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의 경제 위기설이 나도는 중에 경제가 위축되고 있습니다. 9월의 경제위기를 잘 넘어갈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 추석명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무리들로 인하여 나라안의 영계가 혼탁하여 지는 때입니다. 기독인들이 우상숭배와 향락에 무너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4. 요즘 불교계가 단합하여 보이지 않는 기독교에 대한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이땅에 우상이 무너지고 민족이 복음화 될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하며 각 지역에서 복음을 들고 나아갑시다
제목 : 새 피조물
성경 : 고후 5:16-21
현대인들은 각자 개인의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충실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신자에게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그 계획에 충실하게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신자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자기 계획을 내세워서는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가에만 모든 관심을 집중시켜야 하고 그 계획이 자신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위해서 자기를 포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획은 신자를 내세워서 자기 욕망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검은 색을 보고 ‘너는 검다’라고 할 때 검은 색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검지 않다’라고 할 때 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흰 것을 내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흰 것을 내세움으로서 검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이 검다고 할 때 세상은 그것을 부인합니다. 온갖 자기들의 착한 행실을 내세우면서 ‘우리도 이만큼 착합니다’라는 주장을 합니다. 오히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더 엉터리다고 주장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세상의 악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세상 사람과 같지 않은 다른 인간을 내세우시는 것입니다.
자기의 착함을 주장하는 인간들 앞에서 ‘나는 악한 인간입니다, 죽어야 할 더러운 죄인입니다’라고 하면서 자기를 포기하는 인간을 내세우심으로서 자기 착함을 주장하는 그것이 검다는 증거임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내세우시고자 하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가를 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세우시고자 하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오해합니다.
신자들은 단지 교회에서 열심히 모이고 교회에 충실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신자인줄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만 충실하게 다니면 그것이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인 줄로 압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천지창조를 믿고 진화론을 욕이나 하고 있으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으로 압니다.
가끔 전도하고, 기도하고, 성경 보면 그것보다 더 신자다운 모습은 없는 것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것을 통해서 자신들이 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지금 현대 교회는 자기 계획에 도취되어 살아갑니다. 많은 계획을 세워놓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교회 나오는 자기에게 도취되어서 하나님의 계획에는 애당초부터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기 손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보겠다고 설칩니다. 이것이 인간 되지 않은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런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 같은 인간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의 말대로 하면 ‘새 피조물’입니다. 원래 창조한 피조물과 전혀 다른 피조물을 만드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원래의 피조물을 버리고 새로운 피조물을 만드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원래의 피조물이 피조물답게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새 피조물은 피조물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피조물이란 창조하신 분 앞에 엎드리는 자입니다. 그분께 순종하고 그분을 의지하면서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이 피조물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에는 피조물이 없습니다.
창조주에게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가 피조물인 자기의 뜻에 굴복해주기를 바라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모두 각자 잘난 인간이고 자기가 신이 되어서 살아갑니다. 이런 어둠의 모습을 심판하기 위해서는 온전히 피조물의 자리에서 창조주의 높으심을 드러내는 새인간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새 피조물입니다.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피조물, 새것을 만드시기 위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새것과 옛것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이 땅의 인간의 모습입니다.
새것은 옛것을 조금 수리하고 고쳐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것이 새것, 즉 새 피조물입니다. 17절에서는 그것이 그리스도안에서 되어진다고 말합니다.
15절에 보면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즉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새 피조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 피조물은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고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해서 사는 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신자를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자기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해서 사는 자로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하나님은 창조를 두 번 하십니다. 육신으로 세상에 난 자로 창조하시고, 다음에는 주님을 위해 사는 자로 창조하십니다. 두 번 다 창의 주체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처음의 창조로 이 땅에 태어난 인간은 자신을 창조한 분을 바라보고 살아가지 않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처음 창조의 인간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의 창조, 즉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된 자는 자신을 창조하신 분을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분께 복종하고 그분만을 높이면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은 모든 것을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16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고 합니다.
육체대로 알았다는 것은 신분과 계급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옛사람의 모습입니다.
창조주를 보지 못하고 자기를 보고 살아가는 인간은 모든 것을 육체를 기준으로 해서 판단할 뿐입니다.
신분과 계급을 통해서 사람을 판단하고 대우하며 외모와 재산을 가지고 사람의 등급을 정하고 살아갑니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육체로 알았을 때는 신분과 계급이라는 기준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된 신자는 이러한 기준이 사라집니다.
신분과 계급과 재산이 아니라 저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바른 인간이냐 하나님을 알지 못한 악한 인간이냐로 볼뿐입니다. 신자는 새로운 피조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 자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세상에 내 세우실만한 새피조물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육체를 기준으로 해서 보는 모습에서 벗어나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는 인간 되었음을 말합니다.
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합니다.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 되게 하신 이유가 우리를 하나님의 의로 삼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없는 이 세상에서 의를 드러냄으로서 세상이 악하다는 것을 심판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자를 부르시고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실 때 다 부자 되고 다 권력 있는 자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어떤 자는 가난하게 만드셨고, 어떤 자는 평생을 질병으로 고생하는 자로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불공평이 아닙니다. 다 부자면 누가 가난한 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겠습니까?
다 권력 있는 자면 누가 눌림 받는 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겠습니까?
부자다 가난하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삶을 사느냐는 것입니다.
신자는 자기 멋대로 살아갈 수 없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그 계획에 순종해야 할 자입니다.
이것을 모른다면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무엇을 가졌는지에 관심 두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진 것을 드러내고 자랑한다고 기죽을 필요도 없습니다. 새로운 피조물된 여러분에게는 세상이 가지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나를 대신해 피흘리신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창조된 것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세상과 다른 사람들입니다.
세상과 다른 사람들이 세상 사람과 똑같이 육체의 것 때문에 고민하고 힘들어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의를 보여주겠습니까?
여러분의 할 일은 새로운 피조물로서 옛사람의 일을 벗어버리고 어디에서든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