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이나 강원도를 여행할때 이곳 포항에서는 대포고속도로,금호분기점,
중앙고속도로를 경유합니다.사실 어릴때는 학교에서 신상명세서 작성할때
본적을 기재하면서 촌놈이라는 것이 많이 창피했습니다.안동시내도 아니고
도산면 서부동. 왜 우리 어르신들은 도회지에서 살지 않고 촌 구석에서
사셨는지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며칠전에도 영월을 가기 위하여 안동휴게소에 잠시 정차하였습니다.
요즘은 어딜 가도 안동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합니다." 대한민국 정신문화의
수도" 이런 입간판이 꼭 서 있습니다.
유학이니 퇴계사상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민족 뿌리의 근간이 되는
철학같습니다.
대구로 중학교 진학하여 처음에 안동 사투리 때문에 싸움 많이 했습니다.
그 지방 특유의 억양이 많이 이상하게 들렸나 봅니다.예를 들면 "했니껴"
"요것 봐라" 어떨때는 사투리가 별명이 되어 놀림을 받았습니다.
대구 아들은 " 개새끼" 란 단어를 아주 맛깔스럽게 하더군요.저희 고향에서는
감히 사람의 아들을 개새끼라고 하지는 않는데, 요즘은 우스개 소리로 젊은
마눌들이 삼시세끼 밥차려 달라는 신랑보고 " 삼식이 새끼"라고 한답니다.
얼마전 추도식때 들른 여동생 딸이 그런소리 하면서 재미있어 한던데요.
그러지 마라 너희 신랑 S전자에서 얼마나 고통스럽게 일하는지 아느냐?
삼시새끼 잘차려 드려라 라고 당부했습니다.
부권이 무너져도 한참 무너졌습니다.이래서는 나라가 바로 서지 않습니다.
저희 고향에서 아버지의 밥상은 독상을 차려 진지를 드셨고 감히 아녀자들은
밥상위에 밥을 얹어놓고 밥을먹지 못하였습니다.
안동이란 도시는 정말 보수적입니다.6.25사변 전에는 집에 빈방이 있어도
세를 놓을줄 몰랐답니다.어디 감히 남의 식구들과 같이 생활하냐면서......
그곳에서도 변란이 터지니 많은 피란민들 때문에 방도 모자라고 영악스러운
도회지 사람들의 달변에 세를 놓게 되었답니다.
3공화국 시절 경제부흥은 어느정도 이루었으나 그에 따른 문화적 발전은
미흡한것 같아 그분께서 이래서는 않되겠다 하여 도산서원 들어가는 도로도
포장하고 많은 국비를 들여 도산면 일대를 재정비 하였습니다.
그지방 양반들 많습니다.안동권씨,김씨,장씨 도산이씨 그리고 내앞김씨
옹천강씨 등등 그리고 이주해온 양반들 평산신씨 ,밀양박씨,파평윤씨
어찌보면 상놈은 하나도 살지 않는 도시 같습니다.
저희 입향시조 묘소도 얼마전 묘사때 참배했습니다.
지금은 안동이 나의 고향이라는것이 매우 자랑스럽고 어딜가든 고향을 물으면
자랑스럽게 대답합니다.어릴때는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은 뿌리를 상당히 중요시 합니다.조상없는 후손없고 애비 없는 자식
없으니까요.우리 아이들에게도 너희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 장군이시고
장절공 34대손이라고 가르쳐 주었는데 그놈들이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大韓民國 정신문화의 수도 安東이 나의 고향입니다.
첫댓글 우와.....고향에 대한 사랑이 절절합니다.
안동가서 양반자랑 하지말라고하더니.....그말이 딱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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