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헬의 무덤 (베들레헴) F?HRICH, Joseph von, 야곱과 라헬의 만남, 1836, Oil on canvas, 66 x 92 cm, ?sterreichische Galerie, Vienna 야곱은 이사악과 레베카(리브가) 사이에서 에사우의 쌍둥이 동생으로 태어났다. 야곱은 유목민이 되었고, 에사우는 떠돌아다니는 사냥꾼이 되었다. 레베카는 임신 중에 하느님으로부터 쌍둥이를 낳고, 이 둘은 두 민족으로 갈라질 것인데 형이 강한 동생을 섬기리라“는 예언들 듣게 된다(창세 25,19-28 참조). 야곱이 죽을 끓이고 있을 때 들에서 허기진 채 들어온 에사우는 맏아들의 권리를 빵과 불콩죽과 바꾸고(창세 25,29-34 참조), 또 이사악이 늙어 눈이 어두워져 잘 볼 수 없는 것을 이용해 야곱은 에사우가 받을 축복을 가로챘다(창세 27,1-29). 두 번씩이나 야곱에게 속은 것을 안 에사우의 진노를 피해 야곱은 메소포타미아 하란에 있는 어머니 레베카의 오빠인 라반에게로 피신해 간다(창세 27,41-46). 야곱은 브에르 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다가 밤에 꿈속에서 땅과 땅의 먼지처럼 많은 후손을 얻게 되리라는 축복의 말씀을 하느님으로부터 듣는다(창세 28,10-15). 야곱이 동방인들의 땅으로 들어가 양을 치고 있는 라반의 딸 라헬을 우물가에서 만나고 감격의 입맞춤을 한다. 라헬은 ‘암양’을 뜻한다. 라반에게는 딸이 둘이 있었는데 야곱은 몸매도 예쁘고 모습도 아름다운 작은 딸 라헬을 사랑하게 되었다.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7년 동안 일을 하였는데 그에게는 며칠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라헬을 사랑 하였다(창세 29,20). 그러나 기한이 차 잔치를 하고 첫날밤에 한자리에 들은 것은 라헬이 아니라 언니인 레아였다. 결국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 다시 7년 동안 라반의 일을 해야 했다(창세 29,21-30 참조). 레아가 ‘르우벤’, ‘시메온’, ‘레위’, ‘유다’를 낳는 동안 라헬은 아이를 갖지 못하였다. 그래서 몸종 빌하를 통해 ‘단’과 ‘납탈리’를 낳았다. 레아도 몸종인 질파를 들여보내어 ‘가드’와 ‘아세르’를 낳았고 다시 야곱과 잠자리에 들어 다섯 번째 아들인‘이사카르’를 낳았다. 그리고 다시 여섯 번째 아들인 ‘즈불룬’과 이어 딸 ‘디나’를 낳았다. 그 후 하느님께서는 라헬의 청을 들어 주시어 그의 첫 아들 ‘요셉’을 낳았다(창세 29,31-30,24 참조). 이와 같이 야곱은 에프라타로 올라가면서 낳은 벤야민을 합쳐 13명의 자녀를 두게 되는데 그 중 12명의 아들들이 이스라엘 12지파의 시조가 되었다. 첫째아내 레아- 르우벤, 시메온, 레위, 유다, 이사카르, 즈불룬, 디나(딸) 몸종 질파- 가드, 아세르 둘째 아내 라헬-요셉, 벤야민 몸종 빌하- 단, 납탈리 티에폴로 조반니 바티스타, 라헬이 아버지 라반으로부터 수호신들을 숨김, 1726-29년, 4000 x 5000 cm, 우디네(이탈리아) 대주교 궁 이탈리아 북부 우디네에 있는 대주교의 궁전을 장식하기 위해 이 프레스코화를 그렸다. 라헬이 낙타 안장 밑에 아버지의 수호신들을 감추고 그 위에 앉아 있다. 늙은 라반이 야곱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손을 들어 라헬을 타이르며 수호신들을 돌려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장면이다. 오른쪽에는 레아가 서 있고 천막 안에 라헬과 레아가 낳은 야곱의 아이들이 보인다.요셉이 태어난 후 야곱은 6년 동안 더 라반을 도우면서 하느님의 축복으로 대단한 부자가 되어 수많은 양과 염소뿐만 아니라 여종과 남종, 낙타와 나귀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야곱은 그의 가족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갈 것을 결심하고 라반을 두려워한 나머지 몰래 도망치게 된다. 이때 라헬은 아버지 집안의 수호신들을 훔쳐냈다. 야곱의 뒤를 쫓아 이레 길을 달려온 라반은 그의 신들을 훔쳐간 것을 항의하자 야곱은 그것들을 라헬이 훔쳤다는 것을 모르고 그것을 훔친 자는 누구든지 죽어 마땅하다고 말한다. 라반은 천막에 들어가 찾았으나 라헬이 그 수호신들을 낙타 안장 속에 넣고 그 위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찾지 못하였다(창세 31,1-42 참조). 창세 31,32 그러나 장인 어른께서 저희 가운데 누구에게서든 어른의 신들을 발견하신다면, 그자는 죽어 마땅합니다. 제 짐 속에 장인 어른의 것이 있는지, 저희 친족들이 보는 앞에서 찾아내어 가져가십시오.” 야곱은 라헬이 그것들을 훔쳤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야곱과 라반은 돌무더기를 쌓고 불가침 평화의 계약을 맺고 돌아섰지만 그러나 야곱의 말은 얼마 후 정말로 이루어지고 말았다. 다시 길을 떠나 에사우가 있는 에돔 지방 쎄이르 땅을 향하면서 형을 두려워 한 야곱은 먼저 심부름꾼들을 보내어 동태를 살피게 하였다. 에사우가 장정 사백 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온다는 것을 전해들은 야곱은 두려움에 전 재산을 두 무리로 나누고 자기가 가진 것 중에서 형 에사우의 마음을 풀기 위해 종들의 손에 한 떼씩 따로 거리를 두어 보내면서 에사우에게 선물로 보냈다. 도중에 야곱은 하느님의 천사와 동이 틀 때까지 씨름을 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다(창세 32,1-33 참조). 야곱은 에사우가 장정들과 오고 있는 것을 보고는 두 여종과 아이들을 앞에 세우고, 레아와 그의 아이들을 그 뒤에, 그리고 라헬과 요셉을 맨 뒤에 세운 후 이들보다 앞장 서 가면서 형에게 다가갈 때까지 일곱 번 엎드려 절하였다. 그러자 에사우가 야곱에게 달려와서 그를 껴안았고 그들은 함께 울었다(창세 33,1-4 참조). 이렇게 야곱은 라반과 에사우로부터 자유를 찾아 가나안 땅에 있는 스켐 성읍 앞에 천막을 쳤다. 그 후 베텔로 올라가 살았다. 라헬의 무덤 모습(1910년) 라헬의 죽음 야곱 알행이 베텔을 떠나 에프라타로 가면서 라헬이 해산을 하게 되었는데 산고가 심해 아들을 낳고 숨을 거두었다. 라헬은 죽기 전에 아이의 이름을 ‘벤 오니’(내 슬픔의 아들)라고 하였으나 야곱은 불길한 이름 대신 ‘벤야민’(내 오른손 같은 아들, 즉 행복의 아들이란 뜻)이라고 불렀다. 벤야민은 야곱이 나이 들어 가나안에 들어와 낳은 유일한 아들이었다. 야곱은 라헬을 에프라타 곧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가에 묻고 비석을 세웠다(창세 33,16-20 참조). 창세 33,18-19 라헬은 마침내 죽게 되어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아기의 이름을 벤 오니라 하였다. 그러나 아기의 아버지는 벤야민이라 불렀다. 19 라헬은 이렇게 죽어, 에프라타 곧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가에 묻혔다. 라헬은 야곱으로부터 애틋한 사랑을 받았지만 에프라타 땅, 즉 장차 유다 민족의 기원이 되는 베들레헴에 들어갈 수 없었다 라헬의 무덤 모습(1910년) , 분리장벽 안쪽에 있는 주차장 건물에 그려진 1910년의 라헬 무덤 그림 베들레헴 터미널 라헬의 무덤 출발 버스 라헬의 무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루살렘 터미널에서 163번 버스나 개인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 163번을 타기 위해 굳이 예루살렘 버스 종합 터미널까지 갈 필요는 없다. 예루살렘 구시가지에서 출발한다면 베들레헴 방향으로 가서, 거기서 163번으로 갈아타는것이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다. 오늘날 라헬의 무덤은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들어가는 검문소 근처에 있다. 검문소에 들어가기 전 오른쪽 분리 장벽을 따라 조금 들어가면 나온다. 차량만 들어갈 수 있으며 보행자는 들어갈 수 없다. 도로에 있는 3번 정류장에서 163번을 타면 라헬의 무덤까지 갈 수 있다.163번 종점이 라헬의 무덤이다. 163번 버스 베들레헴으로 들어가는 검문소 건물, 정면 분리 장벽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무덤이 나온다 감시초소,분리 장벽에 갇힌 베들레헴 현재 팔레스타인 행정수반이 있는 라말라에 체류하며, 런던대학 박사과정 중 평화교육 현장연구 중인 이승정님(가톨릭대 사회복지대학원 강사, 전 서울YMCA 청소년사업부장)의 글을 소개하며 베들레헴의 분위기를 전할까 합니다. 베들레헴은 1967년 6일 전쟁 후, 이스라엘에 의해군사점령 당한 팔레스타인 지역 웨스트 뱅크 (서안지구)에 위치해 있는 팔레스타인 도시이다. 인구 3만명의 이 작은 도시가 지금 분리 장벽에 둘러싸여 큰 감옥으로 변해가고 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남쪽으로 불과 10km 떨어져 있는 베들레헴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검문소를 거쳐야 하는데 이는 마치 국경을 넘는 것과 같다. 이스라엘 안전 요원들이 방탄 유리건너편에 앉아 여권과 허가증을 요구하고 주변에는 총을 멘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킨다. 빨간불과 파란불로 조정되는 회전문을 여러번 거쳐야 하고, 안전대를 지나야 하며,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작동하고 있다. 베들레헴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가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특별허가증을 받아야 하는데 허가증 받는 일이 쉽지 않다. 팔레스타인들은 인생의 1/3을 이렇게 검문소에서 차례를 기다리느라 낭비하고 있다고 한다. 검문소를 나오면 8-9미터 높이의 거대한 콘크리트 벽을 만난다. 분리 장벽으로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를 테러 방지를 위한 안보 울타리라고 하지만 이는 수세기동안 팔레스타인의 문화와 종교, 경제의 중심을 이루어 왔던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의 유대관계를 끊기 위한 점령 정책의 하나이다. 국무총리 샤론 (Ariel Sharon)은 2001년 6월 국가안보위원회를 구성하고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막기위한 대책을 강구하도록 요구한다. 이어 2002년 4월 국가안보 장관회의에서 테러리즘을 제어하고 방어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과 이스라엘 사이에 분리 장벽을 쌓는 안이 결정된다. 이스라엘은 9/11 사건으로 촉발된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2002년 8월부터 분리 장벽 쌓기를 본격화 한다. 분리 장벽의 길이는 700km에 이르며 벽의 진로는 약간씩 변경되고 있으나 팔레스타인 지역을 완전히 둘러싸는 것으로 2006년도 말까지 450km가 완성될 예정이다. 분리 장벽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이다. 3미터 콘크리트 벽 위에 전기 철조망을 치고, 주변에 4미터 깊이의 홈을 파거나, 베틀레헴 주변 처럼 8-9미터 높이의 거대한 콘크리트 벽을 쌓는다. 더구나 분리 장벽은 그린 라인 (1948년 휴전 협정으로 만들어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휴전선)으로 부터 팔레스타인 땅 훨씬 안쪽에 세워지고 있어서 팔레스타인 개인 소유 땅이 징발되고 팔레스타인 내 자원과 자연환경이 파괴 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지역에 따라 팔레스타인 지역과 지역이 나뉘고 고립됨으로써 가족이 분리 되고 어느날 갑자기 학교를 갈 수 없게 되는 등의 인권 침해와 사람과 생산품등의 이동이 제한됨으로써 오는 경제적 파괴이다. 그린 라인과 분리 벽 사이는 군사지역으로 되어있어 통제를 규제하는데 벽 건너편에 과수원이나 농지를 갖고 있는 팔레스타인들은 분리 벽으로 해서 자신의 땅에 접근 할 수가 없게 되었다. 현재 건설이 완료된 팔레스타인 북쪽 지역 129km 이르는 분리 장벽에는 43개의 검문소가 있다. (팔레스타인 안의 전체 검문소 수는 700에 이름) 13개는 농업용으로 주로 올리브 밭 등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수 때에만 일정시간 문을 열어 출입을 허가하는데 소작인들에게는 허가증을 발급해 주지 않는다. 따라서 지난 가을 올리브 수확 기간에 수확율은 평년의 70%를 밑돌았다. 또 다른 12개의 문 역시 농업용으로 분리 벽 건너편에 비닐하우스와 야채 밭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루에 2-3번 일정 시간에만 개방하는데 이 역시 허가증을 발급 받은 사람만이 출입이 허가된다. 11개 출구는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검문소로 이스라엘 시민권자와 이스라엘 비자를 소유한 외국인들에게만 개방된다. 팔레스타인들은 이스라엘 출입허가증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이 검문소로는 지나갈 수 없다. 팔레스타인들은 나머지 7개 검문소만을 이용해야 하는데 개방시간이 일정치 않을 뿐 아니라 안보를 이유로 사전 공고 없이 검문소가 폐쇄되는 일이 잦아 장시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것은 예사이고 검문소가 폐쇄 되면 다른 검문소로 이동해야 하는 등 시간의 낭비와 추가 여행 비용의 부담도 부담이지만 검문소를 통과 할때 마다 당해야 하는 모멸감이 더 큰 문제이다. 2004년 7월 이스라엘 분리 벽 건설은 국제법에 저촉된다는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었음에도 이스라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안보와 반 테러리즘의 명분을 내세워 분리 벽 건설을 계속 진행시키고 있다. 그러나 분리 벽이 건설되고 있는 경로를 보면 안보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오랜 팔레스타인 식민 정책을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가능한 한 팔레스타인 지역의 많은 땅을 확보하고 팔레스타인의 수는 최대한 줄이는 정책을 펴 왔다. 이 중의 하나가 팔레스타인 지역 안에 이스라엘 유대인 정착촌을 세우는 일인데 현재 팔레스타인 웨스트 뱅크 안에 있는 유대인 정착촌 주민의 수는 50만명에 이른다. (점령지역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는 4백만명) 팔레스타인 땅의 25%를 유대인 정착촌 (이 또한 국제법 위반이다)이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만을 위한 별도의 고속도로 (Israel-only high way)가 놓여지고 있다. 분단 벽의 진로도 이들을 포함시키는 것이 주 목적인데 이는! 팔레스타인 많은 땅을 장차 이스라엘 영토로 흡수하기 위한 장치이다. 그린라인은 315km인데 분단 벽의 건설 계획은 그 두배가 넘는 700km에 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베들레헴으로 들어가는 검문소에서 보면 라헬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입구를볼 수 있다. 양옆으로 분리장벽이 있다. 라헬의 무덤으로 들어오고 있는 버스 라헬의 무덤은 분리장벽 안에 갇혀 있는 모습이다. 라헬의 무덤을 차지하기 위해 라헬의 무덤을 경계로 분리 장벽을 만들었다 사방으로 분리장벽이 둘러싸여 있다. 정면쪽 왼쪽에 라헬의 무덤 건물이 있다. 주차장 모습 왼쪽이 분리장벽, 분리 장벽과 감시초소 오른쪽이 라헬의 무덤이 있는 건물이다. 라헬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입구 이스라엘 조상들의 하느님을 언급할 때 관용어처럼 사용하는 이름이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탈출 3,6; 3,15; 4,5; 마태 22,32; 마르 12,26; 루카 20,37; 사도 3,13)이다. 이렇게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은 이스라엘 민족의 성조이다. 족장들 중에서 12지파의 근간이 되는 것은 야곱이다. 라헬은 야곱의 두 번째 아내였지만 첫 사랑이었고, 야곱은 그녀와 결혼하기 위하여 14년을 일해야 할 정도로 사랑했던 여인이었다. 레아와 라헬은 이스라엘 집을 세운 어머니 즉 12지파의 어머니(룻기 4,11)가 되며 특별히 성조 야곱의 애틋한 사랑을 받았던 라헬은 민족의 어머니로 추앙받고 있다. 특별한 사랑을 받았지만 두 번째 아이인 벤야민을 낳으면서 산고로 세상을 떠나고,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묻히지 못하고 홀로 떨어져 있어야 하는 비운의 라헬은 애통해 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상징이기도 하다(예레 31,15). 그래서 유대인들은 ‘성전 파괴일’(Tisha B'Av)이 되면 라헬의 무덤을 찾아 슬피 울며 기도한다. 라헬의 무덤을 방문한 날은 유대력으로 아브(Av)월 9일로 이날은 공교롭게도 솔로몬이 지은 제1차 성전이 바빌로니아인들에 의해 불타 없어진 날이며 또한 같은 날 헤로데 대왕이 재건한 제2차 성전이 로마군에 파괴된 날이다. 이날 정통파 유대인들은 성전이 파괴된 것을 슬퍼하며 단식하고 기도하는 날이다. 라헬의 무덤 보행자 입장은 안되며, 차량은 밤 10.30분부터 새벽 1시30분을 제외한 시간에 통행할 수 있다. 건물 내부 현재의 건물은 2006년에 새로 지어졌다. 라헬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남자들 출입구 라헬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여자들 출입구 칸막이 너머는 여자 출입구이고 이쪽은 남자들이 들어가는 곳이다. 출입구 복도 앞에 검은색 천으로 덮여 있는 것이 라헬의 무덤이다. 앞에 검은색 천으로 덮여 있는 것이 라헬의 무덤이다. 라헬의 무덤 내부 라헬의 무덤 라헬의 무덤 라헬의 무덤 여자 쪽 라헬의 무덤 여자 쪽 라헬의 무덤 주변 라헬의 무덤 주변 라헬의 무덤 주변 라헬의 무덤 주변 라헬의 무덤을 나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야 한다. 걸어서 나갈수는 없다. 라헬과 관련된 성경구절 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비통한 울음소리와 통곡 소리가 들려온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예레 31,15) → 유다이즘에서는 자식을 잃고 우는 라헬의 울음을 그의 후손들의 고통과 예루살렘 솔로몬 대성전의 파괴와 함께 이어지는 유배가 끝나기를 위해 운다고 한다. 미드라쉬에 따르면 라헬은 하느님 앞에서 “어떻게 영원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정말로 존재하지도 않는 우상들을 당신의 집이 있는 예루살렘에 가져왔다고 시기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나의 자손들을 유배시키렵니까?”하고 하느님께 간청한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녀의 간청을 들어 주셨고, 유배는 끝나고 유대인들은 그들의 땅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②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마태 2,18) → 마태오 복음에서는 예레미야의 이 구절을 헤로데 대왕이 어린 예수를 죽이기 위하여 무죄한 어린이들을 살해하는 예언으로 해석한다. ③ 에스테르기에서 언급하는 모르도카이는 라헬의 아들 벤야민의 후손이라고 한다. 랍비들은 에스테르 왕후가 수사 왕성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을 라반이 레아를 야곱과 결혼시켰을 때조차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그녀의 조상 라헬로부터 물려받은 에스테르의 능력이라고 주석하고 있다.
라헬의 무덤 (베들레헴)
F?HRICH, Joseph von, 야곱과 라헬의 만남, 1836, Oil on canvas, 66 x 92 cm, ?sterreichische Galerie, Vienna 야곱은 이사악과 레베카(리브가) 사이에서 에사우의 쌍둥이 동생으로 태어났다. 야곱은 유목민이 되었고, 에사우는 떠돌아다니는 사냥꾼이 되었다. 레베카는 임신 중에 하느님으로부터 쌍둥이를 낳고, 이 둘은 두 민족으로 갈라질 것인데 형이 강한 동생을 섬기리라“는 예언들 듣게 된다(창세 25,19-28 참조). 야곱이 죽을 끓이고 있을 때 들에서 허기진 채 들어온 에사우는 맏아들의 권리를 빵과 불콩죽과 바꾸고(창세 25,29-34 참조), 또 이사악이 늙어 눈이 어두워져 잘 볼 수 없는 것을 이용해 야곱은 에사우가 받을 축복을 가로챘다(창세 27,1-29). 두 번씩이나 야곱에게 속은 것을 안 에사우의 진노를 피해 야곱은 메소포타미아 하란에 있는 어머니 레베카의 오빠인 라반에게로 피신해 간다(창세 27,41-46). 야곱은 브에르 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다가 밤에 꿈속에서 땅과 땅의 먼지처럼 많은 후손을 얻게 되리라는 축복의 말씀을 하느님으로부터 듣는다(창세 28,10-15). 야곱이 동방인들의 땅으로 들어가 양을 치고 있는 라반의 딸 라헬을 우물가에서 만나고 감격의 입맞춤을 한다. 라헬은 ‘암양’을 뜻한다. 라반에게는 딸이 둘이 있었는데 야곱은 몸매도 예쁘고 모습도 아름다운 작은 딸 라헬을 사랑하게 되었다.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7년 동안 일을 하였는데 그에게는 며칠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라헬을 사랑 하였다(창세 29,20). 그러나 기한이 차 잔치를 하고 첫날밤에 한자리에 들은 것은 라헬이 아니라 언니인 레아였다. 결국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 다시 7년 동안 라반의 일을 해야 했다(창세 29,21-30 참조). 레아가 ‘르우벤’, ‘시메온’, ‘레위’, ‘유다’를 낳는 동안 라헬은 아이를 갖지 못하였다. 그래서 몸종 빌하를 통해 ‘단’과 ‘납탈리’를 낳았다. 레아도 몸종인 질파를 들여보내어 ‘가드’와 ‘아세르’를 낳았고 다시 야곱과 잠자리에 들어 다섯 번째 아들인‘이사카르’를 낳았다. 그리고 다시 여섯 번째 아들인 ‘즈불룬’과 이어 딸 ‘디나’를 낳았다. 그 후 하느님께서는 라헬의 청을 들어 주시어 그의 첫 아들 ‘요셉’을 낳았다(창세 29,31-30,24 참조). 이와 같이 야곱은 에프라타로 올라가면서 낳은 벤야민을 합쳐 13명의 자녀를 두게 되는데 그 중 12명의 아들들이 이스라엘 12지파의 시조가 되었다. 첫째아내 레아- 르우벤, 시메온, 레위, 유다, 이사카르, 즈불룬, 디나(딸) 몸종 질파- 가드, 아세르 둘째 아내 라헬-요셉, 벤야민 몸종 빌하- 단, 납탈리 티에폴로 조반니 바티스타, 라헬이 아버지 라반으로부터 수호신들을 숨김, 1726-29년, 4000 x 5000 cm, 우디네(이탈리아) 대주교 궁 이탈리아 북부 우디네에 있는 대주교의 궁전을 장식하기 위해 이 프레스코화를 그렸다. 라헬이 낙타 안장 밑에 아버지의 수호신들을 감추고 그 위에 앉아 있다. 늙은 라반이 야곱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손을 들어 라헬을 타이르며 수호신들을 돌려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장면이다. 오른쪽에는 레아가 서 있고 천막 안에 라헬과 레아가 낳은 야곱의 아이들이 보인다.요셉이 태어난 후 야곱은 6년 동안 더 라반을 도우면서 하느님의 축복으로 대단한 부자가 되어 수많은 양과 염소뿐만 아니라 여종과 남종, 낙타와 나귀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야곱은 그의 가족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갈 것을 결심하고 라반을 두려워한 나머지 몰래 도망치게 된다. 이때 라헬은 아버지 집안의 수호신들을 훔쳐냈다. 야곱의 뒤를 쫓아 이레 길을 달려온 라반은 그의 신들을 훔쳐간 것을 항의하자 야곱은 그것들을 라헬이 훔쳤다는 것을 모르고 그것을 훔친 자는 누구든지 죽어 마땅하다고 말한다. 라반은 천막에 들어가 찾았으나 라헬이 그 수호신들을 낙타 안장 속에 넣고 그 위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찾지 못하였다(창세 31,1-42 참조). 창세 31,32 그러나 장인 어른께서 저희 가운데 누구에게서든 어른의 신들을 발견하신다면, 그자는 죽어 마땅합니다. 제 짐 속에 장인 어른의 것이 있는지, 저희 친족들이 보는 앞에서 찾아내어 가져가십시오.” 야곱은 라헬이 그것들을 훔쳤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야곱과 라반은 돌무더기를 쌓고 불가침 평화의 계약을 맺고 돌아섰지만 그러나 야곱의 말은 얼마 후 정말로 이루어지고 말았다. 다시 길을 떠나 에사우가 있는 에돔 지방 쎄이르 땅을 향하면서 형을 두려워 한 야곱은 먼저 심부름꾼들을 보내어 동태를 살피게 하였다. 에사우가 장정 사백 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온다는 것을 전해들은 야곱은 두려움에 전 재산을 두 무리로 나누고 자기가 가진 것 중에서 형 에사우의 마음을 풀기 위해 종들의 손에 한 떼씩 따로 거리를 두어 보내면서 에사우에게 선물로 보냈다. 도중에 야곱은 하느님의 천사와 동이 틀 때까지 씨름을 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다(창세 32,1-33 참조). 야곱은 에사우가 장정들과 오고 있는 것을 보고는 두 여종과 아이들을 앞에 세우고, 레아와 그의 아이들을 그 뒤에, 그리고 라헬과 요셉을 맨 뒤에 세운 후 이들보다 앞장 서 가면서 형에게 다가갈 때까지 일곱 번 엎드려 절하였다. 그러자 에사우가 야곱에게 달려와서 그를 껴안았고 그들은 함께 울었다(창세 33,1-4 참조). 이렇게 야곱은 라반과 에사우로부터 자유를 찾아 가나안 땅에 있는 스켐 성읍 앞에 천막을 쳤다. 그 후 베텔로 올라가 살았다. 라헬의 무덤 모습(1910년) 라헬의 죽음 야곱 알행이 베텔을 떠나 에프라타로 가면서 라헬이 해산을 하게 되었는데 산고가 심해 아들을 낳고 숨을 거두었다. 라헬은 죽기 전에 아이의 이름을 ‘벤 오니’(내 슬픔의 아들)라고 하였으나 야곱은 불길한 이름 대신 ‘벤야민’(내 오른손 같은 아들, 즉 행복의 아들이란 뜻)이라고 불렀다. 벤야민은 야곱이 나이 들어 가나안에 들어와 낳은 유일한 아들이었다. 야곱은 라헬을 에프라타 곧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가에 묻고 비석을 세웠다(창세 33,16-20 참조). 창세 33,18-19 라헬은 마침내 죽게 되어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아기의 이름을 벤 오니라 하였다. 그러나 아기의 아버지는 벤야민이라 불렀다. 19 라헬은 이렇게 죽어, 에프라타 곧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가에 묻혔다. 라헬은 야곱으로부터 애틋한 사랑을 받았지만 에프라타 땅, 즉 장차 유다 민족의 기원이 되는 베들레헴에 들어갈 수 없었다 라헬의 무덤 모습(1910년) , 분리장벽 안쪽에 있는 주차장 건물에 그려진 1910년의 라헬 무덤 그림 베들레헴 터미널 라헬의 무덤 출발 버스 라헬의 무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루살렘 터미널에서 163번 버스나 개인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 163번을 타기 위해 굳이 예루살렘 버스 종합 터미널까지 갈 필요는 없다. 예루살렘 구시가지에서 출발한다면 베들레헴 방향으로 가서, 거기서 163번으로 갈아타는것이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다. 오늘날 라헬의 무덤은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들어가는 검문소 근처에 있다. 검문소에 들어가기 전 오른쪽 분리 장벽을 따라 조금 들어가면 나온다. 차량만 들어갈 수 있으며 보행자는 들어갈 수 없다. 도로에 있는 3번 정류장에서 163번을 타면 라헬의 무덤까지 갈 수 있다.163번 종점이 라헬의 무덤이다. 163번 버스 베들레헴으로 들어가는 검문소 건물, 정면 분리 장벽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무덤이 나온다 감시초소,분리 장벽에 갇힌 베들레헴 현재 팔레스타인 행정수반이 있는 라말라에 체류하며, 런던대학 박사과정 중 평화교육 현장연구 중인 이승정님(가톨릭대 사회복지대학원 강사, 전 서울YMCA 청소년사업부장)의 글을 소개하며 베들레헴의 분위기를 전할까 합니다. 베들레헴은 1967년 6일 전쟁 후, 이스라엘에 의해군사점령 당한 팔레스타인 지역 웨스트 뱅크 (서안지구)에 위치해 있는 팔레스타인 도시이다. 인구 3만명의 이 작은 도시가 지금 분리 장벽에 둘러싸여 큰 감옥으로 변해가고 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남쪽으로 불과 10km 떨어져 있는 베들레헴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검문소를 거쳐야 하는데 이는 마치 국경을 넘는 것과 같다. 이스라엘 안전 요원들이 방탄 유리건너편에 앉아 여권과 허가증을 요구하고 주변에는 총을 멘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킨다. 빨간불과 파란불로 조정되는 회전문을 여러번 거쳐야 하고, 안전대를 지나야 하며,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작동하고 있다. 베들레헴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가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특별허가증을 받아야 하는데 허가증 받는 일이 쉽지 않다. 팔레스타인들은 인생의 1/3을 이렇게 검문소에서 차례를 기다리느라 낭비하고 있다고 한다. 검문소를 나오면 8-9미터 높이의 거대한 콘크리트 벽을 만난다. 분리 장벽으로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를 테러 방지를 위한 안보 울타리라고 하지만 이는 수세기동안 팔레스타인의 문화와 종교, 경제의 중심을 이루어 왔던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의 유대관계를 끊기 위한 점령 정책의 하나이다. 국무총리 샤론 (Ariel Sharon)은 2001년 6월 국가안보위원회를 구성하고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막기위한 대책을 강구하도록 요구한다. 이어 2002년 4월 국가안보 장관회의에서 테러리즘을 제어하고 방어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과 이스라엘 사이에 분리 장벽을 쌓는 안이 결정된다. 이스라엘은 9/11 사건으로 촉발된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2002년 8월부터 분리 장벽 쌓기를 본격화 한다. 분리 장벽의 길이는 700km에 이르며 벽의 진로는 약간씩 변경되고 있으나 팔레스타인 지역을 완전히 둘러싸는 것으로 2006년도 말까지 450km가 완성될 예정이다. 분리 장벽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이다. 3미터 콘크리트 벽 위에 전기 철조망을 치고, 주변에 4미터 깊이의 홈을 파거나, 베틀레헴 주변 처럼 8-9미터 높이의 거대한 콘크리트 벽을 쌓는다. 더구나 분리 장벽은 그린 라인 (1948년 휴전 협정으로 만들어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휴전선)으로 부터 팔레스타인 땅 훨씬 안쪽에 세워지고 있어서 팔레스타인 개인 소유 땅이 징발되고 팔레스타인 내 자원과 자연환경이 파괴 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지역에 따라 팔레스타인 지역과 지역이 나뉘고 고립됨으로써 가족이 분리 되고 어느날 갑자기 학교를 갈 수 없게 되는 등의 인권 침해와 사람과 생산품등의 이동이 제한됨으로써 오는 경제적 파괴이다. 그린 라인과 분리 벽 사이는 군사지역으로 되어있어 통제를 규제하는데 벽 건너편에 과수원이나 농지를 갖고 있는 팔레스타인들은 분리 벽으로 해서 자신의 땅에 접근 할 수가 없게 되었다. 현재 건설이 완료된 팔레스타인 북쪽 지역 129km 이르는 분리 장벽에는 43개의 검문소가 있다. (팔레스타인 안의 전체 검문소 수는 700에 이름) 13개는 농업용으로 주로 올리브 밭 등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수 때에만 일정시간 문을 열어 출입을 허가하는데 소작인들에게는 허가증을 발급해 주지 않는다. 따라서 지난 가을 올리브 수확 기간에 수확율은 평년의 70%를 밑돌았다. 또 다른 12개의 문 역시 농업용으로 분리 벽 건너편에 비닐하우스와 야채 밭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루에 2-3번 일정 시간에만 개방하는데 이 역시 허가증을 발급 받은 사람만이 출입이 허가된다. 11개 출구는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검문소로 이스라엘 시민권자와 이스라엘 비자를 소유한 외국인들에게만 개방된다. 팔레스타인들은 이스라엘 출입허가증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이 검문소로는 지나갈 수 없다. 팔레스타인들은 나머지 7개 검문소만을 이용해야 하는데 개방시간이 일정치 않을 뿐 아니라 안보를 이유로 사전 공고 없이 검문소가 폐쇄되는 일이 잦아 장시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것은 예사이고 검문소가 폐쇄 되면 다른 검문소로 이동해야 하는 등 시간의 낭비와 추가 여행 비용의 부담도 부담이지만 검문소를 통과 할때 마다 당해야 하는 모멸감이 더 큰 문제이다. 2004년 7월 이스라엘 분리 벽 건설은 국제법에 저촉된다는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었음에도 이스라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안보와 반 테러리즘의 명분을 내세워 분리 벽 건설을 계속 진행시키고 있다. 그러나 분리 벽이 건설되고 있는 경로를 보면 안보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오랜 팔레스타인 식민 정책을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가능한 한 팔레스타인 지역의 많은 땅을 확보하고 팔레스타인의 수는 최대한 줄이는 정책을 펴 왔다. 이 중의 하나가 팔레스타인 지역 안에 이스라엘 유대인 정착촌을 세우는 일인데 현재 팔레스타인 웨스트 뱅크 안에 있는 유대인 정착촌 주민의 수는 50만명에 이른다. (점령지역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는 4백만명) 팔레스타인 땅의 25%를 유대인 정착촌 (이 또한 국제법 위반이다)이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만을 위한 별도의 고속도로 (Israel-only high way)가 놓여지고 있다. 분단 벽의 진로도 이들을 포함시키는 것이 주 목적인데 이는! 팔레스타인 많은 땅을 장차 이스라엘 영토로 흡수하기 위한 장치이다. 그린라인은 315km인데 분단 벽의 건설 계획은 그 두배가 넘는 700km에 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베들레헴으로 들어가는 검문소에서 보면 라헬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입구를볼 수 있다. 양옆으로 분리장벽이 있다. 라헬의 무덤으로 들어오고 있는 버스 라헬의 무덤은 분리장벽 안에 갇혀 있는 모습이다. 라헬의 무덤을 차지하기 위해 라헬의 무덤을 경계로 분리 장벽을 만들었다 사방으로 분리장벽이 둘러싸여 있다. 정면쪽 왼쪽에 라헬의 무덤 건물이 있다. 주차장 모습 왼쪽이 분리장벽, 분리 장벽과 감시초소 오른쪽이 라헬의 무덤이 있는 건물이다. 라헬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입구 이스라엘 조상들의 하느님을 언급할 때 관용어처럼 사용하는 이름이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탈출 3,6; 3,15; 4,5; 마태 22,32; 마르 12,26; 루카 20,37; 사도 3,13)이다. 이렇게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은 이스라엘 민족의 성조이다. 족장들 중에서 12지파의 근간이 되는 것은 야곱이다. 라헬은 야곱의 두 번째 아내였지만 첫 사랑이었고, 야곱은 그녀와 결혼하기 위하여 14년을 일해야 할 정도로 사랑했던 여인이었다. 레아와 라헬은 이스라엘 집을 세운 어머니 즉 12지파의 어머니(룻기 4,11)가 되며 특별히 성조 야곱의 애틋한 사랑을 받았던 라헬은 민족의 어머니로 추앙받고 있다. 특별한 사랑을 받았지만 두 번째 아이인 벤야민을 낳으면서 산고로 세상을 떠나고,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묻히지 못하고 홀로 떨어져 있어야 하는 비운의 라헬은 애통해 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상징이기도 하다(예레 31,15). 그래서 유대인들은 ‘성전 파괴일’(Tisha B'Av)이 되면 라헬의 무덤을 찾아 슬피 울며 기도한다. 라헬의 무덤을 방문한 날은 유대력으로 아브(Av)월 9일로 이날은 공교롭게도 솔로몬이 지은 제1차 성전이 바빌로니아인들에 의해 불타 없어진 날이며 또한 같은 날 헤로데 대왕이 재건한 제2차 성전이 로마군에 파괴된 날이다. 이날 정통파 유대인들은 성전이 파괴된 것을 슬퍼하며 단식하고 기도하는 날이다. 라헬의 무덤 보행자 입장은 안되며, 차량은 밤 10.30분부터 새벽 1시30분을 제외한 시간에 통행할 수 있다. 건물 내부 현재의 건물은 2006년에 새로 지어졌다. 라헬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남자들 출입구 라헬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여자들 출입구 칸막이 너머는 여자 출입구이고 이쪽은 남자들이 들어가는 곳이다. 출입구 복도 앞에 검은색 천으로 덮여 있는 것이 라헬의 무덤이다. 앞에 검은색 천으로 덮여 있는 것이 라헬의 무덤이다. 라헬의 무덤 내부 라헬의 무덤 라헬의 무덤 라헬의 무덤 여자 쪽 라헬의 무덤 여자 쪽 라헬의 무덤 주변 라헬의 무덤 주변 라헬의 무덤 주변 라헬의 무덤 주변 라헬의 무덤을 나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야 한다. 걸어서 나갈수는 없다. 라헬과 관련된 성경구절 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비통한 울음소리와 통곡 소리가 들려온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예레 31,15) → 유다이즘에서는 자식을 잃고 우는 라헬의 울음을 그의 후손들의 고통과 예루살렘 솔로몬 대성전의 파괴와 함께 이어지는 유배가 끝나기를 위해 운다고 한다. 미드라쉬에 따르면 라헬은 하느님 앞에서 “어떻게 영원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정말로 존재하지도 않는 우상들을 당신의 집이 있는 예루살렘에 가져왔다고 시기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나의 자손들을 유배시키렵니까?”하고 하느님께 간청한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녀의 간청을 들어 주셨고, 유배는 끝나고 유대인들은 그들의 땅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②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마태 2,18) → 마태오 복음에서는 예레미야의 이 구절을 헤로데 대왕이 어린 예수를 죽이기 위하여 무죄한 어린이들을 살해하는 예언으로 해석한다. ③ 에스테르기에서 언급하는 모르도카이는 라헬의 아들 벤야민의 후손이라고 한다. 랍비들은 에스테르 왕후가 수사 왕성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을 라반이 레아를 야곱과 결혼시켰을 때조차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그녀의 조상 라헬로부터 물려받은 에스테르의 능력이라고 주석하고 있다.
출처: 사랑과 평화의 샘 원문보기 글쓴이: jeosahp
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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