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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조대 일출
모진 세파에 시달리며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다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동해는 0순위에 꼽힐 정도로 인기가 높다. 사람들은 왜, 그리도 동해를 그리워하는 걸까. 그건 아마도 파란 물결 일렁이는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며 하얀 파도 부서지는 갯바위에서 맘껏 소리도 지르고 싶어서일 것이다. 떠오르는 붉은 햇덩이를 보며 용기도 얻고.
대부분의 지방에서 동해안으로 가려면 백두대간 고개를 넘어야 하지만 고속도로가 잘 발달된 요즘은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영동고속도로가 지나는 대관령은 그 이름대로 동해로 가는 대표적인 관문이다.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동해고속도로 북쪽 끝의 하조대 나들목으로 나서면 2~3분 만에 하조대해수욕장으로 연결된다. 일출 감상 장소인 하조대 정자는 해수욕장 남동쪽 끝자락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다.
여느 명소에 뒤지지 않는 ‘명품 일출’ 장관
양양엔 일출 명소가 많다. 우선 관동팔경의 하나로 사랑받는 양양 낙산사의 일출이 있고, 남쪽으로 내려오면 하조대 일출도 빼놓을 수 없다. 좀더 남쪽의 남애항도 예쁜 항구로 꼽힌다. 이 중에서도 하조대 일출은 호젓하기와 미적 요소를 두루 갖춘 일출 명소다.
하조대(河趙臺). 그 꼭대기엔 정자가 독수리처럼 앉아 있다. 정자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저만치 떨어진 바다에 떠있는 바위 너머로 파란 물결 일렁이는 동해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기묘한 갯바위와 그 틈새에 뿌리 내리고 굳세게 자라고 있는 백년송, 그리고 그 너머 수평선에서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 동해의 어느 일출 명소에도 뒤지지 않는 완벽한 구도다. 백년송은 하조대 일출 사진의 상징인 소나무다.
하조대라는 이름은 조선의 개국공신인 하륜과 조준이 고려 말기에 머물렀던 데서 유래한다. 그들이 이곳에서 새로운 나라를 의논한 것을 기념해 후세에 정자를 짓고 성을 따서 하조대라 했다고 한다.
이루지 못할 비극적인 사랑에 대한 전설도 있다. 신라 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지방 호족 하씨와 조씨 두 문중의 하랑(河朗) 총각과 조당(趙棠) 처녀의 사랑 이야기다. 하랑은 신라 장군 이사부의 화랑이었고, 조당은 고구려에 편입된 집안의 낭자였다. 두 사람은 남몰래 사랑하는 사이. 그러나 두 연인은 사랑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이곳 해안 절벽에서 몸을 던지고 만다.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또 다른 전설은 인근 마을 하씨 성의 총각과 조씨 집안 두 자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 이들의 사랑도 결국 이곳에서 비극으로 끝난다.
일출 포인트는 정자와 그 주변이다. 만약 이곳에 사람이 많을 경우엔 등대 쪽으로 건너가서 구경하는 것도 괜찮다. 갯바위와 정자가 어우러진 모습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하조대 등대는 밤이면 저절로 불이 켜져 동이 틀 때까지 뱃사람들의 바닷길을 밝혀주는 무인등대다. 일출을 감상한 후 등대 주변 구경을 한다 해도 30분 정도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양양의 일출 시간은 새해 첫 주말인 1월 1일(토) 오전 7시40분, 8일도 7시40분, 15일은 7시39분, 22일 7시36분, 29일 7시31분이다. 그러니 늦어도 오전 7시엔 하조대 주차장에 도착해야 느긋하게 자리 잡고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주차장에서 계단을 50m 정도 오르면 하조대 정자다. 주차료, 입장료 없다.
일출을 감상한 뒤엔 하조대해수욕장의 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잠깐 겨울바다 산책을 즐긴다. 양양 하조대에서 인제 곰배령 주차장까지 승용차로 50분 정도 걸리므로 오전 9시 무렵엔 출발하는 게 좋다. 겨울철 곰배령 트레킹 출발 시간은 오전 10시 한 차례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조침령 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길이 구불거릴 뿐만 아니라 비포장이라 웬만한 사륜구동차 운전자도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곳에 양수발전소가 생기면서 터널이 뚫렸고, 지금은 진동계곡과 양양을 오가는 일은 식은 죽 먹기가 됐다. 겨울에도 양수발전소 측에서 바로바로 제설작업을 해놓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한 편이다. 그렇지만 터널을 빠져나와 길에 눈이 많이 덮여 있으면 승용차 바퀴에 체인을 치는 게 좋다.
곰배령 트레킹 초입인 진동리 ‘삼거리’의 넓은 터는 주차장이다. 여기에 주차를 하고 곰배령 방향의 왼쪽 길로 50m 정도 들어가면 점봉산생태관리센터. 곰배령 트레킹을 위해서는 산림청 소속의 점봉산생태관리센터에 미리 입산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곰배령은 산길이 험하지 않고 소요 시간도 4시간 이내로 짧은 편이기 때문에 큰 위험요소 없이 겨울산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인지 겨울에도 찾는 이들이 많았다. 대부분 봄꽃이나 가을 곰배령을 한 번씩은 경험한 이들이다. 들꽃의 감동이 눈꽃의 기대감으로 연결됐음을 알 수 있다.
한겨울인데도 신청자들이 적지 않다. 오늘 같이 가는 인원은 모두 80여 명. 버스로 온 단체 등산객들을 제외하곤 대부분 가족이나 연인들이 삼삼오오 찾아온 것이다. 사정상 약속을 지키지 못한 한 팀을 제외하곤 모두 곰배령 관리사무실 앞에 모였다. 사무실 앞에서 인원 점검을 거친 뒤 등에 ‘숲사랑’이라 씌어 있는 노란조끼를 하나씩 받는다.
점봉산 일대는 국내에서 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꼽힌다. 울창한 숲엔 희귀한 각종 야생화가 많이 자생한다. 특히 점봉산 남쪽의 곰배령은 들꽃 트레킹 최적의 대상지. 마지막 고갯마루 부근이 조금 가파르지만 흙길이라 위험하지는 않아 초등학생이 낀 가족도 무난하게 들꽃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그렇다면 겨울 곰배령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다른 계절의 곰배령을 기억하는 이들은 잠깐 착각하기도 하지만 겨울 곰배령 정상은 아주 매서운 칼바람이 분다. 아무리 폭설이 내려도 능선마루에 눈이 쌓이지 않을 정도. 보온을 위한 방풍 의류와 워킹용 아이젠은 필수다.
길을 나선다. 산길은 계곡을 왼쪽에 끼고 완만하게 이어진다. 봄이라면 얼레지가 지천이고, 여름이면 짙은 숲과 열목어 뛰노는 시원한 계류, 가을이면 동자꽃, 용담에 무엇보다 단풍이 아름다운 곳. 한겨울에 왜 이곳을 찾았을까.
“봄에 그렇게 꽃이 많더니 흔적도 없는 걸.”
“겨울 산이 다 그렇지.”
봄에 본 들꽃이 좋아 다시 찾은 듯한 한 쌍의 연인은 칼바람을 핑계로 바싹 붙어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출발한 지 얼마되지 않아 길 오른쪽 숲 속에 캔버스가 보인다. 안내판엔 이렇게 씌어 있다. ‘이 캔버스는 아티스트 아타 김의 The Project Drawing of Nature 작품입니다. 인간의 간섭 없이 캔버스가 스스로 자연의 변화와 흔적을 채집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비와 눈과 바람과 자연의 향기가 캔버스에 스며들 것이며, 캔버스를 회수할 때까지 진행됩니다.’ 지난 6월에 설치했다 하니 봄 향기를 빼곤 모두 묻어있겠지.
강선리 마지막 민가를 지나 한 아름쯤 되는 쪽버들나무 서있는 계곡을 건너면 본격적인 산길이다. 조릿대, 자작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강선마을 민가를 지나올 땐 여기저기 공사 중인 듯 조금 어수선하더니 겨울 숲 특유의 고요가 반긴다.
‘신갈나무, 전나무림 모니터닝 국가 장기 생태 모니터닝’ 안내 팻말도 눈길을 끈다.
산은 오를수록 눈이 점점 많아진다. 온갖 꽃들이 눈길을 끄는 여느 계절에 비해선 아무래도 발걸음이 조금 빠르다. 그렇지만 눈에 덮인 숲을 자세히 보면 들꽃에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얼어붙은 자그마한 지계곡을 몇 개 건너니 가슴이 후련해지는 곰배령 정상이다. 이곳은 들꽃 세상, 아니 새하얀 눈꽃 세상이다. 고개를 들면 파란 하늘, 새하얀 설산 두 빛뿐이다. 정상에도 자연이 그리는 캔버스가 있다. 강선마을 근처의 캔버스보다는 파란 하늘빛과 거친 바람의 숨결이 더 많이 묻어 있으리라.
백화만발하던 정상엔 새하얀 눈과 바람만
여느 계절의 정상이 비밀의 화원처럼 황홀했다면 겨울 고갯마루는 칼바람 부는 냉혹한 현실이다. 등산객들은 자그마한 몸뚱이 하나 숨길 곳 없는 평원에서 거센 바람을 맞으며 배낭에서 보온병을 꺼내 커피를 마시고, 차를 마신다. 시린 손을 호호 불면서도 모두들 행복한 표정이다. 그랬다. 노랑, 분홍, 보라, 진홍 온갖 백화가 만발한 계절의 곰배령도 좋지만, 하얀색으로 뒤덮인 풍광도 결코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곰배령을 포함한 점봉산 일대는 식물자원의 보고. 1982년 설악산이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에 포함될 당시 함께 지정됐고, 산림청에서도 진동리와 곰배령 인근의 숲을 천연림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고갯마루엔 장승 한 쌍이 서있다. 고갯마루 오솔길에서 오른쪽(북쪽)길로 나아가면 작은점봉산을 거쳐 백두대간 마루금을 이어주는 점봉산으로 연결되고, 왼쪽길(남쪽)로 나아가면 호랑이코빼기와 가칠봉으로 이어지다가 내린천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양쪽 다 자연휴식년제 구간이라 들어갈 수 없다.
곰배령은 동쪽의 진동리 설피밭 주민들과 서쪽의 귀둔마을 주민들이 내왕하던 길목이다. 귀둔마을 주민들은 곰배령과 박달령을 넘어 오색으로 넘나들었다. 귀둔의 노인들은 봄철 장 담글 때 필요한 소금을 구하기 위해 노새를 끌거나 통을 얹은 통지게를 지고 양양시장까지 100리길을 걸어서 다녔다. 또 심마니와 약초꾼들이 이용하던 고갯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심마니의 모둠터가 고갯길 곳곳에 남아 있었다.
진동계곡엔 펜션, 민박 등 숙박할 곳이 많다. 잠자리는 방태산휴양림도 괜찮다. 트레킹 후 삼거리에서 방태산휴양림으로 가는 도중에 방동약수도 한 모금 맛본다. 휴양림에선 겨울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방태산자연휴양림의 명물인 계단폭포는 겨울에 얼어붙은 모습도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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