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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우(海隅)의 백합국어사랑방(신문사설&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해우(海隅)
2010년 4월 19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00419월] 천안함 사태 아랑곳 않는 공영방송 MBC 파업
MBC 파업이 보름째다. 시사 교양 예능 프로그램의 무더기 결방과 땜질 재방송이 이어지고 있다. 입만 열면 방송의 공공성을 떠드는 공영방송이 천안함 침몰이라는 국가적으로 비상한 사태는 아랑곳 않는 이율배반과 배짱이 무엇보다 놀랍다.
MBC 노조가 파업을 강행하면서 내건 요구는 두 가지다. 김재철 사장은 황희만 부사장 임명을 철회하고, 인사개입 파문을 일으킨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는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인사는 사장의 고유 권한이며, 소송은 때가 되면 한다고 맞서고 있다. 시비를 가리기에 앞서, 과연 그게 천안함 사태에 얽힌 공공의 이해와 국민의 관심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인지 묻고 싶다.
최근 MBC 뉴스를 본 시청자들은 실망을 넘어 개탄하고 있다. 방송 시간부터 짧지만, 천안함 관련 보도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이 때문에 "MBC를 보지 않는다"는 시청자가 많다. 공영방송의 책임을 저버린 채 내부 싸움에 매몰된 집단이기주의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MBC가 한심한 지경에 이른 데는 김재철 사장의 책임이 크다. 취임 후 노조 반발로 제대로 출근도 못한 그는 갈등과 분란 요인이 쌓인 조직을 추스르는 리더십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반발을 대화로 누그러뜨리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다가, 장기 파업에 우려와 비판이 높아지자 강경 대응과 출근 강행을 예고했다. 그러나 파업 와중에 경남 사천 고향을 찾는 경솔한 행보로 "지역구 관리에 더 신경 쓴다"는 비난을 자초했다.
노조 역시 무책임하다. 노조는 파업 강도를 높이기 위해 천안함 취재 노조원 47명까지 철수한다고 선언했다. 지금 같은 때 보도기능을 완전히 포기하면서 얼마나 고상한 목적을 이루려는지 궁금하다. MBC가 이념과 권력을 다투는 무한 투쟁을 업으로 삼는 집단이 아닌 바에야, 대화와 타협으로 공영방송에 걸맞은 결말을 이끌어내는 게 순리일 것이다. 공영방송의 자존심과 시청자의 지지를 되찾는 선택을 고민하기 바란다.
[한겨레신문 사설-20100419월] 민주주의의 퇴행 속에 맞는 4·19혁명 50돌
4·19혁명 50돌이다. 50년 전 오늘, 꽃다운 학생과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제단에 피를 뿌렸다. 그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질식해가던 한국의 민주주의는 되살아날 수 있었다. 이듬해 5·16 군사쿠데타로 비록 미완의 혁명에 그쳤지만 그 정신만은 1980년의 5·18광주항쟁, 87년의 6월항쟁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4·19혁명은 이승만 독재체제에 대한 총체적인 항거였다. 이승만 정권은 친일 관료와 경찰 세력이 정권의 핵심을 이룸으로써 출범 당시부터 비민주주의적 성격이 강했다. 이 정권은 야당과 국민의 반대가 거세지자 경찰력을 동원한 강압통치를 강행하는 한편 ‘4사5입 개헌’ 등을 통해 권위주의적 통치를 강화해나갔다. 이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누적돼 3·15 부정선거를 계기로 한꺼번에 폭발함으로써 이승만 독재정권을 종식시켰던 것이다.
4·19혁명은 우리 국민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누릴 만한 자격과 능력이 있음을 세계에 알린 역사적 사건이다. 이승만 정권 아래서 민주주의의 본질인 사상·언론·집회의 자유는 물론 삼권분립 등 정치적 민주주의가 철저히 파괴됐다. 이렇게 유린된 민주주의는 저절로 회복되지 않는다. 외세나 위정자들이 나서서 되찾아주지도 않는다. 젊은 학생과 시민들은 목숨까지 바쳐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그럼으로써 우리 국민이 민주주의를 향유할 자격이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4·19혁명 50돌을 맞는 오늘, 우리는 곳곳에서 민주주의의 퇴행에 직면해 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자신들의 이익 챙기기에 혈안이 된 기득권층과 그 주변 세력이 우리 사회 모든 분야를 장악해가고 있다. 정치영역뿐 아니라 사회·경제·문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민주적 절차는 무시되고 ‘촛불집회’ 등 반대 목소리는 공권력에 의해 철저히 억압받는다. 6월항쟁 이후 자리를 잡아가던 민주주의적 규범과 절차가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퇴행이 거론되는 이런 현실이 민주주의를 회생시킨 4·19혁명 정신을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4·19혁명은 아무리 사회가 다양화하고 사회경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하더라도 결코 양보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가치가 민주주의임을 보여준다. 그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며, 목숨까지 바쳐 민주주의를 지킨 4·19혁명 희생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
[동아일보 사설-20100419월] 北은 아웅산 테러도 KAL기 폭파도 南에 덮어씌웠다
북한이 천안함 침몰 22일 만에 처음으로 사태 개입을 부인하고 나섰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7일 ‘군사논평원’ 명의로 “남조선 괴뢰군부 호전광들과 우익 보수정객들은 침몰 원인을 규명할 수 없게 되자 불상사를 우리와 연계시켜 보려고 획책하고 있다”고 대남 공세를 폈다. 북은 “역적패당은 최근 외부 폭발이 어뢰에 의해 일어났고 그 어뢰는 우리 잠수정이나 반잠수정에 의해 발사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북 관련설’을 날조 유포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의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 수법을 연상시키는 ‘논평’으로 일고(一考)의 가치도 없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16일 천안함 사태에 대해 “우리 정부와 군은 국가 안보 차원의 중대한 사태로 인식한다”며 북의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윤덕용 민군 합동조사단장도 같은 날 “선체 내·외부 육안검사 결과 외부폭발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배의 절단면 등 여러 정황에 비추어 선체 외부의 공격에 의한 침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원인 규명을 좁혀 들어가자 북은 특유의 잡아떼기 전략으로 선수를 치는 듯하다.
천안함 함미 인양 이후 침몰 원인 가운데 암초에 의한 좌초, 내부 폭발, 피로 파괴가 배제되면서 어뢰 공격에 의한 침몰로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 말고 누가 서해에서 우리 군함을 향해 어뢰를 쏘겠는가. 합동조사단의 신중한 태도는 확실한 물증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
북한 정권은 1983년 전두환 대통령의 미얀마 방문 수행원 31명이 죽거나 다친 아웅산 테러사건 때 북에서 보낸 범인이 잡혔는데도 우리 측에 뒤집어씌웠다. 1987년 115명이 희생된 대한항공 여객기(KAL 858기) 공중 폭파 테러사건에서도 김현희가 체포돼 북의 지령에 의한 범행임을 자백했지만 오히려 남한의 자작극으로 몰고 갔다. 저들은 1974년부터 1990년까지 잇따라 발견된 대남 침투용 땅굴도 우리가 판 ‘북침용 땅굴’이라고 억지를 부렸다. 천안함 침몰이 북의 소행으로 밝혀져도 북이 인정할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정부가 천안함 침몰 원인 조사에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등 여러 국가의 전문가들을 참여시킨 것도 국제사회를 납득시킬 수 있는 객관적인 조사 결과를 내놓기 위해서다. 지금은 천안함 침몰 원인을 밝혀줄 ‘스모킹 건(smoking gun·결정적 증거)’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때다. 북을 옴짝달싹 못하게 할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20100419월] 4·19혁명 50주년 아침, 북한 민주혁명을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1945년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해방된 지 반(半)세기 만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함께 성취한 기적의 역사를 만들었다. 2차대전 이후 독립한 100여개국이 넘는 나라 가운데 이 두 가지 과제를 모두 달성한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1945년에서 1960년 사이에 식민지로부터 탈출한 대부분의 국가는 지금도 민주화와 산업화의 양대(兩大) 장벽 앞에 또는 민주화나 산업화의 어느 한 가지 장애물 앞에 주저앉아 아직도 질병과 기아의 전근대적 빈곤에 갇혀 있거나, 폭력적 정변(政變)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4·19혁명은 신생국가(新生國家) 대한민국이 독재의 허들을 넘어 민주화 길을 걷도록 일으켜 세운 시발점(始發點)이다. 어떤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4·19 이후 안정적인 민주 정권을 정착시키지 못하고 이듬해 5·16 군사쿠데타와 만나게 된 것을 두고 4·19를 '미완의 혁명'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4·19에 이은 5·16은 민주화와 산업화의 우선순위를 선(先)민주화에서 선(先)산업화로 교체했을 뿐 대한민국은 민주화가 유보된 산업화 과정에서도 민주화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계속 보존해 왔다. 4·19 당시 국민총생산(GDP) 40억달러, 1인당 국민소득 79달러에 지나지 않던 우리 경제는 산업화를 거치며 국민총생산 8300억달러, 1인당 소득 1만7000달러로 성장했다. 80년대 들어 대한민국은 이 경제적 토대 위에서 젊은이들이 4·19혁명을 통해 싹 틔웠던 민주화의 불씨를 되살려 민주화를 달성해냈다.
대한민국이 민주화된 현대 산업국가로 거듭나는 그 기간 동안 북한은 주체사상이라는 사이비(似而非) 종교 이념으로 북한 동포를 얽어매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봉건적 세습독재를 이어가면서 2400만 북한 동포를 굶주림과 폭력의 생지옥 속에 몰아넣었다. 4월 19일 아침에 북한의 민주혁명을 떠올리는 것은 '북한의 4·19'만이 수용소를 허물고 북한 동포를 구출할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첫 걸음이 되리라는 사실이 갈수록 더욱 절실해지기 때문이다. 김일성 일족(一族)의 세습독재는 결코 독재자 스스로 막(幕)을 내리지 않는다. 안에서 들고 일어나고 밖에서 두드리는 두 힘이 호응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서울신문 사설-20100419월] 4·19 50돌 성숙한 민주주의를 생각할 때
4·19혁명 50주년인 오늘 우리 국민의 민주주의 역량을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자유당 정부의 부정선거에 학생들이 혁명의 불을 지피고 교수와 국민들이 동참해 불길을 키우자 이승만 정권은 무릎을 꿇었다. 그 과정에서 사망자 186명, 부상자 6000여명이 나온 피의 혁명이다. 민주·민족통일이라는 목표를 이루려했던 4·19혁명은 5·16군사정변으로 미완의 혁명이 되고 말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4·19 정신은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밑거름이 됐고 87년 6월 항쟁을 통해 마침내 민주화의 꽃을 피웠다. 이후 다섯 차례 민주적 절차에 의해 정권이 바뀌면서 절차적 민주주의는 성숙해졌다.
4·19혁명에 대해 국제사회도 “세계대전 후에 출현한 신생 민주국가들이 겪는 어려움에 새로운 활기를 불러일으켰다.”며 세계 민주 혁명의 기폭제로 평가했다. 우리 국민의 민주 역량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한다. 실제로 독재정권의 각종 부정과 비리에 반대해 일어난 4·19혁명은 자유와 민주, 정의라는 가치를 확산시켜 민주화뿐 아니라 투명한 시장경제를 통한 산업화의 원동력이 되었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성공시키는 원천이 된 것이다. 하지만 민족통일이라는 4·19혁명의 궁극적 목표는 아직도 이뤄지지 않은 채 진행형이다.
4·19혁명으로 우리는 제도적인 민주화는 상당 정도 정착시켰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생활의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한다. 정치권은 몸싸움과 정쟁을 지양하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생각해야 할 때다. 우리 사회는 지금 세대와 지역 통합이라는 절실한 과제를 안고 있다. 독재에 피로 맞선 민주정신을 계승해 통일된 민주국가를 세워야 한다. 오늘 4·19혁명 50주년을 맞아 우리사회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을 아우르는 국민 대통합을 이루어내야 한다. 그것이 민주화를 위해 피흘린 영령들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00419월] 쏟아지는 선심성 법안 선거용 포퓰리즘 아닌가
6 · 2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선심성 정책을 담은 법률안을 쏟아내고 있어 걱정스럽다. 표심(票心)만을 의식한 포퓰리즘이 난무하게 되면 국민과 기업의 부담을 늘리는 것은 물론 나라 경제에도 막대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선심성 법안은 여와 야를 가리지 않는다. 실현 여부와는 상관없이 선거에 유리한 환경만 조성하면 된다는 듯한 인상이 짙다. 대표적인 것이 대체 휴일에 관한 법률안으로 모두 7건이나 제출돼 있다. 발의한 의원도 한나라당 2명, 민주 3명, 선진 2명에 이른다. 하지만 대체휴일제 도입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휴일 · 휴가 일수는 선진국에 비해 결코 적은 편이 아닌데다, 늘어나는 인건비 부담을 감당하기 힘든 기업들도 많다. 일용직 등 취약계층 근로자들의 경우는 소득감소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크다.
저출산 · 보육 관련 법률안의 경우는 무려 16개가 제출돼 있고 한나라당에서 9명, 민주당에서 7명의 의원이 독자적 안을 내놓았다. 대부분 출산 · 보육에 대한 금전적 지원을 늘리고 보육시설 설치 대상 기업을 확대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음은 물론이다. 저출산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인 만큼 많은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데는 이론(異論)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 또한 고려하지 않으면 안될 요인들이 많다. 국민 세금이 크게 늘고 기업들도 추가 비용 부담이 불가피한 까닭이다.
이외에도 실업자 지원, 건강보험, 노인복지 문제 등과 관련해 제출된 선심성 법안들이 적지가 않다. 한결같이 대규모 재정이 소요되고 세금 부담 증대로 이어지는 사안들이다. 그런데도 재원조달 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 검토도 없이 마구잡이 식으로 법안을 쏟아내고 있으니 포퓰리즘의 전형으로 볼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경제는 여전히 어렵기 짝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앞뒤를 재지 않는 정책을 남발하는 것은 국민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하는 것은 물론 기업 투자환경을 악화시켜 최대현안인 일자리 창출에도 역행하게 마련이다. 정치권은 왜 재계가 선심성 정책을 우려하는 성명서까지 발표했겠는지 깊이 새기면서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는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00419월] 중국의 긴축정책 파장에 대비해야
중국경제가 올들어 과속을 우려할 정도의 높은 성장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는 부동산 안정대책을 내놓아 긴축기조의 정도와 기간 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15일 주택담보 대출금리를 인민은행 기준금리의 1.1배 이상 적용토록 의무화하고 부동산 구입시의 최초계약금도 크게 올리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앞서 발표된 중국의 1ㆍ4분기 경제성장률은 11.9%를 기록했다. 이번 부동산 대책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높은 성장률과 함께 경기과열 우려가 제기되고 특히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른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3월 중국 주요도시의 부동산 가격은 11.7%나 뛰었다.
전문가들은 물가가 안정세를 보이기는 했지만 2분기 연속 두자리 수 성장률을 기록하고 부동산가격 급등에 따라 중국 정부가 당분간 긴축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기와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위안화 절상과 금리인상 압박도 높아졌다는 전망이다. 위안화 절상은 미국과 유럽의 거센 압력도 있지만 중국경제의 연착륙을 위해서도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다만 중국이 긴축정책을 펴더라도 당장 경제에 큰 충격을 줄 급격한 조치보다는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완급을 조절할 것이란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세계경제의 중심축으로 떠오른 중국의 정책변화는 세계경제는 물론 우리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중국의 은행지급준비율 인상 등 조치로 세계증시가 출렁거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닐 정도다. 특히 중국수출 비중이 큰 우리로서는 긴축정책에 따른 파장도 크다는 점에서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중국의 긴축기조는 우리경제에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긴축 기조로 중국의 내수가 위축되면 우리의 수출이 위축될 수 있다. 위안화 절상은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장점이 있지만 원화가치 상승(환율하락)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은 부정적이다.
중국 정부의 정책변화와 경제동향은 우리경제의 회복세를 좌우하는 주요변수 가운데 하나다. 중국 긴축정책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피며 긍정적 효과는 최대한 살리고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중앙일보 칼럼-분수대/허귀식(경재부문 차장)-20100419월] 그린슈트
다음 달 6일 총선을 앞둔 영국. 13년 만의 정권교체를 노리는 보수당은 인상적인 포스터를 내걸었다. 큰 구둣발 밑에서 보일락 말락한 새싹이 떨고 있는 그림이다. 구둣발의 정체는 세금과 빚이요, 새싹은 경제 회복의 신호다. 집권 노동당의 재정 확대 정책이 막 살아나는 경제를 깔아뭉갤 것이란 메시지다.
가냘픈 새싹은 보수당과 인연이 있다. 경제적 의미로는 최초로 보수당 인사가 이 말을 썼기 때문이다. 1992년 4월 총선 길목에서 집권 보수당은 패색이 짙었다. 91년 가을부터 당시 재무장관 노먼 러몬트는 이런 말로 분위기를 띄우려 했다. “경제 회복의 그린슈트가 돋아나고 있다.”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는 비난이 쏟아졌으나, 보수당은 예상을 뒤엎고 승리했다.
그러나 낙관론에 안주한 보수당은 그해 9월 치욕을 맛본다. 펀드매니저 조지 소로스가 파운드화를 무차별 공격했고, 문제 없다던 영국 정부는 두 손을 들고 말았던 것이다. 러몬트 장관은 사임한다. 기자들은 불행의 씨앗이 된 그린슈트 발언을 후회하는지 물었다. 그는 프랑스의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 제목으로 답변을 대신한다.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Je ne regrette rien)”.
이 장면은 여러 코미디의 소재가 됐다. 일부 이코노미스트들은 “장관의 퇴임 소식이 바로 경제의 새싹”이라고 고소해했다. 소담스러운 열매를 고대하던 유권자들은 보수당에서 등을 돌렸다. 당 개혁에 매진한 노동당은 97년에 집권해 지금까지 정권을 잡고 있다.
그린슈트란 말이 재등장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그린슈트가 이미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밝히면서다. ‘비관론의 대왕’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직격탄을 날렸다. “그건 그린슈트가 아니라 ‘옐로위즈(yellow weeds, 싹수가 노란 잡초)’다.”
멋진 말이었으나 늘 뒤끝이 텁텁했던 그린슈트. 이달 초 취임해 시장의 이목을 받는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6일 그걸 다시 끄집어냈다. “최근 미국에서 그린슈트의 신호가 나오고 있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속뜻은 세계경제의 싹이 이제야 돋기 시작했으니 ‘저금리’ 온상에서 좀 더 길러야 한다는 뜻은 아닐는지. 아무것도 아닌 것은 단연코 아닐 텐데,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가 참으로 어렵다.
[경향신문 칼럼-여적/유병선(논설위원)-20100419월] 양형조사관
검사와 변호사는 세계관이 다르다. 유죄를 입증하고 죗값을 물리는 게 검사의 책무다. 당연히 수사의 초점은 피의자가 죄를 지었을 개연성에 맞춰진다. 변호사는 그 대척에 선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정상참작을 호소한다. 역할과 세계관이 다른 검사와 변호사의 유·무죄 법정 공방은 그래서 늘 뜨겁다. 하지만 유죄로 가려진 경우 피고인에게 죗값의 크기를 매기는 양형(量刑) 심리는 유·무죄 입증만큼 화끈하진 않다. 양형이 재판의 핵심이긴 하지만 판사의 판단에 맡겨진 사안인 까닭이다.
판사의 고민은 양형 판단의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검사는 피고에게 불리한 수사자료를 제시하고, 변호사의 변론자료는 속성상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그 사이에서 자칫하면 ‘고무줄 양형’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법원은 지난해 7월부터 양형기준을 마련하고, 판결 전 조사를 강화하는 양형조사관제를 도입했다. 형사소송법 개정을 전제로 시범운영하고 있는 ‘법원 조사관’이 과도적 형태의 양형조사관이다. 이들은 법원의 지시에 따라 범행동기·생활환경·교우관계·가족상황 등 피고인에 관해 숨은 정보를 찾아낸다. 이 조사를 양형에 참고하는 것이다.
지난 15일 광주지법에서 양형조사 덕에 실형위기에 처한 20대가 법원의 선처를 받게 됐다는 소식이다. 절도죄로 집행유예를 받은 상태에서 다시 절도를 했다면 실형을 받는 게 통례다. 하지만 양형조사를 했더니 검찰 수사자료에는 없는 정보가 빼곡했다. 추위 속에 배를 곯던 피고가 대학병원에서 정수기 물로 허기를 달래다 순간적으로 절도했지만, 그간 재기를 위해 몸부림친 사연이 법원과 검찰에 전달된 것이다. 검사도 구형을 징역에서 벌금으로 낮췄고, 판사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광주지법에선 법으로만 따질 수 없는 딱한 처지에 따뜻한 관용을 보였다. 하지만 양형조사를 둘러싼 법원과 검찰의 험악한 힘겨루기에 비춰본다면 이례적이다. 법원은 현행 법무부 소속의 보호감찰관이 하도록 되어 있는 판결 전 조사로는 공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검찰은 법원 소속의 양형조사관제는 수사권 침해라고 반발한다. 이 와중에 양형조사제의 전면 시행은 늦춰지고 있다. 이러면서 ‘법조 불신’을 언제나 씻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매일경제신문 칼럼-매경시평/김재수(농촌진흥청장)-20100419월] 생명반도체 종자전쟁
글로벌 시대를 맞아 농업정책 개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농촌진흥청은 농업 경쟁력 강화 방안의 하나로 유전자원 확보와 종자산업 육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종자는 `생명반도체`라고 한다. 생명을 가지고 있는 고귀한 유전자원이고 반도체 이상의 높은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농업의 뿌리는 종자이고 작물 재배의 기본이 우량 종자 확보다. 종자는 다양한 환경에서 자생하는 야생종으로부터 자연교잡종, 전통적으로 농가에서 재배한 재래종이 있다. 최근에는 인공교잡 품종의 상업화가 크게 늘고 있고 유전자변형 품종으로 발전해 식량, 의약품, 기능성 물질 등 다양한 신소재로 사용된다.
지난해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플루의 치료제인 타미플루가 평범한 조미료 식물이었던 팔각회향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아스피린, 택솔, 키니네와 같은 의약품 소재가 식물 유전자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세계 생물산업의 경제적 가치는 2010년에 약 160조원에 달할 것이며 종자 등 생물자원의 경제적 가치는 점차 증대될 것이다.
문제는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와 급격한 산업화 등의 이유로 유전적 다양성이 감소하고 해마다 약 5만종의 생물자원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 온도가 2도 이상 상승하면 2050년까지 동식물의 약 25%가 멸종할 것으로 전망한다. 국내 생물종의 감소도 빠르게 진전되며 해마다 약 200종이 사라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결과 선ㆍ후진국을 막론하고 유전자원 수집과 보존에 막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19세기부터 세계 각국의 자원 수집에 역점을 두어 현재 51만점을 보유한 세계 최고의 유전자원 보유국이다. 중국 인도 러시아 일본 등 유전자원 보유량 수준이 강대국 순서라고도 한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자원 수집뿐만 아니라 자원주권, 지적재산권, 이익분배 등에 대한 논쟁도 증대되고 있어 종자자원을 둘러싼 치열한 국가 간 경쟁을 `총성 없는 종자전쟁`이라고 하고, `종자 주권시대`가 도래했다고도 한다. 종자가 없는 나라는 주권이 없는 식민지라는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부존자원도 풍부하지 않고 유전자원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낮았다. 다행히 농촌진흥청에서 2008년 농업유전자원센터를 설치해 우리나라는 식물, 미생물, 가축자원 등 27만2000점을 확보한 세계 6위 유전자원 보유국이 됐으며 국제종자보관소로 공인도 받았다. 자원 보유량 못지않게 자원의 증식과 이용, 외국 자원의 수집도 중요하다. 특히 토종 자원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발굴과 보존, 활용에 국민들이 협조를 해야 한다. 우리 토종 종자의 보유량은 3만6000점으로 전체 보유 종자 자원의 23%에 불과하다. 전통적 농업국가로 과거에는 다양한 토종 종자가 존재했으나 근대화 과정에서 많이 사라져 이대로 가다가는 멸종될 우려도 있다.
토종에 대한 국내 관심이 떨어진 것과 대조적으로 토종 자원이 해외로 건너가 명품이 된 사례도 있다. 미국의 노먼 볼로그 박사가 개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앉은뱅이 밀`도 국내 밀을 원료로 한 것이다. 원추리는 미국에서 `백합`으로, 털개회나무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스킴 라일락` 품종으로 개량돼 국내에 역수입되고 있다. 유출된 토종 자원의 반환 노력 결과로 최근 미국 일본 러시아 독일에서 4000여 점을 반환받았다.
농촌진흥청은 사라져 가는 곡물, 채소, 약용, 특용작물 등 토종 종자를 발굴ㆍ보존하기 위한 `토종 종자 기증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대를 물려 간직해온 수십 점의 토종 종자를 들고 찾아오는 시골 할머니나 보관하고 있는 희귀 종자를 기증한 독지가의 정성이 고맙다. 농업 녹색성장의 기본이 되는 토종 자원 수집에 국민 모두의 적극적인 동참을 기대한다.
첫댓글 MBC 왜 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