 자연스럽게 화합하고 하나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복지를 위한 부의 재분배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분배의 결과가 공정한 성과배분에 의한 것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현재의 분배는 부의 세습제도에 의하여 완전히 왜곡된 분배인 것이지 결코 공정한 분배가 아닙니다
부의 세습제도 하에서는 결코 공정한 분배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부의 세습제도가 폐지되고 공정한 성과배분이 이루어지면 열심히 일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회복지제도가 없더라도 얼마든지 스스로의 힘으로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왜 열심히 일하고도 거지처럼 사회복지제도에 의존하여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그렇다고 사회복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회복지라는 것은 직장을 구하고자 하여도 도저히 구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나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장애자나 노인들의 경우처럼 사회적으로 소외된 극소수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문제는 사회복지제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열심히 일하고도 빈곤에 시달려야만 하는 지극히 비정상적 상황에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재의 비정상적 상황을 혁명적으로 개선하여 정상적 상황으로 바꾸는 것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오직 혁명적 개혁만이 상생의 세계를 열어줄 것입니다
첫댓글 GOOD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