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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영화도 아닌 다큐, 무려 여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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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이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새로운 페미니즘과 문화운동을 경험한 이들이 졸업 뒤 그 언저리에서 실험과 부침을 거듭하다, 먹고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이들 중 몇 명이 다시 뭉쳐 비슷한 욕망을 가진 친구들을 끌어들여 만든 집단이 ‘문화기획집단 영희야 놀자’이다. 새삼 ‘여성주의 문화기획’을 해보겠다고 나선 것이 2007년 가을 즈음이니 꼭 4년이 되었다. 그 사이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모래>와 1950년대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아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여성국극을 다룬 <왕자가 된 소녀들>, 두 작품을 완성했다. <워낭소리>의 성공으로 사람들은 다큐멘터리를 한 방 터지면 투자 대비 수익률이 어마어마한 문화 상품으로 가정하게 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뒤늦게 뛰어든 신출내기 정도로 자리매김하는 상황을 많이 겪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정작 할 말은 없는, 언어들 속에서 길을 잃은 자의 심정이 되곤 한다. 지금은 <워낭소리>가 한국 다큐멘터리의 모든 것이지만, 1990년대 중·후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페미니스트가 된 우리의 첫 극장 다큐멘터리 관람 경험은 기록영화제작소 ‘보임’이 제작한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였다. <낮은 목소리>는 군 위안부를 경험한 할머니들의 현재와 일상, 제작진과의 관계, 그 속에서 가능한 과거 기억의 발화가 중심 내용을 이뤄, 흔히 ‘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다 하면 생각하기 쉬운 프로파간다적 형식에서 벗어나 있다. 일상과 문화에 대한 문제제기로서 여성운동, 영화라는 매체를 통한 발언, 프로파간다 영화의 마니교적 이분법에서 벗어난 성찰적 형식이 결합해 <낮은 목소리>가 불러일으킨 반향은 엄청났다. <낮은 목소리>는 한국 영화사의 맥락에서 보면, 1980년대 출현한 운동으로서 독립영화(변영주 감독은 <파업전야> 등 당시 쟁쟁한 독립영화를 제작한 ‘장산곶매’의 일원으로 영화인의 삶을 시작했다), 비디오라는 매체의 등장으로 가능해진 기록영화의 활성화(변 감독은 ‘푸른영상’에서 기생관광을 다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을 제작했다), 역시 1980년대 꾸준히 이어졌던 여성영화 제작의 움직임(변 감독은 또한 여성영화 제작에 뜻을 둔 여성들을 만나 ‘바리터’를 결성해 여러 작품을 만들었다)이 제대로 결합해 의미 있는 사회적 반응을 이끌어낸 행복한 사례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과정에서 ‘여성으로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변영주 감독은 한 회고에서, 바리터 결성 당시 회원이 모두 여성이니 룸살롱을 해서 제작비를 벌라는 충고를 들었다고 한다. 또한 여성영화를 제작하려고 모였지만 촬영할 인력이 없어 결국 가장 몸집이 큰 자신이 촬영기사가 되어 배워가며 촬영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우리는 그간 반성폭력 운동이 활성화되고 촬영에 뜻을 둔 여성들이 증가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우리 또한 여성으로서 다큐멘터리 만드는 것에 대해 계속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낮은 목소리>가 확산되는 과정을 경험하고, 1997년 시작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전세계의 여성영화를 매년 눈으로 포식하며, 1999년 여성주의 웹진 ‘언니네’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여성운동·문화운동·여성학 진영 내에 발을 담그고 있던 우리가 다큐멘터리에 눈을 돌린 것은 영상이 또 하나의 새롭고도 강력한 여성문화운동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영희야 놀자’는 다큐멘터리 제작집단이기보다는 ‘여성주의 문화기획집단’이라는 지향을 표방했고, 다큐멘터리를 다양한 표현 수단 중의 하나로 여겼다.
이성애의 이분법 넘어선 그녀들 이런 재현 양식을 채택하면서 구성원들의 역할 또한 연출, 조연출, 프로듀서, 기획, 촬영이라는 전통적 역할 구분에 따라 일하는 것에 국한될 수 없었고, 시각과 구성을 위한 공동의 학습과 토론은 필수적이었다. 상업영화에서는 제작비가 상승하면서 리스크 관리의 필요상 감독의 절대적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적어지고 있다. 그러나 독립영화, 그중에서도 독립다큐멘터리는 감독이 제작부터 배급의 모든 과정에서 위험을 홀로 안고 가는 구조가 여전히 일반적이기 때문에 제작에서의 위계구조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획 자체가 집단적 문제의식을 통해 가능했기에 서로의 역할을 넘나들고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하면서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제작과정에서 여성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는 것에 대해 성찰할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계기는, 여성국극 배우들을 ‘어떤 여성’으로 재현해야 하는가 혹은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통해서였다. 무대에서 남성 역할을 하고 평소 그와 다르지 않게 지내지만, 자식을 셋이나 낳은 ‘그녀’는 생물학적 ‘여성’이지만 무대에서만 ‘남성’으로 사는 것일까? 그녀의 결혼, 출산, 양육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너무 다른 환경에서 이루어졌는데도 그것을 ‘여자의 일생’이라고 보아야 할까? 우리는 그렇게 재현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여성 예술가’라고 집단화하는 순간, 해석은 또다시 지금의 젠더 구조 안에 갇혀버린다. 부디 ‘(이성애적 이분법적 구조 내) 여성의 틀을 넘어선 여성’을 ‘여성’으로 재현할 수밖에 없는 곤란을 읽어내어 다른 힘들로 전환할 수 있는 관객을 많이 만나기 바란다. ‘영희야 놀자’의 두 번째 프로젝트 <모래>는 <왕자가 된 소녀들>과 마찬가지로 집단과 집단의 만남, 즉 페미니스트인 우리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아버지들을 만나는 과정을 그리려 했지만, 사정상 감독의 가족으로 이야기를 좁힌 작품이다. 여러 가지 여건상 감독 개인의 질문과 시각을 중심으로 재현되었지만, 이 작품이 다루는 중동 산업역군, 재개발, 부동산, 한국형 정상 가족의 형성, 사교육, 어머니 역할, 아버지 세대 및 우리 세대의 정치적 견해 등의 주제는 팀원 모두 참여한 학습과 토론의 결과물이다. 모든 과정을 집단적으로 창작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치열한 토론은 가족 이야기임에도 과도한 감상에 빠지지 않고 절제와 균형 속에서 연민과 화해를 표현하는 균형 감각을 갖게 한 중요한 요소이다. 지난 3월에 완성되어 여러 영화제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모래>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이 작품이 ‘전형적인 사적 다큐멘터리임에도, 그 틀에 갇히지 않고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로서 말하자면 ‘사적 다큐멘터리-공적 다큐멘터리’라는 구분은 잘못된 것이다.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있고,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있다는 사실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1960년대 페미니즘과 반문화운동의 구호가 한낱 상품 마케팅 구호로 전락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것이 말하려 했던 정치적 지향이 촌스럽다고 떨쳐버릴 수 있는 종류의 것일까? 모든 개인적 문제는 정치적 문제이며, 정치적 문제는 개인적 문제이다. <모래>가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에서 출발할 때 ‘나’라는 개인과 ‘대치동 은마아파트’라는 사회적 문제는 이미 구분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어느 평론가의 “이 작품에서 자술하는 것은 감독이 아니라 은마아파트”라는 지적은 타당하다. 이 작품은 가족이 사적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사 경계를 가능하게 하고 자연화하는, 괄호가 쳐진 토대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온 페미니즘적 시선을 전면화하고 있다. 그렇기에 두 번째 평가인 ‘여성감독의 작품임에도 페미니즘적이지 않다’는 평가가 흥미로운 것이다. 개발독재 시대에 형성된 한국형 중산층 가족이 무엇인지, 그 가족이 아버지-남성, 어머니-여성을 어떻게 만들어내고 있는지, 취업과 결혼이라는 이른바 ‘정상적 생애주기’를 벗어나 젊은 여성 예술가로서 자신의 삶을 시작하려는 감독이 가족 내에서 어떤 상황에 놓이는지 그리는 작품에 ‘페미니즘적이지 않다’는 평가는 신중하게 내려야 하는 것 아닐까? <모래>는 이처럼 페미니즘 시각에 대한 뒤늦은 찬탄과 그 시각의 부족함에 대한 질타를 동시에 받는 작품이 되었다. 지금 한국에서 ‘여성’과 ‘페미니즘’이 무엇인지에 대한 토론을 촉발했다는 점에서는 흥미롭지만, 두 평가 사이의 아득한 간극 혹은 역설적이게도 그것들이 공유하는 공통의 인식 앞에서 또다시 앞서 말한 대로 ‘언어들 사이에서 길을 잃은 자’의 심정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여성-카메라-현실 사이 떠도는 기표 2000년대 후반 다큐멘터리 제작에 뛰어든 우리가 겪은, 그리고 겪고 있는 ‘여성으로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의 경험은 변영주 감독의 그것보다는 좀더 나아진 것일까? ‘여성’이 카메라를 들 때, ‘여성의 시각’으로 현실을 재현할 때, 더 이상 ‘여성’과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을 재현한 양식으로서 다큐멘터리는 안정적이고 고정된 기표일 수 없다. 그러나 ‘연분홍치마’, ‘움’ 등 여성영상집단들이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여성 다큐멘터리 작업자들과 작품이 늘어가는 지금의 한국 다큐멘터리계에서 이런 작업들을 제대로 평가하고 그 의미를 살려주는 장은 너무 부족하다. 한 편의 작품은 세상에 나오면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한다. 수많은 작품이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그 과정을 거쳐서만 연출자와 제작집단은 더 힘있게 ‘반영의 현실로서의 다큐멘터리’를 바꿀 수 있다. 그 후에야 비로소 다큐멘터리가 반영하는 현실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진정 다큐멘터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여기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______________________ 글 / 김신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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