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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의 3년간 대화기록이란다.
2009년에 이 책을 읽고
2016년에 다시 관심을 가지고 읽고 있다. 놀랍다.
이 책의 의식레벨은 540이라고 한다.
panic bird..
너희가 어떤 것을 체험하고 느낀다는 것은 그것을 사실로서 알고 직관으로 안다는 뜻이다. 반면에 말이란 오직 너희가 아는 것을 상징할 수 있을뿐이어서 종종 너희의 앎을 어지럽힌다.
가장 고귀한 생각이란 예외없이 기쁨이 담겨있는 생각이며, 가장 명확한 말이란 진리를 담고 있는 말이며, 가장 강렬한 느낌이란 너희가 상징이라 부르는 바로 그 느낌이다.
기쁨과 진리와 사랑, 이 셋은 서로 뒤바뀔 수 있으며 하나는 언젠가 다른 것들을 가져다 준다. 그것들이 어떤 순서로 놓여있는가는 하등 중요치 않다.
너희가 우주의 어느 구석에 있든 나는 몇천, 몇만년을 두고 같은 메시지를 너희에게 전하고 또 전하고 전할 것이다. 너희가 내 메시지를 받아들일때까지 나는 끝없이 보낼 것이다. 내 메시지들은 몇백만년에 걸쳐 몇 천번의 순간에 몇백가지의 형태로 올 것이다. 너희가 진실로 듣고 나면 그것들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우리의 교류는 가장 진지하게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자신가 들은 게 틀린 것처럼 여겨질때도 신에게 귀 기울여야 합니까?
- 틀린것처럼 여겨질때 특히 더 그래야 한다. 만일 너희가 매사에 자신이 옳다고 여긴다면 신과 대화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그냥 앞으로 나가면서 너희가 아는 바 그대로 행동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시간이 시작된 이래 너희가 줄창 해온게 바로 그런 짓임을 잊지 마라. 너희가 이해하지 못하는 뭔가가 분명히 존재한다. 너희가 이해하는 것은 너희에게 옳게 여겨질 것이다. 너희가 놓친 것은 처음에는 '틀린"것으로 보일 것이다.
- 하나의 방법은 "내가 틀렸다"라고 생각한 모든 것이 사실은 옳다면 어떻게 되는가?라고 물어보라.
- 너희는 자신들이 이미 신을 알고 있다고 중얼거리는 것을 멈출때까지 신을 알 수 없다. 너희는 자신들이 이미 신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생각하는 짓을 멈출때까지는 신의 말을 들을 수 없다. 나는 너희가 나한테 너희의 진리를 말하는 것을 그만둘때까지는 내 진리를 말할 수 없다.
신에 관한 진리는 어떻게
- 네 느낌에 귀기울여라. 네 가장 고귀한 생각들에 귀기울여라. 네 체험에 귀를 기울여라. 이중 어느 하나라도 네 선생들이 말한 바나 네가 책에서 읽은 바와 다르다면 말들쪽을 잊어라. 말이란 가장 믿음직스럽지 못한 진리 조달업자이다.
당신은 왜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까?
- 나는 수없이 되풀이해서 나를 드러내왔으며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중이다.
- 네가 바라보는 곳 어디에나 나는 있다.
- 나는 너희가 이해하는 어떤 형상이나 모습도 지니고 있지 않기에 드러내는 것은 어렵다. 내가 너희가 이해할 수 있는 형상이나 모습을 취할 수 있으나, 그러면 누구나 하나같이 자기네가 본 것이 신의 많은 형상이라 모습들 중 하나가 아닐, 유일한 형상이자 모습이라 여길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자기네가 보지 못하는 어떤 존재가 아니라, 자기네가 보는 대로의 존재인 줄 믿는다. 나는 없음에서 나오고 항상 그것으로 되돌아간다.
- 그럼에도 내가 특정의 형상, 곧 사람들이 나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여기는 형상으로 나타나면 사람들은 나를 영원히 그 형상으로 규정한다.
- 올바른 기도는 간청이 아니라 "감사의 기도"다. 너희가 현실에서 체험키로 선택한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할때, 사실상 너희는 그것이.. 실제로 있음을 인정하는 셈이다. 따라서 감사는 신에게 보내는 가장 강력한 진술,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대답해주는 하나의 확약이다. 그러므로 간청하지 말고 감사하라.
- 신이 너희 삶의 모든 것을 창조하고 결정하는 존재라고 믿는다면, 너희는 잘못 생각하고 있다. 신은 창조자가 아니라 관찰자다. 그리고 신은 너희가 삶을 살아갈때 기꺼이 너희를 거들기 위해 옆에 서있겠지만, 너희가 기대하는 방식으로는 아니다.
- 신이 너희가 하는 일에 여러모로 마음쓰리라는 생각은 너희가 빠져있는 크나큰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서운하겠지만 나는 너희가 뭘하든 마음쓰지 않는다. 너희는 너희 나름의 방식으로 너희의 삶을 살고 있으며 나는 그것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 삶의 결과가 불확실하다는 생각은 인간이 품고 있는 크나큰 환상일 뿐이다. 너희의 가장 큰 적인 두려움을 낳는 것은 결과에 대한 의심이다. 너희가 결과를 의심한다면 너희는 창조주, 신을 의심해야하고, 신을 의심한다면 너희는 평생동안 두려움과 죄책감속에서 살아야 한다.
- 문제는 너희가 환상속에 살고 있으며 그때문에 두려움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네가 새로운 결정을 내린다면 그결과는 어떻겠는가? 너는 부처처럼, 에수처럼, 성인들처럼 살게 될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너를 이해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 인간의 모든 행동은 가장 깊은 단계에서는 두가지 감정중의 하나 "두려움과 사랑"에서 시작된다. 영혼의 언어속에는 단 두가지 감정만이 존재한다.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사랑 또는 두려움" 어느 한쪽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밖에는 어떤 행동동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sponsoring thought(받침생각)은 사랑이나 두려움에서 비롯딘 생각이다. 이것은 생각뒤의 생각이다. 이것은 최초의 생각이며 원초의 힘이고, 인간 체험의 엔진을 움직이는 생짜 에너지이다.
- 그런데 사랑을 맹세하는 순간 너희는 가장 큰 두려움을 맞아들이게 된다. 사랑한다고 말하자마자 상대방이 그 말을 되돌려 줄 것인지 걱정한다. 되돌려 받는다해도 잃게 될까봐 걱정하기 시작한다.
- 너희는 조건없이 사랑받는게 어떤 건지 잊어버렸다. 너희는 신의 사랑을 체험했던 걸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너희는 세상에서 보는 사랑의 모습에 따라 신의 사라잉 어떤 것인지 상상해보려 애쓴다. 너희는 인간체험에 근그한 신에 관한 사유체계를 만들어낸 뒤 사랑을 둘러싼 실체 전체도 창조해냈다. 그것은 복수심에 불타는 무서운 신이라는 개념에 뿌리를 둔 실체이며, 두려움에 그 근거를 둔 실체이다. 그것의 받침 생각은 틀린 것이지만, 그런 생각을 부정한다면 너희의 신학 전체가 무너질 것이다.
- 두렵지 않은 신, 심판하지 않는 신, 벌줄 이유가 없는 신이라는 개념은 그냥 너무나 근사해서 신의 본질에 관한 너희의 어떤 거창한 관념으로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 우리가 화해하는 순간은 반드시 올 것이기에 너희는 결국 순수한 사랑을 체험하고 내 참모습을 알게 될것이다.
- 인간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은 이 두가지 감정(사랑과 두려움)에 근거하고 있다. 다른 감정은 없기에 너희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러나 이 둘중 어느쪽을 선택하느냐는 너희의 자유다.
- 너희는 가장 잘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고, 가장 강한자가 승리하며, 가장 영리한 자가 성공한다고 들어왔다. 너희는 지고한 사랑의 영광에 대해서는 들어본적이 없다. 당연히 너희는 두려움에 뒷받침된 행동을 선택한다. 너희가 이제까지 배워온게 그런 것이기에 ..
- 너희가 사랑에 뒷받침된 행동을 선택할때 너희는 생존 이상을 하게 될것이고, 이기는 것 이상을 하게 될것이며, 성공이상을 하게 하게 될 것이다.
- 깨우쳐주는 자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너희 외부에 있는 어떤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희 내면의 소리이다. 이것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내가 첫번째로 사용하는 도구다. 그 소리는 너희가 그냥 내버려두기만 하면 스스로 알아서 방향을 정하고 배의 진로를 잡고 여정을 이끌어주는 레이더이다.
- 삶이란 너희가 이미 개념으로 알고 있는 것을 체험으로 알 수있게 해주는 기회다. 이걸 하기 위해 뭔가를 배울 필요는 전혀 없다. 너희는 그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기억해내고 그에 따라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 너희의 영혼은 언제나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고있다. 앎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체험하고자 한다. 네 영혼이 지닌 유일한 갈망은 자신에 관한 위대한 개념을 가장 위대한 체험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개념이 체험이 되기전까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색에 불과하다.
- 여기 있는 것과 저기 있는 것, 그리고 여기도 저기도 있지 않지만 여기와 저기가 존재하려면 반드기 있어야 하는 것에는 세가지 요소가 존재한다. 모든 것을 지탱해주는 것은 무nothing이고, 공간을 지탱해주는 것은 비공간이며, 부분을 지탱해주는 것은 전체다. 지금 모든 것을 지탱해주는 이 무nothing을 신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 신은 사랑이 존재하려면, 또 자신을 순수한 사랑으로 인식하려면 그것의 대립물도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신은 자신해서 그 위대한 극단, 사랑의 절대대립물(두려움)을 창조했다. 두려움이 존재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사랑은 자신을 체험할 수 있는 것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사랑과 그 대립물 사이의 이원성을 창조한 이 시건이 바로 인간들이 여러 신화들 속에서 악의 탄생, 아탐의 타락, 사탄의 반란따위로 표현하는 것이다. 너희는 순수한 사랑을 신이라는 배역으로 의인화했던 것처럼 비천한 두려움을 소위 악마라는 배역으로 의인화했다.
- 창조주가 자신이 창조주임을 체험으로 아는 방법은 딱 한가지 뿐이다. 그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내가 영적인 자식인 너희를 창조한 것은 나 자신을 신으로 인식하기 위해서였다. 나로서는 너희를 통하는 것 말고는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너희에 대한내 목적은 너희가 나 자신을 나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간단해보이지만 더 들어가면 아주 복잡해진다. 왜냐하면 너희가 자신을 나로 인식할 수 있는 딱 한가지 방법은 우선 너희 자신을 나아닌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이 더없이 완벽하고 애정깊은 존재라면 왜 전염병, 기근, 전쟁, 지진, 태풍 등의 재난이 존재합니까?
- 나는 너희 주변에 너희가 완벽함이라고 부르는 것만을 창조하여 내 선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는 너희에게 자신들의 사랑을 증명할 수 없게 하여 내 사랑을 증명하지 않는다. 절대계를 제외하고는 대립물없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너희는 사랑아님을 증명할 수 있을때까지 사랑을 증명할 수 없다.
- 신의 세계에는 해야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없다. 네가 원하는대로 하라. 너를 반영하는 것, 너 자신의 위대한 변형으로서 너를 재표출해주는 일을 하라. 그러나 심판하지도 비난하지도 마라. 왜냐하면 너희는 그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도, 어떤 식으로 끝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너희가 비난하는 것이 언제고 너희를 비난할 것이며, 너희가 심판하는 것이 언제고 너희를 심판할 것이다.
- 차라리 네 가장 고귀한 자신을 더 이상 반영하지 않는 것들을 바꾸려 노력하거나, 그런 것들을 바꾸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도록 하라. 그럼에도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것들을 축복하라. 그 모든 것이 다 신의 창조이고,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창조이기에.
- 어떤 생각이나 말, 행동이 "그르다'는 것은 너희가 그것들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그것들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너희 자신을 禁하는 것이ㅏㄷ. 너희를 금하는 건 자신의 제한하는 것이며, 자신을 제한하는 건 "참된 자신"이라는 실체를 부정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 실체를 창조하고 체험할 기회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 세상에는 내가 너희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바로 이사람들이 내게 복종하지 않는다면 내거 너희를 지옥으로 보내리라고 주장한다. 무슨 그런 자유의지가 있단 말인가? 이런 주장은 신을 조롱하는 짓이다.
- 지옥은 너희의 선택과 결정, 창조들이 일으킬 수 있는 최악의 결과를 체험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神)을 부정하는 모든 생각 즉 자신과 나와의 관계를 부정하는 모든 생각의 당연한 귀결이다. 지옥은 잘못된 사고로 너희가 겪는 고통이다. 지옥은 기쁨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음이다.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는 있으되 체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못난 존재다. 그것이 바로 지옥이며 너의 영혼에게는 그보다 끔찍한 것은 없다.
- 너희가 두려움에 근거한 신학들 속에서 쌓아올린 의식, 죽음 뒤의 체험같은 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신의 더없이 큰 기쁨과는 한참 거리가 먼 영혼의 체험이란 것은 존해하니, 너희 영혼에게는 바로 이것이 지옥일 것이다.
지옥이 없다면 제가 응보를 두려워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하고 하고싶은대로 하고 무슨행동이든 다해도 된다는 뜻인가요?
- 착해지려는 행동을 할때 굳이 협박을 받아야 하는가? 지침들을 정하는 것은 누구이며, 규칙들을 만드는 것은 누구인가? 바로 네가 너 자신의 규칙을 제정하고, 바로 네가 그지침들을 설정한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잘해왔고, 지금 얼마나 잘해가는지도 판단하는 사람도 바로 너다. 너야말로 자신이 참으로 누구이고 무엇인지,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되고자 하는지를 판단해온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너야 말로 자신이 얼마나 잘해가는지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 너희 이외에 어느 누구도 너희를 심판하지 않을 것이다. 신이 왜, 어떻게 자신의 창조물을 심판하고 나쁘다고 규정하겠는가? 만일 너희가 완벽하기를 바라고 모든것을 완벽하게 해내기를 바랬다면 나는 너희를 너희의 고향인 절대완벽 상태에 그래로 남겨두었을 것이다. 이 과정의 핵심은 너희가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요. 참된 자신으로서 그리고 너희가 참으로 되고자 하는 바대로 너희자신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 너희는 응보를 두려워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해도 좋다. 그러나 그 귀결을 깨닫는 것이 너희에게 도움이 되리라. 그 결말은 응보나 징벌과는 다르다. 결말은 자연법칙의 자연스러운 적용에서 결과하는 것이다. 너희에게 징벌처럼 비치는 것, 혹은 너희가 악이나 불운이라 부르는 것들은 스스로를 주장하는 자연법칙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내면으로 가지 않는다면 나는 바깥으로 가게 되리라"
- 너희는 평생동안 바깥으로만 가왔다. 하지만 너희는 그럴필요도 없고 그래봐야 뭔가 이루지도 못할것이다. 너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너희가 할 수 없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너희가 가질 수 없는 건 아무것도 없다.
- 왜 신은 그것이 어떤 고통이든 항상 고통을 묵인하는가. 그 과정속에 완벽함이 존재한다는 것, 게다가 무릇 삶이란 선택에서 비롯된다. 선택에 간섭하거나 선택을 문제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 선택을 비난 하는 것은 특히나 더 적절치 못하다. 적절한 쪽은 그 선택을 관찰하고 그런 다음 그 영혼이 좀더 고상한 선택을 추구하고 더 고상한 선택을 놓고자 할때 그것을 도와줄 뭔가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들의 선택을 주의깊게 지켜보되 판단하지 마라.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완벽하다는 것을 그들이 깨닫게 해주라. 그들이 더 새로운 선택, 다른 선택, 고상한 선택을 하려는 때가 오면 그들을 도울 수 있게 옆에 서 있도록 하라.
- 옳음이나 그름은 본래의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가치체계 속에서만 있는 주관적인 판단이다. 너희의 주관적인 판단들로 너희난 자신의 자아를 창조한다. 너희는 너희 개인의 가치들로 자신이 누구인지 판단하고 증명한다.
- 세계는 너희가 이런 주관적인 판단들을 내릴 수 있도록 하려고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 만일 세계가 완벽한 상태로 존재한다면 자기창조라는 너희 삶의 과정은 종막을 고할 것이다. 그것은 끝날 것이다. 더 이상 소송이 없다면 변호사가 할일은 끝날 것이다. 더이상 병이 없다면 의사가 할일도 끝날 것이다. 더이상 의문이 없다면 철학자가 할일도 끝날 것이다.더이상 신이 할일 일 없다면 내일이면 끝날 것이다.
너희가 지금 있는 꼭 그대로의 너희 삶을 창조했듯이
- 나는 너희가 원하는 것을 원한다. 너희가 진실로 굶주림의 종식을 원하는 바로 그날, 더 이상 굶주림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그렇게 할 수있는 모든 자원들을 주었다. 너희는 그런 선택을 내릴 수 있는 모든 도구를 갖고 있다. 너희는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 나는 너희가 선택했기 때문에 세상이 지금 식대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설명중이다. 너희는 환경을 파괴하면서 자연재해들을 신의 잔혹한 장난이나 자연의 냉혹한 법칙을 보여주는 증거로 들이대고 있다. 장난을 쳐온 쪽은 너희이고, 잔혹한 쪽은 바로 너희의 법칙이다.
- 너희는 지금이라도 열대우림의 파괴를 끝내는 쪽을 선택할 수 있다. 너희는 오존층의 고갈을 그만두는 쪽을 선택할 수 있다. 너희는 지구의 정교한 생태계에 대한 쉼없는 공격을 멈추는 쪽을 선택할 수 있다. 지금 너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 마찬가지로 너희는 지금 당장 모든 전쟁을 끝낼 수 있다. 너희가 서로 죽이는 짓을 끝내는 것처럼 간단한 합의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늘에다 대고 종주먹을 치면서 너희의 삶을 질서잡히게 해달라고 외쳐댈 수 있단 말인가? 너희 스스로 하지 앟는 어떤 것도 내가 너희를 위해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법칙이고 예언이다.
- 세상이 지금 상태대로 존재하는 것은 너희때문이고 너희가 내린 선택들 때문이다. 혹은 너희가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정하지 않는 것도 너의 결정이다. 너의 선택이다. 지구가 지금 모습대로 존재하는 것도 너의 때문이고 너희가 내린 선택들 때문이다. 혹은 너희가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희의 삶이 지금 방식대로 인것도 너희 때문이고 너희가 내린 선택들 때문이다. 혹은 너희가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강도당하기를 강간당하기를 트럭에 치이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 너희 모두가 강도짓을 하려는 욕구, 즉 감지된 필요를 만들어낸 기존 상황의 원인제공자들이다. 너희 모두가 강간을 가능케 하는 의식을 창조했다.
-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가난한 사람에게 존엄성을 부여하라. 운 나쁜 사람에게 기회를 줘라. 더 나은 내일이라는 사소한 약속으로 대중을 움츠려들게 하고 화나게 만드는 편견을 끝내라. 성에너지에 대한 무의미한 금기와 억압을 치워버려라. 그보다는 성에너지의 경이를 진실로 이해할 수 있게, 그것이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게 사람들을 도와주어라. 그러면 너희는 강도와 강간을 영원히 종식시키는 사회로 나아가는 긴 여정에 들어설 것이다.
-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우연의 일치란 없으며, 어떤 일도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각각의 사건이나 모험은 참된 자신을 창조하고 체험하기 위해서 너희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다. 모든 참된 선각자들은 이것을 알고 있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히면서 동요하지 않았다. 달아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 과정을 중단시킬 힘이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인간의 영원한 구원의 상징이 되기위해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허용했다. 너희가 이보다 더한 일도 선택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아라.
- 그러기에 내가 너희가 바로 신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정 믿지 못하겠다면 나를 믿도록 하라라고 예수는 말했다. 예수의 가장 큰 가르침은 너희가 앞으로 영원한 삶을 누리리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누리고 있다는 것이었으며, 너희가 앞으로 신과 형제가 되리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렇게 되고 있다는 것이었고, 앞으로 너희가 구하는 건 뭐든지 갖게 되리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 이것을 아는게 너희에게 필요한 전부이다. 왜냐하면 너희 현실의 창조자는 너희이며, 삶은 너희가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꼭 그대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너희가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 된다. 이것이 창조의 첫단계다.
왜 인간은 신을 부정하고 싶어할까요?
-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내약속들이 너무 훌륭해서 도저히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며, 가장 위대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너희는 사랑과 권능과 수용보다는 두려움과 의존과 편협함을 가르치는 영성으로 자신을 축소시켜야 한다. 너희는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다.
두려움
- 너희는 자신이 상상한느 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는게 첫번째 법칙이다. 두번째 법칙은 너희가 두려워하는 걸 끌어당긴다는 것이다. 감정은 끌어당기는 힘이다. 너희는 크게 두려워하는 걸 체험할 것이다. 우주에는 어떠한 우연의 일치도 없다. 감정은 움직이는 에너지다. 너희가 에너지를 움직이면 결과가 창조된다. 만일 너히가 그만큼 충분한 에너지를 움직이면 너희는 물질을 창조한다. 물질은 응축된 에너지다.
- 생각은 순수 에너지다. 너희가 갖고 있고 일찌기 가졌으며 앞으로 가질 모든 생각에는 창조하는 힘이 있다. 너희의 생각에너지는 앞으로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것은 너희라는 존재와 머리를 벗어나 우주속으로 영원히 퍼져나간다. 생각은 영원하다. 모든 생각은 모여든다. 모든 생각은 엄청나게 복잡한 에너지의 미로속에서 서로 교차하면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믿을 수 없을만큼 복잡하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늬를 이루면서 다른 생각들과 만난다.
- 비슷한 에너지는 비슷한 에너지끼리 끌어당긴다. 물질은 이런 순수 에너지에서 형성된다. 물질이 형성될 수있는 것은 이길 뿐이다. 일단 에너지가 물질로 되면 그것은 아주 오랫동안 물질로 남는다. 이 물질을 이루고 있던원래 에너지를 방출시키면서 사실상 그 물질을 해체한다.
세번째 법칙
1. 생각에는 창조하는 힘이 있다.
2. 두려움은 에너지처럼 끌어당긴다
3. 존재하는 건 오직 사랑뿐이다.
- 사랑은 궁극의 실체다. 그것만이 유일하고 그것만이 전부이다. 사랑의 감정은 너희가 신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지고의 진리중에서 지금 존재하고 있고, 일찌기 존재했으며 앞으로 존재할 것은 사랑뿐이다. 너희가 절대계로 들어갈때 너희는 사랑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 내가 상대계를 창조한 것은 나 자신을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상대계는 너희와 내가 우리 자신을 체험으로 알기 위해 지어냈고 지금도 지어내고 있는 창조된 현실이다.
- 두려움은 사랑의 다른 한 끝이다. 그것은 가장 기본이되는 극이다. 상대계를 창조하면서 나는 가장 먼저 나 자신의 대립물을 창조했다. 두려움과 사랑
- 두려움에 뿌리박은 생각들은 현실에서 한종류의 드러냄을 만들어내고, 사랑에 뿌리박은 생각들은 또 다른 종류의 드러냄을 만들어 낸다. 지구상의 선각자들은 상대계의 비밀을 발견한 사람들이어서 어떠한 경우에서도 사랑만을 선택했다. 박해를 받을때도 그들은 압제자들을 사랑했다.
- 내게 뭐든지 다 물어보라. 무엇이든 다 내 힘껏 대답해주리라. 나는 이 일을 위해 온 우주를 다 동원할 것이다. 눈을 열고 귀를 기울여라. 네가 듣는 노랫말과 네가 읽는 책, 신문기사와 네가 보는 영화, 네가 만나는 사람의 우연한 중얼거림에 혹은 네 귀를 간지럽히는 강과 바다, 바람의 속삭임에... 이모든 장치들이 다 내것이다. 이 모든 길들이 다 내게로 열려있다. 네가 귀담아 듣기만 한다면 나는 네게 말할 것이며, 네가 나를 초대하면 나는 네게 갈 것이다. 내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는 걸 네게 보여주리라. 모든 방법으로..
신의 존재
- 너희는 신이 오직 한가지 방식으로만 삶에 나타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관념이다. 그런 관념이 너희가 어디서나 신을 볼 수 있는 길을 막고 있다. 너희가 그렇게 한가지 방식으로 신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면 너희는 평생 신을 찾아다녀도 제대로 찾지 못할 것이다. 신은 슬픔과 웃음 둘다에, 괴로움과 즐거움 둘다에 존재한다. 모든 것 뒤에는 신성한 목적이 있고 따라서 신성한 존재는 모든 것속에 존재한다.
- 신이 경건하기만 하다는 관념을 어디서 얻었는가? 신은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하며, 뜨겁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며, 왼쪽이기도하고 오른쪽이기도 하며 불손하기도 하고 경건하기도 한 존재다. 신은 웃을 줄 모른다고 생각하느냐? 유머는 신이 발명한 것이다. 웃음은 신이 발명한 것이다.
- 상스러운 말이나 거친 언어는 내 영역 밖에 있는가? 너희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말하듯이 내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지금껏 들어보지도 못한 말, 보지도 못한 광경, 내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소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중 일부는 나도 경멸하지만 다른 것들을 사랑하리란게 너희 생각이냐? 나는 어떤 것도 경멸하지 않는다. 나한테는 어떤 것도 불쾌하지 않다. 그것이 삶이며 삶은 선물이자, 형언할 수 없는 보물이요, 신성한 것들 중의 신성함이다.
악
- 너희는 신의 계획 밖에 있는 것을 창조할 수 없다. 단 한가지 생각, 단 하나의 물체, 단 한가지 사건도.. 즉 어떤 종류의 체험도 신의 계획밖에 있는 것을 창조할 수는 없다. 신은 너희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창조하게 해주는 것이 신의 계획이다. 악은 너희가 악이라 부르는 것이다. 나는 악도 사랑한다. 너희가 선을 인식하는 것은 너희가 악이라 부르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너희가 신의 일을 인식하고 행하는 것은 너희가 악마의 짓이라고 부르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 나는 악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선을 사랑하지 않는다. 히틀러는 천국으로 갔다. 이점을 이해할때 너희는 신을 이해할 것이다.
- 신이 보기에는 모든게 다 받아들일만 하다. 어떻게 신이 존재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겠는가? 어떤 것을 거부하는 것은 그것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옳고 그름에 관한 관념들은 그냥 그것, 즉 관념일 뿐이다. 그것들은 자신의 모습을 이루고 자신의 내용을 창조하는 생각들이다. 가치란 견해일 뿐이며, 평가요 판단일 뿐이다. 그것들은 대체로 너희 아닌 다른 사람들이 내린 판단이다.
- 신은 용서이고 자비이지만 너희가 올바른 방식으로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면 너희가 합당하게 신에게 다가가지 않는다면 너희의 탄원은 들리지 않을 것이고, 너희의 외침은 무심하게 지나쳐지고 말리라는 말을 듣게 될것이다.
신의 바램
- 우선 나는 내 모든 영광속에서 나 자신을 알고 체험하기를 다시말해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 바란다. 두번째로 나는 그것이 어떤 방식이 되든, 너희가 선택하는 방식으로 너희자신을 창조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내가 너희에게 준 힘을 가지고 너희가 자신이 참으로 누구인지 알고 체험하기를 바란다. 세번째로 나는 삶의 전과정이 지금이라도 순간순간마다 끊임없는 기쁨과 계속되는 창조와 끝나지 않을 확장과 완전한 성취를 체험하는 것이 되길 바란다.
- 나는 이런 바램들이 실현될 수 있ㄷ록 완벽한 체계를 세워놓았다. 그 바램들은 지금 이순간에 실현되고 있다. 너희와 나의 유일한 차이는 나는 이 사실을 안다는데 있다. 너희가 완전한 앎에 이르는 순간에 너희 역시 내가 항상 느끼는대로 느낄 것이다.
성서의 저자
- 성서 저자들은 위대한 신자들이고 역사가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네와 친구들한테 전해준 이야기들을 모았다. 그렇게 기록된 것이다.
- 너는 왜 자신이 신과 대화를 할 수있는게 미친짓이라고 생각하느냐? 너는 너의 기도를 믿지 않느냐?
- 너희는 몸, 마음, 영혼으로 이루어진 삼중의 존재다. 성삼위일체란 게 바로 이것이며 너희는 이것을 온갖 이름으로 불러왔다.
- 생각은 창조이 첫단계다. 그다음에 말이 온다. 너희의 말은 밖으로 표현된 생각이다. 말에는 창조력이 있고, 말은 창조에너지를 우주속으로 내보낸다. 말은 생각보다 역동적이다.
- 말은 창조의 두번째 단계다. 그 다음에 행동이 온다. 행동은 움직이는 말이다. 말은 표현된 생각이다. 생각은 형성된 발상이고 발상은 한데 모인 에너지들이다.
- 너는 자신의 인생이 정말로 도약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자신의 인생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라. 너이기도한 신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라. 어진 영혼이여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하라. 네가 자기실현이라는 성스러운 대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그들은 너를 비방하고 경멸하고 야유하고 버릴 것이다.
- 네 생각과 말, 행동을 네 가장 고귀한 전망에 걸맞게 바꾸어라. 의식적으로 바꾸기 시작하라. 그렇게 하려면 엄청난 정신, 육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네 모든 생각과 말, 행동을 순간순간 끊임없이 관찰하는 일도 해야 한다. 선택을 계속해서 의식적으로 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모든 과정이 자각으로 가기 위한 발걸음이다.
- 너는 지금까지 자신의 생각과 말, 행동이 만들어낸 결과들을 체험할때까지는 네가 무엇을 선택하는지 의식차원에서 자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며, 또 이 결과들을 체험하고 나면 그 결과들이 자신의 생각과 말, 행동과 관련이 있음을 부정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 네 삶이 도약하기를 바라면 지금 당장네가 되기를 바라는대로 삶을 그려보고 그속으로 옮겨가도록 하라. 그것과 조화를 이루는 모든 생각, 말, 행동을 점검하라. 모든 상황은 한순간이다. 항상 똑같이 머무는 것은 없으며 정지된 채로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 뭔가를 어떤 식으로 변화시키느냐는 너희에게 달려있다.
첫댓글 나는 악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선을 사랑하지 않는다. 히틀러는 천국으로 갔다. 이점을 이해할때 너희는 신을 이해할 것이다... 이 말을 이해해야 신을 이해하는 것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