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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강원아동문학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갑창
-서평-
민현숙 동시집 ‘악어 타고 으쓱으쓱’
전 상 기
(주)학산문학사에서 2005년에 펴낸 민현숙 작가의 동시집 ‘악어 타고 으쓱으쓱’에 담은 시들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조망해 본다.
민현숙 작가가 문단활동을 해온 기간은 30여 년 안팎이지만 오랜 습작기를 더하면, 그가 글쓰기를 하면서 살아온 세월은 그보다 훨씬 길어서 이제 그의 작품세계도 완숙단계에 이르렀다.
‘……변화와 새로움을 빠르게 읽어내는 내 눈과 귀와 가슴이 있는 한 나는 결코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아이들이 즐거운 놀이와 말의 성찬에 나를 초대해 준 것처럼, 나 역시 내가 가꾼 시의 꽃밭에 아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머리말- 부분
동시집 ‘악어 타고 으쓱으쓱’의 서문에서 자신이 밝힌 것처럼 그의 일상이 시의 세계요, 자나 깨나 시쓰기로 일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로는 정제된 보석처럼 노래를 다듬고, 때로는 할머니의 화롯가 얘기처럼 세상살이 이모저모를 실타래처럼 정겹게 풀어내기도 하고, 마음속에 새겨둔 영상을 예쁜 그림으로 바꾸어 자신의 시와 동화에 삽화로 곁들이기를 좋아한다.
그의 시 속에는 향수어린 전원이 있는가 하면, 현대문명의 도시가 있고, 어린 친구들이 있고, 엄마 아빠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등장하여 정겨운 가족애를 자아낸다. 그리고 언제나 고난 속에서 꽃피는 인간애를 소중히 여긴다. 생활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는 삼라만상이 그의 문학의 배경이며, 소우주인 것이다.
시의 껍질과 핵
모든 생물의 번식 본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핵(胚芽)인 것처럼 시의 형태도 분석해 보면 주제라는 핵을 중시한다. 문학의 형식, 내용, 표현 방식 등 논의되는 모든 문제들이 결국 이르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주제를 어떻게 드러내어 독자들을 감동시키느냐에 귀결된다. 모든 생물의 배아(핵)가 일정한 기간 동안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자양분을 공급하는 영양원을 둘러싸 보호하듯이 문학작품도 주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태반과 같은 배경이 필요하다.
서로 마주앉아/ 불러줄 이름이 없다면/ 얼마나 쓸쓸할까?/
그래서 천문학자는/ 우주를 헤맨 끝에 찾아낸/ 새로운 별에게/
맨 먼저 이름을 지어준다.//
우리네 엄마 아빠가/ 태어난 아기에게/ 기쁜 마음으로/ 이름을 선물하듯//
저 별은 세종대왕별/ 저 별은 유관순별/ 천문학자에 의해/
이름 없는 별 하나가 새롭게 태어난다.
-이름 없는 별 하나가- 전문
‘천문학자에 의해/ 이름 없는 별 하나가 태어난다.’ 라는 주제를 살리기 위해 그 앞부분에 ‘이름이 없으면 얼마나 쓸쓸할까/ 세상에 태어난 아기에게/ 기쁜 마음으로 이름을 선물하듯’이라는 배경을 설정해 놓고 있다. 이 부분 때문에 주제가 신선하게 돋보이고, 독자들에게 감동으로 다가가 개개인의 분수에 맞게 삶의 이치에 눈뜨게 해 준다. 이 시에서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는 결국 ‘이름 없는 별 하나가 새롭게 태어난다.’이다. 그러나 밑도 끝도 없이 그 한 구절만 제시한다면 지나친 비약으로 이해 전달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주제를 부각시키기도 어렵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주제와 그 주제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胎盤)이 어떻게 조화하느냐에 따라 시의 품격이 달라진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비단 이 작품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지만, 한 예로 들어본 것이다.
세상 만물의 독특한 소임과 가치 발견
꽃이라면 먼저/ 향기롭고 예쁜 꽃만 떠올렸었지/ 개나리 목련 수수꽃다리……//
예쁘지는 않지만/ 푸른 덩굴에/ 흰나비처럼 앉아 있는 완두콩 꽃/
언제 피었었는지도 모르게 피었다가/ 시들어 툭 떨어지는 오이 꽃/
잎사귀 뒤 몰래 피는 보랏빛 가지 꽃// 우리가 까무룩 잊을 무렵/
밥상 위 꽃으로 다시 피어난다./ 맛있는 완두콩밥으로/ 오이냉국/ 가지무침으로.
-예쁘지는 않지만- 전문
이 시에서는 예쁘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관심 밖이던 완두콩 꽃, 오이 꽃, 가지 꽃들이 그 꽃마저 져버리고 까맣게 잊혀져갈 때쯤 밥상위에 다시 맛있는 ‘완두콩밥’, ‘오이냉국’, ‘가지무침’으로 다시 피어나는 부활의 꽃으로 그려져 있다. 이 세상 어떠한 하찮은 존재라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가치론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주변으로부터 조명 받지 못하는 소외된 존재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그것은 다만 그렇게 보는 시각의 기준일 뿐, 본질적으로 모든 사물의 가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란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민현숙 시의 특징
이전에도 그런 범주를 거쳐왔을 테지만, ‘악어 타고 으쓱으쓱’에 담겨진 시들의 특징은 다음 두 가지로 크게 요약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첫째는 생활 속에서 부딪는 모든 사물에서 자유자재로 시의 소재를 잡아내는 밝은 마음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소재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일이 없고, 비유의 마법으로 환치해내는 재주가 놀랍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마음의 눈을 통해 시에 끌려나온 모든 소재에 적절한 의미를 부여하는 창조적인 마술에 능란하고, 또한 그것들을 감쪽같이 환치시키는 비유의 마법을 깨우쳤다는 말이 된다.
남다른 마음의 눈으로 일상의 사물 속에 숨겨져 있는 참신한 소재들을 불러낸 시들을 꼽아보자.
‘이름 없는 별 하나가’, ‘예쁘지는 않지만’, ‘해바라기 꽃’, ‘복실이만의 보물’, ‘내겐 오빠가 있다’, ‘엄마 생각’, ‘이슬 내린 아침’, ‘다 알고 있었나 보다’, ‘벌레’, ‘달은’, ‘보물찾기 중’, ‘달팽이’, ‘엄마가 된 예삐’, ‘들꽃’ 등을 들 수 있겠다.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이름을 붙여주듯이 새로 태어난 별에게도 이름을 붙여주는 사람, 별은 천문학자에 의해 새로 태어난다든지, 완두콩 꽃, 오이 꽃, 가지 꽃이 예쁘지는 않지만, 밥상 위에서 완두콩밥으로, 오이냉국으로, 가지무침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환을 재치 있게 예쁜 시로 둔갑을 시켜놓는다.
느린 걸음으로/ 지구 둘레를 도는/ 둥근 바퀴다.//
구르고 또 구르고/ 쉼 없이 굴러가다 보면/ 어느 새 바퀴가 다 닳아/
반달로 가고 있다./ 눈썹 같은 초승달로 가고 있다.//
오늘은 바퀴를 새로 갈아 끼웠는지/ 하늘 한가운데 둥근 달이 떴다./
눈부신 보름달로 떴다.
-달은- 전문
위 시 ‘달은’에서도 달을 끊임없이 굴러가는 바퀴로 보고, 일정한 주기로 닳은 바퀴를 갈아 끼우듯 반달을 둥근 보름달로 떠오르게 하는 자연의 섭리를 우리네 생활 속의 일면으로 파악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통 사람들이 찾아내지 못하는 보물들을 일상 속에서 찾아내어 적절한 의미 부여를 하는 일이 민현숙의 시쓰기 원리인 것이다.
또한 그것들을 직설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일단 비유로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모든 시들이 비유요, 상징이라고 할 만큼 비유는 시를 표현하는 기법의 시작이요, 끝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시에서 이 비유를 빼어버리면 흑백사진을 보는 것처럼 단조로울 것이다.
‘리모컨과 말하는 이야기책’, ‘오월의 끝’, ‘허수아비와 참새’, ‘울음보’, ‘아빠 우산’, ‘꼬마 기차’, ‘물뿌리개’, ‘부채가 한 일’ 등 태반의 작품들이 적절한 비유로 되어있다.
어둠이 천천히 내려와 쌓이는 초저녁/ 밤이 오길 기다리던 무논의 개구리가/
일제히 목청 높여 노래를 불렀다./ 아직 잠자리에 들지 못한/ 뻐꾸기 한 마리/
이따금 박자를 맞추듯/ 개구리들의 노래잔치에 끼어들었다.//
아카시아나무도 무르익은 잔치에/ 혼자 빠질 수 없었던지/ 어둠이 고이는 들을 향해/
쉴 새 없이 향기를 뿜어냈다.
-오월의 끝- 전문
‘오월의 끝’에서 ‘무논의 개구리, 잠들지 못하는 뻐꾸기의 절규, 뭉글뭉글 밀려오는 아카시아 향’들이 어우러진 오월의 일렁이는 향수(애수) 같은 분위기, 바로 이 밤이 지나면 멀리멀리 아주 가버릴 것 같은 안타까움이 타들어가고 있는 그런 오월의 마지막 자락에 매달리는 애절함을 느끼게 한다. 마치 박목월의 ‘윤사월’에서 ‘문설주에 귀대이고 꾀꼬리 소리를 엿듣고 있는 눈먼 처녀의 마음 같은 분위기가 압권이다.
며칠 전 술이 들어있던/ 조그만 병이/ 평소 말이 없고 무뚝뚝한/
울 아버지 말문을 열어주던/ 그 작은 술병이/ 오늘은 우리 식구/
다섯 사람의 눈길을 온통 잡아끄네요.// 병을 비워내고/
누군가 꽂아놓은 줄장미 한 송이/ 색 바랜 벽지도/ 낡은 커튼도 그대로인데/
바라보는 우리 가족 마음을/ 둥둥둥 둥둥둥/ 온통 취하게 하네요.
-소주병과 줄장미- 전문
위의 ‘소주병과 줄장미’에서는 알코올의 취기와 꽃향기의 중의적인 비유가 참신하다.
‘허수아비와 참새’에서는 허수아비의 머리 위를 떼 지어 날아가며 소란을 피우는 참새떼를, ‘허수아비다, 아니다’를 가지고 입씨름하는 걸로 재치있게 비유하고 있다.
넘칠 듯 말 듯 살랑살랑/ 둑을 때리던 봇도랑물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와르르 왈칵 쏟아지네요.// 안으로 괴는 슬픔을/ 저 혼자 끌어안고/
남모르게 끙끙 앓더니/ 태산 같이 태산 같이 소리치네요.
-울음보- 전문
위 시 ‘울음보’에서는 ‘울음보’를 ‘터지는 봇도랑물’과 ‘쏟아지는 거대한 폭포’에 절묘하게 대비시켰다.
이렇게 그의 비유 표현기법은 가히 마술이라 할 만큼 뛰어나다.
원숙한 시쓰기
민현숙 시인은 작품을 건져내는 소재의 바다가 남달리 깊고 넓고, 그 소재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어내는 형상화 기법도 원숙하다. 게다가 비유의 재주 또한 가히 묘기라 할 만하여 한 마디로 그의 시쓰기는 원숙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글은 운문에서 이야기로, 이야기에서 다시 운문으로 분망하게 넘나들면서 이야기도 시처럼, 때론 시도 이야기처럼 깜찍하고 재치 있게 풀어내어 정갈스럽다.
등단 초부터 그의 시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왔지만, 지금에 이르러 소재를 끌어내는 시각도 훨씬 참신해졌고, 시어의 선택과 언어의 직조술 또한 아주 정교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것이라 믿는다.
-한국아동문단에 전설이 된 한 송이 꽃-
민현숙의 문학세계
금년 1월 17일 홍천 예술인가족의 일원이었던 홍천문협의 민현숙 작가가 타계했다. 그는 고향인 홍천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으나 중앙문단이 더 큰 무대였다. 1989년에 강원일보와 소년중앙일보 신춘문예 童詩部門으로 화려하게 등단하여 30여 년간 동시와 동화를 끊임없이 쓰면서 어린이들의 꿈동산을 가꾸면서 그 불꽃같은 삶을 남김없이 소진한 것이다. 그 別離를 애석하게 생각하며 한 작가로서의 그의 문학세계를 되새겨 보고자한다.
「선생님께 너무 많은 폐를 끼쳐드려 죄송스러웠어요.
생각하고 있는 것만큼 늘 마음이 못 미치는 제 자신에 대해 속상했구요. 이후에 선생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한다 해도 그 은혜가 너무 깊어 다하지 못하리란 무한함이 마음 안에 무거운 짐으로 자리해 와요. 즐겁고 행복한 짐이라 남들은 말할 테지만 저도 나눠주고 베풀 줄 아는 그런 마음 가뿐한 행복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예요.
당선 소식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선생님이 생각났고 작은 기쁨을 선물해 드린다는 이유만으로 가슴 벅찼어요.
등단이라는 과제 때문에 늘 쫓기는 기분으로 글을 써왔는데 좀 더 여유를 갖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게 생각돼요.
요즘은(예전에도 그랬지만) 회원 가운데 동시를 쓰고자 하는 분이 더 있었으면 그런 바람을 가져 봐요. 외톨이라 외로움을 느껴요.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끝까지 버텨내지 못하고 포기했을 거예요.
당선을 계기로 제겐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을 해요. 자부심을 갖고 더욱 열심히 글을 쓰겠어요.
선생님의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아 늘 죄송했어요.
항상 건강하세요.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 갖고 살아요.
1989. 1. 17 현숙 드림 」
등단 소회를 위와 같이 밝힌 그는 그 시각부터 촛불처럼 자신을 태우며 밤낮없이 창작에 몰두했다. 그렇게 탄생된 그의 작품들은 ‘소년중앙’을 거점으로 중앙문단에 立地를 마련하고 여러 지면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1991년 ‘계몽사 아동문학상’을 받았고, 그로부터 뼈를 깎는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992년 첫 동시집 「물 긷는 해님」을 출간하면서 ‘스스로 꽃밭을 가꿀 수 있게 해주어서 감사하다며 쉬지 않고 더욱 열심히 쓰겠노라’고 작가로서의 결의를 다지더니 이내 靑出於藍의 본보기가 되어 그를 문학의 길로 안내한 필자를 오히려 부끄럽게 만들어갔다.
1996년에는 ‘강원아동문학상’을 수상하고, 동시집「물 긷는 해님」에 수록된 아래 동시 -고르게 펴면-이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登載되면서 한국아동문단의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 -고르게 펴면-
울퉁불퉁 험한 길/ 고르게 펴면/
다람쥐랑 개미랑/ 다니기 좋겠다.//
들쑥날쑥 못난 맘/ 고르게 펴면
사람들은 모두 다/ 친구 되겠다. 」
1998년에는 동시집 「단비 쓴비」, 「바람님을 이긴 빨래집개」, 「훌라후프를 돌리는 별」등 무려 세 권의 동시집을 펴내면서 1999년에 ‘한국아동문학상’이란 열매를 수확했다.
2000년에는 ‘MBC 창작동화대상’을 수상하면서 잇따라「내 이름은 별바라기꽃」,「아흔아홉 개의 주머니가 달린 옷」,「엄마와 함께 꽃밭에서 읽는 동화」,「행복한 고양이 몽그리」등의 장편동화집을 엮어내는 왕성한 창작열을 보였다.
그 공로로 2004년 ‘강원도문화상’을 수상하였고, 이어 2005년과 2006년에 동시집 「악어 타고 으쓱으쓱」,「시계가 말을 걸어서」, 동화집「내가 따 줄게」,「안녕 심부름 로봇」,「슬픔에게」,「장끼전 두껍전」등 무려 여섯 권의 창작집을 빚어내었다. 참으로 놀라운 창작열이었다. 그 공로로 ‘한정동아동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 … 변화와 새로움을 빠르게 읽어내는 내 눈과 귀와 가슴이 있는 한 나는 결코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아이들이 즐거운 놀이와 말의 성찬에 나를 초대해 준 것처럼, 나 역시 내가 가꾼 시의 꽃밭에 아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
그는 2005년 펴낸 동시집「악어 타고 으쓱으쓱」의 서문에서 위와 같이 말하고,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지칠 줄 모르는 작품쓰기에 몰두했다. 자신의 저 깊은 곳에서 에너지의 샘이 말라가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작업에만 몰입해 있었다.
그는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물에서 자유자재로 시의 소재를 잡아내는 예리한 마음의 눈을 뜬 작가였다. 그러면서 그 소재를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비유의 마법으로 환치해내는 놀라운 재주를 보인다. 작품을 건져내는 소재의 바다가 남달리 깊고 넓고, 그 소재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어내는 형상화 기법도 원숙하다.
그의 글은 운문에서 이야기로, 이야기에서 다시 운문으로 분망하게 넘나들면서 이야기도 시처럼, 때론 시도 이야기처럼 깜찍하고 재미있게 풀어내어 그의 작품 분위기는 언제나 정갈스럽다. 게다가 자신의 작품에 곁들이는 그림 솜씨 또한 전문가의 수준이어서 자신의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완벽한 예술지향주의를 추구한 작가였다.
1974년 여중생이던 시절 어쩌다 대외 백일장에 참가하면 친구들과도 선의의 경쟁을 벌이던 일이 떠오른다. 그런 완벽주의가 그에게서 안식을 빼앗아 갔던 것 같다. 바닷물을 졸여 소금을 정제해내듯 고된 그의 창작 과정이 생명의 샘까지 말라붙게 했던 것은 아닐까. 그는 청춘을 문학에 의탁하여 수많은 동시와 동화작품을 탄생시킨 동화나라의 精靈이었다.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자신의 심신을 저며 주옥같은 작품을 완성해내곤 했다.
1958년에 출생하여 홍천여중고를 다니고, 80년대 중반부터 30여 녀간 전성기를 펼친 그는 결코 초라한 낙화로 저버린 것이 아니라, 55년의 한 생애를 강렬한 획으로 매듭을 지은 것이다.
‘어린이의 순수를 끊임없이 따라가다 길을 잃은 동화나라의 요정 잠들다.’ 이런 碑銘으로 추모의 뜻을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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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현숙 대표작품 (동시)
비 오는 날
새들은 어디에서
비를 피할까
비 오는 날
지붕 없는
새둥지
엄마는 아기가
젖지 않게
포옥 품에 넣고서
그대로 비를 맞지.
아이들은 어디에서
비를 피할까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나간 아이
엄마는 아이가
비 맞을라
들며
나며
그대로 비에 젖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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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된 민들레
노랑나비가 되고 싶은
민들레는
노랑 민들레
흰나비가 되고 싶은
민들레는
하얀 민들레
꿈이 익으면
동동 떠올라
하늘 멀리 날아가는
꽃나비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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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집게
한 번 입에 물면
놓아주지 않는다.
개구쟁이 바람이
바지가랭이를 잡고 늘어져도
꽉 문 빨래
놓치지 않는다.
조그만 게
고 조그만 게
덩치 큰
바람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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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게 펴면
울퉁불퉁 험한 길
고르게 펴면
다람쥐랑 개미랑
다니기 좋겠다.
들쑥날쑥 못난 맘
고르게 펴면
사람들은 모두 다
친구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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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얀 돌을 주워
시냇물에 던지며
돌아오는 길
돌은 이끼 돋은
물 밑에 가라앉아
하얗게 빛나네.
물 속에 그냥 두고
돌아와서도
눈 속에 그려지는
누가 저토록 빛나는 돌을
하늘 가득 던져 놓고
돌아갔을까.
-강원아도문학 38집 원고, 동시 3편-
첫 나들이
전 상 기
우렁찬 울음으로
세상을 여는 아기
해죽해죽 배냇짓으로
등불 하나 들고 오는
첫 나들이
아기가 들고 오는
등불 하나로
엄마 마음은
활짝 꽃피고
세상은
새로 아침이 열린다.
산을 보아라
매일 아침 젊어지는
산을 보아라.
단잠을 곤히 자고
힘이 솟아 일어난
힘찬 얼굴을 보아라.
연둣빛 고운 뺨
해님처럼 밝은 웃음
옹달샘에 세수한
맑은 얼굴을 보아라.
말갛게 하늘을 닦는
푸른 메아리
해님 향해 치솟는
세찬 날개를 보아라.
봄 비
봄비는 약손
손길 닿는 자리마다
파릇파릇 새살 돋고
맥박 멎은 대지에도
뜨거운 혈맥 터져
분홍빛 진달래
화들짝 깨어나고.
봄비는 약손
손길 닿는 자리마다
깨어나는 새 생명.
* 작품 노트 *
‘하늘은 별이 있어 아름답고, 땅에는 꽃이 있어 아름답다면, 사람은 사랑이 있어서 아름답다.’ 고 괴테는 말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밝게 웃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아이들로 인해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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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강원아동문학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갑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