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는 실수령액 올리고 4대 보험료 아끼고
사용자는 비용 줄이고, 노무법인은 자문료 수입
얄팍 꼼수로 본인 복지배제는 물론 정부재정 잠식
근로감독 죄고 조세·노동행정 묶어 탈법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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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7일 부산노동권익센터에서 개최한 간담회에 참석했다. ‘가짜 3.3 노동자 실태와 문제점, 개선 방안’을 주제로 한 간담회였다. 분명 노동자이지만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 3.3%를 떼기에 개인사업자, 즉 사장으로 위장된 노동자를 ‘가짜 3.3 노동자’로 부른다.
사실 대리, 퀵서비스, 택배,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가 전형적인 가짜 3.3 노동자이다. 대리운전 노동자는 서로 간에 우스갯소리로 ‘사장님’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래도 특수고용 노동자는 노동자인지 사용자인지, 법정에서 다툼이라도 진행하고 있다. 최근 가짜 3.3 노동자 문제는 특수고용 노동자에서 그치지 않고, 도저히 ‘사장님이 될 수 없는’ 노동자에게까지 사업소득세 3.3%를 공제하고 있기에 심각하다. 어떻게든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진짜 사용자가 법규범·법 집행의 허점을 악용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6과 3.3, 편의점 알바가 사장님과 동업 관계가 되는 숫자의 요술
간담회에서는 최초로 가짜 3.3 노동자 실태를 전면 조사한 2022년 권리찾기유니온의 실태조사 자료를 기초로 다양한 사례가 언급됐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쿠팡의 다단계 인력하도급 구조와 만연한 가짜 3.3 노동 실태를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법무법인 시민’의 이종훈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부위원장)는 기조 발제를 통해 가짜 3.3 노동자를 규제하기 위한 입법 과제를 발표했다.
필자는 쿠팡 노동자와 비슷하게 도저히 사장이 될 수 없는데 가짜 3.3 노동자로 둔갑한 사례를 얘기했다. 편의점 단시간 노동자의 사례와 반월·시화공단에서 일하는 일용 파견노동자 경우이다. 필자가 속한 연구소는 2020년부터 ‘경기도 노동권익서포터즈’ 사업의 일환으로 경기도 지역 프랜차이즈 단시간 노동자 실태조사를 진행해 왔다. 2023년 처음 조사된 가짜 3.3 노동자 여부를 묻는 질문에 사업 참여 단시간 노동자 8482명 중 19.6%가 사업소득세를 공제한다고 밝혔다. 노동권익서포터즈 사업에 참여한 단시간 노동자 5명 중 1명은 개인사업자인 셈이다. 세금 형태만 보면 편의점 알바 노동자는 고용 관계가 아닌, 편의점 사장님과 동업 관계이다.
실수령액 올리고 4대 보험 아끼려는 노동자의 고육지책
똑같은 편의점 브랜드인데 어떤 곳에서 일하는 단시간 노동자는 ‘노동자’이고, 또 다른 곳은 ‘개인사업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권익서포터즈가 조사를 진행하면서 확인한 사항은 청년층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인사업자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30대와 40대 특히 여성 노동자는 실수령 임금 극대화를 위해 암묵적으로 개인사업자 계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소득세의 최저 세율이 6%이기에 최소한 임금의 2.7%를 아낄 수 있고, 4대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돼 실수령액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비단 단시간 노동자뿐만 아니다. 필자가 만난 시화공단 제조사업체에서 일하는 일용파견 노동자의 임금명세서를 보면 사업소득세 3.3%를 떼거나 아예 세금 자체를 떼지 않고 있다. 불법 인력하도급 업체가 세금을 탈세하고 사회보험료를 착복한 것이다. 사업소득세 원천 징수는 부가가치세 착복과 함께 ‘업체’의 주요 탈세 수입원이기도 하다. 일용파견 노동자는 인력하도급 업체와 사용사업체가 지시하는 대로 일을 하고 있기에 개인사업자일 수 없지만, 아래 임금명세서는 우리 주변에 가짜 3.3 노동자가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사용자는 비용 절감, 노무법인은 컨설팅비, 모두가 눈앞의 이익
분명 노동자임에도 가짜 3.3 노동자가 왜 이렇게 우리 주변에 많은 걸까? 가짜 3.3 노동자 문제는 최근에 등장한 것이 아닌, 한국 노동시장에 역사적으로 구조화된 전근대적 고용 관행이 잔존하면서 나타난 문제이다. 필자가 이전 글에서 언급한 종업원 규모에 따른 근로기준법 일부 조항 미적용처럼 가짜 3.3 노동자 문제 또한 자영자성이 혼재된 전근대적 노동시장의 고용 관행이 지금까지 잔존해 있기 때문이다. 제화, 봉제 업종의 객공제가 대표적인데 제화, 봉제 업종 노동자는 지금도 ‘사장님’으로 불리며 일하고 있다. 이러한 고용 관행이 단시간, 일용파견 등 주변부·취약노동자 층에까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어 지금에 이른 것이다. 여기에는 ‘사장’님을 상대로 비용절감 방안을 영업하는 일부 노무법인과 세무법인 등도 한 역할을 했다. 학원 강사를 비롯해 주변부 직종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노동자를 3.3% 세금을 제하는 개인사업주화함으로써 사용자는 비용을 절감하고 하루하루 임금이 중요한 노동자에게는 실수령액을 높이는 방안을 컨설팅해 주고 돈을 벌어왔던 것이다.
가짜 3.3 노동자는 전형적인 편법·탈법·불법 고용이다. 강압에 의한 것이든 유인에 의한 것이든, 실질에서는 고용 관계임에도 사업자 간 계약 관계로 위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부여해야 할 최소한의 법적 보호를 회피할 수 있다. 실제로는 5인 이상 사업장임에도 개인사업자화함으로써 근로기준법이 전면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으로 만드는 무시 못 할 이점도 있다. 노동당국 또한 외형상의 사업자 간 계약 관계라는 형식을 이유로 관리·감독을 회피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가짜 3.3 노동자이기에 이를 바로잡아 달라는 노동자 요구를 오히려 사업자 간 계약 관계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가짜 3.3 노동자 문제가 야기하는 노동법적 보호로부터의 배제도 문제이지만 노동자에게 부여되는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복지 체계로부터의 배제도 문제이다. 특히 국민연금이 중요하다. 국민연금은 기초연금과 함께 노인복지에서 핵심이다. 지금 국민연금을 내지 않음으로써 미래 노인복지 체계에서 배제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노인 빈곤율이 OECD 1등인 한국에서 가짜 3.3 노동자의 확산은 미래의 노인 빈곤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
노인 빈곤 악화 우려 넘어 재정 악화로 인한 복지 체계 위협
노동자 개인의 복지 배제를 넘어서 가짜 3.3 노동자 문제는 거시경제적으로도 문제이다. 미국 클린턴 정부에서 노사관계 개혁 보고서를 작성한 던롭(Dunlop)은 한국의 가짜 3.3 노동자와 유사한 독립 도급계약(Independent Contractor)의 확산이 노동법적 보호를 회피하려는 고용 관계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문제로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회보험료 미납에 따른 사회안전망 재원 감소와 사회보험 미가입자 증가로 비롯될 미래의 복지 부담 증가, 근로소득세보다 낮은 세율의 세금 납부로 인한 중장기 재원 감소 등 정부의 재정 여력을 악화시키고 사회복지 체계의 토대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가짜 3.3 노동자 문제는 한마디로 노동자 보호라는 사용자 부담 회피를 넘어서 탈세로 정부의 재정 여력을 잠식하는, 악의적 고용 관계인 것이다.
가짜 3.3 노동자 확산 방지와 근절을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10월 17일 간담회에서 이종훈 변호사는 사회보험제도 적용 대상 확대, ‘일하는 사람’ 일반에 대한 보호 확대, ‘근로자’ 오분류 가능성을 차단하는 방안 등 다양한 입법 과제를 제시했다. 노동자가 개인사업자로 되는 것을 법을 통해 막겠다는 것이다. 입법을 통한 가짜 3.3 노동자 규율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지만 시일이 소요될 수밖에 없기에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을 강화하자는 주장도 지속되어 왔다. 근로감독관 1명이 3000개 넘는 사업체를 담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개별 노동자의 고용 관계와 임금명세서를 확인하면서 가짜 3.3 노동자 문제를 관리·감독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가 지자체와 함께 매년 진행하는 유료직업소개업체 지도·감독, 무허가 파견사업체 관리·감독을 보면 알 수 있다. 매년 관리·감독을 하고 있지만 무법천지인 일용파견 노동시장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불법 탈법의 노동 현장에 국세청이 적극 개입해야
근로감독 강화보다도 용이하면서 당장 시행할 수 있는 구조적 방안이 있다. 바로 국세청 조세행정 체계와 노동행정의 결합이다. 국세청은 모든 과세와 징세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핵심 국가기구이다. 던롭(Dunlop) 또한 노사관계 개혁 보고서에서 위장 자영업자 식별에 미국 국세청(IRS)이 노동부와 함께 핵심 역할을 해야 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실제 캐나다, 핀란드, 미국, 영국,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OECD 주요 국가들은 조세행정 체계·자료를 사회보험 및 노동행정 체계와 결합해 활용하고 있다. 노동행정 당국이 각종 조세자료를 활용해 가짜 3.3 노동자를 식별하고 규제하는 것이다. 한국도 국세청의 조세행정을 노동행정과 결합한다면 고질적인 가짜 3.3 노동자 문제의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
2023년 1월, 권리찾기유니온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국세청은 고용노동부와 협조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최소한 더 이상의 가짜 3.3 노동자가 확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오로지 과세 및 징세에만 머무르는 국세청 역할의 전향적인 변화가 필요하며, 이를 고용노동부가 견인해야 한다. 근로계약 관계인데도 3.3% 사업소득세를 원천징수하거나 아예 세금 자체를 내지 않는, 사용자의 불법적인 탈세 현장을 팔짱낀 채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국세청의 직무 유기가 아니겠는가?
* 이 글은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