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77:4]
주께서 나로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
주께서...없나이다 -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는 문자적으로 '지키다', '제지하다'라는 뜻을 갖는다. 본절에서는 특별히 하나님의 침묵 때문에 저자가 잠들지 못하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며, 이것은 더 나아가 하반절에 언급된 기도의 말도 할 수조차 없는 비참한 상황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욥 5:7]"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여기에서 주장하는 엘리바스의 논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고난의 원인: 엘리바스는 인간의 고난이 외부적인 원인이 아닌 인간 내부의 원인에 의해 발생되는 것으로 보았다. 즉, 그것은 자연 발생적으로 생기는 것이나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문제 죄성, 부패성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철저히 성경적이다.
왜냐하면 창 3:17, 19에서 분명히 보듯 인간은 범죄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적대적인 자연 환경과 부단히 투쟁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2)고난의 범위: 엘리바스는 7절 상반부에서 '인생은 곧 고난이다'라는 논리를 통해 고난이 모든 인간들에게 임함을 역설하고 있다. 즉, 인간 모두는 이 고난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7절 하반절의 표현 역시 인생의 고난이 변개될 수 없는 자명한 이치임을 드러내 주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엘리바스의 논리는 다분히 일반론적 측면에 기울어진 감이 농후하다. 즉, 4:17-21에서 인간의 보편적 유한성과 부패성을 주장한 그는 본문에서도 인생의 고난을 보편적 원리에 의해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의 이론은 원칙론적 측면에서 지극히 타당하다. 따라서 욥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이것을 부정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극히 도식적이고 원론적인 차원에서만 현실 상황 욥의 고난도 포함을 파악하여 그것을 단순화시키는 오류를 범했다. 즉,그는 욥이라는 특수한 한 개인을 인생 일반죄인 의 범주에 포함기켜 그의 고난을 정당화시키고 따라서 욥으로 하여금 자신의 고난에 아무런 불평없이 무조건 순응하기만을 요구했던 것이다. 불티 - 히브리 원문을 직역하면 '르쉬프의 아들들이다. 고대 가나안 신화에 의하면 르쉬프는 역병과 파괴의 신이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서는 이것또는 '르쉬프의 아들들'이 '불', '역병', '번갯불'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문에서도 '르쉬프의 아들들'로 직역하는 것보다는 '불티'로 옮기는 것이 좋다, 본절은 불이 탈 때 그 재가 항상 위로 치솟는 것처럼 인생의 고난이 피할 수 없는 자명한 것임을 나타내 주는 비유이다.
[시 4:2]"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셀라)..."
인생들아 - 문자적으로는 '사람의 아들들아'로 번역되는 이말은 매우 영향력있는 인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애굽과 바벧론에서는 영향력있는 지주를 가리켜 '사람의 아들들'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렇게 볼 때, 이는 가난한 자를 짓밟고 악을 행하는 부유층의 사람들을 지시하는 말로 이해된다.
또한 이 시가 다윗의 피난 시절에 쓰여진 것이라면 이들은 다윗을 배반하고 압살롬에게 합류한 고위층의 인사들을 가리키거나, 아니면 짧은 생각으로 다윗을 욕되게한 아비새나 요압 등을 가리킬 것이다.그러나 문맥상으로 볼 때 전자의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나의 영광을 변하여 -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왕의 영광을 땅에 떨어뜨린다는 뜻이다.
허사 좋아하고 - 여기서 허사는 다윗의 왕권에 도전하는 일을 의미할 것이다. 궤휼을 구하겠는고 - '궤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자브'는 '거짓'을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다윗의 대적들이 추구한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폭로하는 말이다. 이는 아마 압살롬과 그의 일당들이 거짓말로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한 것을 가리킬 것이다.
[시 103:15]"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인생 - 히브리어 성경은 인간을 가리킬 때 '에노쉬'와 '벤 아담'을 사용하는데, 특히 태어나지만 반드시 한번은 죽는 존재로서의 유한한 인간을 뜻할 때 주로 '에노쉬'을 사용한다. 한편, '에노쉬'를 '최선의 상태인 인간'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으나 별로 설득력이 없다. 그 날이 풀과 같으며 - 본 회화적 묘사는 인간 존재 본질의 일시성을 강조한다.
유사 표현으로는 90:5; 욥 14:2; 사 40:6, 7; 51:12등이 있다. 꽃과 같도다 - 곧 시들어버리는 것이 특징인 꽃이 인생의 영화와 같다는 말이다. 여기서 '꽃'은 '치이츠'로서 그 문자적인 뜻은 '빛나는 것' 혹은 '반짝이는 무엇'이며 봄철에 침울한 광경을 밝고 다채로운 색상으로 바꾸어버리는 들에 핀 꽃들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