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이야기
조 용 휘
“외계인 같아요!”
손녀의 첫인상이 어떠냐고 물은 아내에게 아들이 한 대답이었다. 출산 예정일보다 열흘쯤 앞당겨 태어난 제리. 산통이 심한 며느리가 출산 하루 전에 입원하여 이튿날 오후 다섯 시가 넘어서야 손녀가 태어났다. 신생아실 밖 유리창을 통해 바라본 갓난아기가 산고로 시달린 까닭에 얼굴 모습이 비대칭이고 자신의 기대보다 훨씬 못생긴 모습이었나 보다. 며느리는 속상해서 밤새 울었다는 후문이다.‘그렇다고 제 딸을 외계인과 비교하다니.’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한다는데 너무 심했다.
4년 전, 서른여덟의 아들과 서른 살의 며느리가 결혼했다. 하루라도 빨리 친 손주를 기다리는 우리 부부의 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은 아기를 낳지 않겠다고 전격적으로 선언했다.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 벌이도 시원찮아 육아가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들보다 나이 어린 며느리는 아기를 낳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아들의 말에 충격을 받은 나와 아내는 아기 키우기가 아무리 힘들다 해도 자식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아들 부부의 입장이 참으로 마음 아프고 안타까웠다. 오 년 전 수술로 인해 지금도 무릎이 불편한 아내가 손주 욕심에 아이만 낳으면 자신이 돌봐준다고 덜컥 약속했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크리스마스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며느리가 우리 부부에게 임신이라는 기쁜 소식을 깜짝 선물했다.
태몽은 아내의 오랜 지인이 복숭아밭에서 크고 잘 익은 복숭아를 따서 치마에 담는 꿈을 꿨다고 했다. 아내 지인의 꿈이 며느리의 임신으로 이어졌다. 아들과 며느리는 태명을 쥐처럼 재주 많고 귀여운 제리로 지었다. 8월 중순 주말 오후 갑자기 산통이 심하게 온 며느리가 산부인과에 입원했다. 하룻밤을 넘긴 이튿날 오후 5시 48분에 오랜 진통 끝에도 수술하지 않고 3.48kg의 아기를 출산했다. 힘들게 제리는 9월 초인 예정일보다 열흘을 앞당겨 태어났다. 난산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는데 산모와 아기가 건강해서 천만다행이었다.
마흔두 해 전, 내 나이 스물아홉에 장가들어 이듬해 서른에 아들이 태어났다. 오후 3시경 아내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속싸개에 싸인 핏덩이 아기가 아내 곁에 누워 있었다.“에이, 애가 뭐 이래?”산통 속에 태어난 탓에 온몸이 붉고 퍼렇게 물든 갓난아기를 보고 나도 모르게 내뱉은 첫마디였다. 아내는 무심코 한 내 말을 사십 년도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서운한 마음이 남아있다고 했다. 부전자전 아니랄까 봐 아들도 제 애비를 닮아서 아기에게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며.
며느리가 임신하면서 딸이라는 사실에 아들은 실망이 컸다. 평소 잘 생기고 영특한 조카 형제를 예뻐하면서 조카처럼 잘 난 아들 낳기를 원했다. 아내는 다섯 자매의 딸 부잣집 맏이라 그런지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고, 나 역시 대가 끊어진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운 마음이 컸다. 딸만 둘을 둔 며느리의 친정어머니 역시 딸의 손녀 출산 소식에 둘째는 꼭 아들을 낳아야 한다며 서운해 했단다. 아들 부부에게 아기를 낳지 않으려다 얻은 귀한 딸이니 열 아들 부럽지 않도록 예쁘고 총명하게 키우라고 당부했다.
아들과 며느리는 갓난아기를 두고 누굴 닮아 못생겼냐고 서로를 탓하기에 이르렀다. 혼례식 당일 사회자는 오늘의 주인공인 신랑·신부처럼 잘생긴 신혼부부 보기가 쉽지 않다고 했는데, 아기는 대체 누구를 닮았단 말인가? 불편한 진실을 밝힌다면서 아내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자신들의 신생아 사진을 카톡방에 올리게 했다. 아들과 손녀 사진을 보니 오뚝한 콧날과 또렷한 인중이 닮았다. 며느리와 비교한 사진에서도 눈매와 입꼬리가 판박이다. 자신들을 닮았다는 것을 인정한 아들 부부는 수시로 사진을 카톡방에 올려 손녀가 예쁘다는 주위의 반응을 즐기는 눈치였다.
아들 부부가 호적에 올릴 제리의 정식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동생의 도움까지 받고 족보를 찾아 오행과 돌림자를 따져가며 한자 이름은 영희, 영경, 영서, 영진으로, 한글 이름은 유나로 지었다. 보름쯤 걸려 애써 지은 이름을 가족 카톡방에 올렸더니 너무 흔한 이름이라며 반응이 좋지 않았다. 결국, 아들 부부가 인터넷 카페‘아기 이름 짓기’에 가입해서 추천받은‘예린, 예나’중에서 아들과 아내가 원하는 이름인 재주와 맑음의 의미가 담긴‘예린’으로 결정했다.
며느리와 손녀가 산부인과 병원에 2박 3일 동안 있다가 산후 조리원으로 옮겼다. 코비 19사태로 조리원에서는 산모와 아기의 감염 예방을 위해 외부인의 출입을 완전히 막았다. 심지어 산모와 갓난아기도 격리되었다가 수유시간만 만날 수 있었다. 아들과 우리 부부는 간간이 며느리가 촬영해서 카톡방에 올린 아기 사진을 보았다. 각자의 스마트폰에‘허니 큐브’라는 어풀을 깔아 조리원에서 제공하는 실시간 동영상을 하루에 두서너 차례만 잠든 손녀의 얼굴을 겨우 볼 수 있었다.
손녀가 하필이면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쥐띠 해에 태어나는 바람에 출생 시간부터 지금까지 해프닝과 수난을 겪고 있다. 아기는 크면서 얼굴 모습이 수십 번도 더 변한다는데. 손녀는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눈, 코, 입, 귀 윤곽이 또렷해졌다. 특히 앵두 같은 붉은 입술에 오뚝한 코가 매력적이다. 손녀가 크면 한 인물 할 것 같다며 우리 부부는 마주보고 웃었다. 하루빨리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어 손녀 예린이가 마스크 없는 세상에서 건강하게 자라기를…. 외계인 제리는 목하 인간으로 진화 중이다.
첫댓글 참으로 축복을 받으신 것이지요. 유나도 이쁜 이름이고 예린이도 이쁘네요. 제리도 국제적으로 쓰면 잘 어울리는 이름이 좋을 것 같구요. 참 귀한 사람이 될 것 같아요. 행복한 참바세님 만세 입니다.
참바세님, 결혼도 축복이요 건강한 아기 출산은 축복 더하기 축복입니다. 가정적인 수필의 내용을 보면 늘 행복감이 넘칩니다.
가족이 생겼습니다. 참으로 소중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잔잔한 감동입니다
손녀를 얻는 기쁨을 함께 느껴봅니다.
축하드립니다.
예린이가 건강하고 지혜롭게 잘 자라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