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떼에게 습격 당한 수녀님
황량한 알토 지역을 떠돌아 다니는 들개들.
개에게 물려 피멍 들고 뼈도 상해
제가 사는 볼리비아의 알토, 우리 동네는 야생 개들이 무리 지어 돌아다닙니다. 한때는 주인에게 돌봄을 받던 개였다가 버림받고 야생으로 돌아가 개들끼리 지내게 되면서 포악해지고 먹을 것이 없으니 날마다 싸우고 웁니다.
얼마 전 성당 앞에서 그만 길거리 개에게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물렸습니다. 순식간에 달려들어 인정사정없이 물어버리는데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허벅지부터 발목까지 15군데 정도 물렸는데 특히 무릎을 심하게 물려 이빨이 뼛속까지 들어갔습니다.
너무 놀라고 기가 막혀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마구 쏟아졌지요. 진흙 바닥에 벗겨진 신발과 더러워진 옷을 추스르고 보건소로 갔습니다. 스페인 수사님들이 학교와 함께 운영하시는 보건소는 우리 공부방 아이들이 아프면 종종 오던 곳이라서 익숙한 곳입니다. 접수하고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께 물린 다리를 보여드리니 열흘은 지켜봐야 한다고 합니다. 생전 아파서 병원에 가본 일이라고는 없었는데 선교지에서 개에게 물려서 보건소에 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본당의 청년들이나 어르신, 공부방 아이들도 성당에 오다가 가끔 개에게 물리는데 이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기에 늘 주머니에 돌멩이를 갖고 다닙니다. 그래서 들개들이 가까이 다가오면 재빨리 돌을 던지거나 지팡이로 쫓아내고는 하는데 저는 그만 어쩔 줄 모르고 있다가 물린 것입니다. 길거리에서는 항상 개를 조심하라고 충고해 주던 원주민들의 말이 떠올랐지만 때는 늦어 버렸습니다.
물린 곳이 너무 아파서 온종일 끙끙거렸습니다. 다음 날 다시 보건소에 가야 하는데 알토 전역에서 시위가 일어나는 바람에 그만 모든 골목과 찻길이 막혀 빠져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볼리비아는 시위를 하면 무조건 차가 다닐 수 없는데도 차를 몰고 나갔다가는 사람들이 창문을 깨트리거나 타이어를 터트려 꼼짝할 수가 없게 됩니다.
할 수 없이 되돌아와서 물린 곳을 뜯어보니 깊이 팬 이빨 자국들과 여기저기 피멍이 심해서 다리는 처참한 지경이 되어 있었습니다. 피와 연고가 범벅되었고 거즈가 붙어서 떨어지지 않기에 소독약으로 살살 떼어 다시 치료하고 내일은 길이 열리기를 바라며 또 하루를 지냈지요.
열악하지만 소중한 보건소
다음 날은 다행히 아래 라파즈에서 시위 중이어서 알토 거리가 한산했습니다. 서둘러 보건소 창구에 가니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께서 혼자 신청을 받고 계셨습니다. 내 차례가 되어 수납 창구에 가자 반기시며 “어때…? 물린 데는 괜찮아?” 물으시기에 “잘 모르겠어요. 낫고 있는 건지 곪고 있는 건지, 어제 거즈 떼고 제가 소독했어요” 했더니 “건드리면 안 되는데?” 하시며 있다가 좀 보겠다고 하십니다.
접수를 끝내고 나온 의사 선생님은 서류 뭉치를 들고 복도를 지나시며 “좀 이따가 봐~” 하십니다. 차례가 되어 치료를 받으며 “저처럼 개한테 물려서 오는 사람이 많아요?” 했더니 “나도 얼마 전에 보건소 출근하다가 개에게 엉덩이를 물렸는걸! 피도 났어” 하십니다. 상처를 보시고 나아지고 있는 거라고 하시고는 “그런데 허벅지와 무릎은 조금 걱정이야” 하시더니 소독을 해주시고 연고를 발라 주셨습니다.
치료를 해주시며 예전에 이곳 볼리비아는 길에 쓰레기라고는 없었다고 말씀하시며 요즘은 사람들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서 온 천지가 다 쓰레기장이 되어 버렸다고 안타까워하십니다. 예전에는 버스 운전기사도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하고 운전했는데 요즘은 아무렇게나 입고 난폭 운전을 한다며 시골에서 온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예절도 모르고 인사할 줄도 모르고 사람을 치거나 잘못을 해도 미안하다고 사과할 줄도 모른다며 안타까워하십니다.
의사 선생님은 사진을 보여 주시며 “이 사람은 깨진 병에 찔려서 왔는데 내가 예쁘게 꿰매 줬어. 술 먹고 맥주병이 깨지면서 찔렀거든. 이 사람은 길에서 다짜고짜 폭행을 당했는데 상태가 심각했었지!” 병에 찔리거나 칼에 찔리거나 맞아서 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이곳은 위험해, 늘 조심해야 해!” 하고 충고해 주시며 치료를 끝내시고는 “어때, 괜찮아? 이젠 춤출 수 있겠어?” 하시며 춤추는 시늉을 하십니다.
진료실을 둘러보니 20년은 더 되어 보이는 낡은 수동식의 키 재는 도구와 체중계 그리고 찬장에는 연고 몇 개와 크고 작은 가위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조그마한 라디오에서 옛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열악한 보건소지만 급할 때 이곳마저 없었으면 어찌 되었을까 싶습니다.
하느님 중심으로 살 때 나머지는 채워 주셔
선교지의 삶은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생겨 몸으로 맞닥뜨리며 깨달아 가야 하는 긴 여정입니다. 이들의 문화와 역사, 언어를 알고 이해한다고 해도 직접 이들의 삶의 현장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터득하고 그 안에서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을 발견하고 의탁하는 여정입니다. 더 기도할 수밖에 없고 또한 많은 이들의 기도가 절실한 곳이기도 합니다.
개에게 물리던 순간을 다시금 떠올려보니 더 물릴 수도 있었는데 하느님께서 막아 주셨기에 이만하길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동물의 습성은 한 번 물면 끝을 보는데, 물다 말고 가버렸으니까요. 더군다나 광견병에 걸려 고생을 할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도 잘 아물고 있으니 이만하길 다행이고 감사가 절로 나옵니다.
무리 지어 돌아다니며 밤마다 서로 싸우며 물어뜯고 짖는 개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상념이 떠로릅니다. 우리도 하느님 곁을 떠나 말씀을 잊고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 귀한 본성을 잃어버리게 되면 세상의 것에 집착하게 되고 길을 잃게 되는 것이겠지요.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지만 인간이 세상의 것에 물들게 되면 반대로 하느님의 것은 잃어버리게 되겠지요.
모든 것의 중심이 하느님일 때 나머지 필요한 것들도 반드시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더 잘 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면서 우리가 바라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베풀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에페 3, 20-21).
어떠한 상황에서도 늘 돌봐 주시는 하느님이시기에 장소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설사 선교지에서 죽더라도 그것 또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우리를 그냥 버려 두지 않으시는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서든 저 세상에서든 언제나 함께하실 것이기에 맡겨 드리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계속해서 저를 한쪽으로 이끌고 계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오늘도 응답을 드리며 그분의 손길에 저를 맡겨 드립니다.
“여러분의 온갖 근심 걱정을 송두리째 하느님께 맡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여러분을 돌보십니다”(1베드 5,5b-7).
아멘!
도움 주실 분 : 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시티은행 622-00044-252-01 (김효진)