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우음秋雨音 - 장하빈
저물녘 산비둘기 바지랑대 앉아 한참을 울고 갔다
지난여름 폭우에 뒷산자락 씻겨 둥우리 덮쳤던가
마른 도랑에 큰물 지던 소리 귀에 쟁쟁하다
동편재東便齋앉아 문심조룡文心雕龍* 넘기다 말고
여인의 속눈썹 아래 가을비 긋던 옛 선비 떠올리는 사이
꼬르르르, 뱃속에서 밥 달라 보채는 소리 들린다
* 文心雕龍 : 중국 육조시대 양나라 유협이 저술한 문학평론시
이명耳鳴
내 귓속엔 소리 열두 마당이 들어 있다
꽃나무 움트는 소리 호박잎 스치는 빗소리 감잎 구르는 소리 바람 울리는 풍경소리 지붕 위 까치 발자국 소리 탱자나무 울타리 참새 소리 맷돌에 숨어 우는 개구리 소리 다락방 솔귀뚜라미 소리 뻐꾸기시계 소리 밤낮없이 돌아가는 냉장고 소리 비탈진 골목 달려오는 오토바이 소리 먼 들녘 지나가는 경운기 소리
옷깃 스쳐간 인연 따라 그 소리들 하나씩 잠재우는데
오늘은 변방의 울음소리 서리서리 몰려왔다
공산에 깃들인 지 일곱 번째 맞는 상강 무렵
< 2015 서정과 현실24 상반기 발표>
첫댓글 다락헌 장하빈 시인의 시와 두보의 시는 늘 '지금'과 '서정'이 합치된 느낌이 있다. 묵상과 소요의 장소인, 동편제와 서편제의 다락은 시인에게있어 비상과 꿈의 세계를 상징하리라. '내 귓속엔 소리 열두 마당이 들어 있다' 이명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라도, 일간 능성동 솔밭에 들러야겠다.
여인의 속눈썹 아래 그 선비 다락헌 동편제 그 선비 아닐까요?
소리 열두 마당은 그 선비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환히 보이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