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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04. 3월 30일자
외국인 노동자 전용병원 만든다
지난달 14일 자정 무렵 서울 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중국동포 노동자 김순녀(62)씨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동료들은 119 구급차를 불렀다. 그러나 그녀를 차례로 맞이한 3개 병원은 ‘의료보험도 안 되고 돈도 없다’는 말을 듣고 모두 진료를 거부했다. 나흘 뒤 김씨는 심장질환과 뇌경색으로 숨졌다.
방글라데시인 샤둘 이슬람(33)씨는 지난해 6월 16일 자취방에서 아픈 배를 움켜쥐고 쓰러졌다. 동료들의 도움으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다발성 장기부전과 패혈증으로 다음날 사망했다. “조금만 일찍 병원에 왔었더라면….” 담당 의사는 땅을 쳤다. 서울 화양동 플라스틱 사출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의료보험도, 돈도, 도움을 청할 곳도 없는 불법체류자였다. 그래서 병원비를 아끼려고 아픈 것을 참고 일했다고 동료들은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의 집은 최근 5년간 의료문제로 상담하거나 무료진료를 받은 외국인 노동자는 6만6516명, 질병이나 산재사고로 숨진 외국인 노동자는 1059명이라고 밝혔다. 매년 20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치료받지 못한 채 사망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이웃 네트워크’와 참여단체인 ‘외국인 노동자·중국 동포의 집’(대표 김해성 목사)은 돈이 없어 제때에 치료받지 못해 죽어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전용 병원’을 설립키로 했다. 이 병원은 오는 5월 중 서울 가리봉 1동에 29개 병상 규모로 개원한다. 김해성 목사는 “국내의 외국인 노동자 50여만명 중 의료 사각지대에 있거나 산재사고 위험이 있는 12만명을 대상으로 최소한의 비용 또는 무료로 진료할 예정”이라며 “병원 설립에 필요한 중고 의료 기자재와 의약품, 자원봉사자, 후원금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28일 서울 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중국 동포 전영남(77)씨 가 고인이 된 아들을 위해 기도하다 일어서며 통곡하고 있다. 이선희(왼쪽) 목사도 아들사진을 들고 있는 전씨 팔을 잡고 위 로하며 끝내 울고 말았다. 사진 기자도 함께 울었다. 전씨 아 들 명호(33)씨는 작년 7월 공장 내 폭발사고로 치료를 받다가 숨졌으나 병원비와 영안실비가 없어 아직 시신도 수습하지 못 하고 있다.
[우리이웃] 감기가 단속보다 더 두려운 외국인 노동자들
맹장염 폐렴 등 가벼운 질병도 치명적… 5년새 1059명 숨져
영안비 없어 시신조차 못찾아… 유족 없는 유골, 창고에 보관
중국, 네팔, 방글라데시, 베트남, 태국, 스리랑카, 인도…. 각기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일하러 왔다가 사망했다. 고국의 유족과 연락이 되지 않았거나, 연락은 됐지만 돈이 없어 유족이 시신조차 찾아가지 못해 이곳에 남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잔해(殘骸)다.
그러나 이들은 그래도 나은 경우다. 병원비나 영안실비가 없어서 시신을 찾지 못해 장례도 치르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들도 20명이 넘는다고 외국인 노동자의 집측은 밝힌다.
배충용씨. 그는 25살의 청년이었다. 중국 길림성에서 1200만원을 주고 작년 1월 16일 조부모의 고향 한국에 왔다. 그러나 그는 석 달 후 감기증세로 입원했다가 9일 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변했다. 작년 4월 27일 그는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할 때까지 서울의 한 여관에서 일용직 막노동을 했다. 처음엔 가벼운 감기 몸살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아픔을 참고 또 참아 입원 당시엔 소변을 볼 수 없고, 폐기능이 거의 마비될 정도였다.
병원측은 당시 기승을 부리던 사스(SARS) 환자로 의심, 중환자실로 옮겼다가 격리시켰다. 유족들은 “감기 증세로 입원했다가 병원측이 9일간 방치하는 바람에 고열에 시달리면서 폐렴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정확한 사 망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재작년 1월 필리핀 출신 로드리고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숨졌다. 동료들에 따르면 폐결핵을 앓은 경험이 있는 그는 불법체류자라는 신분 때문에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자 폐결핵이 재발했는데도 병원비를 걱정해 병원에 가지 않고 며칠 동안 방안에서 누워 지냈다. 기력이 떨어진 뒤 동료들의 신고로 119구조대에 의해 병원에 실려 갔지만 그는 다음날 폐결핵 합병증으로 숨졌다. 서울 외국인 노동자의 집 소장인 이선희(李善姬·47) 목사는 “만약 로드리고가 결핵 재발 초기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면 건강하게 일하다가 귀국해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흑룡강성이 고향인 김원섭(46)씨는 작년 12월 9일 새벽 서울 혜화동 대로변을 걷다가 현기증과 두통, 추위를 호소하면서 전화로 경찰에 도움을 청했다. 그는 작년 말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강제추방 위기에 몰려 일자리도 잃고 돈도 없었다. 합숙소에서 한끼 2000원짜리 밥을 사 먹을 능력도 없어 이틀 동안 굶으며 거리를 배회하던 참이었다.
그날 새벽 김씨는 얼어죽은 모습으로 혜화동 길거리에서 발견됐다. 그의 핸드폰에는 112 전화 13차례, 119전화 1차례 통화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부인 신금순(44)씨는 “어떻게 대한민국 경찰이 그렇게 아픔을 호소하는 데도 도와주지 않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작년 7월 중국 동포로 한국에 와 보일러 공장에서 청소를 하던 중 질식해 숨진 아들(박형남·47)을 찾으러 온 어머니 한순애(70)씨, 작년 7월 공장 가스폭발 사고로 아들(전명호·33)을 잃은 전영남(77)씨, 작년 3월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가 뇌출혈로 숨진 남편(박석·53)을 잃은 아내 김옥성(52)씨, 칼에 47곳을 찔려 숨진 한족(漢族) 왕영지(22)씨의 언니 왕영연(27)씨….
지난 28일 오후 서울 가리봉1동 ‘외국인 노동자와 중국 동포의 집’(대표 김해성 목사) 1층 상담실엔, 이렇게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왔다가 어처구니 없이 숨진 시신을 돈이 없어 찾아가지 못하는 중국동포와 외국인 노동자 유족 10여명이 모여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
지난 92년부터 외국인 노동자들과 애환을 함께하고 있는 김해성 목사는 “지금까지 직접 시신을 수습하거나 내 손을 통해 죽은 후 귀국한 외국인 노동자만 1200여명에 이른다”면서 “이들 중 300여명은 감기나 맹장, 폐렴 등 초기에 치료하면 금방 나을 수 있는 가벼운 질병으로 사망한 경우였다”고 말했다.
▲ '죽어서도 고국에 가지 못한'외국인 노동자 60여명의 유골함이 경기도 성남 외국인 노동자의 집 지하 창고에 안치돼 있다.
“3D 떠맡은 외국인 근로자 건강만은 책임져야”
‘외국인 노동자의 집’ 전용병원 5월 개원
김해성 목사등 앞장, 年12만명 혜택볼 듯
지난 28일 오후 서울 가리봉1동 ‘외국인 노동자·중국 동포의 집’ 2층 무료 진료실. 20평 남짓한 공간엔 자원봉사를 나온 의사와 간호사 20여명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진료하고 있었다. 진료실과 계단·복도에는 60여명이 줄지어 진료를 받거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재작년 9월부터 무료 진료를 해온 강훈치과 원장 강정훈(姜政勳·41)씨는 “매주 일요일마다 이곳에서 무료진료를 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20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어느 순간 ‘나는 정말로 헛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고요.” 김해성(金海成·43) 목사는 전용병원 설립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외국인 노동자들을) 죽여서 귀국시키면 뭐하나. 질병 발생 초기에 잘 치료해서 돈도 벌게 하고 한국 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은가.”
김 목사가 12년 전 세운 ‘외국인 노동자의 집·중국 동포의 집’은 현재 경기도 성남, 서울 구로구, 경기도 안산과 광주, 양주 등 5개 지역 센터를 두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무료 진료를 하고 있다.
그 사이 김 목사는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시신을 직접 수습해 장례를 치르거나 본국 송환을 도왔다. 그의 손을 거쳐간 외국인 노동자만 1200여명. 매년 100명 가량의 ‘죽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뒷바라지한 것이다.
김 목사는 이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현재 인연을 맺고 있는 의사·간호사들과 함께 외국인 근로자들을 제대로 진료해줄 전용병원을 설립하기로 했다.
병원을 열 장소로 한신교회 이중표 목사의 도움으로 외국인노동자의 집 서울센터 바로 옆에 있는 6층 건물의 60여평을 임차했고, 추가로 60평을 더 얻을 계획이다. 병원의 원장은 소아과 전문의 이완주(李琓柱·여·59) 박사가 맡기로 했고, 함께 일할 자원봉사 의료진을 찾고 있다. 이들은 오는 5월 초에 개원한다는 목표로 건물 리모델링과 의료 기자재 구입을 추진하고, 자원봉사자도 모집하고 있다.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 실태 조사를 위해 방한한 중국사회과학원 정신철(鄭信哲) 박사는 “한국에 온 중국교포와 외국인들에게 잘 대해주는 것이 그 나라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과 노동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초대 병원장을 맡을 이완주 박사는 “이번에 세우는 병원은 아마도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전용병원으로는 세계 최초일 것”이라며 “한국인이 하지 않는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건강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인도네시아 출신 보나르 파사리브(28)씨는 “돈 없어 병원 갈 꿈도 꾸지 못했는데, 우리를 위한 병원이 생겨 정말 기쁘다”며 “한국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 28일 오후 서울 외국인 노동자의 집 지하‘인도네시안 교회’에서 인도네시아 출신의 젊은 노동자들이 예배 후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친교의 시간’을 갖고 있다. 돈이 없어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했던 이들은 5월 외국인 노동자 전용병원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활짝 웃었다./최순호기자 hangsu@chosun.com
이들을 도우려면…
죽기 직전까지 돈이 없어 병원도 가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이들을 위한 전용병원을 설립하려면 아직도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29일 현재 병원이 들어설 30평짜리 방 두 개를 얻었고, 추가로 60평을 얻기 위해 교섭 중이다. 그러나 텅 빈 공간을 채우려면 앞으로도 1억5000만원대의 장비와 돈이 필요하다.
국내와 해외의 뜻있는 분들이 진찰대와 X-ray기, 수술장비 등을 보내주기로 약속했지만, 아직도 의료기기와 의약품이 턱없이 부족하다. ‘외국인 노동자의 집’은 부족한 부분을 자원봉사자와 후원금으로 충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선은 건물을 리모델링해 진료실과 입원실 등을 만드는 자원봉사자, 외국인들을 진료할 의사와 약사·간호사 등 자원봉사 의료진이 더 필요하다. 한국에서 언어장벽을 느끼지 않고 고통을 호소할 수 있도록 외국어를 잘 하는 자원봉사자도 필요하고, 병원 홈페이지와 나라별 외국인 노동자들의 홈페이지 구축에도 도움이 필요하다.
매주 일요일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무료 진료해온 박동우(朴東祐·47)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한국에서 질병으로 고통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후원금이나 중고 의료 기자재 등 무엇이든 도움이 절실하다”고 했다.
자세한 문의사항은 ‘외국인노동자·중국동포 병원설립추진위원회’로 하면 된다. 전화 (02)863-6622, 홈페이지 http://www.migrantworkers.org
▲ 지난 28일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서 무료 진료를 하던 의사 박동우(앞줄 왼쪽부터)씨, 침구사 김동례씨, 외국인 노동자 전용병원원장 내정자 이완주씨, 구로구 의사회장 홍유선씨 등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이 잠시 포즈를 취했다. 이들은 외국인 노동자 전용 병원에서도 계속 자원봉사할 예정이다./최순호기자
[우리이웃] 외국인 노동자 50만명 체류 ‘아파서 고통’5년새 두배 늘어
노동부에 따르면 2월 말 현재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는 40만6271명. 이중 합법 체류자는 26만6764명, 불법체류자는 13만9507명이다. 최근 정부의 불법체류자 단속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법 체류자 비율이 34.3%에 달하고 있다.
여기에 고용허가제에 따라 올해 새로 입국하기로 돼 있는 합법 근로자 7만9000여명과 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 밀입국자 4만~5만명을 더하면,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5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불법 체류자와 밀입국자들은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동안 한국에서 죽어간 외국인 노동자들도 대부분 이들이다. 이들은 불법체류자 신분이라 의료보험 혜택이 없고, 병이 났을 때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한국인보다 몇 배 비싼 ‘일반 진료’를 받아야 한다.
더구나 이들은 한국에 올 때 1000만원 안팎의 빚을 지고 온 터라, 웬만해선 큰 돈이 드는 일반 진료를 받을 용기를 내지 못한다. 의료 관련 문제로 지난 5년간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 상담을 신청하거나 무료진료를 받은 외국인 노동자는 6만6516명. 1999년 8970명에서 2000년 1만451명, 2001년 1만3278명, 2002년 1만5490명, 2003년 1만8327명으로 급속히 늘고 있다.
이들 가운데 1059명은 5년 사이에 숨졌다. 매년 154~269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의료 사각지대’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꿈을 찾아온 한국에서 숨진 것이다.
이처럼 한국에서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적인 약점 때문에 당하는 멸시와 차별, 임금 체불, 산업재해와 사기·폭행 등 비인간적인 대우는 급기야 한국에 대한 분노와 반한(反韓) 감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태국의 ‘아키아’라는 반한 단체가 한국의 항공기를 폭파하겠다고 협박한 일, 네팔 여행 중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서 일한 경험이 있는 현지 노동자로부터 ‘이 XX놈아, 죽어볼래’라고 뭇매를 맞은 일 등은 반한감정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경우다.
▲ 성남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서 방글라데시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이 TV를 보는 가운데(거울 속) 두 명이 식사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은 돈이 없어 병원을 가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인들, 약자와 함께 사는법 알았으면…”
병원설립 참여한 獨 바루트 목사
“한국인들은 외국에서 온 사회적 약자(弱者)들과 함께 사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하듯 통일된 후에는 북한의 어려운 사람들을 다룰 겁니까?”
외국인 노동자 전용병원을 준비 중인 사람들 중에는 벽안(碧眼)의 독일인도 있다. 요르그 바루트(Joerg Baruth·44) 목사. 통독 이전의 동독 지역 포츠담이 고향이다.
바루트 목사는 “유럽이나 미국의 선진국에서 온 외국인은 잘 대해주고, 흑인과 동남아인, 심지어 중국 동포들도 멸시하고 학대하는 일부 한국인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면서 “지금은 7년 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앞으로는 지금보다 외국인 근로자들을 더 잘 대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몇 년 사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동남아를 여행하다가 뭇매를 맞거나 사망한 사건들을 떠올리며 “더 늦기 전에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인간적인 대접을 해 한국인의 이미지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루트 목사는 지난 97년 2월 아내, 세 자녀와 함께 서울에 왔다. 가장 가슴 아픈 기억도 서울에 온 직후에 일어났다.
“처음 한국에 온 뒤 2년 가까이 아이들이 매일 독일로 돌아가자는 겁니다. 이유는 한국 아이들이 돌멩이를 던져 머리가 깨지거나 얼굴에 침을 뱉는 등의 모욕을 당했기 때문이죠.” 그는 그때 자녀들에게 “독일에서도 극우파 백인 우월주의자들 때문에 봉변을 당하는 외국인이 더러 있다”고 겨우 설득했다고 한다.
그는 60년대 말 한국의 간호사와 광부들도 독일에 건너와 외국인 노동자 생활을 한 사실을 떠올렸다. 당시 독일은 한국 정부와의 약속 및 독일노동법에 따라 한국인 노동자들에게도 독일인과 똑같은 임금, 똑같은 보험혜택, 똑같은 휴가를 주었다고 한다.
바루트 목사는 “한국 정부가 한국 경제의 필요에 의해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어려운 일을 시키면서도 이들을 보호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겠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에는 반한파(反韓派)가 아닌 친한파(親韓派)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와 민간 부문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루트 목사는 지난 7년간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영어 예배와 감옥에 갇힌 외국인 노동자들을 상담했다. 이 과정에서 만난 수천명의 외국인 노동자들 중 60% 이상이 ‘체불임금’을 해결해달라고 호소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불법체류자’라는 낙인 때문에 죽어라고 일만 하고 돈을 못 받는다면 그것은 제도적으로 새로운 접근을 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 7년여 동안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돌보고 있는 독일 출신 요르그 바루트목사 (왼쪽에서 두번째)가 나이지리아 출신 노동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첫댓글 반가운 소식입니다 하루속히 이루어 져서 모든 이주노동자가 편히 치료를 받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이주노동자 소식란에 이미 올렸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