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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좌담] 2009년 한국사회와 한국교회 | ||||||||||||||||||||||||||||||||||||||||||||||||||||||||
- ‘이명박’이라는 이름은 우리 각자 안에 도사리고 있는 근원적인 탐욕의 상징 -사제단, 복음의 요구에 비추어 선택하고, 선택에 따라 힘주어 가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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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발생한 용산참사는 이 나라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철거민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불에 태워 죽이고도 태연한 현실에서 우리의 신앙고백과 실천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이런 물음과 성찰 중에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지붕이 없는 성당이 마련되고 천막 사제관이 세워졌다. 자연스레 <기쁨과희망> 넷째 권은 용산참사 현장에서 기획되고 준비되었다. 그리고 발간 직전 이뤄진 대담 역시 용산에서 이뤄졌다. 거기에 모인 사제들과 함께 ‘한국사회와 한국교회’를 주제로 2009년을 돌아보았다.
지난 11월 2일 어렵사리 서울광장에서 강추위 속에 시국미사를 봉헌했는데 거기서 발표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의 시국선언문이 지적한대로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의 파탄지경에 와 있습니다. 1997년 경제 위기, 2002년 핵 위기, 2004년 탄핵 및 헌정위기 그리고 올해 2009년 민생, 민주, 민족문제의 위기까지 위기의 연속입니다. 위기가 아예 일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국가권력이 언론을 장악하고,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개인의 일상을 검열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억압뿐 아니라 양극화의 심화로 계층 간, 계급간의 분열과 갈등이 위험 수위에 다다랐습니다. 과연 되살릴 묘책이나 힘이 우리에게 간직되어 있는지 조차 알 수가 없어 불안합니다. 용산은 이 모든 문제의 총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이강서 신부님이 말문을 열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강서 신부 : 엿새만 지나면 용산참사 발생 삼백일이 됩니다. 용산은 정말 무궁무진한 해석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가히 한국사회의 화두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누구도 용산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용산을 외면하는 고민이나 논의는 죄다 가짜입니다. 먼저 용산은 우리 삶이 완전히 허구였다는 점을 폭로했습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 보여주었단 말입니다. 융단폭격을 맞은 폐허처럼 무너진 용산, 여섯 명의 목숨을 태워버린 남일당의 그을린 얼굴을 보노라면 우리의 숨은 욕망을 보는 것 같아 괴롭고 부끄럽습니다. 용산참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멀게는 해방 후 60여년의 현대사를 반추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가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잘못된 관성 때문에 용산에서 저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고 봅니다. 한편 용산은 복음적인 삶이 무엇인지 정면으로 반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 자신도 용산에 있으면서 산다는 것에 대해서, 산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복음의 요청과 도전에 대해서 종일토록 생각하게 됩니다. 사 회 : 이 신부님이 “용산은 매일 묻고 있다. 우리는 답을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런 문제의식이 이 좌담회를 용산에서 열도록 한 것 같습니다. 지난 8월 14일 삼성그룹 관련 최종 재판이 있었습니다. 유전무죄의 극치를 보여준 법원의 솜방망이 처분이었는데요, 결국 삼성 특검은 유야무야, 삼성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이 문제는 사제단이 나서서 삼성 이건희 일가의 비자금과 불법로비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시작된 일이었는데 혹시 용산의 문제와 연관해서 볼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인국 신부님이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인국 : 어제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었는데, 벌써 나왔어야 할 자료집이 매우 뒤늦게 나온 것이지요. 친일청산에 실패했다는 반증이라고 봅니다. 저는 용산문제도 궁극적으로 삼성 특검의 실패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입니다. 만일 이건희 일가가 흔히 말하는 ‘법과 원칙’에 따라 심판을 받았다면 용산참사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 회 : 삼성의 문제와 용산문제가 그렇게 연결이 되나요? 김인국 : 삼성물산은 참사가 벌어진 용산 4구역 재개발 건설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건설사들의 개발이익이 자그마치 1조4천억 원 정도라고 합니다. 어마어마하지요. 돈을 가지고 국가권력을 오염시킨 삼성의 힘이 특검을 무마해버리는 데서도 드러났다만 말입니다. 적어도 제 눈에는 그런 일들이 용산 재개발현장의 자신감으로 이어진다고 보입니다.
둘째, 1987년과 2007년의 상황은 너무 똑같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박종철 사건’도 처음부터 사제단이 맡을 일이 아니었습니다. 너도나도 힘들고 두려운 일이니까 사제단에 맡겨진 일이었지요. 삼성사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 변호사는 주요언론, 방송사, 시민단체 등을 돌다가 마지막에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누군가 사제관 앞에 아기를 버리고 간 것처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이 1987년이나 2007년이나 다 같이 난감했습니다. 하나는 독재권력의 문제요 다른 하나는 자본권력의 문제였는데 겉모습은 달라도 본질은 똑같지요. 셋째, 국가권력기관과 교회가 마지막에는 유사한 결말을 지었다는 점입니다. 처음부터 검찰은 삼성 사건을 극구 피하려고만 들었습니다. 진실이 드러날까 봐 두려웠던 거죠. 결국에는 버틸 대로 버티다가 골치 아픈 문제를 특검에 넘겼고, 특검은 이건희 씨에게 엄청난 선물을 안겨주며 대부분의 범죄 사실들을 무마해주었습니다. 회사 돈을 훔쳐서 마련한 천문학적 규모의 지하 비자금을 회장의 통장이 입금시킨 꼴이니까요. 불법로비도 없던 일로 했고, 마지막에는 불법승계 부분만 법원에 넘겼는데 법원 역시 이건희 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단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사제단과 김용철 변호사만 혹세무민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는 서울교구가 이에 화답했습니다. 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님에게 징계성 안식년을 명령한 것입니다. 모두 쓰게 웃었지만 무서운 일이 벌어진 거예요. 사 회 : 사제단의 또 다른 기념비적인 행보는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모토로 시작한 오체투지 순례였습니다. 지리산 하악단에서 계룡산 중악단을 거쳐 임진각까지 대략 4백 킬로미터 대장정 동안 순례자들이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습니다. 이 자리에 순례 당사자인 문규현 신부님과 전종훈 신부님을 모시려 했는데 아시는 대로 문 신부님은 심장마비로 중태에 빠지셨고, 전종훈 신부님도 병원에 실려 간 상황입니다. 오체투지 순례의 긴장과 피로에다 용산의 단식이 이어지고 겹치면서 벌어진 일들인데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괴롭군요. 문정현 신부님이 대신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문정현 : 한참 지난 얘긴데, 오체투지도 그렇고 새만금 삼보일배 때도 그랬어요. 분명히 풀어야 할 문제인데 우리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얘기니까 삼보일배로, 오체투지로 그저 마음을 다하고 몸을 다해서 기도하고 호소하려는 것이었는데요... 여기 용산참사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몸도 마음도 그만 쉬고 싶지만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절박한 심정이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 왔고요. 새만금 사업에서 보았듯이 정부는 중단하는 척 하면서 계속 갑니다. 4대강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몸부림이라도 쳐야지요. 양심의 소리가 있는데. 나승구 : 작년 9월에 오체투지를 시작할 무렵 참 답답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을 무시하고 소통을 거부하고, 힘으로 촛불을 꺼버리고 광장을 막아버리고. 오체투지는 그런 질식할 것만 같은 상황에서 숨통을 찾으려는 몸부림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모든 문제를 생명과 평화로 풀어나가자, 인권문제도 그렇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벌레처럼 자세를 낮춰서 우리도 기어가면서 낮은 시선으로 바라보자. 다들 마음에 화가 나 있으니까 제발 조용하게 바라보자고 했던 거지요. 그런데 1차 순례가 끝나고 2차 순례를 준비하는 중간에 용산참사가 터졌습니다. 사람들이 불에 타죽고 난리가 터졌는데 우리는 순례를 이어가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생긴 것입니다. 용산에 가야하나 아니면 길바닥을 기어야 하나? 순례가 여론을 모아 세를 과시하기를 바란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끝나는 날까지 우리들만의 외로운 기도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오체투지순례로 이루어진 것은 별로 없어요. 그러나 당장 얻은 것은 없어도 우리 삶의 기본은 이것이라고 분명하게 짚어준 예언자의 행동이었다고 봅니다. 사 회 : 네 고맙습니다. 다음은 안충석 신부님이 사제단의 원로로서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부터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까지 전반적으로 회고해주셨으면 합니다.
안충석 : 먼저 추기경의 죽음과 한국교회의 현실을 말씀드려봅니다. 김수환 신부가 추기경이 된 것은 하느님의 섭리였습니다. 추기경님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잘 알고 계셨고, 그래서 사제단과 뜻을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는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독재권력에 맞섰고, 교회의 가르침대로 가난한 이들의 처지를 선택하며 살았습니다. 세상을 향해 외쳤고 행동했습니다. 오늘날 국민이 천주교회를 사랑하고 추기경을 공경한 것은 이런 언행일치에서 감동을 받았던 것이지요. 지난 2월 추기경 추모 열기는 그분 개인에게도 그리고 한국천주교회 전체공동체에게도 이 사회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위상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그런데 저런 영광이 어디에서 생겨난 것인지 교회가 부정하려고 듭니다. 참 당혹스럽습니다. 우리 스스로 공치사할 일은 아닙니다만 너무 뻔뻔하지 않아요? 명동성당에 조문을 갔다가 어느 주교님을 만났는데 “사제단 덕분에 이런 결과가 나왔어요.”하면서 인사를 하더군요. 그런데 말로만 그래요. 삼성사태 이후 함세웅 신부나 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를 어떻게 했나요? 한국천주교회가 보수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물량주의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뉴타운 환상에 빠진 것과 똑같아요. 이런 교회 현실은 국민을 매료시켰던 70, 80년대 김 추기경의 가르침과 거리가 먼 것입니다. 다 아시는 대로 오늘날 한국천주교회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아예 포기해버리고 중산층의 수구보수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예언자의 직무는 포기하고 그저 밀폐된 공간에서 제사만 드리면 다 되는 것으로 착각을 한단 말입니다. 좋지 못한 증상입니다. 짧게 두 분 대통령에 대한 소회를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행동하는 양심이었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불의에 굴하지 않는 양심을 간직하려고 애쓴 분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진해서 몸을 던짐으로써 민주주의의 불씨를 남겨주었습니다. 노 대통령이 죽자 김대중 대통령이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분의 심정을 알 것 같습니다. 김 대통령의 말처럼 독재정부 50년 끝에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라는 민주주의의 싹이 겨우 십년 자랐는데 두 분의 정치지도자가 타계하는 바람에 그간의 성과가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대통령의 장례를 치르는 국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훌륭한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기도 했습니다. 김영식 : 낙동강을 보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내려다보면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고 눈물을 흘리시던 대목이 떠오릅니다. 지금 대부분의 신부님들의 마음도 마찬가지겠지요. 삼성, 오체투지, 용산, 전직 대통령의 죽음과 겹치면서 더욱 그런 심정입니다. 사제단은 시국선언문에서 새로운 국가공동체를 건설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대단히 의미심장한 말씀인데요, 연속되는 비극적 사태를 목격하고도 별로 슬퍼하지도 못하는 그 마음부터 고쳐먹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국가구성원인 국민의 마음부터 바뀌지 않는 한 수백 번의 정권교체라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단순소박하게 이웃과 어울리던 수평적 마을 공동체가 언제부터인가 고층빌딩을 지으면서 탐욕의 수직 도시사회로 변했습니다. 탐욕을 연료로 태워가면서 말입니다. 회광반조(回光返照)라고 했습니다. 밖을 비추던 빛이 이제 그만 자신을 비추도록 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교회와 사제단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는 그런 차원에서 새로운 국가공동체를 바라고 있습니다.
김인국 : 매우 도발적인 질문을 하나 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도 말합니다. 망할 것은 망해야 새로운 것이 나온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이런 식의 교회라면 차마 말씀드리기 뭣하지만 어서 망해서 새롭게 일어서야 한다. 망할 것을 망하지 않게 하면 좋은 일했다고 할 지 모르지만 사실은 정 반대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바리사이들을 심하게 나무란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색다른 주장인데요. 바리사이들은 상대적으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계층이었기에 민중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그룹의 악영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개혁 없이 적당한 선에서 민중들의 봉기의지를 약화시켰기에 오히려 불의한 체제 유지에 일조했다는 것이지요. 오늘의 도덕적인 시민단체들도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대안을 주기는 합니다만 오히려 그로 인해서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가 어려워진다고 보더군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입장입니다만 저는 사제단도 혹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한국천주교회의 긍정적인 이미지 중에 교회 상층부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혹은 상반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약자에 대한 배려나 민주주의를 위한 사회참여 같은 가치들 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천주교회는 역시 다르다”고 ‘고마운 오해’를 하는데 이런 착시현상을 일으킨 것은 바로 사제단이란 말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역사의 고비마다 등장하는 사제단’이 오히려 교회의 전면적인 개혁을 지연시키거나 가로막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교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일종의 채색작업을 해버린다는.... 문정현 : 글쎄요, 저는 다른 관점에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가야하고, 또 가면 결국에는 됩니다. 나머지는 역사에 맡길 일이고, 하느님께 맡길 뿐입니다. 문제는 사제단이 세상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그 정도로 살고 있느냐 입니다. 사제단 때문에 망할 것이 안 망하고 그러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욱 철저하게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용산에 모이고 또 추운 날 서울광장에 나가서 경찰들의 철벽을 뚫고 미사를 드리긴 합니다만 어쩌다 이렇게 하루 나와서 해봐야 될 일이 아닙니다. 아니, 전국의 신부들이 일주일이라도 본당 잠가놓고 나온다고 교회가 무너집니까? 교회가 없어지기라도 합니까? 사 회 : 이제 오체투지순례의 지향이었던 생명의 길, 평화의 길, 사람의 길이라는 전망에서 그리고 새로운 국가공동체를 모색한다는 차원에서 교회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좋겠습니다. 김영식 : 삶의 자리에 따라 입장이 다르게 정해지듯이 신부들도 어떤 교구, 어떤 본당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생각이 정해집니다. 같은 신부라고해도 용산이나 삼성, 4대강에 대한 관점이 제각각입니다. 같은 복음을 읽는데 어째서 입장이 극단적으로 갈리는지 가슴 아픕니다. 분명히 가난한 사람을 돌보라고, 아파서 우는 사람에게 잘 해주라고 했는데 어떻게 용산이나 재개발에 대한 해석이 그렇게 다를까요? 김인국 : 재개발사업에 대한 서울교구와 일선 본당신부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내심 반기지는 않나요? 사실 재개발되더라도 교회가 가난한 서민들처럼 쫓겨나는 일도 없잖습니까. 게다가 재개발이 되면 본당구성원이 ‘있는 사람’들로 재편된단 말입니다. 물론 정든 공동체의 해체를 바라지야 않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몰아내고 부자들의 팰리스를 짓는 일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은 퍽 약해 보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서울 한복판 용산에 벌어진 참사에 어째서 서울교구 신부님들이 그토록 냉정합니까. 극소수의 신부님들만 조용히 다녀갑니다. 한국천주교회는 명색이 관할영토를 중시하는 로마가톨릭이 아니던가요? 대부분 지방교구 신부들과 신자들이 용산에 올라와 분향합니다. 이게 어디 그냥 넘어갈 일인가요. 안충석 : 재개발되면 경제수준이 높아질 거라는 기대 때문에 교회는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 벌어질 때마다 이명박 대통령을 거론하게 되는데, ‘이명박’이라는 이름은 우리 각자 안에 도사리고 있는 근원적인 탐욕의 상징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교회 안의 이명박, 내 안의 이명박을 어떻게 할 것이냐, 이런 근원적인 물음을 쉬지 말고 던져야 합니다. 이강서 : 저는 ‘빈민사목’이라는 특수사목을 맡고 있는 서울교구 신부입니다. 서울 신부님들 이야기를 해봅시다. 신부들도 현실적인 고려를 할 수 밖에 없어요. 무슨 이야기인가하면 본당신자들 상당수가 재개발 이익을 기대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단 말입니다. 더구나 본당신부가 가깝게 만나는 본당 내 여론주도층 신자들이 대부분 재개발로 손해 볼 게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본당신부들도 땅과 건물을 가진 사람들의 시선으로 현실적인 판단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용산에 오기가 퍽 힘든 것입니다.
김영식 : 새만금 삼보일보 때나 생명평화 오체투지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주교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교회 안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는 겁니다. 우리의 행동을 반대하는 이유가 고작 그 정도입니다. 사제피정을 참사현장 단식기도로 대신하고 싶다고 어렵게 말씀드렸더니 이번에도 비슷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교회 안에는 그렇지 않은 사제도 많다!”(일동 웃음) 이런 말은 결국 기회주의자가 되라는 소리가 아닌가요. 나승구 : 저도 그런 일을 수시로 겪습니다. 그 논리를 그대로 적용해서, 우리 역시 “우리는 이렇게 보는데 너희는 왜 다르냐?”고 똑같이 공박할 수 있지요. 사고와 관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상호간 존중하는 문제인데 참 안타깝습니다. 그런 식으로 신부들을 통제하다보면 결국 교회에는 한 가지 생각만 남게 됩니다. 교회 본연의 창의성과 아름다운 다양성은 사라지는 것이지요. 그런 꽉 막힌 논리에 우리가 위축되면 안 됩니다. 사 회 : 대화가 좀 무거워지는 느낌이라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한국가톨릭교회도 어떤 의미에서는 한 마리의 양을 찾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대한민국 상위 1%와 친한 목자를 우대하고, 반면에 99%의 서민을 찾아다니는 목자들을 위험하게 여기니까요.(일동 웃음) 문정현 : 본당에서 내로라 부자들은 당연히 개발을 좋아합니다. 본당 운영에서 그들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부의 이해 때문에 잃어버린 양을 찾아가지 못하겠다는 것은, 일제강점기 신자 보호를 위해서 교회지도자가 친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논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은 게 무엇입니까? 치욕 밖에 남은 게 없습니다. 오늘까지 저도 교회에 무수히 실망하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교회를 떠나지 않습니다. 내 집을 두고 어디로 갑니까. 가려면 저들이 나가야지요. 김영식 : 우리는 끊임없이 예와 아니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공동체 내의 이견을 핑계로 이 명백한 선택을 피하고 있습니다. 김인국 : 갈수록 그런 게으름 혹은 방관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를 본당에서 몰아낸 일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무섭습니다. 서울교구장께서 가재울 4구역에는 가고, 용산 4구역에는 오지 않았습니다. 방문의 힘이었는지 가재울 재개발구역에 속해있는 가좌동성당은 결국 살아남았다지요. 용산 삼각지 성당도 그런 경우였다면 아마 찾아오셨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빈민사목 담당 이강서 신부를 파견했다고 생색을 내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입니다. 김영식 : 정확하게 말하면 교구가 이강서 신부를 파견하기 전에 이강서 신부가 먼저 왔습니다. 기왕에 거기 갔다고 하니까 모양을 그렇게 만들어준 측면이 있습니다. 이강서 : 서두에 제가 “용산이 우리에게 매일 묻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현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선택을 요구합니다. 매일 복음을 읽으면서 기존의 선택을 갱신해야 합니다. 그게 사제단의 영성이라고 봅니다. 선택을 미루거나 한 번 했으면 다시는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교회를 늙게 만드는 위험한 태도입니다. 이런 사제단의 영성을 불편하게 보는 분들이 교회 안에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그분들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각자가 책임질 문제입니다. 복음의 요구와 양심에 비추어 선택하고, 선택에 따라 힘주어 가는 겁니다. 우리가 용산을 떠나지 않는 것은 아무리 묻고 또 물어도 그게 복음의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문정현 : 교회공동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곳에는 교회법상의 어느 교구에도 속하지 않는 ‘남일당 성당’이 있습니다. 어느덧 자연스럽게 그런 이름이 붙었어요. 신부도 많고 수녀도 많고 신자들도 전국에서 달려옵니다. 참 희한합니다. 성당의 중심은 유가족들과 철거민들입니다. 그들의 아픔을 보고 무엇으로 위로가 될까, 무엇이면 상처가 아물어질까하는 고민 끝에 매일 저녁 7시에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전국 어느 본당에 이렇게 많은 신부들이 와서 함께 미사를 드리며, 어느 성당에 이렇게 많은 수도자들이 와서 기도합니까. 또 이렇게 다양한 신자들이 한 마음이 되어 기도를 하겠습니까. 신비입니다. 아픔과 공감을 바탕으로 모인 신앙공동체, 남일당 본당은 정말 특별한 사건입니다. 우리 사제단이 참 많은 사건을 겪고 함께 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강정근 :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한데 저도 잘 들었습니다. 한마디 덧붙이고 싶습니다. 머지않아 교회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뀌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방금 문정현 신부님도 말씀하셨는데 용산 참사 현장이나 평택의 쌍용차 분규 현장이나 분명히 교회였습니다. 여기에도 사람이 있다는 외침, 우리도 함께 살자는 호소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그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교회의 역동성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아니면 무엇이 교회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