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20, 2000. Written by C. J. Lee
<하와이를 상징하는 것 중에 'hang loose'라는 말이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형용사로는 '마음 편한' 또는 '느긋한' 이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약한 명령어로 쓰이면 'relax'라는 말로 보면 될 것이다. 편히 쉬어라! Hang loose!
하여간 하와이에는 hang loose가 많다. 모자에도, 티셔츠에도, 열쇠고리에도.. 정말 여러 곳에서 아주 쉽게 hang loose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hang loose를 뜻하는 손동작이 있는데,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꺼벙하게 구부려 펴고 나머지 세 손가락은 쥔 상태로 아래위로 흔드는 동작이다.
(아래에 둘리와 내가 hang loose 하면서 찍은 사진이 있다. 내 머리가 조금 벗겨진 것 같이 나온 것은 태평양 바람이 강했기 때문이다. 음..영감이 다 되었구만..)
올 일년 많은 일을 겪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그래서 얻은 나의 가장 큰 변화는 마음을 너그러이 가지려는 노력이었다. 물론 아직도 잘 안되지만. 특히 운전하면서 욕하는 것은 아직..
마음을 편하게 가진다는 것. 그것도 종류가 많다.
Que sera sera 같이 whatever will be, will be이던 '될 대로 되라'는 것이 있고, Hakuna Matata 와 같이 즐겁지만 의미 없이 하루하루 사는 삶도 있고... 그러나 진정으로 잘 사는 것은 hang loose하고 hang tight 한 삶을 공존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란 생각이다.
이번 출장에서 느낀 아주 훌륭한 진리였다. (나날이 진리를 깨우치는 속도가 빨라진다. 내공이 많이 쌓였나?)
사실 한담이라는 것을 시작하고 나서 부담도 있었고, 지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번 가출 기간동안 느낀 것은, 한담이 남을 위한 글만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 글들을 쓰면서 hang loose 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냥 쓰기로 하였다 (싱거운 놈). 대신 지금보다는 훨씬 편하게...>
외국에서 돌아올 때, 비행기를 타기 직전 쌓여 있는 우리 나라 신문을 하나 집게 마련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선뜻 내켜서, 또는 반가워서 집은 적은 없었다. 언제 우리 나라에 반가운 소식이 있어 봤어야지.. 그런데도 신문을 집어 자리로 가는 것은 긴 시간의 비행 중에 읽을 거리를 구하는 것일 뿐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읽어 봐야 그렇고 그런 고국의 소식들...(에구.. 언제나 고국의 신문을 반가이 집어들 날이 있을까? 이민 가서 오래 있으면 그리될까?)
집에 돌아 와서도 상황은 여전했다. 뉴스는 여전히 호들갑스러웠다. 누가 사퇴를 했다느니, 그것이 무엇을 뜻한다느니.. 참으로 먼지 같은 일을 악악대고 있었다. 그래서 무엇이 바뀌는데?! 절망한 많은 사람들에게 무엇이 좋아지는데?! 연말이 더욱 추운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마구 떠들고 있다. 다른 뉴스라는 것도 그렇고 그렇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다시 가출 전의 무료함으로 돌아가려는 나를 깨우는 뉴스가 있었다. 그것도 두 개나..
첫째. '촉탁 자살'인가 뭔가 하는 것이었는데, 처음 그것을 듣는 순간 눈치가 절벽이 아닌 나도 어리둥절하였다. 자살을 도와준다?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를 허용했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의학적으로는 절망뿐이고, 기적만 바라는 사람들을 안락사 시키는 것도 아니고 (사실 이것도 논란의 여지는 있다), 멀쩡한 젊은 사람이 죽고 싶은데 용기가 없어서 못 죽으니 죽여달라, 그리고 그래서 도와주었다(?)는 황당한 이야기. 전설의 고향..
내가 무엇을 잘못 했느냐고 항변하는 그 '도움을 준 자'는 그렇다 치자. (어차피 그는 자살의 의미와는 관계없는 청부 살인자일 뿐이니까) 그러나 그 죽은 사람은 한번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죽고 싶은데 용기가 없어서 못 죽는다고 하였단다. 그럼 '죽을 용기'란 무엇일까? 그 '죽을 용기'야 말로 조물주가 인간에게 선뜻 준 것이 아니다. 마지못해 준 것인데, 그것은 '공포'의 일종이다. 조물주가 우리를 보호하려고 준.. 그렇지 않으면 기껏 인간이라고 만들어 놓았더니, 조금 괴롭다고 죽어버리고, 힘들다고 죽어버리고 하면 아깝지 않겠는가? 인건비도 안 나오는 일인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안전장치를 다른 인간에게 부탁해서 풀어버렸다는 것이다. 아마 조물주도 황당할 것이다. 어쩌다 이리 되어 가는지.. 하여간 인간의 영악함이란..
둘째. 과외로 원조교제 하였다는 이야기. 허참..
이 경우는 갸륵하다고 해야하나? 기특하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경제를 안다고 해야하나? 꿩 먹고 알 먹기인가?
그 여자 애는 그렇게도 공부를 하고 싶었단 말인가? 공부욕심이 얼마나 많으면 몸을 내던지면서까지 공부를 할까? 귀감이라고 해야 할까보다.
螢雪의 功이라는 것은 들어보았지만, 이 경우는 뭐라고 해야하나?
投身之功? 아니면 賣肉之功?
그런데 두 사건이 다 인터넷에서 비롯되었다. 정말 생각해 볼 문제다.
참 hang loose 하면서 살기 힘든 세상이다.
오랜만에 쓴 글도 또 무겁게 되어버렸다. 그저 아래의 잘 생긴 부자의 모습을 즐기면서 hang loose 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